이거 써놨던거 옮기는 중입니다.
설마하니 하루만에 다 썼다고 생각하실 분 없으시겠죠?[…]
이제 오글거림을 향해갑니다.
지금 50P가 넘은 상태인데 얼마나 더 길어질지 모르겠네요.
근데 이제 간신히 반일 따름이고요.[…]
무슨 말을 해야하나 모르겠네요.
과거로 가면서 이야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
모쪼록 유의하셔서 읽어주세요.
"Me들은 언제까지 기다려 합니까? 기다리는 건 싫습니다."
"무쿠로님이 곧 오실 거야."
"You는 왜 반말입니까? 이상합니다."
"존댓말을 하는 네가 이상해. 바보 아냐?"
“You와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왜 반말을 씁니까? You가 이상한 겁니다.”
“너보단 안 이상해.”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10살, 그보다 어려보이기도 하는 두 소년이 투닥거린다. 무쿠로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살도 오르고, 한결 편안해 보였다. 둘만 내버려둬서 조금 걱정했었는데, 그가 잠들었던 사이 별다른 일이 없었나 보다.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있는 곳은 그가 특별히 마련해놨던 안가(安家)다. 전주인은 뒷세계와 전혀 관련이 없었던 후덕한 분위기의 할머니였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우연히 만난 그에게 이 집을 줬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가끔 그녀의 정신세계에서 이야기를 나눈 것밖에 없다. 하지만, 많이 외로웠던 그녀로서는 굉장히 고마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런 마음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 집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작지만 고풍스럽고 아늑한 곳이다. 언제고 모든 것이 끝날 때, 이곳에서 평범한 척 살아갈까라는 고민도 조금 했었다. 그게 아득한 꿈처럼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이런 헛된 희망을 품다니……, 역시 무른 게 전염되었나 봅니다. 그는 쓰게 웃었다.
그 씁쓰레한 웃음소리에 둘은 말다툼을 멈췄다.
“무쿠로님?”
[사이가 좋아졌군요. 다행입니다.]
“네, 무쿠로님은…….”
"늦었습니다. 이러고도 Me의 스승님이십니까?"
귀도의 그 순한 얼굴이 있는 데로 구겨졌다. 갑자기 말을 자른 프랑을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며 진심을 담아 한마디 던진다.
“넌 닥쳐.”
순한 얼굴에서는 상상도 못할 살의가 엿보인다. 무쿠로는 그런 둘을 작태에 머리가 아파졌다.
귀도는 크롬보다 훨씬 심각했었다. 그녀가 가족의 무관심에 질려 허무한 삶을 포기하려 했다면, 귀도는 가족의 손에 망가져서 삶을 포기하려고 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멀쩡해서 그렇지, 실제 안은 상처로 가득했다. 무쿠로가 그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죽거나, 미쳤을 거다. 마음은 더 만신창이였다. 구원해주지 않는 신을 저주하고, 외면하는 세상을 경멸하며, 살아있는 모든 것의 가치 따윈 조금도 없다고 여겼다. 새까맣게 변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 증오를 매일 마음에 새기며 살았다.
그건 츠나를 만나기 전, 무쿠로의 세계와 비슷했다. 그런 그가 귀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게는 힘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는 그 힘으로 스스로 지옥을 부수고, 세계를 부수려 했었다. 그렇기에 귀도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을 괴롭힌 모든 것을 죽이길 원하리라.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죽음은 너무 쉽다. 지옥보다 더한 고통을 주고 싶다면, 차라리 이 현실을 살아가는 편이 맞다. 이 세상보다 더한 지옥은 없으니까. 그렇게 그는 귀도를 구원한 단 하나의 존재가 되었다. 그는 귀도라는 작은 세계의 유일한 신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렇게 굉장한 의미인 무쿠로와의 대화다. 그걸 중간에서 강제로 끊은 것도 모자라 제자를 자처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그는 프랑을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순간 망할 녀석이 추가되어 버렸다.
귀도가 폭발하기 전에, 무쿠로가 먼저 적절히 태클을 걸었다.
[난 아직 네 스승이 되겠다고 한 적 없습니다.]
“Me를 구해줬잖습니까. 그때 분명히 제자가 될 아이라고 했잖습니까.”
[될지도 모른다고 했지, 제자로 삼겠다고 한 적 없습니다.]
“스승님, 한 입으로 두말하면 나쁩니다.”
[닥치세요.]
무쿠로는 급격한 피로감을 느꼈다. 도저히 고운 말이 나가지 않는다. 하긴, 처음 구해줬을 때도 “Me를 구했으니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라는 소리나 한 애다. 물에 빠진 걸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놔 라며 난리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이 녀석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면, 그가 반디에르 패밀리를 쓸 이유도 없었다. 그럼 그 때문에 츠나가 그렇게 될 일도 없었을 거다. 다시 말해, 모든 일의 원흉은 너라는 거군요. 순간 살기가 치밀어 오른다.
그는 진심으로 프랑을 그냥 버리고 싶었지만, 그 재능만큼은 진짜다. 자기보다 못하지만, 프랑의 재능은 확실히 훌륭했다. 자화자찬에 가깝지만, 현재로서 환술로 그보다 강한 존재는 없다. 그 아르꼬발레노도 상대가 아니니 그 사실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런 그가 인정할 정도의 재능을 지닌 이가 프랑이다. 이런 성격에 그런 재능이라니…… 이것도 운이라면, 프랑은 정말 운이 좋은 거다.
그는 살짝 혀를 찼다. 그러다 잠시 시간을 가늠하더니, 둘을 재촉한다.
[귀도, 프랑. 이제 움직여야 합니다. 일어나세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밖에 차를 대기 시켜뒀습니다.]
“네, 무쿠로님.”
[착한 아이군요, 귀도.]
뒤에서 “느립니다, 스승님.”거리는 누구랑 비교되게 정말 예의 바르고 착하다. 진짜 멀쩡한 상태라면 머리라도 쓰다듬어 줄 텐데……. 이럴 때면 갇혀 있다는 사실이 아쉽다. 그런 그의 마음이 닿았는지, 귀도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에게 칭찬받았다는 사실이 그리도 기뻤던 것이다.
프랑은 그런 훈훈한 분위기를 형성한 둘을 향해 괜히 투덜거렸다. 그에게도 무쿠로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다. 스스로를 인식했을 때부터 그는 혼자였다. 누구 하나 곁에 없었고, 손을 내밀어 주는 이 하나 없었다. 결국, 거리를 전전해야 했고, 연고지도 없는 아이라 주요 납치대상이 되었다. 죽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이대로 죽는 게 너무 억울해서 살고 싶었다. 마피아의 실험체로 넘겨졌을 때는 반쯤 체념하고 있었다. 지지리도 복도 없지.
그런 그를 무쿠로가 구해줬다. 경이로울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 마피아를 쓸어버렸다. 무엇보다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그런 만큼, 무쿠로는 그에게 특별한 존재다. 물론, 무쿠로가 그의 속내를 잃는다면, 그런 적 없다고 외칠 거다. 그는 정확하게 [내 제자가 될지도 모를 아이에게 손대면 곤란합니다.]라고 했을 뿐이다. 될지도 모른다지, 아직 자청해서 되어주겠다고 한 적 없다.
처음부터 삐거덕거리는 사제간이다.
"스승님은 쇼타콤입니까? 그런 스승님께 가다니 Me는 참 불행합니다."
[넌 오지 마세요.]
“가기 싫다고 안 했습니다. 스승님은 쩨쩨합니다.”
[뻔뻔하긴. 귀도, 그는 버려두고 어서 움직이세요.]
“네, 무쿠로님.”
“정말 Me를 버립니까? 스승님-, 책임감이 부족하십니다.”
귀도는 기다렸다는 듯이 희희낙락 앞서나갔다. 그 뒤를 프랑이 급히 쫓아간다. 그러면서도 무쿠로에게 매정하다고 투덜거린다. 결국, 무쿠로가 [진짜 버려버리기 전에 닥쳐요.]라고 해야만 했다.
그렇게 둘이 건물을 나서자 바로 앞에 택시가 대기 중이었다. 택시기사로 보이는 20대 청년이 둘의 생김새를 유심히 보다가, 들은 대로라면서 차 문을 열어줬다. 둘은 잠시 망설이다가, 무쿠로가 재촉하자 냉큼 뒷좌석에 올랐다. 택시기사는 차 문까지 닫아주었고, 조용히 출발시켰다. 그는 흘깃흘깃 뒷좌석의 둘을 훔쳐봤지만, 둘에게 말을 걸진 않았다. 어디에 간다는 말도 없이 이래저래 살펴보기만 할 뿐이다.
둘 다 어린 나이에 진흙탕과 같은 세상을 굴러버린 결과, 무심한 척하는 데에 이골이 난 상태다. 하지만, 무쿠로까지 말이 없어서 조금 불안했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겁니다. 그게 계약조건이니까요.]
조곤한 무쿠로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고 나서야, 둘의 불안은 가라앉았다.
[조용히 듣기만 하세요. 고개를 끄덕일 필요도 없습니다. 알아들었다면 검지를 움직이세요.]
둘은 잠시 서를 보다가 검지를 까딱였다. 어쩐지 첩보영화를 찍는 기분이 들기 시작해서 둘은 조금 들떴다. 그런 둘의 상태를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한 무쿠로가 조용히 말을 이어간다.
[지금 향하는 곳은 공항입니다. 최종 목적지는 일본. 내 동료가 있는 곳입니다.]
그 말에 그들은 잠시 서로 바라봤다. 일본이라면 얼핏 들은 적만 있다. 동양에 있는 섬나라로 월드컵을 개최한 적 있다. 그들은 딱 그 정도만 알았다. 살아남기 바쁜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 따위를 알 필요도 없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으로 간다고 하니 둘은 다시 불안해졌다. 하지만, 무쿠로의 말이다. 둘은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그때, 말 대신 영상이 둘의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삐죽삐죽한 금발에 사나운 인상의 사람과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안경을 낀 사람, 그리고 오른쪽에 안대를 한 귀여운 인상의 소녀의 모습이었다. 둘에게 있어서 그들은 당연히 낯선 사람이었지만, 무쿠로의 동료라는 걸 막연히 알 수 있었다.
[오른쪽의 금발이 죠시마 켄, 왼쪽이 카키모토 치쿠사, 가운데의 소녀가 크롬 도쿠로입니다. 이 중 켄과 치쿠사가 너희를 마중할 테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도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도 이탈리아 출신입니다.]
그 불안을 읽은 듯, 그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둘을 달랬다. 스스로 놀랄 만큼 뜻밖의 다정함이었다. 자신의 성향을 잘 아는 그였기에 그 놀람은 컸다. 이런 상냥함 따윈 자신에게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절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현실이 너무나 쉽게 변해간다. 세상을 증오하던 자신이 이런 여유를 품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정말, 곤란하다.
둘은 그의 말에 안정을 찾았지만, 정작 본인은 곤혹스러워졌다.
[물론, 바로 출발하는 건 아닙니다. 공항에 들어서 왼쪽에 보이는 일식집에 들어가도록 하세요. 조금 느긋하게 가도 됩니다. 거기에서 일단 식사를 하고, 기다리세요.]
둘이 검지를 까닥인다. 그는 착하다고 칭찬하면서 자신이 준비한 계획을 돌아봤다.
둘의 여권은 이미 위조해서 구해놓은 상태다. 예정시간에 출발할 비행기표도 여러 개 사놨다. 그리고 다른 패밀리에서 보낸 이들도 확인했다. 그가 프랑을 귀하기 위해 거하게 날뛴 일로 여타 패밀리에서 경계하기 시작한 게 문제다. 그들의 정신세계를 훔쳐 본 결과, 몇몇은 이 둘을 인질로 잡아 그의 힘을 이용하려 했고, 몇몇은 이 둘을 죽여 그에게 타격을 주려고 했다. 그걸 읽었을 때, 죄다 쓸어버릴까 했었다. 어차피 그의 능력이라면 간단히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또 날뛰어서 봉골레에게 부담을 주긴 싫었다.
어차피 이 둘을 노리는 자들의 지각(知覺)은 그의 손안에 있다. 그거면 끝이다.
[4시쯤 되면 중년의 남성이 ‘아들’이라고 하면서 비행기를 타야 할 곳으로 안내할 겁니다. ‘나기가 보고 싶어 한다.’라는 말이 없으면, 적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도착하면 여권과 비행기표를 쥐여 줄 겁니다. 아시겠죠?]
다시 둘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똑똑한 아이들이니 이 정도면 되리라. 비행기를 탈 때까지 곁에 있어주고 싶었지만, 크롬 쪽의 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확인하러 가봐야 한다. 그들에게는 이 둘의 이야기를 아직 하지 않았다.
[그럼 둘이서도 괜찮겠지요? 난 조금 쉬어야겠습니다. 지켜보고 있을 테니, 무서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괜찮겠지요?]
그 말에 귀도와 프랑의 시선이 얽혔다. 가장 든든한 보호자가 자리를 비우겠다는 데, 괜찮을 리 없다. 이럴 때 보통 아이라면 싫다고 어리광이라도 부리겠지만, 그런 걸 모르는 환경에서 자라서 그냥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니, 그렇게 떼쓰는 방법을 알긴 한다. 하지만, 그랬다간 진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 결국, 둘은 어렵사리 검지를 움직였다.
무쿠로가 아무리 냉혹한 성격이라 해도, 그런 일로 간단히 버릴 생각이었다면 구해주지도 않았다. 만약 그들이 싫다고 했다면 그는 곁에 남아있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소소한 불안감’은 존재한 적 없다. 모르는 것을 배려하는 건 누구라도 무리다. 그는 그저 둘의 대답이 이상하게 늦었다고만 느꼈다. 둘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도 알았지만, 이미 어떻게 할지 결정한 이상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그대로 크롬에게 향했다.
그가 크롬의 의식에 닿았을 때, 그녀의 곁에는 어쩐 일로 켄과 치쿠사가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로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고작 자리를 비운 1주일 사이에 또 무슨 일이 터진 겁니까. 그는 급속도로 피로가 몰려오는 걸 느꼈다. 분명히 골치 아픈 일이겠지.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크롬에게 확신을 담아 말했다.
[크롬,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무쿠로님…….’
[누가 괴롭히는 겁니까?]
‘아니, 아니에요! 모두 정말 잘 대해주세요. 특히 마망이……. 같이 식사준비도 하고 장도 보러 가고……, 재미있었어요.’
어차피 그쪽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누가 그녀를 괴롭힌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켄과 치쿠사가 아니다. 그가 그걸 먼저 물은 이유는 그녀가 쉽게 대답할 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쉬운 대답이 어려운 대답을 부르는 법이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레 [그럼 왜?]라고 물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망설였다. 당혹스러움과 미안함, 그리고 어렴풋이 보이는 죄책감. 그는 그녀의 심리를 대강 짐작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간단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먼저 치밀어 올랐지만, 억지로 억눌렀다. 지금은 귀도와 프랑이 먼저다.
[대답은 나중에 들어도 되겠습니까, 크롬? 지금 켄과 치쿠사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네, 네!’
그는 자연스레 표면으로 나와 그들에게 웃어 보였다.
“켄, 치쿠사.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무쿠로씨다, 뵹!”
“무쿠로님!”
둘의 표정이 밝아지며, 그를 반긴다. 그들로서는 근 3달 만에 만난 무쿠로다. 켄은 잔뜩 들떠서 정신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괜찮은 건가요, 무쿠로씨? 물론이죠, 켄은 잘 지낸 겁니까? 그럼요! 여기 마망이 만들어준 음식은 죄다 맛있어요, 뵹! 무쿠로씨는 먹어 본 적 있나요?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에엑!? 마망께 말해서 만들어 달라고 해봐요! 무쿠로씨도 먹고 싶으시죠? 일단, 다음 기회로 넘기도록 하죠. 그는 거의 단답형으로 대답했지만, 켄은 아무래도 좋은지 계속 질문을 이어간다. 그런 켄을 막은 건 곁에서 지켜보던 치쿠사다.
“켄, 시끄러워.”
“카키삐는 방해하지 마! 4달 만에 만나는 무쿠로씨다, 뵹! 무쿠로씨! 카키삐는 냉정해서 괜찮을지 몰라도 난 아니다~, 뵹! 그죠? 무쿠로씨!”
“진정하세요, 켄. 이렇게 온건 두 사람에게 시킬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에 켄이 급격히 실망했다. 켄은 많이 자상해진 그가 자신을 위해 일부러 만나러 온 상황을 원했나 보다. 그걸 쉽게 알아차린 치쿠사가 작게 “바보.”라고 중얼거렸다. 켄이 울컥해서 치쿠사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귀찮아.”라고 끝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사이가 좋은지 나쁜지 참 애매하군요. 무쿠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켄, 치쿠사. 두 사람은 내일 오전 6시경에 공항으로 가서 이 두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합니다.”
둘의 앞쪽이 흐릿하게 잔상이 생기더니 귀도와 프랑의 모습이 나타났다. 귀여운 인상이지만, 처음 보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아이들을? 둘의 눈에 의문이 어렸다. 무쿠로는 잠시 어쩔까 고민하다가, “명령입니다.”라는 한마디로 끝냈다. 설명하려면 길어질 게 뻔하고, 또 말하기 난감한 사실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봉골레, 사와다 츠나요시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습니까?”
그건 순수한 ‘확인’에 가까웠다. 아니나 다를까, 켄은 딴청을 피웠고, 치쿠사는 안경을 매만진다. 크롬은 크게 숨을 들이켜면서 대답하길 주저했다. 정말 솔직한 아이들이지 않습니까. 정말 뻔한 행동들이라, 한숨부터 나왔다.
그가 강제로 츠나를 깨웠던 날로부터 1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계속 잠들어 있었다면, 리본이 다시 그를 찾을 법한데 찾지 않았다는 게 이상했다. 설마하니 다른 환술사를 부른 건가? 그가 해결하지 못했는데, 다른 환술사가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로지 그만이 해결할 수 있다. 다른 환술사가 왔었다면 그걸 확실하게 알았을 텐데……? 설마하니 크롬이 그를 부르지 않았던 건가?
그때, 리본이 문을 열고 성큼 걸어 들어왔다.
“크롬, 무쿠로를 아직도 부르지 않은 거냐?”
역시. 그는 속으로만 혀를 찼다. 깨기 전이라면 불러도 듣지 못했겠지만, 깨어난 후라면 그녀의 부름을 듣지 못할 리 없다. 귀도와 프랑을 위해 뒷공작을 펼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 주위 상황을 알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크롬, 어째서 부르지 않았습니까? 그는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곧 덮었다. 이 일에 얽혀서 그와 연락이 끊어졌던 게 벌써 2번이다. 갑작스럽게 끊긴 소식은 불안함만을 남긴다. 아무리 불러도 닿지 않는 목소리는 절망으로 변해간다. 그녀로서는 이제 그런 경험을 하기 싫었으리라. 그는 그런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츠나를 방치할 수는 없다.
“오래간만입니다, 아르꼬발레노. 벌써 A/S 신청입니까?”
“와있었나, 로쿠도 무쿠로.”
“네, 그렇죠.”
“똑바로 처리하지 못하는 거냐?”
이걸로 벌써 3번째다.
리본의 마음에 의구심이 깃드는 것도 당연하다. 만약 다른 상황이었다면 직접적인 친분이 있는 바이퍼에게 넘겼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든 무쿠로가 맡아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무쿠로가 똑바로 하지 않으면 츠나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피아를 증오하고, 인간을 경멸하는 그라면 하는 척만 할지도 모른다. 리본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는 그런 리본의 타박에도 태연자약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다른 환술사에게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의 정신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만? 특히나 의지가 강한 경우에는 더욱 힘듭니다. 알다시피, 봉골레의 경우에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너무 강해서 저렇게 되었습니다. 그걸 ‘현재’로 돌리기 위해서는 ‘과거’를 포기하게 해야 합니다. 절대 쉽지 않죠.”
전혀 뜻밖의 설명에 리본은 깜짝 놀랐다. 왜 츠나가 저렇게 되었는지, 그는 조금도 몰랐다. 무쿠로의 예상대로 바이퍼를 불러서 맡겨봤지만, 그는 츠나의 정신에 접촉도 못했었다. 오죽하면 그 바이퍼가 “이건 나로서는 어떻게 풀 수 없는 문제야. 짜증 나는군. 계약대로 처리하지 못했으니 출장비만 받겠어.”라고 했겠는가?
“이건 직접적으로 봉골레와 접촉했다면, 알게 될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접촉하지 못했겠지요. 그는 뒷말을 삼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이 되었는지, 리본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원인을 안다는 건, 그만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좋든 싫든 그를 믿어야만 한다. 그게 리본의 신경을 건드렸다.
“봉골레는 그때부터 계속 같은 상태입니까?”
“나흘 전에 잠깐 깼었다.”
“그때의 반응은?”
“그냥 주위를 살펴보고는 다시 잠들었다.”
무쿠로는 그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차피 리본이 아는 건 딱 그 정도다. 하지만, 그는 그걸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일 거다. 그가 츠나를 깨우기 위해 강경수단을 썼던 게 독이 되어버렸다. 연못만 보려는 사람에게 호수가 아니라, 바다를 보여준 격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츠나의 상태가 어떨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골치 아픈 상황이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신의 요구 사항을 말했다.
“내일 켄과 치쿠사가 데리고 올 두 아이도 보살펴주시겠습니까, 아르꼬발레노?”
“무료 서비스 기간은 없는 거냐?”
“없다고 해두죠.”
“어이.”
“잠시면 됩니다. 봉골레가 완전히 깨어날 때까지 말입니다.”
묘한 어투다. 리본은 자괴감과 자신감이 뒤섞인 그의 말에 미심쩍다는 시선을 보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녀석이 이런 식이니 불안해진다. 그래도 남은 패가 하나밖에 없으니 꽝이든, 당첨이든 뽑아야 한다.
“이번에는 진짜냐?”
“이번에도 실패하면 끝입니다. 더는 버티지 못해요. 잘게 부서질 겁니다. 그전에 기대라도 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르꼬발레노.”
그는 곱게 웃었다.
지금 츠나의 상태가 지속되면 미치거나 망가질 거다. 부서진다는 건 매한가지. 아무리 외면해도 결과가 같다면, 끝나버리기 전에 이 손으로…….
무쿠로는 자신을 부르는 리본을 무시하고 츠나의 꿈속으로 뛰어들었다.
왜 이렇게 길죠?
이상하게 쓸데마다 이 말 하는 거 같아요?(…)
네가 데레할 곳은 저기가 아닐텐데…… 라면서 썼습니다.
다음편에는 과거편이겠네요.
무쿠로는 츤이니까 스페이드는 데레일겁니다.
… 아마도요!
과거편도 이을 생각이었습니다만, 대책없이 길어져서 잘랐습니다.
최고모에토너먼트에서 무쿠로가 처참한 표수를 받은 걸로 버프를 받아서 어쩐지 상당히 얌전해진 느낌입니다?(…)
어째 잡담도 길군요!(…)
설마하니 하루만에 다 썼다고 생각하실 분 없으시겠죠?[…]
이제 오글거림을 향해갑니다.
지금 50P가 넘은 상태인데 얼마나 더 길어질지 모르겠네요.
근데 이제 간신히 반일 따름이고요.[…]
무슨 말을 해야하나 모르겠네요.
과거로 가면서 이야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
모쪼록 유의하셔서 읽어주세요.
"Me들은 언제까지 기다려 합니까? 기다리는 건 싫습니다."
"무쿠로님이 곧 오실 거야."
"You는 왜 반말입니까? 이상합니다."
"존댓말을 하는 네가 이상해. 바보 아냐?"
“You와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왜 반말을 씁니까? You가 이상한 겁니다.”
“너보단 안 이상해.”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10살, 그보다 어려보이기도 하는 두 소년이 투닥거린다. 무쿠로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살도 오르고, 한결 편안해 보였다. 둘만 내버려둬서 조금 걱정했었는데, 그가 잠들었던 사이 별다른 일이 없었나 보다.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있는 곳은 그가 특별히 마련해놨던 안가(安家)다. 전주인은 뒷세계와 전혀 관련이 없었던 후덕한 분위기의 할머니였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우연히 만난 그에게 이 집을 줬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가끔 그녀의 정신세계에서 이야기를 나눈 것밖에 없다. 하지만, 많이 외로웠던 그녀로서는 굉장히 고마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런 마음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 집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작지만 고풍스럽고 아늑한 곳이다. 언제고 모든 것이 끝날 때, 이곳에서 평범한 척 살아갈까라는 고민도 조금 했었다. 그게 아득한 꿈처럼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이런 헛된 희망을 품다니……, 역시 무른 게 전염되었나 봅니다. 그는 쓰게 웃었다.
그 씁쓰레한 웃음소리에 둘은 말다툼을 멈췄다.
“무쿠로님?”
[사이가 좋아졌군요. 다행입니다.]
“네, 무쿠로님은…….”
"늦었습니다. 이러고도 Me의 스승님이십니까?"
귀도의 그 순한 얼굴이 있는 데로 구겨졌다. 갑자기 말을 자른 프랑을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며 진심을 담아 한마디 던진다.
“넌 닥쳐.”
순한 얼굴에서는 상상도 못할 살의가 엿보인다. 무쿠로는 그런 둘을 작태에 머리가 아파졌다.
귀도는 크롬보다 훨씬 심각했었다. 그녀가 가족의 무관심에 질려 허무한 삶을 포기하려 했다면, 귀도는 가족의 손에 망가져서 삶을 포기하려고 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멀쩡해서 그렇지, 실제 안은 상처로 가득했다. 무쿠로가 그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죽거나, 미쳤을 거다. 마음은 더 만신창이였다. 구원해주지 않는 신을 저주하고, 외면하는 세상을 경멸하며, 살아있는 모든 것의 가치 따윈 조금도 없다고 여겼다. 새까맣게 변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 증오를 매일 마음에 새기며 살았다.
그건 츠나를 만나기 전, 무쿠로의 세계와 비슷했다. 그런 그가 귀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게는 힘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는 그 힘으로 스스로 지옥을 부수고, 세계를 부수려 했었다. 그렇기에 귀도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을 괴롭힌 모든 것을 죽이길 원하리라.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죽음은 너무 쉽다. 지옥보다 더한 고통을 주고 싶다면, 차라리 이 현실을 살아가는 편이 맞다. 이 세상보다 더한 지옥은 없으니까. 그렇게 그는 귀도를 구원한 단 하나의 존재가 되었다. 그는 귀도라는 작은 세계의 유일한 신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렇게 굉장한 의미인 무쿠로와의 대화다. 그걸 중간에서 강제로 끊은 것도 모자라 제자를 자처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그는 프랑을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순간 망할 녀석이 추가되어 버렸다.
귀도가 폭발하기 전에, 무쿠로가 먼저 적절히 태클을 걸었다.
[난 아직 네 스승이 되겠다고 한 적 없습니다.]
“Me를 구해줬잖습니까. 그때 분명히 제자가 될 아이라고 했잖습니까.”
[될지도 모른다고 했지, 제자로 삼겠다고 한 적 없습니다.]
“스승님, 한 입으로 두말하면 나쁩니다.”
[닥치세요.]
무쿠로는 급격한 피로감을 느꼈다. 도저히 고운 말이 나가지 않는다. 하긴, 처음 구해줬을 때도 “Me를 구했으니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라는 소리나 한 애다. 물에 빠진 걸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놔 라며 난리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이 녀석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면, 그가 반디에르 패밀리를 쓸 이유도 없었다. 그럼 그 때문에 츠나가 그렇게 될 일도 없었을 거다. 다시 말해, 모든 일의 원흉은 너라는 거군요. 순간 살기가 치밀어 오른다.
그는 진심으로 프랑을 그냥 버리고 싶었지만, 그 재능만큼은 진짜다. 자기보다 못하지만, 프랑의 재능은 확실히 훌륭했다. 자화자찬에 가깝지만, 현재로서 환술로 그보다 강한 존재는 없다. 그 아르꼬발레노도 상대가 아니니 그 사실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런 그가 인정할 정도의 재능을 지닌 이가 프랑이다. 이런 성격에 그런 재능이라니…… 이것도 운이라면, 프랑은 정말 운이 좋은 거다.
그는 살짝 혀를 찼다. 그러다 잠시 시간을 가늠하더니, 둘을 재촉한다.
[귀도, 프랑. 이제 움직여야 합니다. 일어나세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밖에 차를 대기 시켜뒀습니다.]
“네, 무쿠로님.”
[착한 아이군요, 귀도.]
뒤에서 “느립니다, 스승님.”거리는 누구랑 비교되게 정말 예의 바르고 착하다. 진짜 멀쩡한 상태라면 머리라도 쓰다듬어 줄 텐데……. 이럴 때면 갇혀 있다는 사실이 아쉽다. 그런 그의 마음이 닿았는지, 귀도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에게 칭찬받았다는 사실이 그리도 기뻤던 것이다.
프랑은 그런 훈훈한 분위기를 형성한 둘을 향해 괜히 투덜거렸다. 그에게도 무쿠로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다. 스스로를 인식했을 때부터 그는 혼자였다. 누구 하나 곁에 없었고, 손을 내밀어 주는 이 하나 없었다. 결국, 거리를 전전해야 했고, 연고지도 없는 아이라 주요 납치대상이 되었다. 죽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이대로 죽는 게 너무 억울해서 살고 싶었다. 마피아의 실험체로 넘겨졌을 때는 반쯤 체념하고 있었다. 지지리도 복도 없지.
그런 그를 무쿠로가 구해줬다. 경이로울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 마피아를 쓸어버렸다. 무엇보다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그런 만큼, 무쿠로는 그에게 특별한 존재다. 물론, 무쿠로가 그의 속내를 잃는다면, 그런 적 없다고 외칠 거다. 그는 정확하게 [내 제자가 될지도 모를 아이에게 손대면 곤란합니다.]라고 했을 뿐이다. 될지도 모른다지, 아직 자청해서 되어주겠다고 한 적 없다.
처음부터 삐거덕거리는 사제간이다.
"스승님은 쇼타콤입니까? 그런 스승님께 가다니 Me는 참 불행합니다."
[넌 오지 마세요.]
“가기 싫다고 안 했습니다. 스승님은 쩨쩨합니다.”
[뻔뻔하긴. 귀도, 그는 버려두고 어서 움직이세요.]
“네, 무쿠로님.”
“정말 Me를 버립니까? 스승님-, 책임감이 부족하십니다.”
귀도는 기다렸다는 듯이 희희낙락 앞서나갔다. 그 뒤를 프랑이 급히 쫓아간다. 그러면서도 무쿠로에게 매정하다고 투덜거린다. 결국, 무쿠로가 [진짜 버려버리기 전에 닥쳐요.]라고 해야만 했다.
그렇게 둘이 건물을 나서자 바로 앞에 택시가 대기 중이었다. 택시기사로 보이는 20대 청년이 둘의 생김새를 유심히 보다가, 들은 대로라면서 차 문을 열어줬다. 둘은 잠시 망설이다가, 무쿠로가 재촉하자 냉큼 뒷좌석에 올랐다. 택시기사는 차 문까지 닫아주었고, 조용히 출발시켰다. 그는 흘깃흘깃 뒷좌석의 둘을 훔쳐봤지만, 둘에게 말을 걸진 않았다. 어디에 간다는 말도 없이 이래저래 살펴보기만 할 뿐이다.
둘 다 어린 나이에 진흙탕과 같은 세상을 굴러버린 결과, 무심한 척하는 데에 이골이 난 상태다. 하지만, 무쿠로까지 말이 없어서 조금 불안했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겁니다. 그게 계약조건이니까요.]
조곤한 무쿠로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고 나서야, 둘의 불안은 가라앉았다.
[조용히 듣기만 하세요. 고개를 끄덕일 필요도 없습니다. 알아들었다면 검지를 움직이세요.]
둘은 잠시 서를 보다가 검지를 까딱였다. 어쩐지 첩보영화를 찍는 기분이 들기 시작해서 둘은 조금 들떴다. 그런 둘의 상태를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한 무쿠로가 조용히 말을 이어간다.
[지금 향하는 곳은 공항입니다. 최종 목적지는 일본. 내 동료가 있는 곳입니다.]
그 말에 그들은 잠시 서로 바라봤다. 일본이라면 얼핏 들은 적만 있다. 동양에 있는 섬나라로 월드컵을 개최한 적 있다. 그들은 딱 그 정도만 알았다. 살아남기 바쁜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 따위를 알 필요도 없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으로 간다고 하니 둘은 다시 불안해졌다. 하지만, 무쿠로의 말이다. 둘은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그때, 말 대신 영상이 둘의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삐죽삐죽한 금발에 사나운 인상의 사람과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안경을 낀 사람, 그리고 오른쪽에 안대를 한 귀여운 인상의 소녀의 모습이었다. 둘에게 있어서 그들은 당연히 낯선 사람이었지만, 무쿠로의 동료라는 걸 막연히 알 수 있었다.
[오른쪽의 금발이 죠시마 켄, 왼쪽이 카키모토 치쿠사, 가운데의 소녀가 크롬 도쿠로입니다. 이 중 켄과 치쿠사가 너희를 마중할 테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도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도 이탈리아 출신입니다.]
그 불안을 읽은 듯, 그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둘을 달랬다. 스스로 놀랄 만큼 뜻밖의 다정함이었다. 자신의 성향을 잘 아는 그였기에 그 놀람은 컸다. 이런 상냥함 따윈 자신에게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절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현실이 너무나 쉽게 변해간다. 세상을 증오하던 자신이 이런 여유를 품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정말, 곤란하다.
둘은 그의 말에 안정을 찾았지만, 정작 본인은 곤혹스러워졌다.
[물론, 바로 출발하는 건 아닙니다. 공항에 들어서 왼쪽에 보이는 일식집에 들어가도록 하세요. 조금 느긋하게 가도 됩니다. 거기에서 일단 식사를 하고, 기다리세요.]
둘이 검지를 까닥인다. 그는 착하다고 칭찬하면서 자신이 준비한 계획을 돌아봤다.
둘의 여권은 이미 위조해서 구해놓은 상태다. 예정시간에 출발할 비행기표도 여러 개 사놨다. 그리고 다른 패밀리에서 보낸 이들도 확인했다. 그가 프랑을 귀하기 위해 거하게 날뛴 일로 여타 패밀리에서 경계하기 시작한 게 문제다. 그들의 정신세계를 훔쳐 본 결과, 몇몇은 이 둘을 인질로 잡아 그의 힘을 이용하려 했고, 몇몇은 이 둘을 죽여 그에게 타격을 주려고 했다. 그걸 읽었을 때, 죄다 쓸어버릴까 했었다. 어차피 그의 능력이라면 간단히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또 날뛰어서 봉골레에게 부담을 주긴 싫었다.
어차피 이 둘을 노리는 자들의 지각(知覺)은 그의 손안에 있다. 그거면 끝이다.
[4시쯤 되면 중년의 남성이 ‘아들’이라고 하면서 비행기를 타야 할 곳으로 안내할 겁니다. ‘나기가 보고 싶어 한다.’라는 말이 없으면, 적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도착하면 여권과 비행기표를 쥐여 줄 겁니다. 아시겠죠?]
다시 둘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똑똑한 아이들이니 이 정도면 되리라. 비행기를 탈 때까지 곁에 있어주고 싶었지만, 크롬 쪽의 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확인하러 가봐야 한다. 그들에게는 이 둘의 이야기를 아직 하지 않았다.
[그럼 둘이서도 괜찮겠지요? 난 조금 쉬어야겠습니다. 지켜보고 있을 테니, 무서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괜찮겠지요?]
그 말에 귀도와 프랑의 시선이 얽혔다. 가장 든든한 보호자가 자리를 비우겠다는 데, 괜찮을 리 없다. 이럴 때 보통 아이라면 싫다고 어리광이라도 부리겠지만, 그런 걸 모르는 환경에서 자라서 그냥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니, 그렇게 떼쓰는 방법을 알긴 한다. 하지만, 그랬다간 진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 결국, 둘은 어렵사리 검지를 움직였다.
무쿠로가 아무리 냉혹한 성격이라 해도, 그런 일로 간단히 버릴 생각이었다면 구해주지도 않았다. 만약 그들이 싫다고 했다면 그는 곁에 남아있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소소한 불안감’은 존재한 적 없다. 모르는 것을 배려하는 건 누구라도 무리다. 그는 그저 둘의 대답이 이상하게 늦었다고만 느꼈다. 둘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도 알았지만, 이미 어떻게 할지 결정한 이상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그대로 크롬에게 향했다.
그가 크롬의 의식에 닿았을 때, 그녀의 곁에는 어쩐 일로 켄과 치쿠사가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로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고작 자리를 비운 1주일 사이에 또 무슨 일이 터진 겁니까. 그는 급속도로 피로가 몰려오는 걸 느꼈다. 분명히 골치 아픈 일이겠지.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크롬에게 확신을 담아 말했다.
[크롬,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무쿠로님…….’
[누가 괴롭히는 겁니까?]
‘아니, 아니에요! 모두 정말 잘 대해주세요. 특히 마망이……. 같이 식사준비도 하고 장도 보러 가고……, 재미있었어요.’
어차피 그쪽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누가 그녀를 괴롭힌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켄과 치쿠사가 아니다. 그가 그걸 먼저 물은 이유는 그녀가 쉽게 대답할 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쉬운 대답이 어려운 대답을 부르는 법이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레 [그럼 왜?]라고 물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망설였다. 당혹스러움과 미안함, 그리고 어렴풋이 보이는 죄책감. 그는 그녀의 심리를 대강 짐작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간단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먼저 치밀어 올랐지만, 억지로 억눌렀다. 지금은 귀도와 프랑이 먼저다.
[대답은 나중에 들어도 되겠습니까, 크롬? 지금 켄과 치쿠사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네, 네!’
그는 자연스레 표면으로 나와 그들에게 웃어 보였다.
“켄, 치쿠사.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무쿠로씨다, 뵹!”
“무쿠로님!”
둘의 표정이 밝아지며, 그를 반긴다. 그들로서는 근 3달 만에 만난 무쿠로다. 켄은 잔뜩 들떠서 정신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괜찮은 건가요, 무쿠로씨? 물론이죠, 켄은 잘 지낸 겁니까? 그럼요! 여기 마망이 만들어준 음식은 죄다 맛있어요, 뵹! 무쿠로씨는 먹어 본 적 있나요?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에엑!? 마망께 말해서 만들어 달라고 해봐요! 무쿠로씨도 먹고 싶으시죠? 일단, 다음 기회로 넘기도록 하죠. 그는 거의 단답형으로 대답했지만, 켄은 아무래도 좋은지 계속 질문을 이어간다. 그런 켄을 막은 건 곁에서 지켜보던 치쿠사다.
“켄, 시끄러워.”
“카키삐는 방해하지 마! 4달 만에 만나는 무쿠로씨다, 뵹! 무쿠로씨! 카키삐는 냉정해서 괜찮을지 몰라도 난 아니다~, 뵹! 그죠? 무쿠로씨!”
“진정하세요, 켄. 이렇게 온건 두 사람에게 시킬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에 켄이 급격히 실망했다. 켄은 많이 자상해진 그가 자신을 위해 일부러 만나러 온 상황을 원했나 보다. 그걸 쉽게 알아차린 치쿠사가 작게 “바보.”라고 중얼거렸다. 켄이 울컥해서 치쿠사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귀찮아.”라고 끝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사이가 좋은지 나쁜지 참 애매하군요. 무쿠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켄, 치쿠사. 두 사람은 내일 오전 6시경에 공항으로 가서 이 두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합니다.”
둘의 앞쪽이 흐릿하게 잔상이 생기더니 귀도와 프랑의 모습이 나타났다. 귀여운 인상이지만, 처음 보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아이들을? 둘의 눈에 의문이 어렸다. 무쿠로는 잠시 어쩔까 고민하다가, “명령입니다.”라는 한마디로 끝냈다. 설명하려면 길어질 게 뻔하고, 또 말하기 난감한 사실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봉골레, 사와다 츠나요시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습니까?”
그건 순수한 ‘확인’에 가까웠다. 아니나 다를까, 켄은 딴청을 피웠고, 치쿠사는 안경을 매만진다. 크롬은 크게 숨을 들이켜면서 대답하길 주저했다. 정말 솔직한 아이들이지 않습니까. 정말 뻔한 행동들이라, 한숨부터 나왔다.
그가 강제로 츠나를 깨웠던 날로부터 1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계속 잠들어 있었다면, 리본이 다시 그를 찾을 법한데 찾지 않았다는 게 이상했다. 설마하니 다른 환술사를 부른 건가? 그가 해결하지 못했는데, 다른 환술사가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로지 그만이 해결할 수 있다. 다른 환술사가 왔었다면 그걸 확실하게 알았을 텐데……? 설마하니 크롬이 그를 부르지 않았던 건가?
그때, 리본이 문을 열고 성큼 걸어 들어왔다.
“크롬, 무쿠로를 아직도 부르지 않은 거냐?”
역시. 그는 속으로만 혀를 찼다. 깨기 전이라면 불러도 듣지 못했겠지만, 깨어난 후라면 그녀의 부름을 듣지 못할 리 없다. 귀도와 프랑을 위해 뒷공작을 펼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 주위 상황을 알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크롬, 어째서 부르지 않았습니까? 그는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곧 덮었다. 이 일에 얽혀서 그와 연락이 끊어졌던 게 벌써 2번이다. 갑작스럽게 끊긴 소식은 불안함만을 남긴다. 아무리 불러도 닿지 않는 목소리는 절망으로 변해간다. 그녀로서는 이제 그런 경험을 하기 싫었으리라. 그는 그런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츠나를 방치할 수는 없다.
“오래간만입니다, 아르꼬발레노. 벌써 A/S 신청입니까?”
“와있었나, 로쿠도 무쿠로.”
“네, 그렇죠.”
“똑바로 처리하지 못하는 거냐?”
이걸로 벌써 3번째다.
리본의 마음에 의구심이 깃드는 것도 당연하다. 만약 다른 상황이었다면 직접적인 친분이 있는 바이퍼에게 넘겼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든 무쿠로가 맡아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무쿠로가 똑바로 하지 않으면 츠나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피아를 증오하고, 인간을 경멸하는 그라면 하는 척만 할지도 모른다. 리본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는 그런 리본의 타박에도 태연자약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다른 환술사에게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의 정신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만? 특히나 의지가 강한 경우에는 더욱 힘듭니다. 알다시피, 봉골레의 경우에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너무 강해서 저렇게 되었습니다. 그걸 ‘현재’로 돌리기 위해서는 ‘과거’를 포기하게 해야 합니다. 절대 쉽지 않죠.”
전혀 뜻밖의 설명에 리본은 깜짝 놀랐다. 왜 츠나가 저렇게 되었는지, 그는 조금도 몰랐다. 무쿠로의 예상대로 바이퍼를 불러서 맡겨봤지만, 그는 츠나의 정신에 접촉도 못했었다. 오죽하면 그 바이퍼가 “이건 나로서는 어떻게 풀 수 없는 문제야. 짜증 나는군. 계약대로 처리하지 못했으니 출장비만 받겠어.”라고 했겠는가?
“이건 직접적으로 봉골레와 접촉했다면, 알게 될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접촉하지 못했겠지요. 그는 뒷말을 삼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이 되었는지, 리본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원인을 안다는 건, 그만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좋든 싫든 그를 믿어야만 한다. 그게 리본의 신경을 건드렸다.
“봉골레는 그때부터 계속 같은 상태입니까?”
“나흘 전에 잠깐 깼었다.”
“그때의 반응은?”
“그냥 주위를 살펴보고는 다시 잠들었다.”
무쿠로는 그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차피 리본이 아는 건 딱 그 정도다. 하지만, 그는 그걸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일 거다. 그가 츠나를 깨우기 위해 강경수단을 썼던 게 독이 되어버렸다. 연못만 보려는 사람에게 호수가 아니라, 바다를 보여준 격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츠나의 상태가 어떨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골치 아픈 상황이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신의 요구 사항을 말했다.
“내일 켄과 치쿠사가 데리고 올 두 아이도 보살펴주시겠습니까, 아르꼬발레노?”
“무료 서비스 기간은 없는 거냐?”
“없다고 해두죠.”
“어이.”
“잠시면 됩니다. 봉골레가 완전히 깨어날 때까지 말입니다.”
묘한 어투다. 리본은 자괴감과 자신감이 뒤섞인 그의 말에 미심쩍다는 시선을 보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녀석이 이런 식이니 불안해진다. 그래도 남은 패가 하나밖에 없으니 꽝이든, 당첨이든 뽑아야 한다.
“이번에는 진짜냐?”
“이번에도 실패하면 끝입니다. 더는 버티지 못해요. 잘게 부서질 겁니다. 그전에 기대라도 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르꼬발레노.”
그는 곱게 웃었다.
지금 츠나의 상태가 지속되면 미치거나 망가질 거다. 부서진다는 건 매한가지. 아무리 외면해도 결과가 같다면, 끝나버리기 전에 이 손으로…….
무쿠로는 자신을 부르는 리본을 무시하고 츠나의 꿈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상하게 쓸데마다 이 말 하는 거 같아요?(…)
네가 데레할 곳은 저기가 아닐텐데…… 라면서 썼습니다.
다음편에는 과거편이겠네요.
무쿠로는 츤이니까 스페이드는 데레일겁니다.
… 아마도요!
과거편도 이을 생각이었습니다만, 대책없이 길어져서 잘랐습니다.
최고모에토너먼트에서 무쿠로가 처참한 표수를 받은 걸로 버프를 받아서 어쩐지 상당히 얌전해진 느낌입니다?(…)
어째 잡담도 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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