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과거편입니다.
스페이드와 지오토의 이야기로… 뭔가 쓸데없이 깁니다.[…]
아니, 그냥 쓰고 싶은 장면이 있어서 마구마구 우겨넣었어요.
그럼에도 다 안들어가서 그냥 넘긴 이야기도 많습니다.
중간중간 복선이 꽤 등장합니다, 유의해주세요.
덧붙이자면, 인간에게 환경이란 참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시계(視界)가 비틀린다. 세계가 휘어지며 새롭게 조립된다. 그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어렴풋이 짐작 갔기에 기대와 불안이 뒤섞였다. 이미 그 끝이 어떻다는 걸 아니까, 불안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건 차라리 각오라는 말이 어울리리라. 무쿠로는 애써 착잡해져 오는 마음을 털고, 그의 꿈에 동조해갔다. 감각이 사라지고 다시 정립되며 동조가 끝났을 때, 그는 각오하고 있었음에도 넋을 빼앗겼다.
이건 ‘꿈’이자 ‘기억’이다. 그가 이미 지워버린 것, ‘그’가 집착하는 것. 그걸 아는 데, 빼앗긴 넋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그도 그때로 돌아갔다. 다시 마법에 걸렸다. 아냐, 단 한 번도 마법이 풀렸던 적은 없었어. 그게 저주가 되어 삶의 의미를 잃게 되었어도, 이 마음이 과거가 되었던 적은 없다. 그저 네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워서 이 마음을 속이고 전부 잊길 원했었다. 전부 버리려 했다. 잊으려고 발악했었건만, 네 모습을 본 것만으로 되돌아와 버렸어. 이렇게나 나는 널 조금도 잊지 못했다. 너만이 나에게 그런 의미다.
그는 탄식처럼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오토.”
그가 죽인 하늘.
그가 경애하는 단 하나뿐인 하늘, 지오토 데 봉골레.
그의 하늘이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다. 그는 홀린 듯, 지오토에게 손을 뻗었다. 조심스레 뻗은 손은 그의 마음처럼 떨렸다. 이번에는 반드시 닿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간절히 뻗은 손이 허무하게 그를 통과한다. 이렇게나 또렷이 보이건만, 그는 신기루처럼 만져지지 않았다. 이토록 가까이 있건만, 닿지 않는다. 아, 이건 ‘꿈’이었지요. 맞아요, 그랬어요. 무쿠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손을 거두었다.
그제야 그의 머릿속이 차갑게 식는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그쯤에서 생겨났다. 그들이 있는 곳은 그에게 있어서 낯설지만, 아주 잘 아는 장소였다. 과거, 지오토를 만나기 전 그가 즐겨 찾았던 낡은 주점이었다. 그냥 봐도 가난함이 몸에 밴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던 곳이다. 삶에 지치고 인생에 찌든 이들이 가득했다. 살아남기에 바빠서 타인에게 무관심해진 이들만이 있었다. 이곳에 희망이라고는 없다. 그래서 자주 찾았었다.
그런 곳이니만큼 언제나 왁자지껄했건만,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무쿠로는 기이하다고 생각하면서 곁에 있던 테이블로 향했다. 그리고 삼삼오오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손을 뻗었다. 이번에도 그의 손은 그냥 통과했다. 그는 잠시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테이블을 짚었다. 싸구려 나무 테이블 특유의 감촉이 느껴진다. 다른 물건도 만져보니, 확실히 만져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만질 수만 있었다.
“과연, ‘꿈’이 아니라 ‘기억의 재생’에 가깝군요.”
‘꿈’이라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지만, ‘기억의 재생’은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반복하기 때문에 수정할 수 없다. 지금은 ‘재생’이 시작되기 전일 것이다. 수정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행복한 기억이라는 겁니까? 그건 그렇지요. 그는 그렇게 동의하며 지오토의 곁에 다가갔다. 언제 이 기억이 재생될지는 모르지만, 다시 살아 움직일 그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다. 무쿠로는 스스로 멍청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떨어지지 못했다.
그가 지오토를 마주했을 때, 서서히 주점 특유의 소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어이, 지오토. 정말 이런 곳에 ‘그’가 있단 말이냐?」
지오토의 곁에서 갑작스레 들린 목소리에 무쿠로는 살짝 놀랐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이가 그의 곁에 있었다. 있다는 걸 몰랐다는 게 미안해질 정도로 인상적인 사람이다. 붉은 머리카락과 문신, 바로 지오토의 오른팔인 G였다. 아, 너도 있었지요. 오래간만입니다. 그는 건성으로 중얼거리며 슬쩍 한걸음 물러났다. 아무래도 G와는 친해질 수 없을 거 같다.
지오토는 무심하고도 나른한 표정이었다. 묘한 여유가 넘쳤다. 이 주점이 인생에 실패자들이 모인 곳이라 유난히 튀는 인상이었다. 화사한 금발과 선연한 금빛 눈동자, 깔끔한 스프라이트의 정장. 그의 옆에 있는 G도 난폭해 보이긴 했지만, 속된 말로 높은 곳에서 노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렇다 보니 주점 안의 이목은 그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
「정보상이 거짓말을 한 거 아니냐?」
「진심이었어.」
「그래,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확실히 그렇겠지.」
이건 처음 만난 날이다. 나와 만나지 않았던 넌 이런 느낌이었군요. 무쿠로가 기억하는 모습과 많이 달랐다. 무심한 척, 언제나 관심을 보내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진짜 세상사에 관심 없어 보인다. 처음부터 ‘그’, 그러니까 이 시대의 자신을 목표로 왔음에도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열의가 없다. 그냥 주위 상황에 따라 흐르는 대로 방치하는 것 같다. 하긴, 그건 이 시절의 자신도 다를 바 없다. 하루하루, 그냥 살아만 있었으니까. 지루한 인생이었지만, 죽을 이유도 없기에 살아갔었다.
그는 한쪽 구석에서 도박판이 벌어진 테이블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넷이서 포커를 치고 있었다. 그 중 셋은 상당히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고, 다른 하나는 꽤 순박한 분위기를 흘렸다. 과연, 타인의 눈에는 이렇게나 순진하게 보였습니까?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게 이해되는군요. 이 시절 가끔 만나서 포커를 쳤던 이 셋은 나중에 그의 손으로 죽여 버렸었다. 죽어가면서도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었기에 우스웠었는데…… 이 정도면 이해가 갔다.
무쿠로는 실없이 웃으며 자신의 곁에 섰다. 마침 ‘그’가 두 번째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Royal straight flush)를 터트린다. 그래, 이 날은 유난히 운이 좋았다.
[진짜 ‘그’가 여기에 있을까? 소문에는 고고하다 못해 귀족 같다고 하던데……. 그런 ‘그’가 이런 허름한 술집에? 아니, ‘그’는 이곳에 있다. 그런 느낌이다.]
갑자기 울린 지오토의 목소리에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건 틀림없이 당시의 지오토가 하던 생각이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이 지오토의 ‘기억’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마저 들려 올 줄은 몰랐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그는 조금 당황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이 아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내가 알아주길 원하는 겁니까?”
그런 결론이 나온다. 그만큼 그가 야속했던 거다. 그런 츠나의 마음이 보여서 그는 착잡해졌다. 그 사이 지오토의 생각이 이어진다.
[여기에 마법사라고까지 불리는 최강의 환술사, 데몬(Demon)이라 일컬어지는 '그'가 있다.]
지오토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이때는 아직 성격이 급했던 G가 지오토의 초직감을 믿고 이미 가까운 테이블에 가서 「데몬이라고 불리는 환술사를 아나?」라고 묻고 있었다. 참 원시적인 수법이다. 그래서야 백날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다. 무쿠로는 그냥 한심하다는 눈길로 G를 바라봤다. 이때는 여러모로 연기를 하느라 하지 못했던 행동이다.
[저렇게 물어서 알 수 있었다면 아직 정체불명일 리 없지.]
이 당시의 ‘그’는 예전에 란치아를 표면에 내세우고 그림자로 활동했었던 때보다 더 비밀주의였다. 모든 정보가 베일에 싸여, 주 활동 무대였던 뒷세계에서도 ‘그’의 실존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았었다. 그나마 널리 알려졌다고 할 수 있는 게, 당시 환술사 사이에서도 차원이 다른 능력을 지녔다는 것과 적이라면 최악, 아군이라도 위험하다는 정도다. 오죽하면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것이 아는 사람이 극히 적다는 이유로 특급 정보에 속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이 허름한 주점에 어울리지 않아 이목을 집중시키던 이들이다. 여기에서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찾는 이가 마법사, 데몬(Demon)이란다. 주점 안은 순식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당황한 G가 다시 「데몬이라고 불리는 환술사를 아느냐니까?」라고 외친다.
정적이 폭소로 변한 건 한순간이다. 지오토는 말없이 G를 외면했다.
「에? 데몬? 그 마법사? 그런 존재를 왜 여기에서 찾아?」
「푸하하하하하, 어이~ 여기 이 녀석이 데몬을 찾는다는 데?」
「미쳤어? ‘그’가 어떤 존재인데 여기에 있어?」
「킬킬, 미쳐도 똑바로 미쳐~. 여긴 우리 같은 삼류 찌꺼기가 모이는 곳이라고~. 데몬처럼 대~단~한~ 존재가 있을 리 없잖아?」
「맞아, 맞아.」
역시나 사방에서 비웃음이 쏟아졌지만, 무쿠로는 한숨부터 나왔다.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면서 생각하기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걸 선호하니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다른 곳에서는 잘 돌아가는 머리가 이런 곳에서 안 돌아가는 것도 신기하다. 거기다 오른팔이면서 다혈질이라니 최악이라고요.
결국, G는 울컥해서 날뛰려 했고, 지오토가 급히 말려야 했다. 무심하던 얼굴 가득, 곤란한 기색이 피어난다.
「“데몬……?”」
「아, 리코는 몰라도 돼. 저 녀석이 멍청해서 웃는 거야. 그보다 빨리 다음 패나 돌려!」
「그래, 리코의 독주를 막을 패가 오면 좋을 텐데~.」
의문 어린 목소리와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섞인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찾는 게 한심해서 웃고 싶었었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면서 웃는 건 이상한 일이니 모르는 척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같이 놀던 패거리가 급히 말을 돌리며 별거 아닌 척 얼버무렸다. 그들은 일반인이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당시의 그는 그런 하찮은 배려심이 우스워서 참기 어려웠었다. 정말이지 곤욕스러웠다.
[역시 마법사를 이런 곳에서 찾는 건 무리인가? 하지만, ‘그’는 분명히 여기에 있다. 그런 느낌이 계속 들어.]
“초직감은 정말 골치 아프네요.”
무쿠로는 그의 생각에 그냥 웃어버렸다. 저 초직감이 아니었다면,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그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는 일도 없었겠지. 그는 과거의 자신이 앉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어차피 지금 이 순간, 그는 방관자에 불과하다. 아무리 원해도, 그런 끝을 막을 수 없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울컥 짜증이 일었다.
「어이, 그런 존재를 찾고 싶으면 저기 포커 치는 녀석들에게 가봐.」
「그렇지, 말단이지만 진짜니까 알지도 모른다고!」
이 주점의 주인이 오지랖 넓게도 참견했다. 그제야 지오토는 이 주점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을 발견했다. 그들도 시선을 느꼈는지 그를 돌아봤다. 이때의 무쿠로는 그를 보고 어딘가의 도련님이라고 생각했었다. 전체적으로 화사하고도 앳된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관심은 가지 않았다. 쓸데없이 관심을 둬서 자신이 누군지 들키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누군가와 엉킬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주친 눈길에 살짝 눈인사만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지오토를 그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굳은 표정으로,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하니 처음 마주친 순간, 알아차린 겁니까? 무쿠로가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할 정도다.
하나, 세상사 대부분의 일은 기대와 다른 법이다.
[저건 무슨 패션이지? 해군복인가? 아니, 달라. 감색의 제복 비슷한 옷…… 인 건가? 왜 안에는 빨간색 티를 입은 거지? 아니, 옷은 그냥 넘기더라도…… 어떻게 저런 머리가 나올 수 있는 거지? 번개 형태의 쌍 가르마라니……. 저런 게 가능한 건가? 어떻게 유지되는 거지?]
“…… 뭐?”
[전체적으로 이상한데…… 어째서 위화감이 크지 않는 거지? 그건 얼굴 때문인가?]
“… 지오토?”
[과연, 정말 섬세하고 우아한 미남이군. 저 복장은 얼굴을 조금이라도 감추기 위한 것인가? 하지만, 저렇게 인상 깊어서야 의미가 없을 텐데……?]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그딴 걸 생각했던 겁니까!? 이 옷이 어디가 어때서! 남이 어떤 머리를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무쿠로는 기어코 폭발했다. 방관자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이렇게 분할 줄이야! 생각 같아서는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고 싶었다. 잘생겼다고 칭찬하면 뭐하나, 이유가 저따위여서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니, 진짜 생사 대적을 만난 표정으로 그런 생각이나 했다고!? 아, 어쩌다가 이런 사람을……! 그는 진짜 좌절했다. 지오토가 그의 복장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로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눈에는 딱히 이상해 보이지 않았기에 더 그랬다. 알맹이가 그대로인 이상 자신의 패션센스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쇼킹하다는 걸 알아차리긴 어렵다.
지오토가 그렇게 그들만을 바라보자, G가 그들에게로 성큼 걸어갔다. 아무래도 지오토가 주목하는 만큼, 그들 사이에 ‘그’가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어이, 너희 중에 ‘마법사’가 있나?」
「멍청한 소리 작작해. ‘마법사’가 이런 곳에 있다고 믿는 거야?」
「어느 패밀리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마법사’를 찾는 건 그만둬.」
그들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이런 곳에 ‘마법사’가 있었다면, 자신들이 몰랐을 리 없다는 어투다. 실제로 진짜 상당히 큰 패밀리에 들어가고도 이곳을 단골로 삼았으니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저 ‘마법사’가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 있을 정도로 영악했을 뿐. 그래도 G는 지오토의 직감을 믿었기에, 그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폈다. G가 쉬이 떠나지 않을 듯하자, 그들은 불편한 기색을 띠었다. 그러다 꽝인 패를 쥐고 있던 이가 자신의 패를 던지며 장난처럼 말했다.
「아, 오늘의 마법사라면 여기 있지. 리코가 벌써 2번째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쥐었거든~.」
「리코?」
「어, 이 녀석.」
G는 무심코 그가 가리키는 이를 바라봤다. 지오토가 계속 주시하던 ‘그’였다. ‘그’는 「운이 좋았습니다.」라고 차분히 대답한다. G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주시하자,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다. 그건 정말 순박한 행동이어서, G는 움찔거리며 조금 물러섰다. 진짜 이 녀석일까?라고 쓰인 얼굴이었다. G는 결국 지오토를 슬쩍 돌아봤다. 그의 초직감에 기댄 것이다.
정작, 그는 그때 엉뚱한 생각을 하느라 G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리코라고? 그건 귀여운 소년에게나 어울리는 이름이지, 저렇게 우아한 분위기의 남자에게 어울리는 게 아니다. 양의 탈을 쓴 맹수가 작은 새 같은 이름을 쓰다니!]
지오토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그러니까, 왜 그런 생각을 그렇게 진지하게 하는 겁니까. 넌 바보입니까? 무쿠로는 허탈하게 생각하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속내를 들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추억이 박살 나는 중이다. 지오토의 생각은 저렇지만, 표정은 한없이 진중하다. 보스에게 걸맞는 능력이네요. 격렬한 심리적 동요로 조금 지쳐버린 그는 기대고 있던 등받이에 축 늘어졌다. 이제 지오토의 표정을 잘못 읽은 G가 ‘그’를 추궁할 차례다.
「네 녀석이 ‘마법사’냐?」
「“소소한 마술이라면 할 수 있지만, 마법은 무리입니다.”」
어리둥절한 목소리와 짓궂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대답했다. 하나의 목소리처럼 ‘그’와 똑같은 타이밍에 무쿠로도 말한 탓이다. 일반인이니만큼, ‘마법사’가 누굴 지칭하는지 몰라야 하니 저런 연기를 했었다. 애초에 G를 놀릴 생각이었다. 거기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거짓말은 한 적 없다. ‘마법사’라고 불리게 된 건 엄연히 마법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환술을 사용해서다. 간단한 마술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 마법을 쓰는 법 따윈 모른다.
「그런 시시한 거 말고! ‘마법사’라고 불리는 강력한 환술사를 말하는 거다!」
「“환술, 말입니까?”」
그게 뭐냐는 듯한 목소리와 고작 그런 거라는 목소리가 겹쳐진다. 그는 이때도, 지금도 단순히 환술만 따지자면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에게 ‘환술사’를 운운하는 건 웃긴 일이지 않나? 하지만, 일반인은 그런 걸 모른다. 그래서 모르는 척했었다.
‘그’의 대답은 어떻게 들으면 느긋하게 느껴졌다. G가 특유의 다혈질로 짜증을 내기 딱 좋은 상대였다. G는 ‘그’가 자신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인지, 한층 자세히 말하려 했다. 그런 G를 뒤로 끌어당긴 건 같은 테이블에 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그’를 일반인으로 알고 있었기에 더는 물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의 신분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철저히 베일에 싸인 ‘마법사’라면 자신에 대해 알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테니, ‘그’가 ‘마법사’일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G를 뒤쪽으로 끌어당기고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둬! 리코는 ‘그쪽’과 상관없어!」
「그냥 여기에서 잠시 같이 노는 사이야. 리코는 우리가 ‘그쪽’이라는 걸 모른다고!」
「그래, 리코는 신분이 확실한 감정사야. 그러니 그쯤 해!」
나름대로 ‘그’를 배려해서 소곤거렸지만, 다 들리는 위치다. 못 듣게 할 생각이었다면, 목소리를 더 낮췄어야지요. 무쿠로는 한숨을 가볍게 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이때 당연히 안 들리는 척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자기지만 참 가증스럽다며 그는 쓰게 웃었다. 이때, 실제로 몇몇 물건을 감정해줬었다. 진짜 감정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이 믿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는 상당히 실력이 좋은 감정사일 따름이다. 취미 생활로 구한 거지만, 그 실체는 당연히 비밀이다.
「감정사?」
「“혹시 감정할 물건이 있습니까?”」
「아, 혹시 감정사를 찾는 거라면 리코를 추천하지. 굉장히 실력 좋은 감정사야.」
「“과찬이십니다.”」
취미라고는 해도, 완벽주의인 성향에 따라 어지간한 전문가보다 실력이 좋았다. 하지만, 그게 진짜 직업이 아닐 뿐이다.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 다른 직업을 진짜인 냥 가지는 건 기본이지 않습니까? 이때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모든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이름도, 직업도, 그들이 알고 있던 주소도 전부 가짜였다. 지금이라도 먹힐 방법이니, 이때 이들이 감쪽같이 속은 건 어쩔 수 없다.
그들과 조금 더 대화하다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확신한 G는 급격히 실망해 발걸음을 돌렸다.
[아니, ‘그’다. 거짓말은 아니야. 하지만, ‘마법사’는 ‘그’다.]
G가 완전히 속았을 때, 정작 지오토는 ‘그’의 정체를 확신했다. 오로지 감각만으로 확신한 거다. 그것 그것대로 놀라울 따름이다. 역시 초직감은 무섭네요. 어떻게 그렇게까지 확신했던 겁니까? 무쿠로는 몇 번을 겪어도 놀랍다고 중얼거렸다.
G는 축 어깨를 늘어뜨리고 지오토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탐색의 결과를 보고한다.
「역시 여기에는 없는 것 같아.」
「아니, ‘그’다.」
「응? 누구?」
지오토는 G가 되묻는 걸 무시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심코 다가오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린 ‘그’는 묘한 확신으로 빛나는 그의 금빛 눈동자에 조금 놀랐었다. 북유럽이라면 몰라도 이탈리아에서는 보기 드문 금발도 조금 놀라웠지만, 선명하게 빛나는 금안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었다. 쓸데없을 정도로 올곧은 빛깔이라고 생각했었다. 왜소한 체격임에도 묘하게 강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래, 이때서야 ‘그’는 그 모든 걸 조합해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을 찾는 게 의외였었다. 그는 이미 모든 걸 가지고 있었으니까.
「또 방해냐?」
「아니, 이쪽도 잠시 어울리고 싶은데?」
「보아하니 한가락하는 거 같은데, 왜 이런 곳에 어울리려 하는 거지?」
「그거, 해본 적 없거든.」
놀이에 어울리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한 말이었다. 확실히 초보라면 이렇게 판돈이 낮은 곳에서 배우는 게 좋다. 자신들이 이해할 쪽으로 납득한 그들은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잘못하다간 판돈이 올라갈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다. 나름대로 가정을 꾸리고 있던 이들이기에 심리를 추측하는 건 쉬웠다. 그들에게 이건 놀이지, 가산을 탕진하면서 할 게 아니었다. 그러다 그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오늘따라 운이 좋은 ‘그’에게 계속 털리고 있었던 지라 그들은 곧 찬성했다.
초보가 운이 좋은 건 이미 정평이 난 사실이다. 그 초보의 운과 ‘그’의 운 중 어느 쪽이 높은지 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정말이지 얕은 생각이라 다 보입니다. 무쿠로는 혀를 찼다. 저러니 몇 년이나 같이 놀아도 ‘그’의 진짜 정체를 몰랐지.
「잃고 나서 후회해도 모른다?」
「아, 물론.」
「리코, 넌 어때?」
「“상관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확신한 지오토에게 흥미를 느꼈었다. 소문만 듣고 호기심을 느꼈던 이가 다가왔으니 물리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이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오토는 일부러 의자까지 들고 와 ‘그’의 곁에 앉았다. 그에 G도 어쩔 수 없이 의자를 끌고 와 곁에 앉는다. 너도 할 거냐는 시선이 모이자 G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인다. 패가 돌아가고, G는 틈틈이 지오토에게 룰을 설명했다. 어차피 어려운 룰이 아니라 그는 금방 익혔다. 그전에, G가 첫판은 연습이라며 못을 박았다. 완전 초보인 지오토를 생각해서다.
그래서 패를 보였을 때, 그들은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지오토와 ‘그’를 바라봐야 했다. 연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둘의 패는 풀하우스였다. 지오토는 2원페어(One pair), 7트립스(Trips)고, ‘그’는 A원페어, K트립스다. 첫판에 풀하우스가 나오는 것도 놀라운데, 둘이 같은 풀하우스다. 이런 때에는 수가 높은 쪽이 이기기에 ‘그’의 승리였다.
「와아, 이런 것도 있어?」
「막상막하잖아? 다음에는 어떨지 기대되는 걸~.」
「리코도 긴장해야겠는 걸?」
그리고 실제로 판돈을 걸면서 장장 세 시간 동안 다섯이서 포커를 쳤다. 처음에 놀라워하던 이들의 표정이 처참히 일그러지며, 두 손을 든 게 그쯤이다.
「둘이 아는 사이야? 짜고 치는 거 아니지?」
「후우~ 이걸 다른 데서 이야기하면 거짓말이라고 할 거야.」
「동감. 봤는데도 믿기 어려운데 믿겠어?」
「나도 포기. 리코라고 했지? 네 녀석, 꾼이었느냐?」
G까지 두 손을 들고 그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세 시간 동안 지오토와 ‘그’의 패는 놀랍도록 비슷하게 이어졌었다. 연습 게임의 공방이 그대로 이어졌던 거다. 늘 비슷한 등급에 아슬아슬하게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니 그들이 질릴 만하지 않겠는가? 거기다 패도 최하가 스트레이트(Straight)였다. 어설픈 패는 내밀지도 못한다. 그 와중에 초직감을 가진 지오토와 사람의 심리를 우습게 꽤 뚫어 보는 ‘그’인지라 마지막까지 가서야 서로의 패를 보였다. 즉, 판돈이 급증했던 거다. 더는 놀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판돈이 올랐다.
이건 위험하다 싶었는지, 그들은 잽싸게 발을 뺐다.
「우린 이만 가봐야겠어, 리코. 그럼 뒷일을 맡기지!」
「이거 초보자의 운도 굉장하잖아? 완숙된 운을 보여주라고, 리코!」
「초보자에게 지지마!」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살펴가세요.”」
‘그’도 무쿠로도 건성으로 대답했다.
무쿠로는 자리를 옮겨가며 ‘그’와 지오토의 패를 살핀다. 다시 봐도 사기라고 생각되는 패가 오락가락했다. 정말 둘 다 운이 지독하게 좋았다. 이쪽이 플러시면, 저쪽도 플러시 아니면 풀하우스다. 스트레이트 플러시는 다시 나오지 않았지만, 쿼드(Quad)만해도 벌써 4번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기가 질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셋은 떠나고, G는 포기했다. 이제 남은 건 지오토와 ‘그’, 단둘밖에 없다.
「계속할까?」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그러죠. 이번에는 얼마부터 시작할까요?”」
호기심 어린 목소리와 착잡한 목소리가 섞인다. 이때 ‘그’는 어이없는 패가 연속으로 나와서 그 끝이 어디일지 궁금했었다. 지오토의 목적이 자신이라는 것도 아니까 꺼릴 것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때 자신도 셋과 함께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둘의 관계가 조금은 변하지 않았을까? 무쿠로는 그냥 웃어버렸다. 설령 그랬더라도 변했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
「네 ‘진짜 이름’과 이쪽의 ‘본부 위치’는 어때?」
「“흐음? 곤란하군요. 그런 걸 걸라니…….”」
이때 ‘그’는 그 말에 굉장히 곤란했었다. 집을 나오면서 버렸던 이름이다. 지금까지 ‘마법사’나 ‘데몬’으로 불렸기에 이름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었다. 그래, 이때까지 ‘그’는 이름 없는 자였다. 없는 걸 달라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거기에 ‘본부 위치’라니……. 근래에 급속도로 성장하는 패밀리의 본부 위치라 찾고자 하는 이가 많았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득보다는 실이 큰 판돈이었다. 정말 통이 큰 건지 작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무쿠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그냥 궁금한 것뿐이다. 네가 사용하는 이름을 알려주면 돼.」
「“그걸로 됩니까?”」
「물론, ‘마법사’.」
「“그럼 그렇게 하지요.”」
‘그’는 태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인정한 ‘그’의 모습에 지오토가 살짝 놀란다. 그렇게 숨겼으면서 너무 선선히 긍정해서 일 것이다. 무쿠로는 혀를 찼다. 삶에 가치가 없는데, 뭔들 가치가 있었겠는가? 딱히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이 운의 끝을 보는 것이었다. 흥미가 있는 건 오로지 그것밖에 없다.
그때, G가 급히 끼어들며 ‘그’의 멱살을 잡았다. 살벌하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듯 ‘그’를 추궁한다.
「네 녀석, 거짓말을 한 거냐!?」
「“그런 적 없습니다.”」
「네 입으로 ‘마법사’가 아니라고 했잖아!」
G의 눈에 살기가 일렁인다. 그래도 그만큼 화가 난 상태지만,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말한다. ‘마법사’에 대해 떠벌려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탓이리라. 확실히 머리는 좋은데 활용도가 낮습니다, 넌. 무쿠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소리 없이 찾아왔다. 그걸 보지 못한 지오토가 한 손으로 G를 말리며 차근히 설명한다.
「진정해, G. 그는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 없어. 그렇게 착각하도록 유도했을 뿐.」
「뭐?」
G가 놀라 지오토를 돌아봤다. ‘그’는 그 순간에도 흥미진진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문처럼 영민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쿠로는 그냥 쓰게 웃었다. 호기심을 품은 시점에서 이미 끝난 거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정말 일본 속담에 딱 맞는 상황이었다. 이때의 ‘그’는 이 순간을 그냥 유희라고 생각했다. 그걸 두고두고 후회하고, 감사하는 나날이 시작될 거라 알지 못하고.
「마법은 무리라고 했을 뿐이었어. 그리고 ‘그’는 자신을 ‘리코’라고 소개한 적 없다.」
「‘리코’라는 말에 대답한 건?」
「그는 그걸 ‘제삼자를 지칭하는 말 중 하나’로 받아들인 거야. 이를테면, ‘그’나 ‘너’정도? 그런 식으로 다른 이름이라도 자신을 부른 셈이니까.」
「고작 그런 걸로 ‘마법사’라는 걸 몰랐다고?」
어이없어하는 G에게 「너도 몰랐어.」라는 냉정한 대답이 돌아갔다. 충격을 받은 G의 손이 풀린다. 지오토는 조금 좌절한 G의 어깨를 두드리는 걸로 위로했다. 하지만, 정작 그 시선은 온화한 미소를 그린 ‘그’에게 꽂혔다. ‘그’는 그들의 행동이 퍽 흥미롭다는 듯 보고 있었지만, 그 의미는 확고한 긍정이다.
「지레짐작하게 한 거다. 이 근처에 분명히 ‘리코’라는 이름의 귀족적인 생김새를 한 감정사가 있을 거야.」
「설마 여기에서 간단히 감정을 해주는 것으로…….」
「어, 귀족적인 생김새의 감정사. 그러니 ‘리코’를 떠올린 거지. 진짜 ‘리코’도 상당히 실력 좋은 감정사일 거야.」
‘그’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우아하지만, 묘하게 조롱 섞은 몸짓이다. 순박하게 웃고 있던 양은 사라지고 나른한 맹수만 남았다. 그저 분위기만 변했을 뿐인데, 귀족 같은 기품과 오만함이 한 것 드러났다. 지오토의 설명에도 미심쩍어하던 G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는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전히 웃고 있건만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그대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 말대로, 지오토 데 봉골레.”」
「역시 이쪽이 누군지 알고 있었군.」
「“뭐, 그렇죠.”」
태연자약한 목소리가 스테레오로 대답한다. ‘그’는 원래 느긋한 분위기를 풍겼었지만, 한층 여유로워졌다. 무쿠로가 처음으로 유쾌한 웃음을 그렸다.
“젊다 못해 어리다고 알려진 봉골레의 보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 진실의 눈을 지닌 자. 그렇기에 그의 앞에서는 아무도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고귀한 분위기를 칭송하는 자들도 많았지요. 그래서 너를 똑바로 마주하고 바로 알아봤습니다. 네, 정말 소문 그대로였으니까.”
그리고 넌 내 거짓도 알아차렸지요. 분명히 원치 않게 정체가 발각된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불쾌감에 죽였을 텐데, 신기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납득’하고 있었다. 지오토니까 들켰다는 식으로 말이다. 정말 묘한 일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처음부터 특별했었다.
[묘한 사람. 진실과 거짓 사이를 배회하는 분위기군. 환술사는 전부이런가? 아니, 그건 아니었다. 이건 ‘그’가 지닌 특유의 분위기인가?]
“정답.”
무쿠로는 장난스레 덧붙이며 웃었다. 실제 ‘그’는 유령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타인의 착각으로 ‘거짓’을 만들 뿐, 그저 그것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음으로써 착각을 가중시킨 게 전부다. 덕분에 ‘그’의 과거는 지오토도 몰랐다. 추적을 하려 해도 알려진 게 없으니 알 수 없다. 삶에 의미를 두지 않으니, 미래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에게는 ‘현재’밖에 없었다. 그러니 실존 유무의 논란이 일어났던 거다. 일반인이 보기에 ‘그’는 ‘망령’이지 않았을까?
「시작할까?」
「“그럴까요?”」
G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둘을 질렸다는 듯이 보다가, 카드를 집어 들었다. 가볍게 카드를 섞고 한 장씩 패를 돌린다. 어차피 판돈은 더 부풀릴 수 없는 종류다. ‘그’는 패를 받는 족족 그냥 뒤집었다. 지오토도 ‘그’의 행동을 보더니 곧 전부 뒤집는다. G가 황망해서 바라봤지만, 이미 결론은 났다.
「“정말 운이 좋군요.”」
「그런 편이지.」
‘그’의 패도 나쁘지 않았다. 스페이드 플러시였으니, 일반적인 상대라면 80%는 승리를 자신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7원페어, 10트립스의 풀하우스를 보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역시 플러시로는 무리군요. 흘리듯 중얼거리며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에게 이름을 알려줘야 한다. 없는 걸 알려줘야 하니 지금 즉석에서 지어야만 했다. ‘그’는 어쩔까 고민하다가 자기 앞에 놓인 카드를 봤다. 스페이드,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인연이 깊은 패였다. 그럼 스페이드를 성으로 하고, 별명이었던 데몬을 이름으로 하자. 무쿠로는 지금 생각해도 참 날로 지었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환술사 답지 않는 단순함이었지만, 설마하니 그 이름을 계속 쓸 줄 알았겠는가?
「“데몬 스페이드. 약칭으로는 D. 스페이드입니다.”」
「응?」
「“진짜 이름, 원하지 않았습니까?”」
지오토의 표정이 순간 조금 일그러졌다. ‘그’는 그걸 보며 웃어버렸다. 자기가 생각해도 장난으로 보이는 이름인데, 그런 걸 들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G는 그보다 심해서 「장난치는 거냐?」라며 ‘그’를 노려봤다. 지오토의 생각이 난감하다는 듯 울린다.
[가명은 아니다. 거짓말도 아니지만, 진짜 같지도 않아. 이렇게 애매한 건 처음이군.]
“그야, 어느 쪽도 아니니까요.”
무쿠로는 쿡쿡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옛날에 쓰던 이름은 집을 나오면서 버렸다. 이 당시의 ‘그’는 현재 코스 노스트라(Cosa Nostra)라 불리게 된 유서깊은 시칠리아 마피아 소속의 가문에서 태어났었다. 당시에는 꽤 권세를 누린 듯했지만, ‘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문이 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근 20년 전이었으니…… 이름도 없이 부유한 시간도 그렇게 길다는 말이 된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 새삼 웃음을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요령 좋게 헛기침으로 넘어갔다.
그런 ‘그’의 반응에 지오토가 다시 묻는다.
「…… 그게?」
「“거짓말 같습니까?”」
「진짜군.」
지오토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거짓이 아니면, 진실. 그만큼 올곧고 바르다. 그는 거짓만으로 존재하는 자신과 상반된 이다. 지저분한 뒷세계에 있으면서 고결한 자신을 유지한다. 과연, 추앙하는 이들이 많을 법하군요. 금빛에 어울리는 사람,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곁에서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까지 그런 고귀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따위의 시시한 호기심.
무쿠로가 츠나를 보고 느꼈던 것처럼, ‘그’도 지오토를 정말 신기한 장난감처럼 느꼈었다.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해서 곁에 있고 싶어졌다. 정말 멍청한 호기심, 고양이는 호기심에 홀려버렸답니다. 무쿠로는 키득거리며 얼굴을 감쌌다. 어리석은 자신을 비웃으며, ‘그’와 함께 입을 열었다.
「“한 판 더 하시겠습니까?”」
「물론.」
「“이번에는 뭘 걸까요?”」
「‘너’.」
‘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정말이지 예상 밖의 대답이라 웃지도 못했었다. 생각보다 대담하다는 감탄이 먼저 나왔었다. 자신이 누군지, 그리고 또 어떤 성향인지 알 텐데 말이지. 10년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그’에게 이런 식의 요구를 할 배짱 넘치는 자는 없다. 그렇기에 ‘그’는 가볍게 감탄했었다.
「내가 이기면 네가 우리 패밀리의 수호자가 되는 거다. 어때?」
지오토가 조금 장난스레 말했다. 그건 G에게도 보인 적 없는 모습인지, 그도 깜짝 놀란다. 아, 이건 불쾌하네요. ‘그’는 웃으며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디에 속할 생각이 있었으면 아무 조직에나 들어갔을 것이다. 어디에서도 대접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 자신을 이런 걸로 잡으려 하다니……. 호기심이 짜증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좋습니다. 그럼 내가 이기면 ‘너’를 주세요.”」
「무슨 의미냐, 이 자식!」
「“별거 아닙니다. 그냥 그의 목숨을 달라는 겁니다.”」
「뭐라고!?」
‘그’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자신을 구속할 생각이면 이 정도의 페널티는 정말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지오토가 조금이라도 당황하길 바라였기에, 그가 정작 이해한 표정을 지어 많이 아쉬워했었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걸까? 무쿠로는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가볍게 혀를 찼다. 자신도 과거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게 부질없는 일인 걸 아는데…….
‘그’가 옆에서 버럭 거리는 G에게 귀찮다는 어조로 말한다.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던 겁니까? 어리석긴.」
「이 자식이!!」
「G, 물러나 있어.」
지오토는 G를 일단 말렸다. G가 어떻게 물러나느냐는 눈길로 그를 바라본다. 그래, 충직한 G는 그가 죽을지도 모르는 도박을 하게 내버려두기 싫었을 거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굳었다. 이 한판으로 아무도 섭외하지 못했던 ‘그’를 붙잡는 일이다. 무엇보다 [질 것 같지 않아.]라고 그의 직감에 예견하고 있었다. 무슨 초직감이……, 그건 반칙입니다. 무쿠로는 냉정하게 토를 달았다.
「예상했던 조건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서지 마.」
「흐음? 정말 수락하는 겁니까?」
「물론.」
‘그’의 말에 지오토는 정말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는 가볍게 웃었고, G는 그런 ‘그’를 노려보며 카드를 섞었다. 그리고 태연자약한 둘에게 5장씩 카드를 돌렸다. 이번에도 ‘그’는 망설이지 않고 패를 보였다. 스틸 휠(Steel Wheel : A, 2, 3, 4, 5)이었지만, 스페이드 스트레이트 플러시다. 그걸 확인한 G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스트레이트 플러시는 스트레이트 플러시로밖에 대응할 수 없다. 나오는 확률도 당연히 끔찍하다. 그때, 지오토도 패를 보였다. 하트 로열(Royal : 10, J, Q, K, A) 스페이드 플러시다.
‘그’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스틸 휠과 로열이라니! 누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분명히 사기라고 외칠 거다. 아니, 다시 봐도 이건 사기로 보여요. 무쿠로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만큼, 어이없는 결과다. 찬사와 황당함이 뒤섞어 ‘그’가 축하한다.
「진짜 운이 좋군요.」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지. 스페이드.」
지오토가 유쾌하게 웃으며 답한다. 그 미소가 묘하게 눈부셨었다. 이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그런 날 너를 만나 너와 함께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래, 그만큼 특별해요. 무쿠로와 ‘그’가 체념 어린 목소리로 항복했다.
「“그러지요, 보스.”」
이제는 밀쳐내지도 못한다. 아무리 부서져도 그와의 추억은 그렇게나 눈부셨으니까.
다시 시계가 일그러진다. 또 다른 기억을 재생하기 위해 ‘꿈’이 요동친다. 깨어나야 하는데, 깨고 싶지 않다. ‘달콤한 꿈’이라는 함정에 붙잡혔다. 그게 ‘과거’였기에 더 매료되어버린다. 이대로 취하면 곤란하다. 무쿠로는 그걸 알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도 알았다. 외면하기에는 너무 깊이 동조해버렸다. 흐려지는 그를 잡으려 손을 뻗을 정도로, 너무 깊이…….
왜 이렇게 긴거죠?
양 조절이 갈수록 안됩니다.[...]
누가 이유 좀.[...]
중간에 나오는 트립스=트리플, 쿼드=포카드입니다.
외국에서는 저러다고 하길래 저렇게 써봤습니다.
G의 성격이 나와서 수정했습니다만, 별 차이는 없네요.[...]
중간에 나오는 지오토가 스페이드를 보고 한 감상은 제 감상입니다.
아트랜드 싸우자!!!!
무쿠로가 급격히 데레해졌습니다만, 본인에게 안하면 의미가 없죠.[...]
그러고보니 스페이드도 츤데레... 미안, 지오토.[...]
츤비율이 높은 건 운명인가봐요.
조금 긴 사족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그야말로 가상이라서 가능한 패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 편은 전부 뜯어 고칠예정입니다.
생각만큼 안나왔기도 하고, 생각이랑 틀려서기도 합니다.
참고해주세요.
스페이드와 지오토의 이야기로… 뭔가 쓸데없이 깁니다.[…]
아니, 그냥 쓰고 싶은 장면이 있어서 마구마구 우겨넣었어요.
그럼에도 다 안들어가서 그냥 넘긴 이야기도 많습니다.
중간중간 복선이 꽤 등장합니다, 유의해주세요.
덧붙이자면, 인간에게 환경이란 참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시계(視界)가 비틀린다. 세계가 휘어지며 새롭게 조립된다. 그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어렴풋이 짐작 갔기에 기대와 불안이 뒤섞였다. 이미 그 끝이 어떻다는 걸 아니까, 불안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건 차라리 각오라는 말이 어울리리라. 무쿠로는 애써 착잡해져 오는 마음을 털고, 그의 꿈에 동조해갔다. 감각이 사라지고 다시 정립되며 동조가 끝났을 때, 그는 각오하고 있었음에도 넋을 빼앗겼다.
이건 ‘꿈’이자 ‘기억’이다. 그가 이미 지워버린 것, ‘그’가 집착하는 것. 그걸 아는 데, 빼앗긴 넋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그도 그때로 돌아갔다. 다시 마법에 걸렸다. 아냐, 단 한 번도 마법이 풀렸던 적은 없었어. 그게 저주가 되어 삶의 의미를 잃게 되었어도, 이 마음이 과거가 되었던 적은 없다. 그저 네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워서 이 마음을 속이고 전부 잊길 원했었다. 전부 버리려 했다. 잊으려고 발악했었건만, 네 모습을 본 것만으로 되돌아와 버렸어. 이렇게나 나는 널 조금도 잊지 못했다. 너만이 나에게 그런 의미다.
그는 탄식처럼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오토.”
그가 죽인 하늘.
그가 경애하는 단 하나뿐인 하늘, 지오토 데 봉골레.
그의 하늘이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다. 그는 홀린 듯, 지오토에게 손을 뻗었다. 조심스레 뻗은 손은 그의 마음처럼 떨렸다. 이번에는 반드시 닿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간절히 뻗은 손이 허무하게 그를 통과한다. 이렇게나 또렷이 보이건만, 그는 신기루처럼 만져지지 않았다. 이토록 가까이 있건만, 닿지 않는다. 아, 이건 ‘꿈’이었지요. 맞아요, 그랬어요. 무쿠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손을 거두었다.
그제야 그의 머릿속이 차갑게 식는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그쯤에서 생겨났다. 그들이 있는 곳은 그에게 있어서 낯설지만, 아주 잘 아는 장소였다. 과거, 지오토를 만나기 전 그가 즐겨 찾았던 낡은 주점이었다. 그냥 봐도 가난함이 몸에 밴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던 곳이다. 삶에 지치고 인생에 찌든 이들이 가득했다. 살아남기에 바빠서 타인에게 무관심해진 이들만이 있었다. 이곳에 희망이라고는 없다. 그래서 자주 찾았었다.
그런 곳이니만큼 언제나 왁자지껄했건만,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무쿠로는 기이하다고 생각하면서 곁에 있던 테이블로 향했다. 그리고 삼삼오오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손을 뻗었다. 이번에도 그의 손은 그냥 통과했다. 그는 잠시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테이블을 짚었다. 싸구려 나무 테이블 특유의 감촉이 느껴진다. 다른 물건도 만져보니, 확실히 만져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만질 수만 있었다.
“과연, ‘꿈’이 아니라 ‘기억의 재생’에 가깝군요.”
‘꿈’이라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지만, ‘기억의 재생’은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반복하기 때문에 수정할 수 없다. 지금은 ‘재생’이 시작되기 전일 것이다. 수정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행복한 기억이라는 겁니까? 그건 그렇지요. 그는 그렇게 동의하며 지오토의 곁에 다가갔다. 언제 이 기억이 재생될지는 모르지만, 다시 살아 움직일 그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다. 무쿠로는 스스로 멍청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떨어지지 못했다.
그가 지오토를 마주했을 때, 서서히 주점 특유의 소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어이, 지오토. 정말 이런 곳에 ‘그’가 있단 말이냐?」
지오토의 곁에서 갑작스레 들린 목소리에 무쿠로는 살짝 놀랐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이가 그의 곁에 있었다. 있다는 걸 몰랐다는 게 미안해질 정도로 인상적인 사람이다. 붉은 머리카락과 문신, 바로 지오토의 오른팔인 G였다. 아, 너도 있었지요. 오래간만입니다. 그는 건성으로 중얼거리며 슬쩍 한걸음 물러났다. 아무래도 G와는 친해질 수 없을 거 같다.
지오토는 무심하고도 나른한 표정이었다. 묘한 여유가 넘쳤다. 이 주점이 인생에 실패자들이 모인 곳이라 유난히 튀는 인상이었다. 화사한 금발과 선연한 금빛 눈동자, 깔끔한 스프라이트의 정장. 그의 옆에 있는 G도 난폭해 보이긴 했지만, 속된 말로 높은 곳에서 노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렇다 보니 주점 안의 이목은 그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
「정보상이 거짓말을 한 거 아니냐?」
「진심이었어.」
「그래,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확실히 그렇겠지.」
이건 처음 만난 날이다. 나와 만나지 않았던 넌 이런 느낌이었군요. 무쿠로가 기억하는 모습과 많이 달랐다. 무심한 척, 언제나 관심을 보내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진짜 세상사에 관심 없어 보인다. 처음부터 ‘그’, 그러니까 이 시대의 자신을 목표로 왔음에도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열의가 없다. 그냥 주위 상황에 따라 흐르는 대로 방치하는 것 같다. 하긴, 그건 이 시절의 자신도 다를 바 없다. 하루하루, 그냥 살아만 있었으니까. 지루한 인생이었지만, 죽을 이유도 없기에 살아갔었다.
그는 한쪽 구석에서 도박판이 벌어진 테이블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넷이서 포커를 치고 있었다. 그 중 셋은 상당히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고, 다른 하나는 꽤 순박한 분위기를 흘렸다. 과연, 타인의 눈에는 이렇게나 순진하게 보였습니까?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게 이해되는군요. 이 시절 가끔 만나서 포커를 쳤던 이 셋은 나중에 그의 손으로 죽여 버렸었다. 죽어가면서도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었기에 우스웠었는데…… 이 정도면 이해가 갔다.
무쿠로는 실없이 웃으며 자신의 곁에 섰다. 마침 ‘그’가 두 번째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Royal straight flush)를 터트린다. 그래, 이 날은 유난히 운이 좋았다.
[진짜 ‘그’가 여기에 있을까? 소문에는 고고하다 못해 귀족 같다고 하던데……. 그런 ‘그’가 이런 허름한 술집에? 아니, ‘그’는 이곳에 있다. 그런 느낌이다.]
갑자기 울린 지오토의 목소리에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건 틀림없이 당시의 지오토가 하던 생각이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이 지오토의 ‘기억’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마저 들려 올 줄은 몰랐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그는 조금 당황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이 아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내가 알아주길 원하는 겁니까?”
그런 결론이 나온다. 그만큼 그가 야속했던 거다. 그런 츠나의 마음이 보여서 그는 착잡해졌다. 그 사이 지오토의 생각이 이어진다.
[여기에 마법사라고까지 불리는 최강의 환술사, 데몬(Demon)이라 일컬어지는 '그'가 있다.]
지오토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이때는 아직 성격이 급했던 G가 지오토의 초직감을 믿고 이미 가까운 테이블에 가서 「데몬이라고 불리는 환술사를 아나?」라고 묻고 있었다. 참 원시적인 수법이다. 그래서야 백날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다. 무쿠로는 그냥 한심하다는 눈길로 G를 바라봤다. 이때는 여러모로 연기를 하느라 하지 못했던 행동이다.
[저렇게 물어서 알 수 있었다면 아직 정체불명일 리 없지.]
이 당시의 ‘그’는 예전에 란치아를 표면에 내세우고 그림자로 활동했었던 때보다 더 비밀주의였다. 모든 정보가 베일에 싸여, 주 활동 무대였던 뒷세계에서도 ‘그’의 실존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았었다. 그나마 널리 알려졌다고 할 수 있는 게, 당시 환술사 사이에서도 차원이 다른 능력을 지녔다는 것과 적이라면 최악, 아군이라도 위험하다는 정도다. 오죽하면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것이 아는 사람이 극히 적다는 이유로 특급 정보에 속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이 허름한 주점에 어울리지 않아 이목을 집중시키던 이들이다. 여기에서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찾는 이가 마법사, 데몬(Demon)이란다. 주점 안은 순식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당황한 G가 다시 「데몬이라고 불리는 환술사를 아느냐니까?」라고 외친다.
정적이 폭소로 변한 건 한순간이다. 지오토는 말없이 G를 외면했다.
「에? 데몬? 그 마법사? 그런 존재를 왜 여기에서 찾아?」
「푸하하하하하, 어이~ 여기 이 녀석이 데몬을 찾는다는 데?」
「미쳤어? ‘그’가 어떤 존재인데 여기에 있어?」
「킬킬, 미쳐도 똑바로 미쳐~. 여긴 우리 같은 삼류 찌꺼기가 모이는 곳이라고~. 데몬처럼 대~단~한~ 존재가 있을 리 없잖아?」
「맞아, 맞아.」
역시나 사방에서 비웃음이 쏟아졌지만, 무쿠로는 한숨부터 나왔다.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면서 생각하기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걸 선호하니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다른 곳에서는 잘 돌아가는 머리가 이런 곳에서 안 돌아가는 것도 신기하다. 거기다 오른팔이면서 다혈질이라니 최악이라고요.
결국, G는 울컥해서 날뛰려 했고, 지오토가 급히 말려야 했다. 무심하던 얼굴 가득, 곤란한 기색이 피어난다.
「“데몬……?”」
「아, 리코는 몰라도 돼. 저 녀석이 멍청해서 웃는 거야. 그보다 빨리 다음 패나 돌려!」
「그래, 리코의 독주를 막을 패가 오면 좋을 텐데~.」
의문 어린 목소리와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섞인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찾는 게 한심해서 웃고 싶었었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면서 웃는 건 이상한 일이니 모르는 척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같이 놀던 패거리가 급히 말을 돌리며 별거 아닌 척 얼버무렸다. 그들은 일반인이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당시의 그는 그런 하찮은 배려심이 우스워서 참기 어려웠었다. 정말이지 곤욕스러웠다.
[역시 마법사를 이런 곳에서 찾는 건 무리인가? 하지만, ‘그’는 분명히 여기에 있다. 그런 느낌이 계속 들어.]
“초직감은 정말 골치 아프네요.”
무쿠로는 그의 생각에 그냥 웃어버렸다. 저 초직감이 아니었다면,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그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는 일도 없었겠지. 그는 과거의 자신이 앉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어차피 지금 이 순간, 그는 방관자에 불과하다. 아무리 원해도, 그런 끝을 막을 수 없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울컥 짜증이 일었다.
「어이, 그런 존재를 찾고 싶으면 저기 포커 치는 녀석들에게 가봐.」
「그렇지, 말단이지만 진짜니까 알지도 모른다고!」
이 주점의 주인이 오지랖 넓게도 참견했다. 그제야 지오토는 이 주점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을 발견했다. 그들도 시선을 느꼈는지 그를 돌아봤다. 이때의 무쿠로는 그를 보고 어딘가의 도련님이라고 생각했었다. 전체적으로 화사하고도 앳된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관심은 가지 않았다. 쓸데없이 관심을 둬서 자신이 누군지 들키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누군가와 엉킬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주친 눈길에 살짝 눈인사만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지오토를 그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굳은 표정으로,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하니 처음 마주친 순간, 알아차린 겁니까? 무쿠로가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할 정도다.
하나, 세상사 대부분의 일은 기대와 다른 법이다.
[저건 무슨 패션이지? 해군복인가? 아니, 달라. 감색의 제복 비슷한 옷…… 인 건가? 왜 안에는 빨간색 티를 입은 거지? 아니, 옷은 그냥 넘기더라도…… 어떻게 저런 머리가 나올 수 있는 거지? 번개 형태의 쌍 가르마라니……. 저런 게 가능한 건가? 어떻게 유지되는 거지?]
“…… 뭐?”
[전체적으로 이상한데…… 어째서 위화감이 크지 않는 거지? 그건 얼굴 때문인가?]
“… 지오토?”
[과연, 정말 섬세하고 우아한 미남이군. 저 복장은 얼굴을 조금이라도 감추기 위한 것인가? 하지만, 저렇게 인상 깊어서야 의미가 없을 텐데……?]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그딴 걸 생각했던 겁니까!? 이 옷이 어디가 어때서! 남이 어떤 머리를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무쿠로는 기어코 폭발했다. 방관자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이렇게 분할 줄이야! 생각 같아서는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고 싶었다. 잘생겼다고 칭찬하면 뭐하나, 이유가 저따위여서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니, 진짜 생사 대적을 만난 표정으로 그런 생각이나 했다고!? 아, 어쩌다가 이런 사람을……! 그는 진짜 좌절했다. 지오토가 그의 복장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로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눈에는 딱히 이상해 보이지 않았기에 더 그랬다. 알맹이가 그대로인 이상 자신의 패션센스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쇼킹하다는 걸 알아차리긴 어렵다.
지오토가 그렇게 그들만을 바라보자, G가 그들에게로 성큼 걸어갔다. 아무래도 지오토가 주목하는 만큼, 그들 사이에 ‘그’가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어이, 너희 중에 ‘마법사’가 있나?」
「멍청한 소리 작작해. ‘마법사’가 이런 곳에 있다고 믿는 거야?」
「어느 패밀리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마법사’를 찾는 건 그만둬.」
그들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이런 곳에 ‘마법사’가 있었다면, 자신들이 몰랐을 리 없다는 어투다. 실제로 진짜 상당히 큰 패밀리에 들어가고도 이곳을 단골로 삼았으니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저 ‘마법사’가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 있을 정도로 영악했을 뿐. 그래도 G는 지오토의 직감을 믿었기에, 그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폈다. G가 쉬이 떠나지 않을 듯하자, 그들은 불편한 기색을 띠었다. 그러다 꽝인 패를 쥐고 있던 이가 자신의 패를 던지며 장난처럼 말했다.
「아, 오늘의 마법사라면 여기 있지. 리코가 벌써 2번째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쥐었거든~.」
「리코?」
「어, 이 녀석.」
G는 무심코 그가 가리키는 이를 바라봤다. 지오토가 계속 주시하던 ‘그’였다. ‘그’는 「운이 좋았습니다.」라고 차분히 대답한다. G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주시하자,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다. 그건 정말 순박한 행동이어서, G는 움찔거리며 조금 물러섰다. 진짜 이 녀석일까?라고 쓰인 얼굴이었다. G는 결국 지오토를 슬쩍 돌아봤다. 그의 초직감에 기댄 것이다.
정작, 그는 그때 엉뚱한 생각을 하느라 G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리코라고? 그건 귀여운 소년에게나 어울리는 이름이지, 저렇게 우아한 분위기의 남자에게 어울리는 게 아니다. 양의 탈을 쓴 맹수가 작은 새 같은 이름을 쓰다니!]
지오토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그러니까, 왜 그런 생각을 그렇게 진지하게 하는 겁니까. 넌 바보입니까? 무쿠로는 허탈하게 생각하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속내를 들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추억이 박살 나는 중이다. 지오토의 생각은 저렇지만, 표정은 한없이 진중하다. 보스에게 걸맞는 능력이네요. 격렬한 심리적 동요로 조금 지쳐버린 그는 기대고 있던 등받이에 축 늘어졌다. 이제 지오토의 표정을 잘못 읽은 G가 ‘그’를 추궁할 차례다.
「네 녀석이 ‘마법사’냐?」
「“소소한 마술이라면 할 수 있지만, 마법은 무리입니다.”」
어리둥절한 목소리와 짓궂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대답했다. 하나의 목소리처럼 ‘그’와 똑같은 타이밍에 무쿠로도 말한 탓이다. 일반인이니만큼, ‘마법사’가 누굴 지칭하는지 몰라야 하니 저런 연기를 했었다. 애초에 G를 놀릴 생각이었다. 거기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거짓말은 한 적 없다. ‘마법사’라고 불리게 된 건 엄연히 마법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환술을 사용해서다. 간단한 마술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 마법을 쓰는 법 따윈 모른다.
「그런 시시한 거 말고! ‘마법사’라고 불리는 강력한 환술사를 말하는 거다!」
「“환술, 말입니까?”」
그게 뭐냐는 듯한 목소리와 고작 그런 거라는 목소리가 겹쳐진다. 그는 이때도, 지금도 단순히 환술만 따지자면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에게 ‘환술사’를 운운하는 건 웃긴 일이지 않나? 하지만, 일반인은 그런 걸 모른다. 그래서 모르는 척했었다.
‘그’의 대답은 어떻게 들으면 느긋하게 느껴졌다. G가 특유의 다혈질로 짜증을 내기 딱 좋은 상대였다. G는 ‘그’가 자신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인지, 한층 자세히 말하려 했다. 그런 G를 뒤로 끌어당긴 건 같은 테이블에 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그’를 일반인으로 알고 있었기에 더는 물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의 신분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철저히 베일에 싸인 ‘마법사’라면 자신에 대해 알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테니, ‘그’가 ‘마법사’일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G를 뒤쪽으로 끌어당기고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둬! 리코는 ‘그쪽’과 상관없어!」
「그냥 여기에서 잠시 같이 노는 사이야. 리코는 우리가 ‘그쪽’이라는 걸 모른다고!」
「그래, 리코는 신분이 확실한 감정사야. 그러니 그쯤 해!」
나름대로 ‘그’를 배려해서 소곤거렸지만, 다 들리는 위치다. 못 듣게 할 생각이었다면, 목소리를 더 낮췄어야지요. 무쿠로는 한숨을 가볍게 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이때 당연히 안 들리는 척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자기지만 참 가증스럽다며 그는 쓰게 웃었다. 이때, 실제로 몇몇 물건을 감정해줬었다. 진짜 감정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이 믿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는 상당히 실력이 좋은 감정사일 따름이다. 취미 생활로 구한 거지만, 그 실체는 당연히 비밀이다.
「감정사?」
「“혹시 감정할 물건이 있습니까?”」
「아, 혹시 감정사를 찾는 거라면 리코를 추천하지. 굉장히 실력 좋은 감정사야.」
「“과찬이십니다.”」
취미라고는 해도, 완벽주의인 성향에 따라 어지간한 전문가보다 실력이 좋았다. 하지만, 그게 진짜 직업이 아닐 뿐이다.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 다른 직업을 진짜인 냥 가지는 건 기본이지 않습니까? 이때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모든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이름도, 직업도, 그들이 알고 있던 주소도 전부 가짜였다. 지금이라도 먹힐 방법이니, 이때 이들이 감쪽같이 속은 건 어쩔 수 없다.
그들과 조금 더 대화하다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확신한 G는 급격히 실망해 발걸음을 돌렸다.
[아니, ‘그’다. 거짓말은 아니야. 하지만, ‘마법사’는 ‘그’다.]
G가 완전히 속았을 때, 정작 지오토는 ‘그’의 정체를 확신했다. 오로지 감각만으로 확신한 거다. 그것 그것대로 놀라울 따름이다. 역시 초직감은 무섭네요. 어떻게 그렇게까지 확신했던 겁니까? 무쿠로는 몇 번을 겪어도 놀랍다고 중얼거렸다.
G는 축 어깨를 늘어뜨리고 지오토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탐색의 결과를 보고한다.
「역시 여기에는 없는 것 같아.」
「아니, ‘그’다.」
「응? 누구?」
지오토는 G가 되묻는 걸 무시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심코 다가오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린 ‘그’는 묘한 확신으로 빛나는 그의 금빛 눈동자에 조금 놀랐었다. 북유럽이라면 몰라도 이탈리아에서는 보기 드문 금발도 조금 놀라웠지만, 선명하게 빛나는 금안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었다. 쓸데없을 정도로 올곧은 빛깔이라고 생각했었다. 왜소한 체격임에도 묘하게 강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래, 이때서야 ‘그’는 그 모든 걸 조합해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을 찾는 게 의외였었다. 그는 이미 모든 걸 가지고 있었으니까.
「또 방해냐?」
「아니, 이쪽도 잠시 어울리고 싶은데?」
「보아하니 한가락하는 거 같은데, 왜 이런 곳에 어울리려 하는 거지?」
「그거, 해본 적 없거든.」
놀이에 어울리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한 말이었다. 확실히 초보라면 이렇게 판돈이 낮은 곳에서 배우는 게 좋다. 자신들이 이해할 쪽으로 납득한 그들은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잘못하다간 판돈이 올라갈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다. 나름대로 가정을 꾸리고 있던 이들이기에 심리를 추측하는 건 쉬웠다. 그들에게 이건 놀이지, 가산을 탕진하면서 할 게 아니었다. 그러다 그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오늘따라 운이 좋은 ‘그’에게 계속 털리고 있었던 지라 그들은 곧 찬성했다.
초보가 운이 좋은 건 이미 정평이 난 사실이다. 그 초보의 운과 ‘그’의 운 중 어느 쪽이 높은지 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정말이지 얕은 생각이라 다 보입니다. 무쿠로는 혀를 찼다. 저러니 몇 년이나 같이 놀아도 ‘그’의 진짜 정체를 몰랐지.
「잃고 나서 후회해도 모른다?」
「아, 물론.」
「리코, 넌 어때?」
「“상관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확신한 지오토에게 흥미를 느꼈었다. 소문만 듣고 호기심을 느꼈던 이가 다가왔으니 물리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이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오토는 일부러 의자까지 들고 와 ‘그’의 곁에 앉았다. 그에 G도 어쩔 수 없이 의자를 끌고 와 곁에 앉는다. 너도 할 거냐는 시선이 모이자 G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인다. 패가 돌아가고, G는 틈틈이 지오토에게 룰을 설명했다. 어차피 어려운 룰이 아니라 그는 금방 익혔다. 그전에, G가 첫판은 연습이라며 못을 박았다. 완전 초보인 지오토를 생각해서다.
그래서 패를 보였을 때, 그들은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지오토와 ‘그’를 바라봐야 했다. 연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둘의 패는 풀하우스였다. 지오토는 2원페어(One pair), 7트립스(Trips)고, ‘그’는 A원페어, K트립스다. 첫판에 풀하우스가 나오는 것도 놀라운데, 둘이 같은 풀하우스다. 이런 때에는 수가 높은 쪽이 이기기에 ‘그’의 승리였다.
「와아, 이런 것도 있어?」
「막상막하잖아? 다음에는 어떨지 기대되는 걸~.」
「리코도 긴장해야겠는 걸?」
그리고 실제로 판돈을 걸면서 장장 세 시간 동안 다섯이서 포커를 쳤다. 처음에 놀라워하던 이들의 표정이 처참히 일그러지며, 두 손을 든 게 그쯤이다.
「둘이 아는 사이야? 짜고 치는 거 아니지?」
「후우~ 이걸 다른 데서 이야기하면 거짓말이라고 할 거야.」
「동감. 봤는데도 믿기 어려운데 믿겠어?」
「나도 포기. 리코라고 했지? 네 녀석, 꾼이었느냐?」
G까지 두 손을 들고 그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세 시간 동안 지오토와 ‘그’의 패는 놀랍도록 비슷하게 이어졌었다. 연습 게임의 공방이 그대로 이어졌던 거다. 늘 비슷한 등급에 아슬아슬하게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니 그들이 질릴 만하지 않겠는가? 거기다 패도 최하가 스트레이트(Straight)였다. 어설픈 패는 내밀지도 못한다. 그 와중에 초직감을 가진 지오토와 사람의 심리를 우습게 꽤 뚫어 보는 ‘그’인지라 마지막까지 가서야 서로의 패를 보였다. 즉, 판돈이 급증했던 거다. 더는 놀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판돈이 올랐다.
이건 위험하다 싶었는지, 그들은 잽싸게 발을 뺐다.
「우린 이만 가봐야겠어, 리코. 그럼 뒷일을 맡기지!」
「이거 초보자의 운도 굉장하잖아? 완숙된 운을 보여주라고, 리코!」
「초보자에게 지지마!」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살펴가세요.”」
‘그’도 무쿠로도 건성으로 대답했다.
무쿠로는 자리를 옮겨가며 ‘그’와 지오토의 패를 살핀다. 다시 봐도 사기라고 생각되는 패가 오락가락했다. 정말 둘 다 운이 지독하게 좋았다. 이쪽이 플러시면, 저쪽도 플러시 아니면 풀하우스다. 스트레이트 플러시는 다시 나오지 않았지만, 쿼드(Quad)만해도 벌써 4번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기가 질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셋은 떠나고, G는 포기했다. 이제 남은 건 지오토와 ‘그’, 단둘밖에 없다.
「계속할까?」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그러죠. 이번에는 얼마부터 시작할까요?”」
호기심 어린 목소리와 착잡한 목소리가 섞인다. 이때 ‘그’는 어이없는 패가 연속으로 나와서 그 끝이 어디일지 궁금했었다. 지오토의 목적이 자신이라는 것도 아니까 꺼릴 것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때 자신도 셋과 함께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둘의 관계가 조금은 변하지 않았을까? 무쿠로는 그냥 웃어버렸다. 설령 그랬더라도 변했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
「네 ‘진짜 이름’과 이쪽의 ‘본부 위치’는 어때?」
「“흐음? 곤란하군요. 그런 걸 걸라니…….”」
이때 ‘그’는 그 말에 굉장히 곤란했었다. 집을 나오면서 버렸던 이름이다. 지금까지 ‘마법사’나 ‘데몬’으로 불렸기에 이름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었다. 그래, 이때까지 ‘그’는 이름 없는 자였다. 없는 걸 달라는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거기에 ‘본부 위치’라니……. 근래에 급속도로 성장하는 패밀리의 본부 위치라 찾고자 하는 이가 많았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득보다는 실이 큰 판돈이었다. 정말 통이 큰 건지 작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무쿠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그냥 궁금한 것뿐이다. 네가 사용하는 이름을 알려주면 돼.」
「“그걸로 됩니까?”」
「물론, ‘마법사’.」
「“그럼 그렇게 하지요.”」
‘그’는 태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인정한 ‘그’의 모습에 지오토가 살짝 놀란다. 그렇게 숨겼으면서 너무 선선히 긍정해서 일 것이다. 무쿠로는 혀를 찼다. 삶에 가치가 없는데, 뭔들 가치가 있었겠는가? 딱히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이 운의 끝을 보는 것이었다. 흥미가 있는 건 오로지 그것밖에 없다.
그때, G가 급히 끼어들며 ‘그’의 멱살을 잡았다. 살벌하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듯 ‘그’를 추궁한다.
「네 녀석, 거짓말을 한 거냐!?」
「“그런 적 없습니다.”」
「네 입으로 ‘마법사’가 아니라고 했잖아!」
G의 눈에 살기가 일렁인다. 그래도 그만큼 화가 난 상태지만,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말한다. ‘마법사’에 대해 떠벌려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탓이리라. 확실히 머리는 좋은데 활용도가 낮습니다, 넌. 무쿠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소리 없이 찾아왔다. 그걸 보지 못한 지오토가 한 손으로 G를 말리며 차근히 설명한다.
「진정해, G. 그는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 없어. 그렇게 착각하도록 유도했을 뿐.」
「뭐?」
G가 놀라 지오토를 돌아봤다. ‘그’는 그 순간에도 흥미진진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문처럼 영민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쿠로는 그냥 쓰게 웃었다. 호기심을 품은 시점에서 이미 끝난 거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정말 일본 속담에 딱 맞는 상황이었다. 이때의 ‘그’는 이 순간을 그냥 유희라고 생각했다. 그걸 두고두고 후회하고, 감사하는 나날이 시작될 거라 알지 못하고.
「마법은 무리라고 했을 뿐이었어. 그리고 ‘그’는 자신을 ‘리코’라고 소개한 적 없다.」
「‘리코’라는 말에 대답한 건?」
「그는 그걸 ‘제삼자를 지칭하는 말 중 하나’로 받아들인 거야. 이를테면, ‘그’나 ‘너’정도? 그런 식으로 다른 이름이라도 자신을 부른 셈이니까.」
「고작 그런 걸로 ‘마법사’라는 걸 몰랐다고?」
어이없어하는 G에게 「너도 몰랐어.」라는 냉정한 대답이 돌아갔다. 충격을 받은 G의 손이 풀린다. 지오토는 조금 좌절한 G의 어깨를 두드리는 걸로 위로했다. 하지만, 정작 그 시선은 온화한 미소를 그린 ‘그’에게 꽂혔다. ‘그’는 그들의 행동이 퍽 흥미롭다는 듯 보고 있었지만, 그 의미는 확고한 긍정이다.
「지레짐작하게 한 거다. 이 근처에 분명히 ‘리코’라는 이름의 귀족적인 생김새를 한 감정사가 있을 거야.」
「설마 여기에서 간단히 감정을 해주는 것으로…….」
「어, 귀족적인 생김새의 감정사. 그러니 ‘리코’를 떠올린 거지. 진짜 ‘리코’도 상당히 실력 좋은 감정사일 거야.」
‘그’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우아하지만, 묘하게 조롱 섞은 몸짓이다. 순박하게 웃고 있던 양은 사라지고 나른한 맹수만 남았다. 그저 분위기만 변했을 뿐인데, 귀족 같은 기품과 오만함이 한 것 드러났다. 지오토의 설명에도 미심쩍어하던 G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는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전히 웃고 있건만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그대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 말대로, 지오토 데 봉골레.”」
「역시 이쪽이 누군지 알고 있었군.」
「“뭐, 그렇죠.”」
태연자약한 목소리가 스테레오로 대답한다. ‘그’는 원래 느긋한 분위기를 풍겼었지만, 한층 여유로워졌다. 무쿠로가 처음으로 유쾌한 웃음을 그렸다.
“젊다 못해 어리다고 알려진 봉골레의 보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 진실의 눈을 지닌 자. 그렇기에 그의 앞에서는 아무도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고귀한 분위기를 칭송하는 자들도 많았지요. 그래서 너를 똑바로 마주하고 바로 알아봤습니다. 네, 정말 소문 그대로였으니까.”
그리고 넌 내 거짓도 알아차렸지요. 분명히 원치 않게 정체가 발각된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불쾌감에 죽였을 텐데, 신기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납득’하고 있었다. 지오토니까 들켰다는 식으로 말이다. 정말 묘한 일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처음부터 특별했었다.
[묘한 사람. 진실과 거짓 사이를 배회하는 분위기군. 환술사는 전부이런가? 아니, 그건 아니었다. 이건 ‘그’가 지닌 특유의 분위기인가?]
“정답.”
무쿠로는 장난스레 덧붙이며 웃었다. 실제 ‘그’는 유령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타인의 착각으로 ‘거짓’을 만들 뿐, 그저 그것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음으로써 착각을 가중시킨 게 전부다. 덕분에 ‘그’의 과거는 지오토도 몰랐다. 추적을 하려 해도 알려진 게 없으니 알 수 없다. 삶에 의미를 두지 않으니, 미래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에게는 ‘현재’밖에 없었다. 그러니 실존 유무의 논란이 일어났던 거다. 일반인이 보기에 ‘그’는 ‘망령’이지 않았을까?
「시작할까?」
「“그럴까요?”」
G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둘을 질렸다는 듯이 보다가, 카드를 집어 들었다. 가볍게 카드를 섞고 한 장씩 패를 돌린다. 어차피 판돈은 더 부풀릴 수 없는 종류다. ‘그’는 패를 받는 족족 그냥 뒤집었다. 지오토도 ‘그’의 행동을 보더니 곧 전부 뒤집는다. G가 황망해서 바라봤지만, 이미 결론은 났다.
「“정말 운이 좋군요.”」
「그런 편이지.」
‘그’의 패도 나쁘지 않았다. 스페이드 플러시였으니, 일반적인 상대라면 80%는 승리를 자신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7원페어, 10트립스의 풀하우스를 보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역시 플러시로는 무리군요. 흘리듯 중얼거리며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에게 이름을 알려줘야 한다. 없는 걸 알려줘야 하니 지금 즉석에서 지어야만 했다. ‘그’는 어쩔까 고민하다가 자기 앞에 놓인 카드를 봤다. 스페이드,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인연이 깊은 패였다. 그럼 스페이드를 성으로 하고, 별명이었던 데몬을 이름으로 하자. 무쿠로는 지금 생각해도 참 날로 지었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환술사 답지 않는 단순함이었지만, 설마하니 그 이름을 계속 쓸 줄 알았겠는가?
「“데몬 스페이드. 약칭으로는 D. 스페이드입니다.”」
「응?」
「“진짜 이름, 원하지 않았습니까?”」
지오토의 표정이 순간 조금 일그러졌다. ‘그’는 그걸 보며 웃어버렸다. 자기가 생각해도 장난으로 보이는 이름인데, 그런 걸 들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G는 그보다 심해서 「장난치는 거냐?」라며 ‘그’를 노려봤다. 지오토의 생각이 난감하다는 듯 울린다.
[가명은 아니다. 거짓말도 아니지만, 진짜 같지도 않아. 이렇게 애매한 건 처음이군.]
“그야, 어느 쪽도 아니니까요.”
무쿠로는 쿡쿡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옛날에 쓰던 이름은 집을 나오면서 버렸다. 이 당시의 ‘그’는 현재 코스 노스트라(Cosa Nostra)라 불리게 된 유서깊은 시칠리아 마피아 소속의 가문에서 태어났었다. 당시에는 꽤 권세를 누린 듯했지만, ‘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문이 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근 20년 전이었으니…… 이름도 없이 부유한 시간도 그렇게 길다는 말이 된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 새삼 웃음을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요령 좋게 헛기침으로 넘어갔다.
그런 ‘그’의 반응에 지오토가 다시 묻는다.
「…… 그게?」
「“거짓말 같습니까?”」
「진짜군.」
지오토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거짓이 아니면, 진실. 그만큼 올곧고 바르다. 그는 거짓만으로 존재하는 자신과 상반된 이다. 지저분한 뒷세계에 있으면서 고결한 자신을 유지한다. 과연, 추앙하는 이들이 많을 법하군요. 금빛에 어울리는 사람,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곁에서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까지 그런 고귀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따위의 시시한 호기심.
무쿠로가 츠나를 보고 느꼈던 것처럼, ‘그’도 지오토를 정말 신기한 장난감처럼 느꼈었다.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해서 곁에 있고 싶어졌다. 정말 멍청한 호기심, 고양이는 호기심에 홀려버렸답니다. 무쿠로는 키득거리며 얼굴을 감쌌다. 어리석은 자신을 비웃으며, ‘그’와 함께 입을 열었다.
「“한 판 더 하시겠습니까?”」
「물론.」
「“이번에는 뭘 걸까요?”」
「‘너’.」
‘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정말이지 예상 밖의 대답이라 웃지도 못했었다. 생각보다 대담하다는 감탄이 먼저 나왔었다. 자신이 누군지, 그리고 또 어떤 성향인지 알 텐데 말이지. 10년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그’에게 이런 식의 요구를 할 배짱 넘치는 자는 없다. 그렇기에 ‘그’는 가볍게 감탄했었다.
「내가 이기면 네가 우리 패밀리의 수호자가 되는 거다. 어때?」
지오토가 조금 장난스레 말했다. 그건 G에게도 보인 적 없는 모습인지, 그도 깜짝 놀란다. 아, 이건 불쾌하네요. ‘그’는 웃으며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디에 속할 생각이 있었으면 아무 조직에나 들어갔을 것이다. 어디에서도 대접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 자신을 이런 걸로 잡으려 하다니……. 호기심이 짜증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좋습니다. 그럼 내가 이기면 ‘너’를 주세요.”」
「무슨 의미냐, 이 자식!」
「“별거 아닙니다. 그냥 그의 목숨을 달라는 겁니다.”」
「뭐라고!?」
‘그’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자신을 구속할 생각이면 이 정도의 페널티는 정말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지오토가 조금이라도 당황하길 바라였기에, 그가 정작 이해한 표정을 지어 많이 아쉬워했었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걸까? 무쿠로는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가볍게 혀를 찼다. 자신도 과거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게 부질없는 일인 걸 아는데…….
‘그’가 옆에서 버럭 거리는 G에게 귀찮다는 어조로 말한다.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던 겁니까? 어리석긴.」
「이 자식이!!」
「G, 물러나 있어.」
지오토는 G를 일단 말렸다. G가 어떻게 물러나느냐는 눈길로 그를 바라본다. 그래, 충직한 G는 그가 죽을지도 모르는 도박을 하게 내버려두기 싫었을 거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굳었다. 이 한판으로 아무도 섭외하지 못했던 ‘그’를 붙잡는 일이다. 무엇보다 [질 것 같지 않아.]라고 그의 직감에 예견하고 있었다. 무슨 초직감이……, 그건 반칙입니다. 무쿠로는 냉정하게 토를 달았다.
「예상했던 조건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서지 마.」
「흐음? 정말 수락하는 겁니까?」
「물론.」
‘그’의 말에 지오토는 정말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는 가볍게 웃었고, G는 그런 ‘그’를 노려보며 카드를 섞었다. 그리고 태연자약한 둘에게 5장씩 카드를 돌렸다. 이번에도 ‘그’는 망설이지 않고 패를 보였다. 스틸 휠(Steel Wheel : A, 2, 3, 4, 5)이었지만, 스페이드 스트레이트 플러시다. 그걸 확인한 G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스트레이트 플러시는 스트레이트 플러시로밖에 대응할 수 없다. 나오는 확률도 당연히 끔찍하다. 그때, 지오토도 패를 보였다. 하트 로열(Royal : 10, J, Q, K, A) 스페이드 플러시다.
‘그’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스틸 휠과 로열이라니! 누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분명히 사기라고 외칠 거다. 아니, 다시 봐도 이건 사기로 보여요. 무쿠로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만큼, 어이없는 결과다. 찬사와 황당함이 뒤섞어 ‘그’가 축하한다.
「진짜 운이 좋군요.」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지. 스페이드.」
지오토가 유쾌하게 웃으며 답한다. 그 미소가 묘하게 눈부셨었다. 이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그런 날 너를 만나 너와 함께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래, 그만큼 특별해요. 무쿠로와 ‘그’가 체념 어린 목소리로 항복했다.
「“그러지요, 보스.”」
이제는 밀쳐내지도 못한다. 아무리 부서져도 그와의 추억은 그렇게나 눈부셨으니까.
다시 시계가 일그러진다. 또 다른 기억을 재생하기 위해 ‘꿈’이 요동친다. 깨어나야 하는데, 깨고 싶지 않다. ‘달콤한 꿈’이라는 함정에 붙잡혔다. 그게 ‘과거’였기에 더 매료되어버린다. 이대로 취하면 곤란하다. 무쿠로는 그걸 알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도 알았다. 외면하기에는 너무 깊이 동조해버렸다. 흐려지는 그를 잡으려 손을 뻗을 정도로, 너무 깊이…….
양 조절이 갈수록 안됩니다.[...]
누가 이유 좀.[...]
중간에 나오는 트립스=트리플, 쿼드=포카드입니다.
외국에서는 저러다고 하길래 저렇게 써봤습니다.
G의 성격이 나와서 수정했습니다만, 별 차이는 없네요.[...]
중간에 나오는 지오토가 스페이드를 보고 한 감상은 제 감상입니다.
아트랜드 싸우자!!!!
무쿠로가 급격히 데레해졌습니다만, 본인에게 안하면 의미가 없죠.[...]
그러고보니 스페이드도 츤데레... 미안, 지오토.[...]
츤비율이 높은 건 운명인가봐요.
조금 긴 사족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그야말로 가상이라서 가능한 패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 편은 전부 뜯어 고칠예정입니다.
생각만큼 안나왔기도 하고, 생각이랑 틀려서기도 합니다.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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