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 꾸역꾸역 길어졌습니다.
목표는 이렇게 길게가 아니었다고!!!
정말 이때가 최고였습니다.
양은 늘어나지, 편수도 못마추겠지… 답이 보이지 않아서 그냥 한편 늘렸더랬죠.
어쨌든 암담합니다.
앞날이 구만리에요.
무쿠로는 이제 눈앞에 지오토가 있어도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예고도 없이 시작되는 ‘기억의 재생’에 그와 얼굴이 부딪칠 듯하자 기겁하며 피한다. 어차피 그냥 통과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몸이 저절로 피했다. 이건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안 따르는 경우다. 무쿠로는 넘어질 뻔하고 나서야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저절로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진짜 이래서 싫단 말입니다! 속으로만 땅을 치고 고개를 돌아보니 지오토와 G가 홀을 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이건 무쿠로의 기억 속에 없는 일이다.
G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히죽 웃으며 지오토의 앞을 쌩하니 달려간다.
「여어, 스피~!」
착각할 수 없는 복장과 헤어스타일의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슬쩍 옆에서 따라오던 다른 패밀리와 자리를 바꿨다. 그리고 G는 망설이지 않고 다른 패밀리의 어깨에 손을 걸치고 「스피~, 오늘은 어째 얌전한걸?」등의 말을 던진다. 당황해서 자신을 붙들려는 패밀리를 제물로 던져주고 그는 아주 유유히 사라졌다. 그 짧은 순간에 G에게 환각을 걸고 몸을 뺀 거다. 그걸 보면서 무쿠로는 이랬던 일도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해버렸다. G가 괜히 시비를 걸고, 그가 환각을 걸고 피하는 건 이때 이미 일상이었다.
그러나 지오토에게는 아니었나 보다. 그는 그런 스페이드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무리 듣기 싫어도 그렇지, 어떻게 같은 패밀리에게 환각을 거는 거야!?]라는 마음속의 외침이 무쿠로를 조금 아프게 만들었다. 지오토가 얼마나 패밀리를 아끼는 지, 이때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저 정도 환각을 걸었다고 죽거나 하진 않습니다. 마음으로만 토를 단다.
[반응이 익숙해. 제물로 던져졌다고 해도 저런 상황이면 당황하기 마련인데……. 역시 스피~가 이러는 건 처음이 아니라는 거로군.]
“그야 그렇게 듣기 싫어하던 애칭이니까요. 그냥 환각만 걸고 떠나는 것도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저 성질에.”
스스로 생각해봐도 단순히 성격이라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그래서 무쿠로는 자연스레 성질이라고 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전적을 보자면, 진짜 그냥 환각만 걸고 끝냈다는 것이 안 믿긴다. 도시 전설에 가깝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정말 굉장한 일이다. 이건 오로지 지오토가 아낀다는 걸 아니까 봐주는 거다. 아니면 그 성질에 진짜 살인은 물론이고, 최소가 미치는 수준의 아수라장이 만들어졌을 거다. 이때 참 잘도 그냥 넘겼군요. 지금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쓸었을 겁니다. 무쿠로가 참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내용물이 같은 만큼, 그 성질머리는 여전하다.
“그건 그렇고, 생각에서조차도 ‘스피~’였습니까?”
이젠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이 더 짜증이다. 무쿠로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 사이 지오토가 아직도 환각에 빠져 있던 G를 끌어당겼다. 어리둥절해하는 G를 무시하고, 어색하게 웃는 패밀리에게 가보라는 손짓을 한다. 그 패밀리는 깊이 안도하면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서둘러 사라졌다. 그 모습에 G는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잘 굴리지는 않지만, 영민한 머리를 굴려서 금방 정답을 돌출한 그는 분노에 타올랐다.
설마하니 그냥 넘어가리라 생각했던 겁니까? 이건 그쪽의 잘못인 것 같습니다만? 무쿠로는 그 분노에도 토를 달았다.
「그 자식이!?」
「그만둬, G. 괜히 자극하지 마.」
「하지만…….」
「그가 위험하다는 건, 너도 알잖아.」
「그건 너도 위험하다는 거다. 요즘 너무 엮이고 있다는 거 알고 있지?」
「…… 어.」
지오토는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스페이드가 위험하다는 건 확실한 일이었다. [그래도…….]라는 지오토의 생각에 그는 아릿해졌다. 자신이 그에게 약했던 만큼, 그도 자신을 놓은 적 없다. 나는 그걸 압니다. 무쿠로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이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상념 하나하나에 감정의 동요가 심해지고 있다. 이것도 단순히 깊이 동화해서일까? 아니면, 그도 츠나와 비슷한 상태가 되어가는 걸까?
무쿠로가 잠시 그런 생각에 잠긴 사이, 지오토가 G를 보내고 근처 의자에 여유롭게 앉아있던 스페이드에게 다가갔다.
「무슨 짓이지, 스피~?」
지오토는 그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걸 확인한 지오토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뭔가 거슬리는 게 있는지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질문도 딱히 대답을 듣기 위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웃는 얼굴을 보지 못한 게 얼마나 된 거지? 진심으로 웃는 건 어차피 본 적 없으니 차치하더라도, 가식으로 웃는 것도 못 본 지 오래인가. 왜 그런 게 신경 쓰이는지 모르겠군.]
“나도 빤히 바라만 보고 있어서 신경 쓰였습니다. 그놈의 호칭 때문에 무시했습니다만.”
‘스피~’는 진짜 애증의 호칭이다. 그는 그걸 끝까지 싫어했었지만, 버릴 수 없었다. 무쿠로의 표정이 한층 구겨진다.
세상에 유아독존으로 살아가던 존재가 다른 이에게 관심을 보내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그는 그래서 어쩐지 울적해 보이는 지오토의 표정에 이유를 찾느라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그냥 무시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무엇 때문에 지오토가 저러고 있는가를 고민했다. 그냥 물어보는 게 빠르다는 걸 알지만, 막상 먼저 말을 걸려 하니 자존심이 말문을 막았었다. 정말 골치 아픈 상황이었죠. 무쿠로는 그렇게 회상했다.
그러다 이상하게 이어지는 침묵을 버티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연 건 스페이드였다.
「무엇을 말입니까, 보스?」
「G를 놀리는 거. …… 그쯤 해둬, 스페이드.」
지오토는 느릿하게 말하며 그의 곁에 앉았다. 조금 피곤한 듯, 노곤히 몸을 늘어뜨린다. 그는 오래간만에 듣는 정상적인 호칭이라 묘한 감흥에 빠졌다. 그놈의 ‘스피~’가 아니니 기쁘리라 생각했는데, 딱히 그렇지 않았다. 아쉬운 건 아니지만, 조금 허전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자신이 용납되지 않아서 인상을 썼었죠. 무쿠로는 묘하게 일그러진 그의 표정을 보며 그렇게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따라온 건 당연히 자존심 하나로 남아있는 오기다.
「어쩐 일로 개심했습니까, 보스? 오래간만에 정상적으로 불리니 묘하군요.」
「스피~.」
「왜 바로 돌아갑니까?」
「너야말로 묘해.」
지오토가 느릿하게 그를 돌아본다. 그도 나긋하게 마주 봤다. 구겼던 인상을 조금 펴고 애매한 표정으로 웃는다. 그는 이때, 저 투명한 금빛 눈동자에 전부 읽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모두 꿰뚫어보는 눈동자. 그를 감싸고 있던 안개를 몰아내고 진실을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보는 것 같아서 마주하기 싫지만, 외면하기는 더 싫었다. 그런 겁니다, 지오토. 무쿠로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가 조곤조곤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의미입니까, 보스?」
「넌 어느 쪽이지? 왜 언제나 경계에 있는 거지?」
변하지 않는 금빛 마음속 깊이 들어선다. 그게 거북하면서도 재미있어졌다. 내 안에 숨겨진 진실을 넌 찾을 수 있습니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웃었었다. 더 솔직한 속내는 곤란하다는 거였다. 지오토는 언제나 그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했다. 그는 그때마다 모르는 척, 혹은 대답할 생각이 없다는 티를 내며 넘겼었다.
“사실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무쿠로는 오래 묵은 진실을 꺼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그는 패밀리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확실한 아군이었다. 곁에 있어도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건 여전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조차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언제나 이도 저도 아닌, 그런 상태로 있었다. 왜 그렇게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도 몰랐었으니까. 지오토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진짜 망령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르는 척 반문했다.
「무슨 말인지……?」
그런 그를 보며 지오토는 살짝 인상을 썼다.
[마음에 들지 않아. 과연 그때도 이런 식이었군. 거짓말은 아니지만, 진실도 아니다. 안개처럼, 신기루처럼. 넌 그렇게 살아온 건가?]
“정답. 생각보다 늦게 알아차렸군요.”
그런 초직감이라면 일찍 알았으리라 여겼는데 말이지요. 무쿠로는 그렇게 덧붙였다. 지금까지 그의 말은 전부 다 교묘하게 비켜갔을 뿐, 모두 진실이었다. 하지만, 고의적인 오답이었기에 거짓이었다.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는 거짓말쟁이, 그렇기에 그는 데몬(Demon)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호하고 흐릿하다. 거짓과 진실이 섞여서 그는 자신을 지웠었다. 인상 깊은 얼굴과 복장도 그 애매하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리는 거다. 그래서 그는 도시 전설처럼 인식되었었고,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았었다.
지오토는 혀를 차더니 공격적인 어조로 ‘명령’했다.
「오늘, 회식에 반드시 올 것.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귀찮습니다만?」
「이럴 때만 진심인가, 스피~? 하지만, 그때의 도박 잊은 건 아니겠지?」
무감각하던 얼굴에 서늘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그는 이런 지오토를 거부할 수 없다. 거기다 그때의 도박, 서로 신변을 걸고 했던 도박에서 결과적으로 졌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오토는 그의 <주인님>이시다. 그는 쓸데없이 드높은 자존심 때문에 단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 없지만, 그 사실이 변한적 없다. 그도 자신의 입으로 부정한 적은 없었다.
무쿠로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리를 중얼거렸다.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입니다. 네, 정말로요.”
「명령이시라면, 기꺼이…… 보스.」
그도 마주 웃으며, 이를 조금씩 갈아주면서 대답했다. 지오토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퍽 온화한 풍경이다. 하긴, 언제나 둘은 이런 분위기였다. 타인이 볼 때는 사이가 굉장히 좋아 보이지만, 실체는…… 무쿠로는 그냥 한숨을 쉬며 외면했다.
순간 무쿠로의 시야가 새까맣게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의 앞으로 지오토가 G를 이끌고 걸어갔다. 멈추지 않고, 기억이 재생된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무쿠로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이건 단순히 동화되어서가 아니다. 곤란한 상황이다, 어쩌면 좋을까요? 무쿠로는 상석에 자리한 지오토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물었다. 다시 망설임이 찾아왔다. 조금만,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이대로 있을까요? 무쿠로의 입가가 자조로 비틀린다.
이날은 그의 기억에도 확실히 남아있다. 그가 처음으로 참여한 패밀리의 회식이었고, 지오토가 취하지도 않았으면서 주사를 부린 날이다.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잔뜩 남았다. 그렇게 화난 지오토는 G도 처음 본다고 했었던가? 그래도 시작은 꽤 온화하게 흘렀었다. 그가 참여했다는 사실이 조금 논란이 되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유쾌하게 흘러갔었다.
나치고는 열심히 어울렸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이대로, 조금 더 있기로 한 무쿠로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오토의 옆자리에 앉았다. 자리의 주인인 G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느라 뜬지 오래다.
[스피~는 역시 어울리지 않는군.]
“난 술만 거부했습니다만?”
마침 그가 G에게서 술을 받고는 슬그머니 환각으로 옆자리에 비어져 있던 술잔과 바꾼다. 그건 그냥 그걸 마시기 싫었기 때문에 한 행동이었다. 도수가 높은 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온통 증류주 밖에 없어서 곤란했었다. 사실 알코올 맛이 대부분인 증류주를, 그것도 희석시키지도 않고 마시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는 이때도 달콤한 것을 좋아해서 달콤한 과일주를 즐겨 마셨었다.
그는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마실 정도로 궁한 적이 없다. 그래도 거절하면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서 환각으로 때웠던 것이다. 설마하니 저게 거슬렸던 겁니까? 아니, 술을 마시지 않은 것과 환각을 건 것 중 어느 쪽이 문제였던 겁니까!? 무쿠로가 암담한 기분을 절감하며 지오토를 돌아봤다. 지오토는 그야말로 화났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으리만치 서늘한 눈을 하고 있었다. 평소와 비슷한 무표정이었건만, 한기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아니, 그냥 화난 거 같습니다. 저게 그렇게 화낼 일이었습니까?! 무쿠로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외쳐도 의미가 없다. 그래서 보다 건설적으로 과거의 자신에게 애도를 보냈다.
지오토가 성큼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보기 드물게 확실하게 웃는 얼굴이라 묘하게 주위의 시선이 집중된 상태였다. 하지만, 정작 그 미소를 정면에서 받은 그는 위험하다고 직감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살벌할 정도로 화난 상태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분노의 대상이 자기인 것 같아 영 불안했다. 그래서 그는 마주 생긋이 웃는 얼굴로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도망가는 건 성격에 안 맞지만, 상대가 반항하기 어려운 존재라면 기꺼이 몸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생각은 짧고 행동은 빠르게, 그는 그 철칙에 따라 바로 몸을 돌렸다.
그런 그를 지오토가 간단히 붙들었다. 그는 팔을 빼내려고 해봤지만, 역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보스?」
그는 일단 웃는 얼굴로 지오토를 불렀다. 왜 이러는 거냐는 순수한 의문을 품고 바라본다. 지오토는 그런 그에게 오싹한, 기이한 결의가 느껴지는 얼굴로 웃으며 옆에 있던 병을 잡았다. 조금 전에 G가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따르던 바카디 151(Bacardi 151)이었다. 이제는 물컵으로 한잔 분량만이 남아있었다. 문제는 이게 증류주고 그 중에서도 상당히 도수가 높은 75.5도라는 거다. 그는 불안하게 그걸 바라봤다. 이때, 그냥 도망갈 껄 그랬죠. 무쿠로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외면했다.
「그건 왜 쥐었……!?」
습니까, 라는 질문을 그는 완성할 수 없었다. 지오토가 그의 입에 바카디 151을 병째 꽂은 탓이다. 갑자기 이만한 도수의 술을 이렇게 마실 경우, 술에 약한 사람이라면 바로 쓰러질 양이었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그걸 뱉지도 못하고 간신히 다 마셨다. 사실, 대비도 못 했던지라 술이 기도로 넘어갈 뻔했기에 무조건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무쿠로는 보지 않아도 안다는 어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안색이 허옇게 질린다.
멀리서 그걸 보던 G가 황급히 다가와 지오토를 말린다.
「지오토!? 그건 맥주도 물도 아니다! 잘못하면 죽어! 어이, 괜찮냐?」
「예…….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만, 이게 무슨 짓입니까?」
지오토가 든 병은 어딜 봐도 바카디 151이건만, 어떻게 맥주나 물로 알았던 겁니까? 네가 들고 다니던 것이었습니다! 라고 그는 이때 G에게 따지고 싶었다. G보다 지오토가 먼저였기에 일단 넘겼다. 그로서 이건 마른하늘의 날벼락 수준을 넘어선 참사였다. 거기다 오늘은 얌전하게 성질을 죽이고, 나름대로 패밀리에 어울리려 노력했기에 더 그랬다. 그가 아무리 지오토에게 약하다고 해도, 이건 도를 넘어섰다.
그는 웃는 얼굴을 지우고 차갑게 지오토를 노려봤다.
[그래, 그게 진짜 얼굴이지. 가짜 모습만 보이는 게 무슨 가족이야? 그렇게 벽을 만들어서는 끝까지 진짜 가족이 될 수 없어. 난 모두와 친하게 지내는 널 보고 싶단 말이다!]
지오토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는 그 너머에 있는 아픔을 읽었다. 이때, 그는 그런 지오토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뜬금없이 뒤통수 맞은 건 나인데, 왜 네가 괴로워하는 겁니까?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아니, 지오토의 진심을 듣기 전까지 그는, 무쿠로는 몰랐었다.
“그런……, 거였습니까? 그런 건 차라리 말로 할 것이지……! 그런 쪽으로는 바보라서 똑바로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단 말입니다!!”
우울하게 당하는 자기의 모습을 보기 싫어서, 계속 외면하고 있던 무쿠로는 그렇게 외쳐버렸다. 닿지 않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해야만 했다. 이건 기억이다. 바꿀 수 없는 과거다. 알아, 알고 있어. 지금 바꾸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인 걸 알아. 알지만……! 무쿠로는 황급히 생각을 멈췄다. 이 이상은 위험하다. 그래도 멈추고 싶지 않다, 멈출 수 없다. ‘그때’의 기억까지 가야만 한다. 무쿠로는 길게 심호흡했다.
무쿠로는 지오토의 앞에서 살짝 비켜섰다. 분명히 꽤 멀리 떨어져 있었건만, 감정에 휘말린 사이 지오토의 앞까지 달려온 거다. 그는 그런 자신이 못마땅해서 혀를 차며 감정을 억눌렀다.
「술, 잘 마시는군.」
「약하진 않습니다. 그보다 무엇 때문에 그런 겁니까?」
지오토는 그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옆에 있던 술병을 들었다. 그 술이 무엇인지 확인한 G가 기겁해서 지오토를 말렸다. 내용을 보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이런 식으로 암살하면 보스로서의 위엄이 서지 않는다는 식이다. 그도 술병을 보고 조금 긴장했을 정도다. 그건 현재에는 생산이 중지된 전설의 술, 98도라는 무시무시한 도수에 빛나는 에스토니안 리쿼 모노폴리(Estonian Liquor Monopoly)였다. 순수 알코올에 근접한 술이 바로 이거였다. 거기다 이건 따지도 않은 상태다. 이걸 병째 마시게 되면 농담이 아니라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죽는다!
지오토가 그걸 따서는 500㏄ 정도 되는 잔에 따른다. 그것도 1/3 나 되었다. 그다음에 그가 든 술병은 스피리터스(Spiritus)라는 96도짜리 술이었다. 그걸 같은 잔에 1/3가랑 따른다. 거기에다가 G가 마시고 죽어라! 라는 심정으로 만들었다고 떠들었던, 에버클리어(Everclear, 95도)와 발칸 176(Balkan 176, 88도)을 1:1로 섞어놓은 것을 부었다. 그걸 조심조심 잘 저으니, 마시는 순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칵테일이 탄생했다. 그걸 지켜본 이들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지오토의 곁에서 조금씩 물러섰다.
이미 한번 당했기에, 직접적인 생명의 위기를 느낀 스페이드도 멀찍이 물러나려 했다.
「스피~.」
지오토가 그를 붙잡고 다정하게 부른다. 자상한 얼굴로 웃고 있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싸늘하다. 그는 버릇처럼 마주 웃어주며 은근슬쩍 손을 뿌리친다.
「보스, 왜 그러십니까?」
지오토는 한걸음 물러서려는 그를 다시 잡고 끌어당기며, 죽음의 잔을 내밀었다. 주위에서 「헉!」하고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걸 보며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특별히 만든 거다. 마셔.」
「지오토, 그건 좀…….」
「G, 네가 마시라는 게 아니다. 스피라면 마실 수 있을 거다. 그렇지?」
「아니, 그건…….」
지오토가 그렇게 말하자, 그의 이맛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의 자존심을 자극해서 그걸 먹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게 느껴진다. 뻔히 보이는 함정이다. 그렇기에 낚일게 확실한 덫이었다. 그는 표정이 사라지며, 잠시 고뇌가 내려앉았다. 그건 정말 찰나로 그는 ‘자존심’과 ‘생존’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선택한 이상, 그가 할 말도 정해진다.
그는 우아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쳤습니까, 그런 걸 마시게?」
그의 선택은 ‘생존’이었다. 지오토는 그의 선택이 뜻밖이었는지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곧 대수롭지 않다는 어투로 확고하게 말했다.
「명령이다, 스피.」
「보스네 스피에게 먹이십시오. 난 싫습니다.」
「나에게 스피는 너밖에 없어.」
「난 그딴 이름이 아닙니다만?」
「보스가 친히 지어준 애칭인데 거부하겠다는 건가?」
「그럼 정상적인 걸로 지어주시지요.」
「스피, 항명은 인정하지 않겠다. 마셔.」
「싫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이때의 그는 ‘자존심’밖에 없었다. 삶도 죽음도 그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부유했고, 그대로 안주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왜 뜬금없이 ‘생존’을 선택했을까? 왜 갑자기 살아가고자 했을까? 당시에는 그저 변덕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단순한 변덕…… 아니, 술 마시고 죽는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피하고 싶다, 라고 자신을 납득시켰다. 어리석게도 말입니다. 무쿠로는 숨죽여 웃었다.
「내기를 잊은 건가?」
「…… 그걸 들고 나오십니까? 네, 좋습니다.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어이, 진짜냐?」
그놈의 도박이라며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 모른다. 그가 잔을 받아들자 웅성거림이 커졌다. G도 기겁해서 그를 말린다. 「그럼 진짜지 거짓말이겠습니까?」 그는 날카롭게 대답했다. 괜한 곳에 화풀이, 무쿠로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그가 막 마시려고 잔을 입가에 잔을 가져가는 데, 지오토가 웃으며 확인 사살을 한다.
「한 번에 다 마시기다.」
다시 비명인지 경악인지 알길 없는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냥 마시고 죽으라는 거군요. 네, 알았습니다. 그도 마주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진짜 죽을 각오로 마셔야 한다. G가 그에게 미치지 않았다면 잔을 버리라고 속삭인다. 지오토가 신경 쓰이면 다들 나눠 먹든지 하자는 식으로, 어떻게든 그를 살리겠다는 의미의 제안을 해왔다. 당사자였던 무쿠로의 눈에도 자살행위로 보이는데, 당시 주위에서는 어떻게 보였겠는가? 그냥 죽기 위해 발악하는 걸로 보였으리라.
그는 그런 제안을 무시하고, 진짜 그 잔을 한 번에 비웠다.
「진짜 마시는 거야?!」
「미쳤어…….」
「헉, 거의 다 마셨어!」
「의사 불러, 의사!!」
주위의 소란이 커졌다. 지오토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무쿠로는 그가 곤란해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생각이 울린다.
[…… 진짜 다 비우는 건가? 곤란하게 만들면 다른 패밀리와 나눠 마시리라 생각했는데…….]
“네가 시켰잖습니까, 네가. 저 성질에 오기로라도 혼자 마시지, 같이 마셨겠습니까? 한 번에 바라는 게 너무 큽니다.”
무쿠로가 한숨처럼 토를 달았다. 스페이드는 이때, 진짜 잠시지만 의식을 잃었었다. 멀쩡히 서 있는 건, 그냥 몸이 굳어서 그런 거다. 그만큼 충격적이고도 경이로운 맛이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기암시를 걸었었다. 결과로 따지자면 살아남았다지만, 그 과정이 좀 처절하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네, 이렇게 병신처럼 자살하는 줄 알았답니다. 무쿠로는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이건 진짜 그의 기억에 길이 남는 흑역사다.
「다 마셨습니다, 보스.」
「굉장하잖아, 스피!!」
G가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외친다. 다른 간부도 거의 영웅을 보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를 고문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감탄하지 마십시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속이 울렁거려 말을 할 수 없었다. 정말 괴로웠습니다. 무쿠로는 다시 외면했다. 새삼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술에는 굉장히 강해졌지만, 절대 두 번 할 짓이 아니다.
그가 그렇게 괴로워하는지도 모르고, G가 계속 등을 두드리며 감탄한다.
「진짜 굉장해! 스피, 널 다시 봤다.」
「너, 또 그렇게 부르면 똑같은 걸 만들어 먹여버립니다?」
「스피, 진심으로 그런 협박하지 마.」
지오토가 슬며시 말린다. 정작 G는 호기롭게 「그럼 마시면 그렇게 불러도 된다는 거군! 줘 봐!」라고 외친다. 덩달아 많은 간부도 도전해보겠다고 난리다. 그걸 보는 그와 지오토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고문이나 다름없는데, 당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서 놀랐었죠. 무쿠로가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이상하게라도, 조금은 친해진 건가?]
지오토의 생각이 떨떠름한 기색으로 울린다.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고, 무쿠로는 조심스레 토를 달았다.
그는 어이없다는 심정을 숨기지 않고, 지오토가 만들었던 지옥의 칵테일을 만들었다. 어차피 자기가 다시 당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만들었다. 당연히 말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500㏄ 가득 만들고 나니, G가 길게 심호흡한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잔을 빼앗아 들려고 손을 뻗었다. 그는 그걸 자연스레 피하고는 작은 양주잔에 조금 부어줬다.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이성이 마비되지 않는 한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니까 어째 살아남았지, 다른 사람이라면 죽었다. 그걸 아는 주제에 미친 짓을 했었지요. 무쿠로는 다시 생각해도 잠시 미쳤던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호의가 G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는지, 살벌하게 으르렁거린다.
「날 무시하는 거냐?」
「이걸 마시고 멀쩡하면 인정하겠습니다.」
「이 자식! 좋다, 그럼 넌 지오토에게 주인님이라고 하도록 해!」
「흐음? 좋습니다.」
그의 무시에 G가 화를 내며 그 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G의 몸이 서서히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쓰러져 일어나지 않는다. 눈이 조금 돌아간 것 같다. 지오토의 표정이 살짝 굳었을 때, 의사로 보이는 이가 패밀리의 손에 끌려 들어왔다. 스페이드가 지옥의 칵테일을 마실 때 부른 바로 그 의사다. 의사는 쓰러진 G의 상태를 살피더니 살짝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냥 기절했군요.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방으로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순간 기묘한 침묵이 패밀리 사이에 내려앉았다. 그는 역시 이럴 줄 알았다 듯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고, 지오토의 미간이 구겨졌다. [고작 그거 마셨다고?!]라는 지오토의 생각이 쩌렁쩌렁 울린다. 그가 그렇게 놀란 것도 이해가 가지만, G가 마신 건 도수가 무식하게 높은 술인데다 칵테일이었기에 알코올의 흡수가 빨라진다.
“그러니까,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죽지 않은 게 신기한 겁니다.”
무쿠로는 아주 정중히 그 생각에 토를 달았다. 환술사인 그와 비교해서 일반인이라고 할 수 있는 G가 쓰러지는 건 굉장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G의 음주량을 잘 아는 패밀리의 간부는 믿기 어려운 눈으로 G와 그를 번갈아 봤다. 그는 웃는 얼굴로 잔을 들어 보이며 그들에게 물었다.
「마실 분, 계십니까?」
「한잔 줘.」
기다렸다는 듯이 지오토가 손을 내민다. 그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이때, 그는 분명히 G가 지오토의 주량이 형편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이걸 마시겠다고? 솔직히 죽으려고 작정했나 싶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네가 쓰러지면 도전할 사람이 사라질 테니, 그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무쿠로는 아주 솔직히 당시에 느꼈던 감상을 주절거렸다.
그러면서 지오토에게 준 잔은 G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양은 조금 적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군요. 네, 그랬습니다. 전혀 몰랐었다는 점에서 정말 충격적이군요. 무쿠로는 그렇게 토를 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즉, 스페이드는 이 시점에서 이미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약해진 상태였던 것이다.
「천천히 마시는 게 좋습…….」
스페이드가 경고했지만, 지오토는 망설이지 않고 단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암전.
무쿠로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더럽게 말을 안 듣는군요. 그래도 멀쩡하게 서 있어서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잠시지만 선 채 기절했던 겁니까? 그렇게 토를 달려 입을 벌렸지만, 어째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과연, ‘기억의 재생’이기에 이런 경우도 그냥 지켜봐야만 하는 거군요. 그는 가볍게 혀를 찼다.
이후는 스페이드의 기억에 남아있다. 저 지옥의 칵테일 500㏄가 다 비워질 때까지, 패밀리의 간부라는 것들이 죄다 한 잔씩 마시고 뻗었다. 지오토가 멀쩡해 보이니, 자기들도 멀쩡하리라 생각한 거다. 마피아 간부라는 사람이 이렇게 단순해서 괜찮은 겁니까? 그는 그 꼴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주위가 다시 밝아진다. 지오토의 기억이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주위의 상황은 정말 가관이었다. 의사와 스페이드는 나란히 어이없는 눈길로 주위를 보고 있었고, 말단으로 보이는 이들이 황급히 쓰러진 간부를 옮기고 있었다. 그걸 천천히 훑어보더니 지오토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군.]
“단순하니까요.”
무쿠로가 진실에 가까운 말을 던졌다.
거듭하는 말이지만, 정말 마피아라는 사람이 이렇게 단순해도 되는 걸까? 같은 패밀리라 방심하는 거라면, 스페이드는 미묘한 위치에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설마하니 G의 ‘주인님’ 발언에 그냥 믿게 된 건 아니겠지? 역시 G와는 친해질 수가 없군요. 무쿠로는 그런 생각이나 한 과거가 한심했다. 이건 모르는 척하자. 머리를 흔들어 그런 생각을 털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돌아가지.」
「그럼, 이들을 챙기십시오. 난 보스와 함께 돌아가겠습니다.」
일방적인 통보가 그답다. 지오토는 그런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엉망이 된 회식장을 벗어났다. 움직임과 동시에 조금씩 비틀리는 주위의 풍경에 무쿠로는 고개를 저었다. 멀쩡해 보이기만 하지, 역시 지오토는 있는 대로 취한 상태다. 스페이드도 그걸 알았기에 다른 호위를 물리고 단둘이서 본부로 향했었다.
지오토의 몸이 조금 비틀거리면, 스페이드가 슬쩍 붙잡아 준다. 호위를 위해 왼편 한걸음 뒤에 서서, 그렇게 지오토의 몸을 지탱했다. 지오토가 조금 웃는다.
무쿠로는 그런 둘을 외면하며 그 곁을 따라 걸었다.
「술도 못 마시면서 왜 그걸 마셨습니까?」
「그냥……. 어떻게……?」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게 어떻습니까, 보스? 그냥 이라기에는 여파가 큽니다만? 그리고 늘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 정도는 압니다.」
「내가… 부르면… 보지도 않으면서어…….」
「직진이 아닙니다. 오른쪽으로 가야 본부가 나옵니다.」
스페이드가 손을 뻗어 지오토가 가던 방향을 정정해준다. 울렁이는 속 때문에,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에 지오토가 인식하는 주위 풍경은 비틀렸다. 그럼에도, 어쩐지 스페이드의 모습은 정상이다. 과연 이건 좀 신기한 일이네요. 배경이 너무 엉망이어서 어지러워진 무쿠로가 지오토에게 집중하며 중얼거렸다. 그 와중에도 그는 반복해서 「그쪽이 아닙니다.」라며 지오토의 방향을 정정한다. 지오토는 비틀거리면서도 자신의 길을 관철했다.
스페이드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런 지오토의 옷자락을 잡고 끌었다.
「내가 개입니까? 심심하면 불러대는 데 볼 것 같습니까?」
지오토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손을 잡거나 하지 않은 점이 참 답죠? 무쿠로가 딴죽을 넣었다. [어쩐지 이상하게 친절하다.]라는 지오토의 생각에 동의했다. 이때 왜 갑자기 친절한 척 군걸까? 평소였다면 비틀거리든 말든, 같은 행동을 무수히 반복하더라도 결코 잡으려 하지 않았을 거다. 그냥 술에 취해서였을까? 무쿠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모르겠다.
지오토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조금 정신을 차린 탓인지 전보다 발음이 좋다.
「드디어 스피~를 애칭으로 받아들인 건가?」
「보스 한정이라고 해 두겠습니다.」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그가 대답했다. 그 체념 섞인 인정에 지오토는 웃었다. 이상하게 들뜬 지오토의 심정을 반영하듯, 주위의 풍경이 알록달록 변해간다. 무쿠로는 그 다채로운 색상에 어지러워져 눈을 감았다. 어째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 같다. 아니, 다르다. 보다 지오토의 내면으로 들어와 재생되고 있다. 이것도 술 때문인 걸까? 아니면…….
「스피~에게는 내가 특별한가?」
「어떤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어떤 면?」
「마피아답지 않게 상냥하다는 점?」
「뭐지, 그건?」
「그게 무엇이든 전부 포용한다는 점? 전부 끌어안고 웃을 수 있다는 점? 하늘을 닮았다는 점? 어떤 걸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줄줄 이어지는 그의 말에 지오토가 어이없다는 어투로 물었다. 사실 정작 줄줄 말하던 그도 당황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에게 지오토는 특별하다. 어떤 점이 특별하다고 꼽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라고 이때서야 깨달았죠. 무쿠로가 조용히 덧붙였다.
「글쎄요? 그보다 그쪽은 난간입니다. 떨어지면 여차하면 즉사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무리 옷을 잡고 있다고 해도 지탱되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약하지 않아.」
「아니, 만취 상태로 물에 빠지면 죽을 확률이 올라갑니다. 한 7, 80% 정도?」
「뭔가 구체적인 수치군.」
「종종 써먹은 방법이니까요.」
그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전부 진실. 맞아, 스피~는 위험한 존재지?]라는 지오토의 생각이 묘하게 울린다. 하지만, 그보다는 [웃네?]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의 웃음이 신기한 듯 지오토는 몇 번이고 [웃잖아?]라든가, [진짜 웃고 있어?]라는 등의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구상하면서 웃는 게 뭐가 그리 인상적인 겁니까? 무쿠로는 조용히 그렇게 속삭였다. 진짜 이러면 자기만 바보 같아지는 걸 알면서도 계속 이런 마음을 갖게 된다. 외면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갈수록 답답해져서 무쿠로는 결국 시선을 돌렸다.
「스피~가 친절하니 이상하군.」
「내일부터는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또 뭐……. 푸하하하하하!」
엉뚱하다면 엉뚱한 그의 대답에 지오토가 폭소를 터트렸다. 그 뜻밖의 환한 웃음에 그는 무심코 쥐고 있던 옷자락을 놓아버렸다. 왜 그 순간 다른 세계를 살아간다고 실감해버렸을까요? 무쿠로가 고개를 저었다. 닿을 수 없다, 라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고, 돌이킬 수 없다고 알아차린 순간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말하라면…….
“나는 지금도 너처럼 웃을 수 없어.”
그러니까 안 되는 겁니다. 무쿠로는 말없이 덧붙였다.
지오토가 웃다가 결국 난간 쪽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잠깐 사이에 그의 몸이 균형을 잃고 난간 밖으로 떨어진다. 현재는 10월, 수로에 빠졌다가는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스페이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서 그를 붙잡았다. 멀쩡한 상태였으면 그를 끌어올렸을 텐데, 스페이드도 만만치 않게 취한 상태다. 스페이드도 균형을 잃고 떨어졌다.
스페이드가 혀를 차며 어지러운 머릿속을 다스렸다. 그리고 지오토를 안은 상태 그대로, 물 위에 ‘착지’했다. 그 짧은 순간 환술을 걸었던 것이다. 그가 길게 심호흡하며 조심조심 물결을 밟고 수로 외각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속이 뒤집어 질 것 같았죠. 무쿠로가 물 위에 내려서며 중얼거렸다. 누가 조금만 자극하면 환각이 풀릴게 확실할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그때, 지오토가 재미있다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거, 굉장하군.」
「별거 아닙니다.」
「환각이라지만, 물 위를 걷는 건 신성의 영역이지 않나?」
“Accidenti!!!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스페이드는 슬쩍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지오토의 얼굴에 잠시 의문이 어린다. 아주 잠깐 물위에 서있었던 그들은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수로로 직행했다.
물에 빠진 감상을 말하자면, 참 차가웠다 정도 되겠네요. 물방울이 덧없이 흩어져 떨어진다. 손을 통과하는 물방울을 잡으며 무쿠로가 중얼거렸다.
10월의 수로는 확실히 추웠다.
Accidenti = 젠장
by 구글 번역기
강제로 술먹히고 10월의 물에 빠지는 수난사였습니다.
무쿠로가 츤츤거려서 스페이드에게 화풀이 하는 건 아닙니다.
지오토의 입장에서 본 추억이라 스페이드가 당하는 장면이 유난히 많은 겁니다.
만만찮은 성질머리의 소유자가 그냥 당하고만 있었겠어요?
그냥 나머지는 생략이죠!
…… 라고 변명을 주절주절 해봅니다.
쓸때는 그냥이었는데, 어째 보면 볼수록 화풀이 같아서 웃었습니다!
하지만 자기도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지오토만 챙겼을 스페이드를 생각하면 재미있어요.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데면데면거렸는지 참…….
애니 185화의 작화가 너무 예뻐서, 스페이드가 멋있어 보였습니다.
경이로운 퀄리티!
뜬금없는 내용이라 죄송스럽네요.
어익후.(…)
아, 양조절은 포기했습니다.
편수라도 맞추자는 심정으로 쓰고 있습니다.
포기하면 편해지네요.
연재 속도가 느려서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즐겁게 읽어주신다면 정말 기쁠거에요!
긴 잡담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은 조금 빠르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닷!
그리고 연재속도는 안드로메다로 넘어갔습니다.
그래도 완결은 냅니다.
이건 진짜에요.[…]
목표는 이렇게 길게가 아니었다고!!!
정말 이때가 최고였습니다.
양은 늘어나지, 편수도 못마추겠지… 답이 보이지 않아서 그냥 한편 늘렸더랬죠.
어쨌든 암담합니다.
앞날이 구만리에요.
무쿠로는 이제 눈앞에 지오토가 있어도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예고도 없이 시작되는 ‘기억의 재생’에 그와 얼굴이 부딪칠 듯하자 기겁하며 피한다. 어차피 그냥 통과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몸이 저절로 피했다. 이건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안 따르는 경우다. 무쿠로는 넘어질 뻔하고 나서야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저절로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진짜 이래서 싫단 말입니다! 속으로만 땅을 치고 고개를 돌아보니 지오토와 G가 홀을 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이건 무쿠로의 기억 속에 없는 일이다.
G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히죽 웃으며 지오토의 앞을 쌩하니 달려간다.
「여어, 스피~!」
착각할 수 없는 복장과 헤어스타일의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슬쩍 옆에서 따라오던 다른 패밀리와 자리를 바꿨다. 그리고 G는 망설이지 않고 다른 패밀리의 어깨에 손을 걸치고 「스피~, 오늘은 어째 얌전한걸?」등의 말을 던진다. 당황해서 자신을 붙들려는 패밀리를 제물로 던져주고 그는 아주 유유히 사라졌다. 그 짧은 순간에 G에게 환각을 걸고 몸을 뺀 거다. 그걸 보면서 무쿠로는 이랬던 일도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해버렸다. G가 괜히 시비를 걸고, 그가 환각을 걸고 피하는 건 이때 이미 일상이었다.
그러나 지오토에게는 아니었나 보다. 그는 그런 스페이드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무리 듣기 싫어도 그렇지, 어떻게 같은 패밀리에게 환각을 거는 거야!?]라는 마음속의 외침이 무쿠로를 조금 아프게 만들었다. 지오토가 얼마나 패밀리를 아끼는 지, 이때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저 정도 환각을 걸었다고 죽거나 하진 않습니다. 마음으로만 토를 단다.
[반응이 익숙해. 제물로 던져졌다고 해도 저런 상황이면 당황하기 마련인데……. 역시 스피~가 이러는 건 처음이 아니라는 거로군.]
“그야 그렇게 듣기 싫어하던 애칭이니까요. 그냥 환각만 걸고 떠나는 것도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저 성질에.”
스스로 생각해봐도 단순히 성격이라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그래서 무쿠로는 자연스레 성질이라고 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전적을 보자면, 진짜 그냥 환각만 걸고 끝냈다는 것이 안 믿긴다. 도시 전설에 가깝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정말 굉장한 일이다. 이건 오로지 지오토가 아낀다는 걸 아니까 봐주는 거다. 아니면 그 성질에 진짜 살인은 물론이고, 최소가 미치는 수준의 아수라장이 만들어졌을 거다. 이때 참 잘도 그냥 넘겼군요. 지금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쓸었을 겁니다. 무쿠로가 참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내용물이 같은 만큼, 그 성질머리는 여전하다.
“그건 그렇고, 생각에서조차도 ‘스피~’였습니까?”
이젠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이 더 짜증이다. 무쿠로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 사이 지오토가 아직도 환각에 빠져 있던 G를 끌어당겼다. 어리둥절해하는 G를 무시하고, 어색하게 웃는 패밀리에게 가보라는 손짓을 한다. 그 패밀리는 깊이 안도하면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서둘러 사라졌다. 그 모습에 G는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잘 굴리지는 않지만, 영민한 머리를 굴려서 금방 정답을 돌출한 그는 분노에 타올랐다.
설마하니 그냥 넘어가리라 생각했던 겁니까? 이건 그쪽의 잘못인 것 같습니다만? 무쿠로는 그 분노에도 토를 달았다.
「그 자식이!?」
「그만둬, G. 괜히 자극하지 마.」
「하지만…….」
「그가 위험하다는 건, 너도 알잖아.」
「그건 너도 위험하다는 거다. 요즘 너무 엮이고 있다는 거 알고 있지?」
「…… 어.」
지오토는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스페이드가 위험하다는 건 확실한 일이었다. [그래도…….]라는 지오토의 생각에 그는 아릿해졌다. 자신이 그에게 약했던 만큼, 그도 자신을 놓은 적 없다. 나는 그걸 압니다. 무쿠로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이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상념 하나하나에 감정의 동요가 심해지고 있다. 이것도 단순히 깊이 동화해서일까? 아니면, 그도 츠나와 비슷한 상태가 되어가는 걸까?
무쿠로가 잠시 그런 생각에 잠긴 사이, 지오토가 G를 보내고 근처 의자에 여유롭게 앉아있던 스페이드에게 다가갔다.
「무슨 짓이지, 스피~?」
지오토는 그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걸 확인한 지오토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뭔가 거슬리는 게 있는지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질문도 딱히 대답을 듣기 위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웃는 얼굴을 보지 못한 게 얼마나 된 거지? 진심으로 웃는 건 어차피 본 적 없으니 차치하더라도, 가식으로 웃는 것도 못 본 지 오래인가. 왜 그런 게 신경 쓰이는지 모르겠군.]
“나도 빤히 바라만 보고 있어서 신경 쓰였습니다. 그놈의 호칭 때문에 무시했습니다만.”
‘스피~’는 진짜 애증의 호칭이다. 그는 그걸 끝까지 싫어했었지만, 버릴 수 없었다. 무쿠로의 표정이 한층 구겨진다.
세상에 유아독존으로 살아가던 존재가 다른 이에게 관심을 보내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그는 그래서 어쩐지 울적해 보이는 지오토의 표정에 이유를 찾느라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그냥 무시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무엇 때문에 지오토가 저러고 있는가를 고민했다. 그냥 물어보는 게 빠르다는 걸 알지만, 막상 먼저 말을 걸려 하니 자존심이 말문을 막았었다. 정말 골치 아픈 상황이었죠. 무쿠로는 그렇게 회상했다.
그러다 이상하게 이어지는 침묵을 버티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연 건 스페이드였다.
「무엇을 말입니까, 보스?」
「G를 놀리는 거. …… 그쯤 해둬, 스페이드.」
지오토는 느릿하게 말하며 그의 곁에 앉았다. 조금 피곤한 듯, 노곤히 몸을 늘어뜨린다. 그는 오래간만에 듣는 정상적인 호칭이라 묘한 감흥에 빠졌다. 그놈의 ‘스피~’가 아니니 기쁘리라 생각했는데, 딱히 그렇지 않았다. 아쉬운 건 아니지만, 조금 허전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자신이 용납되지 않아서 인상을 썼었죠. 무쿠로는 묘하게 일그러진 그의 표정을 보며 그렇게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따라온 건 당연히 자존심 하나로 남아있는 오기다.
「어쩐 일로 개심했습니까, 보스? 오래간만에 정상적으로 불리니 묘하군요.」
「스피~.」
「왜 바로 돌아갑니까?」
「너야말로 묘해.」
지오토가 느릿하게 그를 돌아본다. 그도 나긋하게 마주 봤다. 구겼던 인상을 조금 펴고 애매한 표정으로 웃는다. 그는 이때, 저 투명한 금빛 눈동자에 전부 읽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모두 꿰뚫어보는 눈동자. 그를 감싸고 있던 안개를 몰아내고 진실을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보는 것 같아서 마주하기 싫지만, 외면하기는 더 싫었다. 그런 겁니다, 지오토. 무쿠로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가 조곤조곤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의미입니까, 보스?」
「넌 어느 쪽이지? 왜 언제나 경계에 있는 거지?」
변하지 않는 금빛 마음속 깊이 들어선다. 그게 거북하면서도 재미있어졌다. 내 안에 숨겨진 진실을 넌 찾을 수 있습니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웃었었다. 더 솔직한 속내는 곤란하다는 거였다. 지오토는 언제나 그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했다. 그는 그때마다 모르는 척, 혹은 대답할 생각이 없다는 티를 내며 넘겼었다.
“사실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무쿠로는 오래 묵은 진실을 꺼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그는 패밀리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확실한 아군이었다. 곁에 있어도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건 여전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조차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언제나 이도 저도 아닌, 그런 상태로 있었다. 왜 그렇게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도 몰랐었으니까. 지오토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진짜 망령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르는 척 반문했다.
「무슨 말인지……?」
그런 그를 보며 지오토는 살짝 인상을 썼다.
[마음에 들지 않아. 과연 그때도 이런 식이었군. 거짓말은 아니지만, 진실도 아니다. 안개처럼, 신기루처럼. 넌 그렇게 살아온 건가?]
“정답. 생각보다 늦게 알아차렸군요.”
그런 초직감이라면 일찍 알았으리라 여겼는데 말이지요. 무쿠로는 그렇게 덧붙였다. 지금까지 그의 말은 전부 다 교묘하게 비켜갔을 뿐, 모두 진실이었다. 하지만, 고의적인 오답이었기에 거짓이었다.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는 거짓말쟁이, 그렇기에 그는 데몬(Demon)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호하고 흐릿하다. 거짓과 진실이 섞여서 그는 자신을 지웠었다. 인상 깊은 얼굴과 복장도 그 애매하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리는 거다. 그래서 그는 도시 전설처럼 인식되었었고,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았었다.
지오토는 혀를 차더니 공격적인 어조로 ‘명령’했다.
「오늘, 회식에 반드시 올 것.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귀찮습니다만?」
「이럴 때만 진심인가, 스피~? 하지만, 그때의 도박 잊은 건 아니겠지?」
무감각하던 얼굴에 서늘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그는 이런 지오토를 거부할 수 없다. 거기다 그때의 도박, 서로 신변을 걸고 했던 도박에서 결과적으로 졌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오토는 그의 <주인님>이시다. 그는 쓸데없이 드높은 자존심 때문에 단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 없지만, 그 사실이 변한적 없다. 그도 자신의 입으로 부정한 적은 없었다.
무쿠로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리를 중얼거렸다.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입니다. 네, 정말로요.”
「명령이시라면, 기꺼이…… 보스.」
그도 마주 웃으며, 이를 조금씩 갈아주면서 대답했다. 지오토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퍽 온화한 풍경이다. 하긴, 언제나 둘은 이런 분위기였다. 타인이 볼 때는 사이가 굉장히 좋아 보이지만, 실체는…… 무쿠로는 그냥 한숨을 쉬며 외면했다.
순간 무쿠로의 시야가 새까맣게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의 앞으로 지오토가 G를 이끌고 걸어갔다. 멈추지 않고, 기억이 재생된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무쿠로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이건 단순히 동화되어서가 아니다. 곤란한 상황이다, 어쩌면 좋을까요? 무쿠로는 상석에 자리한 지오토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물었다. 다시 망설임이 찾아왔다. 조금만,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이대로 있을까요? 무쿠로의 입가가 자조로 비틀린다.
이날은 그의 기억에도 확실히 남아있다. 그가 처음으로 참여한 패밀리의 회식이었고, 지오토가 취하지도 않았으면서 주사를 부린 날이다.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잔뜩 남았다. 그렇게 화난 지오토는 G도 처음 본다고 했었던가? 그래도 시작은 꽤 온화하게 흘렀었다. 그가 참여했다는 사실이 조금 논란이 되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유쾌하게 흘러갔었다.
나치고는 열심히 어울렸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이대로, 조금 더 있기로 한 무쿠로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오토의 옆자리에 앉았다. 자리의 주인인 G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느라 뜬지 오래다.
[스피~는 역시 어울리지 않는군.]
“난 술만 거부했습니다만?”
마침 그가 G에게서 술을 받고는 슬그머니 환각으로 옆자리에 비어져 있던 술잔과 바꾼다. 그건 그냥 그걸 마시기 싫었기 때문에 한 행동이었다. 도수가 높은 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온통 증류주 밖에 없어서 곤란했었다. 사실 알코올 맛이 대부분인 증류주를, 그것도 희석시키지도 않고 마시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는 이때도 달콤한 것을 좋아해서 달콤한 과일주를 즐겨 마셨었다.
그는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마실 정도로 궁한 적이 없다. 그래도 거절하면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서 환각으로 때웠던 것이다. 설마하니 저게 거슬렸던 겁니까? 아니, 술을 마시지 않은 것과 환각을 건 것 중 어느 쪽이 문제였던 겁니까!? 무쿠로가 암담한 기분을 절감하며 지오토를 돌아봤다. 지오토는 그야말로 화났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으리만치 서늘한 눈을 하고 있었다. 평소와 비슷한 무표정이었건만, 한기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아니, 그냥 화난 거 같습니다. 저게 그렇게 화낼 일이었습니까?! 무쿠로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외쳐도 의미가 없다. 그래서 보다 건설적으로 과거의 자신에게 애도를 보냈다.
지오토가 성큼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보기 드물게 확실하게 웃는 얼굴이라 묘하게 주위의 시선이 집중된 상태였다. 하지만, 정작 그 미소를 정면에서 받은 그는 위험하다고 직감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살벌할 정도로 화난 상태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분노의 대상이 자기인 것 같아 영 불안했다. 그래서 그는 마주 생긋이 웃는 얼굴로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도망가는 건 성격에 안 맞지만, 상대가 반항하기 어려운 존재라면 기꺼이 몸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생각은 짧고 행동은 빠르게, 그는 그 철칙에 따라 바로 몸을 돌렸다.
그런 그를 지오토가 간단히 붙들었다. 그는 팔을 빼내려고 해봤지만, 역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보스?」
그는 일단 웃는 얼굴로 지오토를 불렀다. 왜 이러는 거냐는 순수한 의문을 품고 바라본다. 지오토는 그런 그에게 오싹한, 기이한 결의가 느껴지는 얼굴로 웃으며 옆에 있던 병을 잡았다. 조금 전에 G가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따르던 바카디 151(Bacardi 151)이었다. 이제는 물컵으로 한잔 분량만이 남아있었다. 문제는 이게 증류주고 그 중에서도 상당히 도수가 높은 75.5도라는 거다. 그는 불안하게 그걸 바라봤다. 이때, 그냥 도망갈 껄 그랬죠. 무쿠로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외면했다.
「그건 왜 쥐었……!?」
습니까, 라는 질문을 그는 완성할 수 없었다. 지오토가 그의 입에 바카디 151을 병째 꽂은 탓이다. 갑자기 이만한 도수의 술을 이렇게 마실 경우, 술에 약한 사람이라면 바로 쓰러질 양이었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그걸 뱉지도 못하고 간신히 다 마셨다. 사실, 대비도 못 했던지라 술이 기도로 넘어갈 뻔했기에 무조건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무쿠로는 보지 않아도 안다는 어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안색이 허옇게 질린다.
멀리서 그걸 보던 G가 황급히 다가와 지오토를 말린다.
「지오토!? 그건 맥주도 물도 아니다! 잘못하면 죽어! 어이, 괜찮냐?」
「예…….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만, 이게 무슨 짓입니까?」
지오토가 든 병은 어딜 봐도 바카디 151이건만, 어떻게 맥주나 물로 알았던 겁니까? 네가 들고 다니던 것이었습니다! 라고 그는 이때 G에게 따지고 싶었다. G보다 지오토가 먼저였기에 일단 넘겼다. 그로서 이건 마른하늘의 날벼락 수준을 넘어선 참사였다. 거기다 오늘은 얌전하게 성질을 죽이고, 나름대로 패밀리에 어울리려 노력했기에 더 그랬다. 그가 아무리 지오토에게 약하다고 해도, 이건 도를 넘어섰다.
그는 웃는 얼굴을 지우고 차갑게 지오토를 노려봤다.
[그래, 그게 진짜 얼굴이지. 가짜 모습만 보이는 게 무슨 가족이야? 그렇게 벽을 만들어서는 끝까지 진짜 가족이 될 수 없어. 난 모두와 친하게 지내는 널 보고 싶단 말이다!]
지오토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는 그 너머에 있는 아픔을 읽었다. 이때, 그는 그런 지오토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뜬금없이 뒤통수 맞은 건 나인데, 왜 네가 괴로워하는 겁니까?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아니, 지오토의 진심을 듣기 전까지 그는, 무쿠로는 몰랐었다.
“그런……, 거였습니까? 그런 건 차라리 말로 할 것이지……! 그런 쪽으로는 바보라서 똑바로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단 말입니다!!”
우울하게 당하는 자기의 모습을 보기 싫어서, 계속 외면하고 있던 무쿠로는 그렇게 외쳐버렸다. 닿지 않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해야만 했다. 이건 기억이다. 바꿀 수 없는 과거다. 알아, 알고 있어. 지금 바꾸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인 걸 알아. 알지만……! 무쿠로는 황급히 생각을 멈췄다. 이 이상은 위험하다. 그래도 멈추고 싶지 않다, 멈출 수 없다. ‘그때’의 기억까지 가야만 한다. 무쿠로는 길게 심호흡했다.
무쿠로는 지오토의 앞에서 살짝 비켜섰다. 분명히 꽤 멀리 떨어져 있었건만, 감정에 휘말린 사이 지오토의 앞까지 달려온 거다. 그는 그런 자신이 못마땅해서 혀를 차며 감정을 억눌렀다.
「술, 잘 마시는군.」
「약하진 않습니다. 그보다 무엇 때문에 그런 겁니까?」
지오토는 그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옆에 있던 술병을 들었다. 그 술이 무엇인지 확인한 G가 기겁해서 지오토를 말렸다. 내용을 보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이런 식으로 암살하면 보스로서의 위엄이 서지 않는다는 식이다. 그도 술병을 보고 조금 긴장했을 정도다. 그건 현재에는 생산이 중지된 전설의 술, 98도라는 무시무시한 도수에 빛나는 에스토니안 리쿼 모노폴리(Estonian Liquor Monopoly)였다. 순수 알코올에 근접한 술이 바로 이거였다. 거기다 이건 따지도 않은 상태다. 이걸 병째 마시게 되면 농담이 아니라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죽는다!
지오토가 그걸 따서는 500㏄ 정도 되는 잔에 따른다. 그것도 1/3 나 되었다. 그다음에 그가 든 술병은 스피리터스(Spiritus)라는 96도짜리 술이었다. 그걸 같은 잔에 1/3가랑 따른다. 거기에다가 G가 마시고 죽어라! 라는 심정으로 만들었다고 떠들었던, 에버클리어(Everclear, 95도)와 발칸 176(Balkan 176, 88도)을 1:1로 섞어놓은 것을 부었다. 그걸 조심조심 잘 저으니, 마시는 순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칵테일이 탄생했다. 그걸 지켜본 이들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지오토의 곁에서 조금씩 물러섰다.
이미 한번 당했기에, 직접적인 생명의 위기를 느낀 스페이드도 멀찍이 물러나려 했다.
「스피~.」
지오토가 그를 붙잡고 다정하게 부른다. 자상한 얼굴로 웃고 있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싸늘하다. 그는 버릇처럼 마주 웃어주며 은근슬쩍 손을 뿌리친다.
「보스, 왜 그러십니까?」
지오토는 한걸음 물러서려는 그를 다시 잡고 끌어당기며, 죽음의 잔을 내밀었다. 주위에서 「헉!」하고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걸 보며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특별히 만든 거다. 마셔.」
「지오토, 그건 좀…….」
「G, 네가 마시라는 게 아니다. 스피라면 마실 수 있을 거다. 그렇지?」
「아니, 그건…….」
지오토가 그렇게 말하자, 그의 이맛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의 자존심을 자극해서 그걸 먹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게 느껴진다. 뻔히 보이는 함정이다. 그렇기에 낚일게 확실한 덫이었다. 그는 표정이 사라지며, 잠시 고뇌가 내려앉았다. 그건 정말 찰나로 그는 ‘자존심’과 ‘생존’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선택한 이상, 그가 할 말도 정해진다.
그는 우아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쳤습니까, 그런 걸 마시게?」
그의 선택은 ‘생존’이었다. 지오토는 그의 선택이 뜻밖이었는지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곧 대수롭지 않다는 어투로 확고하게 말했다.
「명령이다, 스피.」
「보스네 스피에게 먹이십시오. 난 싫습니다.」
「나에게 스피는 너밖에 없어.」
「난 그딴 이름이 아닙니다만?」
「보스가 친히 지어준 애칭인데 거부하겠다는 건가?」
「그럼 정상적인 걸로 지어주시지요.」
「스피, 항명은 인정하지 않겠다. 마셔.」
「싫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이때의 그는 ‘자존심’밖에 없었다. 삶도 죽음도 그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부유했고, 그대로 안주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왜 뜬금없이 ‘생존’을 선택했을까? 왜 갑자기 살아가고자 했을까? 당시에는 그저 변덕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단순한 변덕…… 아니, 술 마시고 죽는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피하고 싶다, 라고 자신을 납득시켰다. 어리석게도 말입니다. 무쿠로는 숨죽여 웃었다.
「내기를 잊은 건가?」
「…… 그걸 들고 나오십니까? 네, 좋습니다.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어이, 진짜냐?」
그놈의 도박이라며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 모른다. 그가 잔을 받아들자 웅성거림이 커졌다. G도 기겁해서 그를 말린다. 「그럼 진짜지 거짓말이겠습니까?」 그는 날카롭게 대답했다. 괜한 곳에 화풀이, 무쿠로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그가 막 마시려고 잔을 입가에 잔을 가져가는 데, 지오토가 웃으며 확인 사살을 한다.
「한 번에 다 마시기다.」
다시 비명인지 경악인지 알길 없는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냥 마시고 죽으라는 거군요. 네, 알았습니다. 그도 마주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진짜 죽을 각오로 마셔야 한다. G가 그에게 미치지 않았다면 잔을 버리라고 속삭인다. 지오토가 신경 쓰이면 다들 나눠 먹든지 하자는 식으로, 어떻게든 그를 살리겠다는 의미의 제안을 해왔다. 당사자였던 무쿠로의 눈에도 자살행위로 보이는데, 당시 주위에서는 어떻게 보였겠는가? 그냥 죽기 위해 발악하는 걸로 보였으리라.
그는 그런 제안을 무시하고, 진짜 그 잔을 한 번에 비웠다.
「진짜 마시는 거야?!」
「미쳤어…….」
「헉, 거의 다 마셨어!」
「의사 불러, 의사!!」
주위의 소란이 커졌다. 지오토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무쿠로는 그가 곤란해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생각이 울린다.
[…… 진짜 다 비우는 건가? 곤란하게 만들면 다른 패밀리와 나눠 마시리라 생각했는데…….]
“네가 시켰잖습니까, 네가. 저 성질에 오기로라도 혼자 마시지, 같이 마셨겠습니까? 한 번에 바라는 게 너무 큽니다.”
무쿠로가 한숨처럼 토를 달았다. 스페이드는 이때, 진짜 잠시지만 의식을 잃었었다. 멀쩡히 서 있는 건, 그냥 몸이 굳어서 그런 거다. 그만큼 충격적이고도 경이로운 맛이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기암시를 걸었었다. 결과로 따지자면 살아남았다지만, 그 과정이 좀 처절하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네, 이렇게 병신처럼 자살하는 줄 알았답니다. 무쿠로는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이건 진짜 그의 기억에 길이 남는 흑역사다.
「다 마셨습니다, 보스.」
「굉장하잖아, 스피!!」
G가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외친다. 다른 간부도 거의 영웅을 보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를 고문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감탄하지 마십시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속이 울렁거려 말을 할 수 없었다. 정말 괴로웠습니다. 무쿠로는 다시 외면했다. 새삼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술에는 굉장히 강해졌지만, 절대 두 번 할 짓이 아니다.
그가 그렇게 괴로워하는지도 모르고, G가 계속 등을 두드리며 감탄한다.
「진짜 굉장해! 스피, 널 다시 봤다.」
「너, 또 그렇게 부르면 똑같은 걸 만들어 먹여버립니다?」
「스피, 진심으로 그런 협박하지 마.」
지오토가 슬며시 말린다. 정작 G는 호기롭게 「그럼 마시면 그렇게 불러도 된다는 거군! 줘 봐!」라고 외친다. 덩달아 많은 간부도 도전해보겠다고 난리다. 그걸 보는 그와 지오토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고문이나 다름없는데, 당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서 놀랐었죠. 무쿠로가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이상하게라도, 조금은 친해진 건가?]
지오토의 생각이 떨떠름한 기색으로 울린다.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고, 무쿠로는 조심스레 토를 달았다.
그는 어이없다는 심정을 숨기지 않고, 지오토가 만들었던 지옥의 칵테일을 만들었다. 어차피 자기가 다시 당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만들었다. 당연히 말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500㏄ 가득 만들고 나니, G가 길게 심호흡한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잔을 빼앗아 들려고 손을 뻗었다. 그는 그걸 자연스레 피하고는 작은 양주잔에 조금 부어줬다.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이성이 마비되지 않는 한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니까 어째 살아남았지, 다른 사람이라면 죽었다. 그걸 아는 주제에 미친 짓을 했었지요. 무쿠로는 다시 생각해도 잠시 미쳤던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호의가 G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는지, 살벌하게 으르렁거린다.
「날 무시하는 거냐?」
「이걸 마시고 멀쩡하면 인정하겠습니다.」
「이 자식! 좋다, 그럼 넌 지오토에게 주인님이라고 하도록 해!」
「흐음? 좋습니다.」
그의 무시에 G가 화를 내며 그 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G의 몸이 서서히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쓰러져 일어나지 않는다. 눈이 조금 돌아간 것 같다. 지오토의 표정이 살짝 굳었을 때, 의사로 보이는 이가 패밀리의 손에 끌려 들어왔다. 스페이드가 지옥의 칵테일을 마실 때 부른 바로 그 의사다. 의사는 쓰러진 G의 상태를 살피더니 살짝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냥 기절했군요.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방으로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순간 기묘한 침묵이 패밀리 사이에 내려앉았다. 그는 역시 이럴 줄 알았다 듯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고, 지오토의 미간이 구겨졌다. [고작 그거 마셨다고?!]라는 지오토의 생각이 쩌렁쩌렁 울린다. 그가 그렇게 놀란 것도 이해가 가지만, G가 마신 건 도수가 무식하게 높은 술인데다 칵테일이었기에 알코올의 흡수가 빨라진다.
“그러니까,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죽지 않은 게 신기한 겁니다.”
무쿠로는 아주 정중히 그 생각에 토를 달았다. 환술사인 그와 비교해서 일반인이라고 할 수 있는 G가 쓰러지는 건 굉장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G의 음주량을 잘 아는 패밀리의 간부는 믿기 어려운 눈으로 G와 그를 번갈아 봤다. 그는 웃는 얼굴로 잔을 들어 보이며 그들에게 물었다.
「마실 분, 계십니까?」
「한잔 줘.」
기다렸다는 듯이 지오토가 손을 내민다. 그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이때, 그는 분명히 G가 지오토의 주량이 형편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이걸 마시겠다고? 솔직히 죽으려고 작정했나 싶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네가 쓰러지면 도전할 사람이 사라질 테니, 그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무쿠로는 아주 솔직히 당시에 느꼈던 감상을 주절거렸다.
그러면서 지오토에게 준 잔은 G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양은 조금 적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군요. 네, 그랬습니다. 전혀 몰랐었다는 점에서 정말 충격적이군요. 무쿠로는 그렇게 토를 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즉, 스페이드는 이 시점에서 이미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약해진 상태였던 것이다.
「천천히 마시는 게 좋습…….」
스페이드가 경고했지만, 지오토는 망설이지 않고 단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암전.
무쿠로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더럽게 말을 안 듣는군요. 그래도 멀쩡하게 서 있어서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잠시지만 선 채 기절했던 겁니까? 그렇게 토를 달려 입을 벌렸지만, 어째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과연, ‘기억의 재생’이기에 이런 경우도 그냥 지켜봐야만 하는 거군요. 그는 가볍게 혀를 찼다.
이후는 스페이드의 기억에 남아있다. 저 지옥의 칵테일 500㏄가 다 비워질 때까지, 패밀리의 간부라는 것들이 죄다 한 잔씩 마시고 뻗었다. 지오토가 멀쩡해 보이니, 자기들도 멀쩡하리라 생각한 거다. 마피아 간부라는 사람이 이렇게 단순해서 괜찮은 겁니까? 그는 그 꼴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주위가 다시 밝아진다. 지오토의 기억이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주위의 상황은 정말 가관이었다. 의사와 스페이드는 나란히 어이없는 눈길로 주위를 보고 있었고, 말단으로 보이는 이들이 황급히 쓰러진 간부를 옮기고 있었다. 그걸 천천히 훑어보더니 지오토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군.]
“단순하니까요.”
무쿠로가 진실에 가까운 말을 던졌다.
거듭하는 말이지만, 정말 마피아라는 사람이 이렇게 단순해도 되는 걸까? 같은 패밀리라 방심하는 거라면, 스페이드는 미묘한 위치에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설마하니 G의 ‘주인님’ 발언에 그냥 믿게 된 건 아니겠지? 역시 G와는 친해질 수가 없군요. 무쿠로는 그런 생각이나 한 과거가 한심했다. 이건 모르는 척하자. 머리를 흔들어 그런 생각을 털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돌아가지.」
「그럼, 이들을 챙기십시오. 난 보스와 함께 돌아가겠습니다.」
일방적인 통보가 그답다. 지오토는 그런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엉망이 된 회식장을 벗어났다. 움직임과 동시에 조금씩 비틀리는 주위의 풍경에 무쿠로는 고개를 저었다. 멀쩡해 보이기만 하지, 역시 지오토는 있는 대로 취한 상태다. 스페이드도 그걸 알았기에 다른 호위를 물리고 단둘이서 본부로 향했었다.
지오토의 몸이 조금 비틀거리면, 스페이드가 슬쩍 붙잡아 준다. 호위를 위해 왼편 한걸음 뒤에 서서, 그렇게 지오토의 몸을 지탱했다. 지오토가 조금 웃는다.
무쿠로는 그런 둘을 외면하며 그 곁을 따라 걸었다.
「술도 못 마시면서 왜 그걸 마셨습니까?」
「그냥……. 어떻게……?」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게 어떻습니까, 보스? 그냥 이라기에는 여파가 큽니다만? 그리고 늘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 정도는 압니다.」
「내가… 부르면… 보지도 않으면서어…….」
「직진이 아닙니다. 오른쪽으로 가야 본부가 나옵니다.」
스페이드가 손을 뻗어 지오토가 가던 방향을 정정해준다. 울렁이는 속 때문에,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에 지오토가 인식하는 주위 풍경은 비틀렸다. 그럼에도, 어쩐지 스페이드의 모습은 정상이다. 과연 이건 좀 신기한 일이네요. 배경이 너무 엉망이어서 어지러워진 무쿠로가 지오토에게 집중하며 중얼거렸다. 그 와중에도 그는 반복해서 「그쪽이 아닙니다.」라며 지오토의 방향을 정정한다. 지오토는 비틀거리면서도 자신의 길을 관철했다.
스페이드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런 지오토의 옷자락을 잡고 끌었다.
「내가 개입니까? 심심하면 불러대는 데 볼 것 같습니까?」
지오토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손을 잡거나 하지 않은 점이 참 답죠? 무쿠로가 딴죽을 넣었다. [어쩐지 이상하게 친절하다.]라는 지오토의 생각에 동의했다. 이때 왜 갑자기 친절한 척 군걸까? 평소였다면 비틀거리든 말든, 같은 행동을 무수히 반복하더라도 결코 잡으려 하지 않았을 거다. 그냥 술에 취해서였을까? 무쿠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모르겠다.
지오토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조금 정신을 차린 탓인지 전보다 발음이 좋다.
「드디어 스피~를 애칭으로 받아들인 건가?」
「보스 한정이라고 해 두겠습니다.」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그가 대답했다. 그 체념 섞인 인정에 지오토는 웃었다. 이상하게 들뜬 지오토의 심정을 반영하듯, 주위의 풍경이 알록달록 변해간다. 무쿠로는 그 다채로운 색상에 어지러워져 눈을 감았다. 어째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 같다. 아니, 다르다. 보다 지오토의 내면으로 들어와 재생되고 있다. 이것도 술 때문인 걸까? 아니면…….
「스피~에게는 내가 특별한가?」
「어떤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어떤 면?」
「마피아답지 않게 상냥하다는 점?」
「뭐지, 그건?」
「그게 무엇이든 전부 포용한다는 점? 전부 끌어안고 웃을 수 있다는 점? 하늘을 닮았다는 점? 어떤 걸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줄줄 이어지는 그의 말에 지오토가 어이없다는 어투로 물었다. 사실 정작 줄줄 말하던 그도 당황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에게 지오토는 특별하다. 어떤 점이 특별하다고 꼽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라고 이때서야 깨달았죠. 무쿠로가 조용히 덧붙였다.
「글쎄요? 그보다 그쪽은 난간입니다. 떨어지면 여차하면 즉사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무리 옷을 잡고 있다고 해도 지탱되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약하지 않아.」
「아니, 만취 상태로 물에 빠지면 죽을 확률이 올라갑니다. 한 7, 80% 정도?」
「뭔가 구체적인 수치군.」
「종종 써먹은 방법이니까요.」
그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전부 진실. 맞아, 스피~는 위험한 존재지?]라는 지오토의 생각이 묘하게 울린다. 하지만, 그보다는 [웃네?]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의 웃음이 신기한 듯 지오토는 몇 번이고 [웃잖아?]라든가, [진짜 웃고 있어?]라는 등의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구상하면서 웃는 게 뭐가 그리 인상적인 겁니까? 무쿠로는 조용히 그렇게 속삭였다. 진짜 이러면 자기만 바보 같아지는 걸 알면서도 계속 이런 마음을 갖게 된다. 외면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갈수록 답답해져서 무쿠로는 결국 시선을 돌렸다.
「스피~가 친절하니 이상하군.」
「내일부터는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또 뭐……. 푸하하하하하!」
엉뚱하다면 엉뚱한 그의 대답에 지오토가 폭소를 터트렸다. 그 뜻밖의 환한 웃음에 그는 무심코 쥐고 있던 옷자락을 놓아버렸다. 왜 그 순간 다른 세계를 살아간다고 실감해버렸을까요? 무쿠로가 고개를 저었다. 닿을 수 없다, 라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고, 돌이킬 수 없다고 알아차린 순간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말하라면…….
“나는 지금도 너처럼 웃을 수 없어.”
그러니까 안 되는 겁니다. 무쿠로는 말없이 덧붙였다.
지오토가 웃다가 결국 난간 쪽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잠깐 사이에 그의 몸이 균형을 잃고 난간 밖으로 떨어진다. 현재는 10월, 수로에 빠졌다가는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스페이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서 그를 붙잡았다. 멀쩡한 상태였으면 그를 끌어올렸을 텐데, 스페이드도 만만치 않게 취한 상태다. 스페이드도 균형을 잃고 떨어졌다.
스페이드가 혀를 차며 어지러운 머릿속을 다스렸다. 그리고 지오토를 안은 상태 그대로, 물 위에 ‘착지’했다. 그 짧은 순간 환술을 걸었던 것이다. 그가 길게 심호흡하며 조심조심 물결을 밟고 수로 외각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속이 뒤집어 질 것 같았죠. 무쿠로가 물 위에 내려서며 중얼거렸다. 누가 조금만 자극하면 환각이 풀릴게 확실할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그때, 지오토가 재미있다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거, 굉장하군.」
「별거 아닙니다.」
「환각이라지만, 물 위를 걷는 건 신성의 영역이지 않나?」
“Accidenti!!!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스페이드는 슬쩍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지오토의 얼굴에 잠시 의문이 어린다. 아주 잠깐 물위에 서있었던 그들은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수로로 직행했다.
물에 빠진 감상을 말하자면, 참 차가웠다 정도 되겠네요. 물방울이 덧없이 흩어져 떨어진다. 손을 통과하는 물방울을 잡으며 무쿠로가 중얼거렸다.
10월의 수로는 확실히 추웠다.
by 구글 번역기
강제로 술먹히고 10월의 물에 빠지는 수난사였습니다.
무쿠로가 츤츤거려서 스페이드에게 화풀이 하는 건 아닙니다.
지오토의 입장에서 본 추억이라 스페이드가 당하는 장면이 유난히 많은 겁니다.
만만찮은 성질머리의 소유자가 그냥 당하고만 있었겠어요?
그냥 나머지는 생략이죠!
…… 라고 변명을 주절주절 해봅니다.
쓸때는 그냥이었는데, 어째 보면 볼수록 화풀이 같아서 웃었습니다!
하지만 자기도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지오토만 챙겼을 스페이드를 생각하면 재미있어요.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데면데면거렸는지 참…….
애니 185화의 작화가 너무 예뻐서, 스페이드가 멋있어 보였습니다.
경이로운 퀄리티!
뜬금없는 내용이라 죄송스럽네요.
어익후.(…)
아, 양조절은 포기했습니다.
편수라도 맞추자는 심정으로 쓰고 있습니다.
포기하면 편해지네요.
연재 속도가 느려서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즐겁게 읽어주신다면 정말 기쁠거에요!
긴 잡담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은 조금 빠르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닷!
그리고 연재속도는 안드로메다로 넘어갔습니다.
그래도 완결은 냅니다.
이건 진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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