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닥투닥거리는 걸 쓰고 싶었습니다.[…]
그냥 티격태격, 알고보면 사랑싸움이라든가… 뭐, 그런거 말이죠.
그런걸 좀 많이 사랑합니다.
서로 좋아하는게 티나면서 티격거리는 걸 참 좋아해서 말이죠.
참고로, 이번편의 테마는 [반한게 죄]입니다.
감각이 재구성된다. 재생되는 기억이 변할 때마다 이런 걸까? 무쿠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떴다. 어째 굉장히 낯익은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햇살처럼 눈 부신 금발과 선연한 금안, 지오토다. 그는 그걸 깨닫는 순간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려고 고개를 젖힌 순간 책상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딱히 아프진 않았지만, 자신이 누워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당황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게 만들었다. 아, 이래서 네가 싫단 말입니다! 황망함에 속으로만 그리 외쳐본다.
그는 책상에서 조심조심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주위를 돌아볼 필요도 없이, 지오토의 뒤쪽에 펼쳐진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그의 집무실이라는 걸 알았다. 어딘가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동요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전에 들은 적 있다. 위에는 무지개, 그 아래에는 바다의 물결이 표시되고 그 심해에 조개가 있는 상당히 독특한 형태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여기일까? D. 스페이드라는 이름이 익숙해지기 전부터, ‘그’는 이곳을 싫어했다. 오는 것도 싫어했으니 이렇다 할 추억도 없다. 적어도 무쿠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엘, 앉아!」
갑자기 들려온 지오토의 목소리에 무쿠로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없이 머리를 짚었다. 아, 맞아요. 그 녀석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러라고 구해 온 녀석이 아니었습니다만? 언제 개명을 시켰나 했더니 바로였습니까? 너 할 일이 그렇게 없었습니까!? 그가 그렇게 속으로 비통해하는 것도 모르고, 지오토는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군. 역시 똑똑한 녀석인걸?]
즐거운 기색이 역력한 지오토의 생각에 무쿠로는 한층 더 우울해졌다. 이름 하나 보고 데리고 온 애인데 똑똑하든 말든 알게 뭡니까. 이걸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그가 속으로 그렇게 좌절하고 있을 때,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스페이드가 들어왔다.
스페이드는 부드럽게 웃는 표정인데, 어째 거짓 웃음이라는 티가 확연히 났다. 예전의 그라면 순박한 모습을 연기하고 있을 텐데, 지금은 모든 태도가 성의없어 보였다. 그는 굉장히 무심한 눈길로 지오토와 그 앞에 얌전히 앉은 강아지를 보다가 책상 위에 서류 한 뭉치를 놓고 바로 돌렸다. 쌀쌀맞다기보다는 상대하기 싫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오토의 표정이 살짝 굳은 건 그쯤이었다.
「스피.」
순간 스페이드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그 반응에 지오토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그와 반대로 무쿠로의 고개는 푹 숙여진다. 반응이 없으면 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네가 하는 말인데 반응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는 그렇게 좌절했다.
「스피~, 보스가 부르면 돌아봐야지?」
장난스러운 지오토의 목소리에 빠른 걸음으로 나가던 스페이드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무쿠로는 살짝 고개를 들어 지오토의 앞에 있는 강아지만 노려봤다. 꽤 비싼 말라뮤트 종이었지만, 이름하나만 보고 데려와 지오토에게 넘긴 녀석이다. 왜 똑똑해서는……!
「스피~?」
「후우, 너네 스피를 구해다 줬을 텐데요?」
「오늘부터 엘이다. 그렇지?」
그가 조금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지오토는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강아지가 호응하듯 멍멍거린다. 스페이드의 어깨가 조금 쳐졌다. 질렸다는 의사표시다. 그의 표정은 지금 가차없이 일그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하는 것보다 피하는 게 났다. 그는 그간의 경험으로 그런 사실을 충실히 몸으로 익혔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그대로 돌아보지도 않고 밖으로 쌩하니 나갔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해진 지오토가 그를 뒤 따라나가며, 불렀다.
「스피!」
이쯤 되면 무쿠로의 기력도 사라진다. 아니, 따라가고 싶지 않다. 그 바보 같은 공방을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기억의 재생'이다. 무쿠로가 가만히 있어도 주위의 풍경이 지오토의 걸음에 따라 변해간다. 지오토는 그냥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다가 좀처럼 사이가 줄어들지 않자, 나중에는 뛰어서 그를 따라잡았다. 그와 함께 그의 발걸음도 점점 빨라져서 종래에는 달리게 되었다. 무서운 속도로 도망가는 그와 더 빠른 속도로 뒤쫓는 지오토의 공방은 결국, 지오토가 몸을 날려 덮침으로써 끝났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린다.
「보스, 이거 놓아주십시오!」
「싫어!」
「좀 떨어지란 말입니다! 꼴사납게 이게 뭡니까!?」
「넌 반드시 도망칠 생각이잖아. 절대 안돼.」
「도망 안치겠습니다, 그러니 놔 주십시오!」
「거짓말!」
그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어조로 「빌어먹을 초직감…….」라고 중얼거린다. 지오토의 눈썹이 확 치켜 올라갔다.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며 잡고 놓지 않는다. 그런 둘의 작태를 보며 무쿠로는 아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둘 다 정말 바보가 따로 없군요. 저 중의 하나가 나라는 건 그냥 잊고 싶을 정도네요. 가혹한 평가에 어울릴 박수도 넣었다. 그리고 그런 둘의 위를 짧은 다리로 열심히 따라온 강아지가 덮친다. 정말 이게 무슨 꼴이랍니까? 무쿠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기어코 분노가 극에 달해버린 그가, 이글거리는 살기를 숨기지 않고 퍼트리며 자신의 위에서 자랑스레 꼬리까지 흔드는 강아지의 목을 잡았다. 그가 무슨 짓을 할 생각인지 쉽게 알아차린 지오토가 황급히 말린다.
「스피, 멈춰!」
「닥치세요. 이렇게 멍청한 건 없는 게 좋지 않습니까?」
「엘은 네가 나한테 줬다는 걸 잊은 거야?」
「내가 준거니까 내가 부수겠다는 겁니다.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전부다! 당장 손 떼, 명령이다.」
「명령, 이라는 겁니까? 과연 그렇다면 듣긴 해야겠군요.」
그가 싸늘하게 웃는 얼굴로 천천히 손을 뗐다. 그 순간 강아지의 몸이 떡 하니 얼어붙는다. 지오토가 놀라서 만져보니 죽은 건 아니고, 너무 놀라서 기절한 거다. 이건 분명히 환각 때문이다. 지오토가 그에게 추궁 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그는 여전히 싸한 얼굴로 당장 비키라고 할 뿐이다. 무쿠로도 그에 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때의 일이 저 개에게는 두고두고 트라우마가 되어 그의 냄새라도 맡을 납시면 꼬리를 말고 도망칠 정도? 그냥 당한 쪽의 재앙이었을 뿐이다.
지오토가 몸을 일으키며 곤란한 어조로 말한다.
「스피, 스피가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 적당히 무시하고 따라와.」
「정식 명령서를 주시면 되겠군요. 네, 그렇게 처리해주십시오.」
그가 표정만큼이나 냉랭한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정작 지오토는 그게 재미있는지 웃는 낯으로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얼떨결에 일어난 그가 인상을 구겼지만, 지오토는 그냥 웃을 따름이다. 자신이 싫다고 하는데, 뭐가 그리도 웃긴 걸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G의 말을 들어보니 다른 사람에게는 전과 똑같은 태도인 거 같던데……, 내 앞에서만 솔직해지는 건가?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이러면 좋을 텐데…….]
지오토가 조금 아쉽다는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그 미소를 이해하지 못했고, 무쿠로는 헛웃음을 터트려버렸다. 이때, 그는 분명히 자신의 감정과 실체를 꼭꼭 숨겨서 아무도 알지 못하게 했었다. 아니, 그렇게 작정하고 숨겼다기보다는 여전히 착각하게 방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로지 지오토의 말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반응했다. 그 순간만 살아있었다. 부유하던 망령이 실체를 갖고 지상에 발을 디뎠다. 이때는 몰랐었죠, 네가 내게 그렇게나 특별하다는 걸, 정말 몰랐죠.
그가 의아함을 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오토는 그런 그의 행동에 그냥 웃어버렸다. 그리고 한쪽은 얼어붙은 강아지를 들고, 다른 쪽으로는 그를 끌고 다시 집무실로 향했다. 그는 진짜 집무실로 돌아가기 싫었기에 팔을 빼내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오죽하면 지오토가 힘으로 그를 질질 끌고 갈 정도로, 그는 포기를 몰랐다.
결국, 지오토가 퉁명스레 묻는다.
「스피~, 왜 그러는 거야?」
「몰라서 묻습니까?」
「어.」
지오토가 진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기어코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스피가 뭡니까, 스피가!」
이건 무슨 개 이름도 아니고! 실제로 지오토가 들고 있던 강아지의 이름이 스피였다. 그래서 당장 주인에게 말해서 사온 거다. 그렇지 않아도 싫어하던 호칭이 진짜 싫어진 계기가 되었다. 다시는 쓰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지은 이름 때문에 후회라는 걸 했다는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괜찮은 걸로 짓는 건데! 아니, 이 내가 그런 것 때문에 후회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더 싫었다. 속으로 그렇게 격렬히 절규하는 그와는 달리, 무쿠로는 그냥 한심해서 한숨만 나왔다. 그냥 싫다고 말했으면 되지 않았나요? 왜 이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아, 정말 바보 같네요.
지오토는 지극히 태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네 애칭이지.」
「그딴 거 필요 없습니다. 차라리 D라고 부르세요.」
「그건 정감이 안 가서 싫어.」
「흐음? 잘되었군요. 반드시 D라고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기각. 스피, 이번 일은…….」
그는 간신히 지오토의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물론 지오토가 그걸 가만히 지켜볼 리 없다. 이번에는 옷자락을 잡았다. 그는 망설이지도 않고 옷을 벗고 도망가려 했다. 진짜 무슨 탈주극도 아니고…… 한심하네요. 무쿠로는 황망하니 그 모양새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어째 벗어날 수 없는 덫에 걸린 새가 퍼덕이는 것 같아 서글퍼졌다.
무쿠로의 감상과는 상관없이, 다시 팔을 낚아챈 지오토가 그를 질질 끌고 가면서 말을 잇는다.
「아라우디의 지원요청이다. 처음으로 부탁한 거니까, 거기로 가서…….」
「싫습니다. 그 귀엽지도 않은 새는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만?」
「새라고 하지 마. 아라우디가 싫어해.」
「종달새를 새라고 하는 게 나쁜 겁니까?」
이제야 포기하고 따라가던 그가 순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악의도 적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순수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어투다. 지오토가 잠시 멈춰서 그를 돌아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둘이 만나면 서로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는 걸 알면서도 조금은 기대한 게 문제다.
[진심…… 이군. 정말 사이가 나빠.]
“아라우디는 진짜 종달새가 맞습니다만? 철자까지 똑같은 걸 탓해야지요.”
더 정확하게는 종다리 과를 의미하고, Alaudi의 뒤에 dae가 붙어야 하지만, 그게 그거다. 무쿠로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보다 둘의 사이가 나쁜 건 눈만 마주쳤다 하면, 심지어 그의 기척이라도 느꼈다 싶으면 잡아먹을 기세로 달려드는 아라우디의 탓이 컸다. 아니, 그가 봉골레에 들어가기 전에 저질렀던 일을 생각하면 그것도 당연하긴 하다. 둘 다 능력이 뛰어나서 여러모로 부딪힐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약 90%가량 그가 아라우디를 물 먹였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원한은 쌓이고 쌓였던 거다.
그리고 그는 그런 걸 지오토가 물어봤다는 이유로 대강 설명했던 적이 있었다. 묻는다고 설명하다니 참 웃긴 짓이지요. 아무리 정체가 들켰다지만, 알려줄 이유는 없었는데 말입니다. 무쿠로가 그 어이없는 사연을 잠시 떠올리는 사이, 지오토가 단호하게 말한다.
「어쨌든, 가서 돕도록 해.」
「싫습니다.」
「어차피 증거라고는 없어서 아라우디가 끌고 갈 수 없다며?」
「귀찮습니다.」
「내가 명령한다 해도?」
「흐음? 그렇다면 따르긴 해야겠군요. 명령이십니까?」
그가 아주 곱게, 뒤로 순간 후광 비슷한 게 보일 정도로 아름답게 웃는다.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잘 어울리는 미소다. 하지만, 본연의 성격을 아는 사람에게 한해서 가식이라는 티가 너무 났다. [초직감이 없어도 저게 가식이라는 건 알겠군.]라고 지오토가 탄식할 정도다. 무쿠로가 웃으며 나름 변명을 했다.
“일단, 팔린 몸이니 말은 일단 듣긴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 과정의 심술은 그냥 넘겨주셔야 진정한 대공이시죠.”
누가 들으면 뻔뻔하다고 외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심술이라고 하기에는 그 수위가 심하게 높았다. 수많은 사연은 다 접어두고, 지금 저 지오토의 팔에 안겨 아직도 기절상태로 굳은 강아지를 보면 그 강도를 알 수 있으리라. 당하는 처지에서는 그냥 재앙이라는 점이 참 그다운 일이다. 지오토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며 끝내 잔소리를 했다.
「정말 성격 나쁘네. 스피~, 조금은 패밀리의 일에 협조해.」
「싫습니다. 팔리긴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군요. 그리고 내 성격을 이제 안 것처럼 말하는 겁니까? 조사했을 때 화려한 전적을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지오토의 표정이 순간 굳었지만, 곧 신색을 회복하고 다시 그를 끌고 집무실로 향한다. 지오토의 생각이 조용히 울리기 시작한 건 그쯤이다.
[누가 계속 귀찮게 굴었다는 이유로 모든 인간의 얼굴이 자기 얼굴로 보이게 만들어서, 결국에는 미쳐 자살하게 한 거? 적이었는데 술이나 퍼마시고 무례하게 굴었다는 이유로 전신화상으로 죽게 한 거? ‘마법사’를 동경한다며 떠벌리고 다니던 환술사를 자기 방에서 익사시킨 거? 거짓 의뢰를 했다는 이유로 어떤 패밀리를 말려 죽인 거?]
“사족을 달자면, 첫 번째 녀석은 나르시시즘이 너무 심했습니다. 의뢰를 하면서도 거울만 쳐다보고 있었다고요. 그래서 그렇게 좋아하는 얼굴을 실컷 보라는 의미로 걸어준 환각입니다만? 처음에는 본인도 기뻐했었죠. 두 번째는 시답잖은 환각을 구경이나 해보자고 하더군요. 뭐, 간단하게 마그마에서 수영하도록 해줬을 뿐입니다. 방방거리며 꽤 좋아하던데요? 세 번째는 내 손에 죽으면 소원이 없다고 했었습니다. 그냥 방안을 물로 가득 채워줬을 뿐입니다. 난 엄연히 소원을 들어준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거짓 의뢰로 날 불러서 붙잡을 생각이더라고요. 그게 괘씸해서 극한의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환각을 보여 준겁니다. 정말 그게 다에요.”
무쿠로가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지만, 차라리 하지 않는 게 좋았다. 결국, 저 도시 전설이 진짜 그의 손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확인 사살하는 거였으니까. 이렇듯 믿기 어려운 일을 많이 했기에, 더욱 ‘망령’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만큼 실제로도 위험한 인간이었다.
[그래, 그가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어.]
지오토는 그걸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를 조사할 때부터,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속삭이는 듯한 울림이 지나며 지오토는 그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그가 살짝 인상을 쓸 정도로 강하게 쥐었다. 그런데 정작 그게 싫지 않았었다. 정말입니다, ‘왜’ 인지도 모르면서 사실 조금 기뻤습니다. 그가 조금 울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전부 다 알면서도 지오토가 그를 받아들였다는 걸 무심코 느낀 탓이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저 어리둥절해했었고, 무쿠로는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기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너는 내게 이렇게나 따뜻하네요.
그는 어느새 지오토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집무실로 돌아가, 지오토가 그의 팔을 놓아줄 때까지 살짝 인상을 쓴 상태로 얌전히 따라갔었다. 그는 아직 미약하게 온기가 남은 자신의 팔을 보며 뭐가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층 인상을 찌푸렸다.
“의미도 모르면서 처음으로 사람의 체온을 아쉬워했습니다, 웃기지요?”
무쿠로가 비웃는 얼굴로 그렇게 속삭였다. 전부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말이지요.
그 사이 앞서 가던 지오토는 한쪽에 강아지를 두고, 그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 멈칫했다.
[만지는 게 싫었나… 보군.]
완벽한 오해였지만, 지오토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자신이 만졌던 자리를 노려본다면 그런 결론을 내릴 것이다. 덕분에 조금 지오토는 조금 의기소침해졌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묘하게 기운이 없는 조오토를 보고는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지오토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기에 그 미묘한 감정을 알아차리긴 어렵다. 그저 그런 게 그에게는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기운차 보이던 사람이 이러면 신경 쓰이기 마련이지요? 그게 아니라도 관심을 뒀겠지만 말입니다. 그의 ‘변명’을 대신 중얼거리며 무쿠로가 웃었다. 이때는 진짜 바보짓 말고 한 게 없는 것 같았다.
「보스?」
「응?」
「왜 그러십니까? 날 여기까지 끌고 오지 않았습니까. 아무도 못한 일을 해냈으니 조금은 기뻐하세요.」
「내걸 내가 끌고 온 게 기뻐할 일인 건가?」
뻔뻔하기까지 한 지오토의 말에 그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빌어먹을 도박…….」이라고 투덜거리면서 지오토의 얼굴을 살폈다. 어쩐지 한결 편해 보여서 그도 안심했다. 그러고 보면 끝까지, 네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줄 때까지 인정하지 않았지요. 네가 특별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무쿠로는 어째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지금으로서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참답지 않은 그의 위로에 지오토는 조금 유쾌해졌다.
「그럼, 주인으로서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하도록 하지. 해 주겠지?」
「미쳤습니까? 이 내가 하리라 생각하는 겁니까?」
그의 인상이 오만상 구겨지는 걸 보면서 지오토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말은 저래도 우울해하면 결국 해주면서…….]라는 생각이 무쿠로의 귀에 파고들었다. 이런 걸 요즘은 츤데레…… 라고 하지요? 난 시대를 앞서간 태도를 보였던 겁니까? 그 생각에 어떠한 부정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무쿠로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래서 이미 자신이 지오토에게만 약하다는 걸 들킨 상태였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오토가 웃으며 그를 돌려세우고는 등을 떠밀었다.
「보스?」
「어서 가서 도와주고 와. 알았지?」
「밀지 마십시오! 싫다고 말했을 텐데요?」
「어, 들었어. 준비해 놓은 선물은 돌아오면 줄 거다.」
「잠깐, 무슨 선물이라는 겁니까? 그보다 밀지 마세요!」
「그래, 알았어.」
「계속 밀고 있으면서 뭘 알았다는 겁니까!?」
밀려나지 않기 위해 여러모로 힘을 줬지만 결국, 문밖까지 밀려난 그가 지오토를 돌아보며 버럭 소리쳤다. 이미 문을 반쯤 닫은 지오토가 그 틈으로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 웃는 얼굴에 화를 못 낸다고 했던가? 그는 진짜 화가 가라앉는 걸 느끼고는 당황해버렸다. 진짜 이래서 네가 싫었습니다. 무쿠로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지오토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그를 봤다. 그는 그런 지오토의 눈동자가 묘할 정도로 진지하다고 느꼈다.
「믿고 기다릴 테니까, 스피~.」
「무슨……?」
「무사히 잘 다녀와~.」
지오토는 문을 닫았다. 혹시라도 그가 다시 문을 열까 싶어 손잡이를 잡고 잠시 기다린다. 그러다 천천히 문밖에서 들린 발걸음 소리에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느릿한 걸음으로 의자에 돌아가 앉았다.
[난 뭘 ‘시험’하고 싶은 거지? 아라우디의 부탁이다. 가족의 부탁이니만큼 반드시 들어줘야 하는데, 어째서 난 ‘명령’하지 않은 거지? 스피에게 뭘 원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 이런 문제도 있군요. 난 왜 네 부탁을 들었을까요? 무시해도 상관없었을 건데……. 이렇게 보니 알 것 같습니다. 일부러 답만 피해 가고 있었네요, 너도, 나도.”
무쿠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오토의 책상 위에 턱 하니 걸터앉았다. 한참 동안 같은 주제로 고민하던 지오토가 서랍을 열고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건 지오토에게도 그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거였다. 지오토가 이유도 없이 그를 위해 마련한 첫 번째 선물이자, 그에게 있어서는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에게서 받은 선물이었다. 무쿠로가 물끄러미 지오토를 바라봤다.
[난 왜 이걸 준비했을까? 역시 그 복장이 거슬려서인가……?]
“그 타령은 그만 좀 하십시오.”
무쿠로가 이를 까득 갈면서 토를 단다.
지오토는 잠시 상자를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서랍에 넣고 닫았다. 그리고 아직 환했던 하늘에 순식간에 새까만 밤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시간 변화에 무쿠로는 살짝 놀랐다. 별 위화감이 없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 동화가 깊이 되었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것에도 거부감이 없을 정도라면 심각한데…….
무쿠로가 잠시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지오토는 한숨을 쉬며 전보를 흔들었다. 아라우디가 보낸 특급 전보였다. 내용은 아라우디의 성격답게 아주 간결했다.
『D.에게 반드시 죽여 버린다고 전해라.』
「라는 건 일단 돕긴 도왔다는 거군. 그것도 아라우디가 싫어할 법한 방법으로.」
「누구의 부탁인데 무시했겠습니까. 역시 새는 눈치가 빠르네요. 며칠 지나야 알아차릴 거라 예상했는데 말이지요.」
그가 책상에 살짝 걸터앉은 모양새로 대답했다. 원래 그곳에 있었다는 듯, 너무 자연스럽다. 기억의 재생이라지만, 이러리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말이지요. 무쿠로는 책상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이 순간은 그냥 타인에 불과한 자신이다. 그의 곁에 있는 게 싫은 건 아니다. 그냥 껄끄럽다.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만, 지금은 그냥 덮어버렸다. 인정하는 순간 바보가 되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지오토가 서랍에 넣어두었던 선물을 꺼내 그에게 던졌다. 무심코 받아든 그는 ‘리본으로 곱게 포장된 이상한 상자’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게 뭔지 이해하지 못한 게 확실하다.
「말했던 선물.」
「이게…… 말입니까? 내용물은 뭡니까?」
「궁금하면 뜯어 봐.」
그는 상자를 이리저리 돌려보기만 할 뿐, 쉬이 뜯어보려 하지 않았다. 신기한 물건을 손에 넣은 반응이라 지오토가 도리어 신기했다. 그래서 웃는 얼굴로 그걸 지켜보고 있었더니, 그가 대뜸 자리에서 일어난다. 기대와는 다른 반응이라 지오토는 조금 당황했다.
「…… 지금은 피곤하니 나중에 뜯어보겠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쌩하니 집무실을 나가버렸다. 지오토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뭔가 잘못 한 걸까? 더 기뻐해 줬으면 했는데…….]
“굉장히 기뻤습니다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도망친 겁니다, 저건.”
멍청하지 않습니까? 마음을 모른다는 건 진짜 골치 아픈 일이지요. 무쿠로는 조금 변명을 해본다. 어차피 닿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적어도 조금은 이렇게 말해줘야 할 거 같다. 거슬린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가 자신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조금씩 풍경이 변하며, 지오토가 그를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이 몇 번이고 스쳐 지나간다. 「무슨 일입니까?」라는 그의 물음에 지오토는 언제나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넘겼지만, 점점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그는 슬금슬금 지오토를 피했다. 지오토에게만 솔직한 그가 어리둥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기에, 차마 화내지도 못했다. 결국, 혼자 투덜거림을 삼킨다.
[선물을 해줬으면, 적어도 한번은 하고 올 것이지, 바보.]
무쿠로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동의했다. 정말 똑똑한 바보였다. 감정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으니, 마음을 알려고 할 리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후회한 게 무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는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은 일을 꼽을 것이다. 그건 계산되지 않는 것인데, 그걸 몰랐다.
“그게 널 죽이는 독이 되었습니다.”
그는 동화를 읊듯 중얼거리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시계(視界)가 일그러졌다.
츠나는 약해도 지오토는 강할거라 생각합니다!
랄까, 스피라는 건 꼭 넣고싶었습니다.
가운데 '누'만 들어가면 최고죠!
도박은 하면 안됩니다, 라는 걸 몸으로 체험한 D입니다.
그러게 왜 자길 건 도박에 응했냐고.(…)
어쩐지 마무리가 날림에 양조절은 아직도 안되네요.
다음편은 양조절 되길 바랍니다.
6월 9일 전까지 다 쓰는게 목적입니다만 잘 될지 모르겠네요.
용량조절은 정말 실패했습니다.
편수만이라도 맞추려고 발악했지만, 어렵네요.
결국 편수도 못맞췄고요.
그래도 마지막 편수는 맞추려고 합니다.
클라이막스를 쓰는데 왜 이렇게나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그냥 티격태격, 알고보면 사랑싸움이라든가… 뭐, 그런거 말이죠.
그런걸 좀 많이 사랑합니다.
서로 좋아하는게 티나면서 티격거리는 걸 참 좋아해서 말이죠.
참고로, 이번편의 테마는 [반한게 죄]입니다.
감각이 재구성된다. 재생되는 기억이 변할 때마다 이런 걸까? 무쿠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떴다. 어째 굉장히 낯익은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햇살처럼 눈 부신 금발과 선연한 금안, 지오토다. 그는 그걸 깨닫는 순간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려고 고개를 젖힌 순간 책상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딱히 아프진 않았지만, 자신이 누워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당황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게 만들었다. 아, 이래서 네가 싫단 말입니다! 황망함에 속으로만 그리 외쳐본다.
그는 책상에서 조심조심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주위를 돌아볼 필요도 없이, 지오토의 뒤쪽에 펼쳐진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그의 집무실이라는 걸 알았다. 어딘가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동요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전에 들은 적 있다. 위에는 무지개, 그 아래에는 바다의 물결이 표시되고 그 심해에 조개가 있는 상당히 독특한 형태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여기일까? D. 스페이드라는 이름이 익숙해지기 전부터, ‘그’는 이곳을 싫어했다. 오는 것도 싫어했으니 이렇다 할 추억도 없다. 적어도 무쿠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엘, 앉아!」
갑자기 들려온 지오토의 목소리에 무쿠로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없이 머리를 짚었다. 아, 맞아요. 그 녀석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러라고 구해 온 녀석이 아니었습니다만? 언제 개명을 시켰나 했더니 바로였습니까? 너 할 일이 그렇게 없었습니까!? 그가 그렇게 속으로 비통해하는 것도 모르고, 지오토는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군. 역시 똑똑한 녀석인걸?]
즐거운 기색이 역력한 지오토의 생각에 무쿠로는 한층 더 우울해졌다. 이름 하나 보고 데리고 온 애인데 똑똑하든 말든 알게 뭡니까. 이걸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그가 속으로 그렇게 좌절하고 있을 때,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스페이드가 들어왔다.
스페이드는 부드럽게 웃는 표정인데, 어째 거짓 웃음이라는 티가 확연히 났다. 예전의 그라면 순박한 모습을 연기하고 있을 텐데, 지금은 모든 태도가 성의없어 보였다. 그는 굉장히 무심한 눈길로 지오토와 그 앞에 얌전히 앉은 강아지를 보다가 책상 위에 서류 한 뭉치를 놓고 바로 돌렸다. 쌀쌀맞다기보다는 상대하기 싫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오토의 표정이 살짝 굳은 건 그쯤이었다.
「스피.」
순간 스페이드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그 반응에 지오토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그와 반대로 무쿠로의 고개는 푹 숙여진다. 반응이 없으면 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네가 하는 말인데 반응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는 그렇게 좌절했다.
「스피~, 보스가 부르면 돌아봐야지?」
장난스러운 지오토의 목소리에 빠른 걸음으로 나가던 스페이드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무쿠로는 살짝 고개를 들어 지오토의 앞에 있는 강아지만 노려봤다. 꽤 비싼 말라뮤트 종이었지만, 이름하나만 보고 데려와 지오토에게 넘긴 녀석이다. 왜 똑똑해서는……!
「스피~?」
「후우, 너네 스피를 구해다 줬을 텐데요?」
「오늘부터 엘이다. 그렇지?」
그가 조금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지오토는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강아지가 호응하듯 멍멍거린다. 스페이드의 어깨가 조금 쳐졌다. 질렸다는 의사표시다. 그의 표정은 지금 가차없이 일그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하는 것보다 피하는 게 났다. 그는 그간의 경험으로 그런 사실을 충실히 몸으로 익혔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그대로 돌아보지도 않고 밖으로 쌩하니 나갔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해진 지오토가 그를 뒤 따라나가며, 불렀다.
「스피!」
이쯤 되면 무쿠로의 기력도 사라진다. 아니, 따라가고 싶지 않다. 그 바보 같은 공방을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기억의 재생'이다. 무쿠로가 가만히 있어도 주위의 풍경이 지오토의 걸음에 따라 변해간다. 지오토는 그냥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다가 좀처럼 사이가 줄어들지 않자, 나중에는 뛰어서 그를 따라잡았다. 그와 함께 그의 발걸음도 점점 빨라져서 종래에는 달리게 되었다. 무서운 속도로 도망가는 그와 더 빠른 속도로 뒤쫓는 지오토의 공방은 결국, 지오토가 몸을 날려 덮침으로써 끝났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린다.
「보스, 이거 놓아주십시오!」
「싫어!」
「좀 떨어지란 말입니다! 꼴사납게 이게 뭡니까!?」
「넌 반드시 도망칠 생각이잖아. 절대 안돼.」
「도망 안치겠습니다, 그러니 놔 주십시오!」
「거짓말!」
그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어조로 「빌어먹을 초직감…….」라고 중얼거린다. 지오토의 눈썹이 확 치켜 올라갔다.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며 잡고 놓지 않는다. 그런 둘의 작태를 보며 무쿠로는 아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둘 다 정말 바보가 따로 없군요. 저 중의 하나가 나라는 건 그냥 잊고 싶을 정도네요. 가혹한 평가에 어울릴 박수도 넣었다. 그리고 그런 둘의 위를 짧은 다리로 열심히 따라온 강아지가 덮친다. 정말 이게 무슨 꼴이랍니까? 무쿠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기어코 분노가 극에 달해버린 그가, 이글거리는 살기를 숨기지 않고 퍼트리며 자신의 위에서 자랑스레 꼬리까지 흔드는 강아지의 목을 잡았다. 그가 무슨 짓을 할 생각인지 쉽게 알아차린 지오토가 황급히 말린다.
「스피, 멈춰!」
「닥치세요. 이렇게 멍청한 건 없는 게 좋지 않습니까?」
「엘은 네가 나한테 줬다는 걸 잊은 거야?」
「내가 준거니까 내가 부수겠다는 겁니다.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전부다! 당장 손 떼, 명령이다.」
「명령, 이라는 겁니까? 과연 그렇다면 듣긴 해야겠군요.」
그가 싸늘하게 웃는 얼굴로 천천히 손을 뗐다. 그 순간 강아지의 몸이 떡 하니 얼어붙는다. 지오토가 놀라서 만져보니 죽은 건 아니고, 너무 놀라서 기절한 거다. 이건 분명히 환각 때문이다. 지오토가 그에게 추궁 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그는 여전히 싸한 얼굴로 당장 비키라고 할 뿐이다. 무쿠로도 그에 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때의 일이 저 개에게는 두고두고 트라우마가 되어 그의 냄새라도 맡을 납시면 꼬리를 말고 도망칠 정도? 그냥 당한 쪽의 재앙이었을 뿐이다.
지오토가 몸을 일으키며 곤란한 어조로 말한다.
「스피, 스피가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 적당히 무시하고 따라와.」
「정식 명령서를 주시면 되겠군요. 네, 그렇게 처리해주십시오.」
그가 표정만큼이나 냉랭한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정작 지오토는 그게 재미있는지 웃는 낯으로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얼떨결에 일어난 그가 인상을 구겼지만, 지오토는 그냥 웃을 따름이다. 자신이 싫다고 하는데, 뭐가 그리도 웃긴 걸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G의 말을 들어보니 다른 사람에게는 전과 똑같은 태도인 거 같던데……, 내 앞에서만 솔직해지는 건가?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이러면 좋을 텐데…….]
지오토가 조금 아쉽다는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그 미소를 이해하지 못했고, 무쿠로는 헛웃음을 터트려버렸다. 이때, 그는 분명히 자신의 감정과 실체를 꼭꼭 숨겨서 아무도 알지 못하게 했었다. 아니, 그렇게 작정하고 숨겼다기보다는 여전히 착각하게 방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로지 지오토의 말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반응했다. 그 순간만 살아있었다. 부유하던 망령이 실체를 갖고 지상에 발을 디뎠다. 이때는 몰랐었죠, 네가 내게 그렇게나 특별하다는 걸, 정말 몰랐죠.
그가 의아함을 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오토는 그런 그의 행동에 그냥 웃어버렸다. 그리고 한쪽은 얼어붙은 강아지를 들고, 다른 쪽으로는 그를 끌고 다시 집무실로 향했다. 그는 진짜 집무실로 돌아가기 싫었기에 팔을 빼내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오죽하면 지오토가 힘으로 그를 질질 끌고 갈 정도로, 그는 포기를 몰랐다.
결국, 지오토가 퉁명스레 묻는다.
「스피~, 왜 그러는 거야?」
「몰라서 묻습니까?」
「어.」
지오토가 진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기어코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스피가 뭡니까, 스피가!」
이건 무슨 개 이름도 아니고! 실제로 지오토가 들고 있던 강아지의 이름이 스피였다. 그래서 당장 주인에게 말해서 사온 거다. 그렇지 않아도 싫어하던 호칭이 진짜 싫어진 계기가 되었다. 다시는 쓰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지은 이름 때문에 후회라는 걸 했다는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괜찮은 걸로 짓는 건데! 아니, 이 내가 그런 것 때문에 후회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더 싫었다. 속으로 그렇게 격렬히 절규하는 그와는 달리, 무쿠로는 그냥 한심해서 한숨만 나왔다. 그냥 싫다고 말했으면 되지 않았나요? 왜 이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아, 정말 바보 같네요.
지오토는 지극히 태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네 애칭이지.」
「그딴 거 필요 없습니다. 차라리 D라고 부르세요.」
「그건 정감이 안 가서 싫어.」
「흐음? 잘되었군요. 반드시 D라고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기각. 스피, 이번 일은…….」
그는 간신히 지오토의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물론 지오토가 그걸 가만히 지켜볼 리 없다. 이번에는 옷자락을 잡았다. 그는 망설이지도 않고 옷을 벗고 도망가려 했다. 진짜 무슨 탈주극도 아니고…… 한심하네요. 무쿠로는 황망하니 그 모양새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어째 벗어날 수 없는 덫에 걸린 새가 퍼덕이는 것 같아 서글퍼졌다.
무쿠로의 감상과는 상관없이, 다시 팔을 낚아챈 지오토가 그를 질질 끌고 가면서 말을 잇는다.
「아라우디의 지원요청이다. 처음으로 부탁한 거니까, 거기로 가서…….」
「싫습니다. 그 귀엽지도 않은 새는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만?」
「새라고 하지 마. 아라우디가 싫어해.」
「종달새를 새라고 하는 게 나쁜 겁니까?」
이제야 포기하고 따라가던 그가 순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악의도 적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순수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어투다. 지오토가 잠시 멈춰서 그를 돌아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둘이 만나면 서로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는 걸 알면서도 조금은 기대한 게 문제다.
[진심…… 이군. 정말 사이가 나빠.]
“아라우디는 진짜 종달새가 맞습니다만? 철자까지 똑같은 걸 탓해야지요.”
더 정확하게는 종다리 과를 의미하고, Alaudi의 뒤에 dae가 붙어야 하지만, 그게 그거다. 무쿠로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보다 둘의 사이가 나쁜 건 눈만 마주쳤다 하면, 심지어 그의 기척이라도 느꼈다 싶으면 잡아먹을 기세로 달려드는 아라우디의 탓이 컸다. 아니, 그가 봉골레에 들어가기 전에 저질렀던 일을 생각하면 그것도 당연하긴 하다. 둘 다 능력이 뛰어나서 여러모로 부딪힐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약 90%가량 그가 아라우디를 물 먹였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원한은 쌓이고 쌓였던 거다.
그리고 그는 그런 걸 지오토가 물어봤다는 이유로 대강 설명했던 적이 있었다. 묻는다고 설명하다니 참 웃긴 짓이지요. 아무리 정체가 들켰다지만, 알려줄 이유는 없었는데 말입니다. 무쿠로가 그 어이없는 사연을 잠시 떠올리는 사이, 지오토가 단호하게 말한다.
「어쨌든, 가서 돕도록 해.」
「싫습니다.」
「어차피 증거라고는 없어서 아라우디가 끌고 갈 수 없다며?」
「귀찮습니다.」
「내가 명령한다 해도?」
「흐음? 그렇다면 따르긴 해야겠군요. 명령이십니까?」
그가 아주 곱게, 뒤로 순간 후광 비슷한 게 보일 정도로 아름답게 웃는다.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잘 어울리는 미소다. 하지만, 본연의 성격을 아는 사람에게 한해서 가식이라는 티가 너무 났다. [초직감이 없어도 저게 가식이라는 건 알겠군.]라고 지오토가 탄식할 정도다. 무쿠로가 웃으며 나름 변명을 했다.
“일단, 팔린 몸이니 말은 일단 듣긴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 과정의 심술은 그냥 넘겨주셔야 진정한 대공이시죠.”
누가 들으면 뻔뻔하다고 외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심술이라고 하기에는 그 수위가 심하게 높았다. 수많은 사연은 다 접어두고, 지금 저 지오토의 팔에 안겨 아직도 기절상태로 굳은 강아지를 보면 그 강도를 알 수 있으리라. 당하는 처지에서는 그냥 재앙이라는 점이 참 그다운 일이다. 지오토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며 끝내 잔소리를 했다.
「정말 성격 나쁘네. 스피~, 조금은 패밀리의 일에 협조해.」
「싫습니다. 팔리긴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군요. 그리고 내 성격을 이제 안 것처럼 말하는 겁니까? 조사했을 때 화려한 전적을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지오토의 표정이 순간 굳었지만, 곧 신색을 회복하고 다시 그를 끌고 집무실로 향한다. 지오토의 생각이 조용히 울리기 시작한 건 그쯤이다.
[누가 계속 귀찮게 굴었다는 이유로 모든 인간의 얼굴이 자기 얼굴로 보이게 만들어서, 결국에는 미쳐 자살하게 한 거? 적이었는데 술이나 퍼마시고 무례하게 굴었다는 이유로 전신화상으로 죽게 한 거? ‘마법사’를 동경한다며 떠벌리고 다니던 환술사를 자기 방에서 익사시킨 거? 거짓 의뢰를 했다는 이유로 어떤 패밀리를 말려 죽인 거?]
“사족을 달자면, 첫 번째 녀석은 나르시시즘이 너무 심했습니다. 의뢰를 하면서도 거울만 쳐다보고 있었다고요. 그래서 그렇게 좋아하는 얼굴을 실컷 보라는 의미로 걸어준 환각입니다만? 처음에는 본인도 기뻐했었죠. 두 번째는 시답잖은 환각을 구경이나 해보자고 하더군요. 뭐, 간단하게 마그마에서 수영하도록 해줬을 뿐입니다. 방방거리며 꽤 좋아하던데요? 세 번째는 내 손에 죽으면 소원이 없다고 했었습니다. 그냥 방안을 물로 가득 채워줬을 뿐입니다. 난 엄연히 소원을 들어준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거짓 의뢰로 날 불러서 붙잡을 생각이더라고요. 그게 괘씸해서 극한의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환각을 보여 준겁니다. 정말 그게 다에요.”
무쿠로가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지만, 차라리 하지 않는 게 좋았다. 결국, 저 도시 전설이 진짜 그의 손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확인 사살하는 거였으니까. 이렇듯 믿기 어려운 일을 많이 했기에, 더욱 ‘망령’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만큼 실제로도 위험한 인간이었다.
[그래, 그가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어.]
지오토는 그걸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를 조사할 때부터,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속삭이는 듯한 울림이 지나며 지오토는 그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그가 살짝 인상을 쓸 정도로 강하게 쥐었다. 그런데 정작 그게 싫지 않았었다. 정말입니다, ‘왜’ 인지도 모르면서 사실 조금 기뻤습니다. 그가 조금 울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전부 다 알면서도 지오토가 그를 받아들였다는 걸 무심코 느낀 탓이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저 어리둥절해했었고, 무쿠로는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기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너는 내게 이렇게나 따뜻하네요.
그는 어느새 지오토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집무실로 돌아가, 지오토가 그의 팔을 놓아줄 때까지 살짝 인상을 쓴 상태로 얌전히 따라갔었다. 그는 아직 미약하게 온기가 남은 자신의 팔을 보며 뭐가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층 인상을 찌푸렸다.
“의미도 모르면서 처음으로 사람의 체온을 아쉬워했습니다, 웃기지요?”
무쿠로가 비웃는 얼굴로 그렇게 속삭였다. 전부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말이지요.
그 사이 앞서 가던 지오토는 한쪽에 강아지를 두고, 그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 멈칫했다.
[만지는 게 싫었나… 보군.]
완벽한 오해였지만, 지오토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자신이 만졌던 자리를 노려본다면 그런 결론을 내릴 것이다. 덕분에 조금 지오토는 조금 의기소침해졌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묘하게 기운이 없는 조오토를 보고는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지오토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기에 그 미묘한 감정을 알아차리긴 어렵다. 그저 그런 게 그에게는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기운차 보이던 사람이 이러면 신경 쓰이기 마련이지요? 그게 아니라도 관심을 뒀겠지만 말입니다. 그의 ‘변명’을 대신 중얼거리며 무쿠로가 웃었다. 이때는 진짜 바보짓 말고 한 게 없는 것 같았다.
「보스?」
「응?」
「왜 그러십니까? 날 여기까지 끌고 오지 않았습니까. 아무도 못한 일을 해냈으니 조금은 기뻐하세요.」
「내걸 내가 끌고 온 게 기뻐할 일인 건가?」
뻔뻔하기까지 한 지오토의 말에 그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빌어먹을 도박…….」이라고 투덜거리면서 지오토의 얼굴을 살폈다. 어쩐지 한결 편해 보여서 그도 안심했다. 그러고 보면 끝까지, 네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줄 때까지 인정하지 않았지요. 네가 특별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무쿠로는 어째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지금으로서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참답지 않은 그의 위로에 지오토는 조금 유쾌해졌다.
「그럼, 주인으로서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하도록 하지. 해 주겠지?」
「미쳤습니까? 이 내가 하리라 생각하는 겁니까?」
그의 인상이 오만상 구겨지는 걸 보면서 지오토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말은 저래도 우울해하면 결국 해주면서…….]라는 생각이 무쿠로의 귀에 파고들었다. 이런 걸 요즘은 츤데레…… 라고 하지요? 난 시대를 앞서간 태도를 보였던 겁니까? 그 생각에 어떠한 부정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무쿠로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래서 이미 자신이 지오토에게만 약하다는 걸 들킨 상태였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오토가 웃으며 그를 돌려세우고는 등을 떠밀었다.
「보스?」
「어서 가서 도와주고 와. 알았지?」
「밀지 마십시오! 싫다고 말했을 텐데요?」
「어, 들었어. 준비해 놓은 선물은 돌아오면 줄 거다.」
「잠깐, 무슨 선물이라는 겁니까? 그보다 밀지 마세요!」
「그래, 알았어.」
「계속 밀고 있으면서 뭘 알았다는 겁니까!?」
밀려나지 않기 위해 여러모로 힘을 줬지만 결국, 문밖까지 밀려난 그가 지오토를 돌아보며 버럭 소리쳤다. 이미 문을 반쯤 닫은 지오토가 그 틈으로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 웃는 얼굴에 화를 못 낸다고 했던가? 그는 진짜 화가 가라앉는 걸 느끼고는 당황해버렸다. 진짜 이래서 네가 싫었습니다. 무쿠로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지오토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그를 봤다. 그는 그런 지오토의 눈동자가 묘할 정도로 진지하다고 느꼈다.
「믿고 기다릴 테니까, 스피~.」
「무슨……?」
「무사히 잘 다녀와~.」
지오토는 문을 닫았다. 혹시라도 그가 다시 문을 열까 싶어 손잡이를 잡고 잠시 기다린다. 그러다 천천히 문밖에서 들린 발걸음 소리에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느릿한 걸음으로 의자에 돌아가 앉았다.
[난 뭘 ‘시험’하고 싶은 거지? 아라우디의 부탁이다. 가족의 부탁이니만큼 반드시 들어줘야 하는데, 어째서 난 ‘명령’하지 않은 거지? 스피에게 뭘 원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 이런 문제도 있군요. 난 왜 네 부탁을 들었을까요? 무시해도 상관없었을 건데……. 이렇게 보니 알 것 같습니다. 일부러 답만 피해 가고 있었네요, 너도, 나도.”
무쿠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오토의 책상 위에 턱 하니 걸터앉았다. 한참 동안 같은 주제로 고민하던 지오토가 서랍을 열고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건 지오토에게도 그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거였다. 지오토가 이유도 없이 그를 위해 마련한 첫 번째 선물이자, 그에게 있어서는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에게서 받은 선물이었다. 무쿠로가 물끄러미 지오토를 바라봤다.
[난 왜 이걸 준비했을까? 역시 그 복장이 거슬려서인가……?]
“그 타령은 그만 좀 하십시오.”
무쿠로가 이를 까득 갈면서 토를 단다.
지오토는 잠시 상자를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서랍에 넣고 닫았다. 그리고 아직 환했던 하늘에 순식간에 새까만 밤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시간 변화에 무쿠로는 살짝 놀랐다. 별 위화감이 없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 동화가 깊이 되었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것에도 거부감이 없을 정도라면 심각한데…….
무쿠로가 잠시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지오토는 한숨을 쉬며 전보를 흔들었다. 아라우디가 보낸 특급 전보였다. 내용은 아라우디의 성격답게 아주 간결했다.
『D.에게 반드시 죽여 버린다고 전해라.』
「라는 건 일단 돕긴 도왔다는 거군. 그것도 아라우디가 싫어할 법한 방법으로.」
「누구의 부탁인데 무시했겠습니까. 역시 새는 눈치가 빠르네요. 며칠 지나야 알아차릴 거라 예상했는데 말이지요.」
그가 책상에 살짝 걸터앉은 모양새로 대답했다. 원래 그곳에 있었다는 듯, 너무 자연스럽다. 기억의 재생이라지만, 이러리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말이지요. 무쿠로는 책상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이 순간은 그냥 타인에 불과한 자신이다. 그의 곁에 있는 게 싫은 건 아니다. 그냥 껄끄럽다.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만, 지금은 그냥 덮어버렸다. 인정하는 순간 바보가 되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지오토가 서랍에 넣어두었던 선물을 꺼내 그에게 던졌다. 무심코 받아든 그는 ‘리본으로 곱게 포장된 이상한 상자’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게 뭔지 이해하지 못한 게 확실하다.
「말했던 선물.」
「이게…… 말입니까? 내용물은 뭡니까?」
「궁금하면 뜯어 봐.」
그는 상자를 이리저리 돌려보기만 할 뿐, 쉬이 뜯어보려 하지 않았다. 신기한 물건을 손에 넣은 반응이라 지오토가 도리어 신기했다. 그래서 웃는 얼굴로 그걸 지켜보고 있었더니, 그가 대뜸 자리에서 일어난다. 기대와는 다른 반응이라 지오토는 조금 당황했다.
「…… 지금은 피곤하니 나중에 뜯어보겠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쌩하니 집무실을 나가버렸다. 지오토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뭔가 잘못 한 걸까? 더 기뻐해 줬으면 했는데…….]
“굉장히 기뻤습니다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도망친 겁니다, 저건.”
멍청하지 않습니까? 마음을 모른다는 건 진짜 골치 아픈 일이지요. 무쿠로는 조금 변명을 해본다. 어차피 닿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적어도 조금은 이렇게 말해줘야 할 거 같다. 거슬린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가 자신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조금씩 풍경이 변하며, 지오토가 그를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이 몇 번이고 스쳐 지나간다. 「무슨 일입니까?」라는 그의 물음에 지오토는 언제나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넘겼지만, 점점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그는 슬금슬금 지오토를 피했다. 지오토에게만 솔직한 그가 어리둥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기에, 차마 화내지도 못했다. 결국, 혼자 투덜거림을 삼킨다.
[선물을 해줬으면, 적어도 한번은 하고 올 것이지, 바보.]
무쿠로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동의했다. 정말 똑똑한 바보였다. 감정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으니, 마음을 알려고 할 리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후회한 게 무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는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은 일을 꼽을 것이다. 그건 계산되지 않는 것인데, 그걸 몰랐다.
“그게 널 죽이는 독이 되었습니다.”
그는 동화를 읊듯 중얼거리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시계(視界)가 일그러졌다.
랄까, 스피라는 건 꼭 넣고싶었습니다.
가운데 '누'만 들어가면 최고죠!
도박은 하면 안됩니다, 라는 걸 몸으로 체험한 D입니다.
그러게 왜 자길 건 도박에 응했냐고.(…)
어쩐지 마무리가 날림에 양조절은 아직도 안되네요.
다음편은 양조절 되길 바랍니다.
6월 9일 전까지 다 쓰는게 목적입니다만 잘 될지 모르겠네요.
용량조절은 정말 실패했습니다.
편수만이라도 맞추려고 발악했지만, 어렵네요.
결국 편수도 못맞췄고요.
그래도 마지막 편수는 맞추려고 합니다.
클라이막스를 쓰는데 왜 이렇게나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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