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찌통터지는 이야기가 쓰고 싶어져서 써버렸습니다.
일단, 츠루마루에게는 미안합니다.[하얀 눈]
내 최애캐 중 가장 험하게 굴려도 덜 미안한 최연장자가 너라서 그랬어.[아득한 눈]
도검 파괴 묘사가 있습니다.
진짜 유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상냥해서 멱살잡고 흔들고 싶어지는 뭐 그런 내용이라고 생각하며 썼습니다.
나름 깔끔하게 끝냈다고 생각합니다.
덤으로 그냥 단편이고요.[…]
찌통의 희생양[…]은 라엔이에게 번호로 골라달라고 했습니다.[아득한 눈]
원래 다 그런거에요.[아득한 눈]
그럼 시작합니다.
혼마루(本丸)의 결계가 부서지고 적이 침입한 공습이 벌어진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이 혼마루의 피해는 태도 한자루가 부러졌을 뿐이라 다행히도 금방 충격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그 태도가 누구였더라? 단도는 공습 전, 후로 조금도 변하지 않은 혼마루의 풍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시에는 너무 무섭고 괴로웠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어떻게? 어째서? 가슴한켠이 술렁인다. 잃어버린게 있지만 당장 떠올리지 못하는게 너무나도 불길했다. 산산히 부서진 태도의 이름이 뭐였더라? 마지막을 게이트의 앞에서 적과 동귀어진 했으리라 여겨졌던 그 태도가 누구였더라?
왜 다들 벌써 그 태도를 잊은 것 같지?
기묘한 자문에 이어지다 자신의 감정도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째서 '슬픔'이 아니라 '두려움'이 먼저였지? 도검인 이상 부서지는 건 당연히 각오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만난 형제와 동료를 잃는다면 아주 슬플거라고 생각했다. 당장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왔으니까.
그런데 왜 그렇지 않은거지?
마음 한 켠이 어지럽게 술렁인다. 그런 그를 걱정한 것인지 형제인 단도가 괜찮냐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막상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심란하다고 했더니 그러냐며 고민이 있으면 말하란다. 알았다고는 대답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조금 한적한 곳에서 생각하면 더 잘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움직이자니 정원풍경이 보였다.
시야를 가득 메운 하얀색에 드디어 그 태도의 이름이 떠올랐다.
츠루마루 쿠니나가(鶴丸 国永).
멀고도 하얗던 아름다운 태도였다. 그리고 어떤 이였더라?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온 태도였다. 전력도 적당히 갖춰졌을 때, 안정적으로 육성에 들어갔던 이였으니까. 한번쯤 같은 부대가 되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떠오르는게 없었다. 하얗고 아름다웠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래, 싸우는 걸 좋아한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자청해서 남았었다.
이 혼마루가 만들어진지도 어언 3년. 그 중 츠루마루와 함께 했던 시간은 못해도 1년 반이리라. 그런데 어째서 기억나는게 그것밖에 없지? 어떤 얼굴이었는지, 목소리가 어땠는지, 하다못해 눈동자색이 어땠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오한이 일어났다. 불안감과 죄책감이 스멀스멀 몸을 잠식한다. 덜덜 떨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방을 찾았다. 이런건 자신만이 아닐것이다. 분명히 그 자리가 여전히 남아있을거다. 정리해야겠다는 말을 누구도 하지 않았으니까.
한참을 달려 찾아낸 건 서고와 붙어있는 작은 방이었다. 이런 곳에 방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본채에서 까마득히 먼 곳이었다. 근육뇌가 많은 혼마루라 서고를 찾는 이도 거의 없었으니 더욱 접촉할 기회가 없었으리라. 다시 머릿속이 어지러워진다. 그래도 들어가기 앞서 길게 심호흡을 했다. 떨리는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서늘한 냉기를 머금은 방안에는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일상용품인 이불과 베개조차도 없었다.
목이 매여왔다. 눈 앞의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러면 차라리 편해질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흐뿌연 시야조차 혐오스러워 입술을 짓이겼다.
울 시간에 조금이라도 찾아보자, 찾으면 나올지도 모른다. 자신의 방안에도 남기지 않은 그 태도의 '흔적'이 어딘가에 있을 거다.
미다레 토시로(乱 藤四郎)는 그날부터 홀로 보물찾기를 시작했다. 태도가 실수로 남겼을 '작은 흔적'을 찾아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들어 올때는 모르지만, 떠나면 빈자리를 크게 느낀다는 말이다. 2주 전 한 자리가 비어졌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현실'이 여기에 있다. 이제와서 빈자리를 알아차린 건 몇이나 될까? 누군가를 찾는 듯 움직이는 동생이 없었다면 그도 느끼지 못했을 빈자리다. 긴 시간 같은 곳에 있었다. 인연이 깊다면 나름 깊은 인연이리라. 그럼에도 그는 빈자리를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처음에는 알았을지 모르지만, 며칠지나지 않아 완전히 잊혔다. 신기할 정도로 깔끔하게 잊었다.
이치고히토후리(一期一振)는 기이한 상실감을 뒤늦게 느꼈다. 이제서야 알아 버렸다.
사라진 태도가 읊어주던 이력을 느릿하게 떠올려본다. 산죠(三条)파와 인연이 있었고, 아다치(安達)가문으로 옮겨져 히게키리(髭切)와도 안면이 있다 하였다. 오다(織田)의 손에 넘겨졌던 전적도 있으며, 이후 잠시 신사에 봉안되었다가 다테(伊達)가문으로 옮겨졌었다고. 마지막 정착지가 바로 이곳 황실인 것 같다며 유쾌하게 말했었다.
그리 스친 인연이 수두룩한데 어째서 지금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을까? 이 혼마루에 오기 전, 그가 알던 '그'는 유쾌하고 잔정이 많은 이였다. 공허한 그 창고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나 들었던 이야기를 잔뜩 풀어놓으며 모두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주던 이였다.
여기에서는 어땠지?
그는 이상할 정도로 기억이 희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나도 희미했다. 하얗고도 아름다운 이였다. 눈동자는 그와 비슷하지만 더 투명한 금빛이었으리라. 얼핏보면 바람에 흩어질 듯 아련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강하고 단단한 이였다. 대화하기도 편해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었다.
혼마루에서도 처음에는 평범했던 것 같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지? 기억이 애매했다. 그럴 수 없음에도 그랬다. 오한이 일었다. 철렁하고 내려앉은 심장이 지금의 사태를 경고한다. 무엇을 향한 경고인지도 모른채 마냥 불안함을 안겨준다.
그가 산죠파를 찾은 건 그런 연유였다.
"츠루마루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여러가지 의미를 담아, 돌려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어 결국 직설적으로 물었다.
초승달을 담은 밤하늘빛 눈동자가 의문을 그리더니 곧 살포시 웃었다. 그 미소가 조금 무구하고 순수해보여서 더욱 불길함을 느꼈다.
"츠루라면 곧 올게다. 그런 아이니 말이다."
"츠루마루라면 냉큼 돌아올거에요."
"츠루라면야……."
"앗하는 사이 오겠지! 카하하하!"
"그 이가 그리운가 보군, 내 기원이라도 올리지!"
가벼운 대답들에 그는 억지로 표정을 폈다.
역시 슬퍼하는 모습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한없이 가볍게 곧 올거란다. 이번에 올 츠루마루는 과연 첫번째 츠루마루와 같을까? 그걸 비교할 정도로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 스멀스멀 마음에 앙금이 가라앉았다.
그는 결국 웃으면서 그렇겠죠, 라는 대답밖에 돌려주지 못하고 자리를 피했다.
그는 황실에 함께 있었던 이들 말고 '그'가 가장 오래 함께 있었다던 오오쿠리카라(大倶利伽羅)를 찾았다.
산죠파에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오오쿠리카라의 눈동자가 조금 가라앉았다. 어쩐지 시원섭섭해보이는 눈빛에 다시금 무거운게 내려앉는다.
"…… 멋대로 하겠지."
어렵게 말을 이었던 것 같다. 간신히 홀로 남았을때 그는 자신의 안일함에 한탄했다.
잔정이 많은 이였다. 언제나 유쾌했기에 대화하기도 편했었다. 그런 이가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으려고 했다. 친한 인연과도 멀어져서 그렇게 있었다.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 솔직히 지금에서는 모를일이다. 이미 끝나버렸으니까,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부러졌으니까.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그는 이 혼마루의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어땠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간신히 그가 떠올린 건 서고 쪽에 종종 보였던 하얀 그림자였다. 어쩌면 그쪽에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바람을 안고 서둘러 서고로 향했다.
그가 그곳에서 본 건 츠루마루의 명패가 걸린 텅빈 방안에서 홀로 숨죽여 울음을 참는 미다레였다.
"…… 찾았니?"
"아니, 없어. 어디에도 없어. 진짜 하나도 없어. 그렇게 찾았는데…… 없어."
엷은 파란 눈동자 가득 들어찬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린다. 억지로 참던 흐느낌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미다레가 찾은 건 흔적이었다. 추억의 조각이었다.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어떤 존재였는지 기억하려 했었다. 슬퍼하지 못한 자신이 혐오스러워 어떻게든 되살리려 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사니와(審神者)조차 다음 츠루마루 쿠니나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스스로 그런 위치를 차지한거다. 왜 그랬을까? 왜 버려지기 쉬운 자리를 차지했을까?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자신의 희생을 가정해서 움직…… 이치고히토후리의 이어지던 추론이 멈췄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 이외에 어떠한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그리도 쉽게 그렇게도 쉽게 남는 걸 선택했던 거다. 습격때, 그때를 빼면 츠루마루가 먼저 나서서 뭔가를 한 적이 없었다. 싸우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그때 스스로 말했을 뿐이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치형…… 우리 너무 늦었다, 그지?"
후둑 떨어지는 눈물이 옷자락에 얼룩을 만든다.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늦어버렸다. 잃어버린 다음에야 전부 늦은거다. 어떻게해도 돌아오지 않는거다. 너무 뒤늦게 알아버렸다.
다른 무엇보다 비통한 건,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모두들 '다음' 츠루마루의 이야기를 한다. 서둘러 올거라며 그와의 '재회'를 기대한다. 사니와조차 그러는데 무슨 말을 하랴.
처음부터 희생하려고 스스로 인연을 흔적을 추억을 모두 버리고 잊혀질 준비를 했다. 기어코 그걸 직접 실행했다. 그걸 파헤치면 그의 각오와 신념을 무시하는거나 마찬가지지 않는가. 절대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어느 정도의 각오인지 가늠되지 않아, 그저 비통하게 우는 미다레였다. 그는 그런 미다레를 안고 다독이기만 했다. 이 이상은 자격이 없었으니까. 긴 인연이 있음에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자신이 한심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치, 이치형. 나, 츠루씨가 부러지고 슬프지 않고 무섭기만해서… 그래서 이상해서… 츠루씨를 떠올리려했는데, 떠오르지 않아서…… 동료였는데 기억나지 않아서…… 내가 너무 혐오스러웠어."
"… 미다레는 스스로 그렇게 느꼈구나."
"응, 그래서 흔적을 찾았는데 너무 늦어서… 내가 슬퍼해도 되는 거야?"
"너만큼은 슬퍼해도 된단다. 츠루마루님이 아무도 모르게 하려던 걸 스스로 알아냈잖니."
"이치형……."
"다만, 이건 둘만의 비밀이란다. 츠루마루님의 의지를 무시하면 안되니까. 대신 우리만큼은 기억하자. 절대 그분을 잊지 말자."
점점 커지는 미다레의 통곡을 들으며 그는 길게 호흡을 골랐다. 차오르는 눈물을 억눌렀다. 자기혐오와 자책으로 기억하는 것도 츠루마루의 의지를 무시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스스로 허락할 수 있는건 이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둘은 홀로 떠난 학을 그리며 울었다. 아무도 몰래, 그가 남긴 유일한 흔적 안에서.
"여, 츠루마루 쿠니나가다. 나 같은 게 갑자기 와 놀랐나?"
그곳은 평범한 혼마루였다. 평범하게 모두 힘을 합쳐 운영해 나갔다. 모두 착하고 건실한 녀석들 밖에 없었다. 온지 얼마되지 않은 그는 끼여들 곳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와 인연있는 이들도 재각각의 자리에서 늘 즐거워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주위에 있는 이들은 대게 형제와 친인을 만난게 즐거워한다. 그래서 그는 가장 바빠보이는 이치고히토후리에게 물었었다.
"자네, 지금 굉장히 바빠보이는데 괜찮은가?"
"드디어 동생들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는 걸요! 매일이 즐거울 따름입니다."
해맑게 웃으며 그리 대답하는 걸 보며 내심 결심했다. 희생양이 필요하다면 자신이 되겠노라고. 깊은 인연은 몇 없었고, 대게 스쳐지나갔었다. 이별에는 익숙한 편이었고, 홀로 삭히는 것도 잘하는 것이었다. 파란만장한 인생(刃生)이 이런곳에 도움이 될 줄은 몰랐었다.
멀리서 지켜보며 혼자 즐거워하는 건 츠쿠모가미(付喪神)시절부터 익숙한 일이었다. 잘 찾지 않는 곳은 조금만 관찰하면 빤히 보였다. 다가오는 이들과는 티나지 않게 거리를 벌렸다. 그를 대체할 존재는 많았기에 쉬이 원하는 거리를 만들 수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어울리면 더 기쁘겠지만, 만약을 그는 버리지 못했다.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그가 자신의 존재를 혼마루에서 지웠을 무렵, 원치 않았던 사건이 터졌다.
혼마루의 결계가 무너지며 사위에서 적이 들이닥쳤다. 그래서 먼저 나섰다. 오래전부터 정해두었던 결말을 맞이하러 입을 열었다.
"싸우는 건 좋아하니 내가 최후미를 맡도록하지. 이래보여도 최고 연마이니 먼저 도망치게."
괜찮냐는 말에 그저 호전적으로 웃으며 문제없다고 대답했었다. 미안해하면서도 미련없이 후퇴하는 모습에 역시 준비를 잘했다고 여겼다. 아주 조금 섭섭함이 생겼었지만, 곧 마음에서 털어냈다. 부러지더라도 슬퍼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좋았다.
"역시 슬픔보다는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한게 좋지!"
이 혼마루에서 유일하게 비틀린 톱니바퀴가 그였다. 그러니까 그가 사라지더라도 영향이 없을 것이다. 슬픔보다 후련함이 밀려왔다. 웃음이 터졌다. 이런 마지막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바라던 바다.
무아지경으로 싸우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두가 떠난 게이트의 앞이었다.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은 게이트에서 '동료'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져 허전하던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그러니까 괜찮았다. 소중한 모두를 지키는 것이니 그는 그걸로 만족했다.
모두 떠난 게이트의 앞에서 이미 너덜해진 옷자락을 잡아 뜯으며 붉게 물든 하얀 이가 으르렁거린다.
"홍백으로 물든 나를 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지."
호흡이 거칠었다. 흘러내린 피로 눈도 똑바로 뜨지 못했다.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간신히 서있으면서도 그의 투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에 질린듯 적이 오히려 몸을 사렸다. 소리도 멀어 어디쯤에 적이있는지 가늠하는 것도 어려웠다. 너무 오래 혼자 싸웠다. 부여받은 인간의 몸이 더이상은 무리라고 비명을 지른다.
그에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적을 죽인다. 그의 머릿속은 그것만으로 가득했다.
달려드는 단도를 베었다. 지칠대로 지친 몸이건만 살기에 군더더기 없이 반응했다. 단도와 함께 달려들던 타도는 그 반동을 활용해 베며 짓밟았다. 대신 타도에 허벅지를 당했다. 기동력을 순식간에 빼앗겼다. 역시 체력이 한계인 탓이 크리라.
가장 난적 대태도가 달려들었다. 마지막 놈이다. 더 이상의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저게 마지막이다. 허벅지를 당해 회피는 불가능하다. 막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그럼 먹이를 줄 수 밖에.
그는 자기 몸으로 대태로의 검을 받았다. 막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밀리려는 몸을 지탱하며 대태도의 심장을 노렸다. 마취되었던 고통이 비명을 지르며 스러지는 대태도의 기척에 폭발하듯 전신을 유린했다. 절규할 체력조차 없어서 다행이라여기며 쓰러졌다.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끔뻑여 게이트를 바라보니 완전히 닫힌 걸 확인했다. 자신을 뺀 모두가 무사히 빠져나간거다. 달성감에 비실비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두번다시 사랑하는 이들을 보지 못하겠지. 행복하게 웃는것도 볼 수 없으리라. 하지만 지켜냈다. 모두모두 지켜냈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곤란한걸… 이러면 옷이 붉기만해서… 학으로는 보이지 않지 않나…"
아, 그럼 자신이 츠루마루 쿠니나가인것도 모르려나? 그건 그것 나름 괜찮지 않겠냐며 작게 웃었다. 사랑스러운 장소에서 모두를 지키며 사라진다라… 그것도 좋지 않은가. 도검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츠루마루 쿠니나가라는 세계가 무너지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는 새까맣게 변해가는 의식의 끝을 붙잡고 사랑하는 세상에 홀로 작별을 고했다.
안녕히…….
미다레 > 이치고 > 츠루마루로 나름 시점이 이동됩니다
츠루가 잘못했어요.[아득한 눈]
진짜 츠루가 잘못했어요.[하얀 눈]
진짜 가필이라 나중에 수정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지금 당장은 수정이 없을거에요.[아득한 눈]
이상입니다, 재미있으셨으면 좋겠네요!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일단, 츠루마루에게는 미안합니다.[하얀 눈]
내 최애캐 중 가장 험하게 굴려도 덜 미안한 최연장자가 너라서 그랬어.[아득한 눈]
도검 파괴 묘사가 있습니다.
진짜 유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상냥해서 멱살잡고 흔들고 싶어지는 뭐 그런 내용이라고 생각하며 썼습니다.
나름 깔끔하게 끝냈다고 생각합니다.
덤으로 그냥 단편이고요.[…]
찌통의 희생양[…]은 라엔이에게 번호로 골라달라고 했습니다.[아득한 눈]
원래 다 그런거에요.[아득한 눈]
그럼 시작합니다.
혼마루(本丸)의 결계가 부서지고 적이 침입한 공습이 벌어진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이 혼마루의 피해는 태도 한자루가 부러졌을 뿐이라 다행히도 금방 충격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그 태도가 누구였더라? 단도는 공습 전, 후로 조금도 변하지 않은 혼마루의 풍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시에는 너무 무섭고 괴로웠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어떻게? 어째서? 가슴한켠이 술렁인다. 잃어버린게 있지만 당장 떠올리지 못하는게 너무나도 불길했다. 산산히 부서진 태도의 이름이 뭐였더라? 마지막을 게이트의 앞에서 적과 동귀어진 했으리라 여겨졌던 그 태도가 누구였더라?
왜 다들 벌써 그 태도를 잊은 것 같지?
기묘한 자문에 이어지다 자신의 감정도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째서 '슬픔'이 아니라 '두려움'이 먼저였지? 도검인 이상 부서지는 건 당연히 각오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만난 형제와 동료를 잃는다면 아주 슬플거라고 생각했다. 당장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왔으니까.
그런데 왜 그렇지 않은거지?
마음 한 켠이 어지럽게 술렁인다. 그런 그를 걱정한 것인지 형제인 단도가 괜찮냐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막상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심란하다고 했더니 그러냐며 고민이 있으면 말하란다. 알았다고는 대답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조금 한적한 곳에서 생각하면 더 잘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움직이자니 정원풍경이 보였다.
시야를 가득 메운 하얀색에 드디어 그 태도의 이름이 떠올랐다.
츠루마루 쿠니나가(鶴丸 国永).
멀고도 하얗던 아름다운 태도였다. 그리고 어떤 이였더라?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온 태도였다. 전력도 적당히 갖춰졌을 때, 안정적으로 육성에 들어갔던 이였으니까. 한번쯤 같은 부대가 되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떠오르는게 없었다. 하얗고 아름다웠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래, 싸우는 걸 좋아한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자청해서 남았었다.
이 혼마루가 만들어진지도 어언 3년. 그 중 츠루마루와 함께 했던 시간은 못해도 1년 반이리라. 그런데 어째서 기억나는게 그것밖에 없지? 어떤 얼굴이었는지, 목소리가 어땠는지, 하다못해 눈동자색이 어땠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오한이 일어났다. 불안감과 죄책감이 스멀스멀 몸을 잠식한다. 덜덜 떨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방을 찾았다. 이런건 자신만이 아닐것이다. 분명히 그 자리가 여전히 남아있을거다. 정리해야겠다는 말을 누구도 하지 않았으니까.
한참을 달려 찾아낸 건 서고와 붙어있는 작은 방이었다. 이런 곳에 방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본채에서 까마득히 먼 곳이었다. 근육뇌가 많은 혼마루라 서고를 찾는 이도 거의 없었으니 더욱 접촉할 기회가 없었으리라. 다시 머릿속이 어지러워진다. 그래도 들어가기 앞서 길게 심호흡을 했다. 떨리는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서늘한 냉기를 머금은 방안에는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일상용품인 이불과 베개조차도 없었다.
목이 매여왔다. 눈 앞의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러면 차라리 편해질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흐뿌연 시야조차 혐오스러워 입술을 짓이겼다.
울 시간에 조금이라도 찾아보자, 찾으면 나올지도 모른다. 자신의 방안에도 남기지 않은 그 태도의 '흔적'이 어딘가에 있을 거다.
미다레 토시로(乱 藤四郎)는 그날부터 홀로 보물찾기를 시작했다. 태도가 실수로 남겼을 '작은 흔적'을 찾아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들어 올때는 모르지만, 떠나면 빈자리를 크게 느낀다는 말이다. 2주 전 한 자리가 비어졌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현실'이 여기에 있다. 이제와서 빈자리를 알아차린 건 몇이나 될까? 누군가를 찾는 듯 움직이는 동생이 없었다면 그도 느끼지 못했을 빈자리다. 긴 시간 같은 곳에 있었다. 인연이 깊다면 나름 깊은 인연이리라. 그럼에도 그는 빈자리를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처음에는 알았을지 모르지만, 며칠지나지 않아 완전히 잊혔다. 신기할 정도로 깔끔하게 잊었다.
이치고히토후리(一期一振)는 기이한 상실감을 뒤늦게 느꼈다. 이제서야 알아 버렸다.
사라진 태도가 읊어주던 이력을 느릿하게 떠올려본다. 산죠(三条)파와 인연이 있었고, 아다치(安達)가문으로 옮겨져 히게키리(髭切)와도 안면이 있다 하였다. 오다(織田)의 손에 넘겨졌던 전적도 있으며, 이후 잠시 신사에 봉안되었다가 다테(伊達)가문으로 옮겨졌었다고. 마지막 정착지가 바로 이곳 황실인 것 같다며 유쾌하게 말했었다.
그리 스친 인연이 수두룩한데 어째서 지금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을까? 이 혼마루에 오기 전, 그가 알던 '그'는 유쾌하고 잔정이 많은 이였다. 공허한 그 창고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나 들었던 이야기를 잔뜩 풀어놓으며 모두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주던 이였다.
여기에서는 어땠지?
그는 이상할 정도로 기억이 희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나도 희미했다. 하얗고도 아름다운 이였다. 눈동자는 그와 비슷하지만 더 투명한 금빛이었으리라. 얼핏보면 바람에 흩어질 듯 아련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강하고 단단한 이였다. 대화하기도 편해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었다.
혼마루에서도 처음에는 평범했던 것 같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지? 기억이 애매했다. 그럴 수 없음에도 그랬다. 오한이 일었다. 철렁하고 내려앉은 심장이 지금의 사태를 경고한다. 무엇을 향한 경고인지도 모른채 마냥 불안함을 안겨준다.
그가 산죠파를 찾은 건 그런 연유였다.
"츠루마루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여러가지 의미를 담아, 돌려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어 결국 직설적으로 물었다.
초승달을 담은 밤하늘빛 눈동자가 의문을 그리더니 곧 살포시 웃었다. 그 미소가 조금 무구하고 순수해보여서 더욱 불길함을 느꼈다.
"츠루라면 곧 올게다. 그런 아이니 말이다."
"츠루마루라면 냉큼 돌아올거에요."
"츠루라면야……."
"앗하는 사이 오겠지! 카하하하!"
"그 이가 그리운가 보군, 내 기원이라도 올리지!"
가벼운 대답들에 그는 억지로 표정을 폈다.
역시 슬퍼하는 모습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한없이 가볍게 곧 올거란다. 이번에 올 츠루마루는 과연 첫번째 츠루마루와 같을까? 그걸 비교할 정도로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 스멀스멀 마음에 앙금이 가라앉았다.
그는 결국 웃으면서 그렇겠죠, 라는 대답밖에 돌려주지 못하고 자리를 피했다.
그는 황실에 함께 있었던 이들 말고 '그'가 가장 오래 함께 있었다던 오오쿠리카라(大倶利伽羅)를 찾았다.
산죠파에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오오쿠리카라의 눈동자가 조금 가라앉았다. 어쩐지 시원섭섭해보이는 눈빛에 다시금 무거운게 내려앉는다.
"…… 멋대로 하겠지."
어렵게 말을 이었던 것 같다. 간신히 홀로 남았을때 그는 자신의 안일함에 한탄했다.
잔정이 많은 이였다. 언제나 유쾌했기에 대화하기도 편했었다. 그런 이가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으려고 했다. 친한 인연과도 멀어져서 그렇게 있었다. 의도적이었는지 아닌지, 솔직히 지금에서는 모를일이다. 이미 끝나버렸으니까,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부러졌으니까.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그는 이 혼마루의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어땠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간신히 그가 떠올린 건 서고 쪽에 종종 보였던 하얀 그림자였다. 어쩌면 그쪽에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바람을 안고 서둘러 서고로 향했다.
그가 그곳에서 본 건 츠루마루의 명패가 걸린 텅빈 방안에서 홀로 숨죽여 울음을 참는 미다레였다.
"…… 찾았니?"
"아니, 없어. 어디에도 없어. 진짜 하나도 없어. 그렇게 찾았는데…… 없어."
엷은 파란 눈동자 가득 들어찬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린다. 억지로 참던 흐느낌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미다레가 찾은 건 흔적이었다. 추억의 조각이었다.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어떤 존재였는지 기억하려 했었다. 슬퍼하지 못한 자신이 혐오스러워 어떻게든 되살리려 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사니와(審神者)조차 다음 츠루마루 쿠니나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스스로 그런 위치를 차지한거다. 왜 그랬을까? 왜 버려지기 쉬운 자리를 차지했을까?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자신의 희생을 가정해서 움직…… 이치고히토후리의 이어지던 추론이 멈췄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 이외에 어떠한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그리도 쉽게 그렇게도 쉽게 남는 걸 선택했던 거다. 습격때, 그때를 빼면 츠루마루가 먼저 나서서 뭔가를 한 적이 없었다. 싸우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그때 스스로 말했을 뿐이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치형…… 우리 너무 늦었다, 그지?"
후둑 떨어지는 눈물이 옷자락에 얼룩을 만든다.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늦어버렸다. 잃어버린 다음에야 전부 늦은거다. 어떻게해도 돌아오지 않는거다. 너무 뒤늦게 알아버렸다.
다른 무엇보다 비통한 건,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모두들 '다음' 츠루마루의 이야기를 한다. 서둘러 올거라며 그와의 '재회'를 기대한다. 사니와조차 그러는데 무슨 말을 하랴.
처음부터 희생하려고 스스로 인연을 흔적을 추억을 모두 버리고 잊혀질 준비를 했다. 기어코 그걸 직접 실행했다. 그걸 파헤치면 그의 각오와 신념을 무시하는거나 마찬가지지 않는가. 절대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어느 정도의 각오인지 가늠되지 않아, 그저 비통하게 우는 미다레였다. 그는 그런 미다레를 안고 다독이기만 했다. 이 이상은 자격이 없었으니까. 긴 인연이 있음에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자신이 한심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치, 이치형. 나, 츠루씨가 부러지고 슬프지 않고 무섭기만해서… 그래서 이상해서… 츠루씨를 떠올리려했는데, 떠오르지 않아서…… 동료였는데 기억나지 않아서…… 내가 너무 혐오스러웠어."
"… 미다레는 스스로 그렇게 느꼈구나."
"응, 그래서 흔적을 찾았는데 너무 늦어서… 내가 슬퍼해도 되는 거야?"
"너만큼은 슬퍼해도 된단다. 츠루마루님이 아무도 모르게 하려던 걸 스스로 알아냈잖니."
"이치형……."
"다만, 이건 둘만의 비밀이란다. 츠루마루님의 의지를 무시하면 안되니까. 대신 우리만큼은 기억하자. 절대 그분을 잊지 말자."
점점 커지는 미다레의 통곡을 들으며 그는 길게 호흡을 골랐다. 차오르는 눈물을 억눌렀다. 자기혐오와 자책으로 기억하는 것도 츠루마루의 의지를 무시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스스로 허락할 수 있는건 이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둘은 홀로 떠난 학을 그리며 울었다. 아무도 몰래, 그가 남긴 유일한 흔적 안에서.
"여, 츠루마루 쿠니나가다. 나 같은 게 갑자기 와 놀랐나?"
그곳은 평범한 혼마루였다. 평범하게 모두 힘을 합쳐 운영해 나갔다. 모두 착하고 건실한 녀석들 밖에 없었다. 온지 얼마되지 않은 그는 끼여들 곳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와 인연있는 이들도 재각각의 자리에서 늘 즐거워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주위에 있는 이들은 대게 형제와 친인을 만난게 즐거워한다. 그래서 그는 가장 바빠보이는 이치고히토후리에게 물었었다.
"자네, 지금 굉장히 바빠보이는데 괜찮은가?"
"드디어 동생들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는 걸요! 매일이 즐거울 따름입니다."
해맑게 웃으며 그리 대답하는 걸 보며 내심 결심했다. 희생양이 필요하다면 자신이 되겠노라고. 깊은 인연은 몇 없었고, 대게 스쳐지나갔었다. 이별에는 익숙한 편이었고, 홀로 삭히는 것도 잘하는 것이었다. 파란만장한 인생(刃生)이 이런곳에 도움이 될 줄은 몰랐었다.
멀리서 지켜보며 혼자 즐거워하는 건 츠쿠모가미(付喪神)시절부터 익숙한 일이었다. 잘 찾지 않는 곳은 조금만 관찰하면 빤히 보였다. 다가오는 이들과는 티나지 않게 거리를 벌렸다. 그를 대체할 존재는 많았기에 쉬이 원하는 거리를 만들 수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어울리면 더 기쁘겠지만, 만약을 그는 버리지 못했다.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그가 자신의 존재를 혼마루에서 지웠을 무렵, 원치 않았던 사건이 터졌다.
혼마루의 결계가 무너지며 사위에서 적이 들이닥쳤다. 그래서 먼저 나섰다. 오래전부터 정해두었던 결말을 맞이하러 입을 열었다.
"싸우는 건 좋아하니 내가 최후미를 맡도록하지. 이래보여도 최고 연마이니 먼저 도망치게."
괜찮냐는 말에 그저 호전적으로 웃으며 문제없다고 대답했었다. 미안해하면서도 미련없이 후퇴하는 모습에 역시 준비를 잘했다고 여겼다. 아주 조금 섭섭함이 생겼었지만, 곧 마음에서 털어냈다. 부러지더라도 슬퍼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좋았다.
"역시 슬픔보다는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한게 좋지!"
이 혼마루에서 유일하게 비틀린 톱니바퀴가 그였다. 그러니까 그가 사라지더라도 영향이 없을 것이다. 슬픔보다 후련함이 밀려왔다. 웃음이 터졌다. 이런 마지막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바라던 바다.
무아지경으로 싸우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두가 떠난 게이트의 앞이었다.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은 게이트에서 '동료'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져 허전하던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그러니까 괜찮았다. 소중한 모두를 지키는 것이니 그는 그걸로 만족했다.
모두 떠난 게이트의 앞에서 이미 너덜해진 옷자락을 잡아 뜯으며 붉게 물든 하얀 이가 으르렁거린다.
"홍백으로 물든 나를 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지."
호흡이 거칠었다. 흘러내린 피로 눈도 똑바로 뜨지 못했다.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간신히 서있으면서도 그의 투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에 질린듯 적이 오히려 몸을 사렸다. 소리도 멀어 어디쯤에 적이있는지 가늠하는 것도 어려웠다. 너무 오래 혼자 싸웠다. 부여받은 인간의 몸이 더이상은 무리라고 비명을 지른다.
그에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적을 죽인다. 그의 머릿속은 그것만으로 가득했다.
달려드는 단도를 베었다. 지칠대로 지친 몸이건만 살기에 군더더기 없이 반응했다. 단도와 함께 달려들던 타도는 그 반동을 활용해 베며 짓밟았다. 대신 타도에 허벅지를 당했다. 기동력을 순식간에 빼앗겼다. 역시 체력이 한계인 탓이 크리라.
가장 난적 대태도가 달려들었다. 마지막 놈이다. 더 이상의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저게 마지막이다. 허벅지를 당해 회피는 불가능하다. 막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그럼 먹이를 줄 수 밖에.
그는 자기 몸으로 대태로의 검을 받았다. 막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밀리려는 몸을 지탱하며 대태도의 심장을 노렸다. 마취되었던 고통이 비명을 지르며 스러지는 대태도의 기척에 폭발하듯 전신을 유린했다. 절규할 체력조차 없어서 다행이라여기며 쓰러졌다.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끔뻑여 게이트를 바라보니 완전히 닫힌 걸 확인했다. 자신을 뺀 모두가 무사히 빠져나간거다. 달성감에 비실비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두번다시 사랑하는 이들을 보지 못하겠지. 행복하게 웃는것도 볼 수 없으리라. 하지만 지켜냈다. 모두모두 지켜냈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곤란한걸… 이러면 옷이 붉기만해서… 학으로는 보이지 않지 않나…"
아, 그럼 자신이 츠루마루 쿠니나가인것도 모르려나? 그건 그것 나름 괜찮지 않겠냐며 작게 웃었다. 사랑스러운 장소에서 모두를 지키며 사라진다라… 그것도 좋지 않은가. 도검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츠루마루 쿠니나가라는 세계가 무너지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는 새까맣게 변해가는 의식의 끝을 붙잡고 사랑하는 세상에 홀로 작별을 고했다.
안녕히…….
미다레 > 이치고 > 츠루마루로 나름 시점이 이동됩니다
츠루가 잘못했어요.[아득한 눈]
진짜 츠루가 잘못했어요.[하얀 눈]
진짜 가필이라 나중에 수정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지금 당장은 수정이 없을거에요.[아득한 눈]
이상입니다, 재미있으셨으면 좋겠네요!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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