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재미있어서 쓰는건데, 쓸수록 비참해져서 미안해지네요.
미안하다.[하얀 눈]
고의는 아니야, 그냥 내가 재미를 쫓다가아아아아아.[하얀 눈]
시작하기에 앞서, 코기츠네마루와 츠루마루 커플링 묘사가 있습니다아아아아!
유의해주세요오오오오오오오!
그럼, 시작합니다.[아득한 눈]
누구지?
무서워?
그리워?
나랑은 달리 새하얀 존재다.
다가가면 더러워질거야.
-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모두, 내가, 내 손, 빨게, 더러워.
내가, 죽어야, 망가져야, 버려져야 했어.
- 네가 그러면 저들이 더 슬퍼할텐데도?
저들?
- 그래, 저들. 지금 네 옆에 있는 미츠도령이 보이나?
미…… 츠…… 도령……? 왜 울어?
모두, 왜?
내가, 나빠?
- 그래, 네가 나쁘다.
내가, 있어서?
- 틀렸다.
내가, 바라여서?
- 그것도 틀렸다.
그럼 왜?
나, 내가, 나쁘니까, 필요없으니까?
- 전부 틀렸다.
어째서야?
왜 모두 슬퍼해?
여긴 슬프지 않아야 하잖아.
그 아이도, 아가도, 모두 그랬었는데?
어째서?
내가 있어서?
내가 함께 있길 원해서?
틀렸다면, 어째서야?
왜 슬퍼해?
왜 울어?
왜?
- 넌 이미 답을 안다. 그렇지?
아냐.
- 아니, 그게 정답이다.
그럴 리 없어.
- 틀렸다.
내가, 어떻게, 날, 어떻게,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ㅇㅏㄴㅑ , 아니잖아.
- 틀렸다.
아니야…….
- 네가 나빴다. 전부 틀린 네가 나빠.
나, 행복해져도, 괜찮아?
모두, 용서해줘?
허락해줘?
- 넌 이미 안다.
난, 안돼.
안돼, 내가, 어떻게……
못해, 안돼, 못해.
아직, 못해.
- 그렇구나. 그럼 지금은……
지금은?
- 널 위해 울려므나.
따뜻한 손길이 뺨에 닿았다.
아플정도로 상냥해.
무서워.
용서받는것 같아.
허락받는것 같아.
무서워.
무서운데 포근해.
아파.
숨쉬는게 힘들어.
벗어나기 싫어.
나는 아직 용납할 수 없는데…….
용서해버릴 것 같아.
•
•
•
520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4시간이나 지났는데 아직인가…
521 : 분노나눔
정리하러 돌아왔다.
지금 츠루마루는 신력 안정을 위해 쉬는 중.
츠루님이 와주셔서 정말 다행이다.
우리만이었으면 근본적인 문제점을 못알아차렸을거다.
진짜, 다행이다.
522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ㅇㅋ, 들을 준비는 끝났다.
어서 말해봐.
523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문제점?
어떤 문제점이 더 있는거지?
524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츠루님은 아직 계시는 거야?
525 : 분노나눔
아직 계셔.
잠시만 정리할게.
1. 츠루마루는 자신이 더럽다고 생각하고,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함.
2. 지금 행복하길 바라는 것 조차도 죄악이라고 여김.
3. 용서받고, 여기에 있어도 되며, 있어주길 원한다는 걸 앎.
4. 그렇기에 스스로를 더욱 용납할 수 없음.
5. 용서받길 원하는 자신을 증오, 한다고 봐도 ㅇㅋ.
이게 츠루마루 심리의 전재.
설마하니 스스로 용서받으면 안된다고 생각할 줄 몰랐었다.
우리가 이미 받아줬다는 걸 알았기에 더욱 스스로 용납하지 못할 줄 몰랐었다.
쉽게 생각한 적 없지만, 그래도 훨씬 깊었다.
526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었던 거잖아!!!!
츠루우우우우우우!!!!orz
527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조금 발광하고 왔다.
츠루마루우우우우orz
528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이거,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 거야!?
주위에서 아무리 부둥거려도 스스로 용서할 수 없다는거잖아?8ㅁ8
츠루우우우우orz
529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명령이라해도 실행한건 자기니까, 용서할 수 없다는거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어떻게해야해?
진짜 그쪽 츠루마루 어떻게해야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 들여줄거야???
530 : 분노나눔
>>529
그게 우리의 과제다.
츠루님이 츠루마루와 동조해서 기억을 읽을 수 있었다는데……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의 짓을 당했으니, 무조건 최악을 상정하는게 좋을거라고 하셨다.
실질적으로 츠루마루를 얽매고 있던 언령은 두가지로,
하나는 '그 여자'의 '망가뜨려주겠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츠루마루의 손에 부러진 이들의 '살아남아라'.
모두 츠루마루의 본의가 아니라는 걸 알았고, '그 여자'의 진의도 알았다.
그래서 '그 여자'에게 지지마라고, 살아남아라고 했다.
츠루마루는 그 유언을 져버릴 수 없었다.
아무리 망가질거 같아도, 망가질 수 없었다.
지면 안되니까, '그 여자'에게 지면 다른 이들을 배신하는 거니까.
그 부탁조차 져버리는 것이 되니까…….
끝내고 싶지만, 끝내지 못하고 억지로 자신을 유지했다.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어왔다.
망가지지 않고, 지금까지 버텼던 유일한 지푸라기…….
안되겠다.
머리 좀 식히고 온다.
531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그렇게해.
이쪽도 머리 좀 식힌다.
532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말이 안나와.
어쩌지?
533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532
너도 쉬어.
머리를 좀 식히고, 식힌 후에……
1차적 목표를 정하자.
츠루마루가 스스로 용서하기? 용납하기?
534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지금까지 어째서 도해와 관련된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고민했는데……
응, 말할 수 없었던거였네.
말하지 못하는 거였네.
535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진짜 어떻게 해야좋을지 모르겠다.ㅇ<-<
츠루우우우우우…… ㅇ<-<
536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일단 보수로 가자.orz
537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보수우우우우우orz
•
•
•
어린 아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잠든 하얀 이를 보며 그는 긴 한숨을 삭혔다.
너무 울어서 빨갛게 물든 눈가를 식혀주고 싶지만, 그들을 도우러 온 하쿠가츠의 '츠루'가 다가가면 지금보다 더 위태로운 상태가 된다고 경고했다. 지금 츠루마루는 3m내의 신기를 '흡수'하는 상태기에 그 안으로 들어가면 이미 주입된 '신기'와 섞여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고 했었다. 츠쿠모가미로서의 자신을 잃고 망량이 되거나 원령이 되리라는 말에 이렇게 세 걸음정도 떨어진 거리 밖에서 하염없이 바라만 봤다. 단 세 걸음. 그 거리가 이렇게나 고통스러울 줄 몰랐다. 지금이라도 끌어안고 이젠 괜찮다고, 쭉 함께라며 다독이고 싶건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독이다.
덕분에 '츠루'와 그의 문답 아닌 문답에 슬퍼하고 괴로워하던 이들은 뭐든 해야겠다며 이리저리 떠났고, 도저히 움직이지 못하던 이들도 츠루마루를 위해 방을 준비하겠다며 어렵게 자리를 비웠다. 남은 건 '츠루'와 그런 그를 부축한 하쿠가츠의 '코기츠네' 그리고 이 혼마루의 주인인 '호우'가 전부였다.
"지금 츠루마루는 어떤 상황입니까."
먼저 입을 연건 호우였다.
지친 듯 품에 푹 안긴 츠루를 토닥이던 코기츠네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하얀 손가락이 꾹꾹 미간을 누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표정을 풀었다. 이 혼마루의 코기츠네마루와는 또 전혀 달랐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저 코기츠네는 오로지 자신의 짝인 츠루를 위해 따라 왔으니까.
코기츠네는 다른 사니와의 영력으로 구현된 존재. 그렇다고 츠루처럼 같은 '츠루마루 쿠니나가'인 것도 아니다. 요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츠루마루에게 치명적인 ‘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존재다.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 신기를 죽이고 기미를 감췄다. 오로지 츠루가 ‘쉴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 숨죽이고, 무엇보다 소중한 짝을 끌어안은 채 그만을 바라본다.
여우가 자기 짝을 위해 헌신하는 건 알았지만, 이만큼일지는 몰랐다. 보는 사람까지 조금 낯간지러운 애정이다.
아니 모든 남사들은 정이 깊었다. 귀찮다고 하면서도 힘겨워하는 이를 두고 보지 못했다. 이기적이기보다 이타적인건 말석이라도 신이라서 일까. 그걸 알기에 그 마음이 안타까워졌다. 조금이라도 더 이기적이었다면, 그랬었다면……. 안타까움에 입술을 짓이기며 호우는 자새를 바로 잡았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츠루가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금빛 눈동자가 그의 내부를 훑어봤다. 시험받는 느낌이 들었다. 내부를 까발려서 확인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 츠루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자내의 판단은 옳았네. 자신의 영력으로 흩어지던 신기를 잡고 매운 건 적합한 처방이었네. 다만, 저 아이에게는 그게 독이었을 뿐."
'독'이라는 불온한 울림에 호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옳은 판단이라는 말과 '독'이었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뒤섞인다. 상반된 말이 함께 쓰였다. 밑도 끝도 없는 불안감에 휩쌓였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가 그를 붙잡았다. 그래서 츠루마루의 상태는 어떻다는 거지? 그가 잠시지만 어질하던 정신줄을 간신히 잡자니, 다시금 혼돈으로 몰아넣는 말이 이어졌다.
"저 아이의 신기는 흩어지던 상태였다. 혼마루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한줌 남아있을까 말까였을 테지. 신으로서의 근본이 부정되어 신기의 재생도 무리인 상황에서 주입된 영력이다. 그건 간신히 남아있던 신기가 흩어지는 걸 가속화시켜 '츠루마루 쿠니나가'로서의 저 아이를 죽이는 '독'이 되었다."
"그, 그럼 제가 잘못한 게 아닙니까!"
"물론 그대로 뒀다면 저 아이는 저 껍데기조차 유지할 수 없었을터……. 허나 그대가 저 아이를 '츠루마루 쿠니나가'라 불렀다. 이름의 '언령'이 원래 강하다 하여도 그대가 아니었다면 저 아이에게 닿지도 못했겠지. 특출난 그대의 '부름‘ 저 아이를 잡아 '츠루마루 쿠니나가'로 유지한 게다."
무기질 적으로 말갛던 금빛눈동자가 온기를 머금고 다정히 웃는다. 그대가 저 아이를 구했노라, 그리 말해준다. 한치의 거짓도 없는 선언을 듣고서야 호우는 아주 조금 안도했다.
그 안도는 이어진 말에 순살되었다. 다정하지만, 결코 인간이 아닌 존재는 애처로움을 가득 담아 한없이 상냥한 목소리로 그의 마음에 조금씩 상처를 준다. 손톱으로 힘주어 긁어내듯 아릿한 상처를 꾹꾹 새겨 넣는다. 지금 자기만 이 이야기를 들어서 다행이라고 절절히 여길 정도로. 상냥하지만 잔혹한 '신'은 참혹한 진실을 이야기했다.
"신기가 거의 흩어진 저 아이는 저와 비슷한 상황, 비슷한 상태, 비슷하게 망가져 떨어지고 부서지던 인간의 혼을 받아들였다. 정확히는 동조하여 융합한 게지."
순간 그는 상황이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머릿속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신이 자아를 잃을 정도의 사건이었다. 그 비슷한 사태를 인간이 겪었었다? 스스로 부정하고, 거부하고, 용서받는 것조차도 용납할 수 없어서 자신의 목을 옥죄며 실낱같은 숨결만을 억지로 허락했다고? 그런 무도한 짓을 한 인간이 둘이나 존재한다고? 그런 존재가 둘이나 있다고!?
이제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던 말조차 나오질 않았다. 그런 그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츠루는 마치 노래하듯 참혹함을 읊었다.
"목소리를 빼앗기고, 이름을 잃고, 존재를 부정당하고, 누구보다 완벽하게 '망가뜨려주겠다'는 언령과 너만큼은 '살아남아라'는 언령이 얽히고, 자신을 향한 증오까지도 닮았던 둘은 불안정하기에 하나가 되었다."
가엽고 가여운지고.
그런 목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살아있는 인간이 지독한 짓을 당했다. 신이 자아를 잃을 정도로 참혹한 짓을 당했다. 어느 쪽이든 충격적이었지만, 인간의 혼과 신이 융합되었다는 말을 이길 수 없었다. 융합은 대등하기에 벌어진 사태다. 대등할 수 없는 저울이 추가 부서져서 대등해져 버린 거다. 상정했던 최악의 가정을 뛰어넘는 말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해결책의 편린조차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끝모를 분노가 머릿속을 하얗게 점령했다.
그는 살의에 가까워진 분노를 억지로 가라앉히려 길게 심호흡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애써 냉정을 찾으려했지만, 쉽지 않았다.
한층 가라앉은 금빛 눈동자가 살짝 웃었다.
“호우여, 이쯤에서 끝내도 괜찮네. 무겁고, 어렵고, 더러운 이야기지 않나?”
“아닙니다, 계속해 주십시오.”
“자네가 저 아이를 안고 갈 수 있겠나? 이 정도로 흔들린 자네가?”
“이, 정도, 인 겁니까?!”
츠루는 대답 없이 그저 온화하게 웃었다. 무슨 생각을 할 수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포기해도 된다고 말한다. 무거우니 내려놓아도 된단다. 어려우면 던져버려도 된단다. 더러우니 피해가란다. 감당할 수 없으면 넘기라 한다.
호우의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살기로까지 번졌던 감정이 순식간에 식었다. 잠시 감정에 휘둘려 중요한 걸 잊었다. 츠루는 츠루마루가 꾸준히 상상보다 더 참혹한 일을 겪었다고 누누이 말했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내용은 ‘고작’이 맞으리라. 그는 지금 중요한 걸 떠올렸다. 가장 중요한 것, 그건 츠루마루의 상태다. 갈기갈기 찢겨진 츠루마루를 보듬어주는 것. 지금 느꼈던 분노는 나중으로 접어야 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흐트러졌던 호흡을 진정시켰다.
“실례했습니다. 부디 계속해주시길.”
“호오, 감당하려는 겐가?”
“우리 ‘츠루마루’입니다. 하쿠가츠님께 모실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도 없으면서?”
“자신이 필요한 문제가 아니지요. 저는, 우리는, 스스로 절망에 갇힌 츠루마루를 밖으로 불러 낼 겁니다. 얼마가 걸려도, 언제가 되더라도. 해낼지 못해낼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렇게 할 겁니다.”
완고한 결의를 담은 ‘말’이다. 정리된 말은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각오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단지 의지만으로 ‘언령’이 될 정도였으니까. 그럼에도 츠루는 여전히 관조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단순히 각오만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이쯤에서 끝날 문제였겠지만……. 츠루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저 아이는 불안정한 상태로 너무 오래있었다. 신도 인간도 아닌 상태로, 망량이 되지도, 사라지지도 않았지. 스스로 갉아먹던 절망 속에서도 ‘살라’는 ‘언령’에 묶여 망가지지도 못했다. 현상유지만으로도 굉장한 상태였지.”
이윽고 새하얀 손이 그를 향했다. 그 행동을 따라하듯 그가 오른쪽 손을 들어 저를 가리킨다.
붉은 기가 감도는 금발, 자신의 얼굴을 향한 오른손의 손톱은 조금 날카로웠고 선홍과 감청으로 번갈아 물들어 있다. 유독 큰 동공의 그는 어딜봐도 45세로 보이지 않는다. 선조회귀로 순수요괴에 가까워 외견상 나이를 거의 먹지 않아서다.
"다른 이의 영력이었다면 버티지 못해 사라지거나, 괴이가 되었거나, 완전히 망량이 되었더나…… 최악의 상태가 되었겠지."
그가 '무엇'인지 읽어낸 말간 금안에 상냥함이 어렸다. 아직 10대후반의 외견인 그를 위로하듯 조용조용 말을 이었다.
"올곧음과 바름을 지켜보는 존재답게, 자네의 영력과 언령은 새로운 지지대가 되어 저 아이를 '츠루마루 쿠니나가'로 유지한게다. 다만 근원 신기는 이미 흩어지던 상태였으니 오래 버티지 못했을테지. 그러니 그걸 채우기 위해 내가 왔다."
"근원 신기를 넘겨주는건 괜찮은 겁니까?"
근원 신기는 말 그대로 도검남사가 존재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리 다른 분령보다 본령에 근접한 츠루라할지라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닐거다. 츠루에게 피해는 없을까? 혹여라도 또 다른 '희생'이 되는건 아닐까? 츠루마루에게 새로운 '짐'이 생기는 게 아닐까?
무심코 츠루의 걱정보다 츠루마루의 걱정이 커졌다.
호우는 천천히 자신의 심경을 입에 올렸다.
"죄송합니다. 츠루마루를 위해 하신 행동임에도 츠루님의 희생이 츠루마루를 더 힘들게하지나 않으려나는 걱정을 해버렸습니다."
"솔직하구만. 굳이 표현하자면 하루에 헌혈을 2ℓ가량 하는것과 비슷하지."
"치사량 초과입니다만!?"
"나흘 정도는 주입을 해줘야만 한다네."
"진짜 괜찮으신겁니까!?"
"내일이면 멀쩡해지네."
지금은 전혀 괜찮지 않다는 말을 태연자약하게 던지며 뒤에서 끌어안은 모양새로 있는 제 짝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논다. 그에 심기 불편해보이던 코기츠네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이 혼마루 상황에 어울리지 않을정도로 알콩달콩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지금 츠루의 말은 자기 살을 발라 츠루마루에게 먹이는 걸로도 부족해서 자기 뼈를 뽑아 심어준다는 거였으니까.
호우를 책하지도 않고 저가 잘났다고 뻐기지도 않았다. 별게 아닌건 아니지만, 못할 건 없다는 형태였다. '츠루마루 쿠니나가'의 성향이 원래 이런지도 모른다.
그런 상냥하지만 공정한 신이 그에게 묻는다.
"그럼 호우여, 그대는 저 아이를 보듬을 각오는 되었나?"
"저의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못하겠다면 저 아이는 우리가 맡겠네. 우리 주인이라면 좋아라 허락할테니."
웃음기 머금은 말에 그의 정신이 순간 아득하졌다가 돌아왔다.
무거운 사연을 들었다. 참담한 이유도 알았다. 해결법이 떠오르지 않아 암담하다고도 생각했다. 막막했다. 그냥 막막하고 울컥하고 올아오는 감정을 주체하기도 어려웠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단 한번도 츠루마루를 다른 곳으로 보낸다는 가정조차 한 적 없었다.
자신따윈 없었다. 각오를 할 수 있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건 절대 츠루마루를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없다. 절대로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츠루마루는 우리 혼마루의 남사입니다. 어떻게되든 '우리 츠루마루'입니다."
"그럼 사흘간 말미를 주지. 기대하겠네, 사니와여."
그리 웃으며 츠루는 코기츠네의 품으로 무너졌다. 무리한게 확실했다. 아무리 내일이면 멀쩡해진다지만, 뼈와 살을 발라 츠루마루에서 줬으니…… 그런 츠루에게 그는 마음을 담아 감사를 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여기에 있으면 츠루도 그를 꼭 보듬어 안은 코기츠네가 쉬는데 방해만 될테니까. 사흘의 말미가 어떤 의미인지도 고심해봐야 한다.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어떻게 모두에게 전달할지, 그리고 어떻게 츠루마루의 자기증오를 끝낼지 고뇌하면서.
비참하고 비통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굴린 애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비통해요.[아득한 눈]
그냥 다들 힘내길 바랄 따름입니다.[아득한 눈]
이제야 글 쓸 여유가 생겨 씁니다, 이예이![쳐맞]
좋은 나날 되셨고, 되시길!
미안하다.[하얀 눈]
고의는 아니야, 그냥 내가 재미를 쫓다가아아아아아.[하얀 눈]
시작하기에 앞서, 코기츠네마루와 츠루마루 커플링 묘사가 있습니다아아아아!
유의해주세요오오오오오오오!
그럼, 시작합니다.[아득한 눈]
누구지?
무서워?
그리워?
나랑은 달리 새하얀 존재다.
다가가면 더러워질거야.
-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모두, 내가, 내 손, 빨게, 더러워.
내가, 죽어야, 망가져야, 버려져야 했어.
- 네가 그러면 저들이 더 슬퍼할텐데도?
저들?
- 그래, 저들. 지금 네 옆에 있는 미츠도령이 보이나?
미…… 츠…… 도령……? 왜 울어?
모두, 왜?
내가, 나빠?
- 그래, 네가 나쁘다.
내가, 있어서?
- 틀렸다.
내가, 바라여서?
- 그것도 틀렸다.
그럼 왜?
나, 내가, 나쁘니까, 필요없으니까?
- 전부 틀렸다.
어째서야?
왜 모두 슬퍼해?
여긴 슬프지 않아야 하잖아.
그 아이도, 아가도, 모두 그랬었는데?
어째서?
내가 있어서?
내가 함께 있길 원해서?
틀렸다면, 어째서야?
왜 슬퍼해?
왜 울어?
왜?
- 넌 이미 답을 안다. 그렇지?
아냐.
- 아니, 그게 정답이다.
그럴 리 없어.
- 틀렸다.
내가, 어떻게, 날, 어떻게,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냐 ㅇㅏㄴㅑ , 아니잖아.
- 틀렸다.
아니야…….
- 네가 나빴다. 전부 틀린 네가 나빠.
나, 행복해져도, 괜찮아?
모두, 용서해줘?
허락해줘?
- 넌 이미 안다.
난, 안돼.
안돼, 내가, 어떻게……
못해, 안돼, 못해.
아직, 못해.
- 그렇구나. 그럼 지금은……
지금은?
- 널 위해 울려므나.
따뜻한 손길이 뺨에 닿았다.
아플정도로 상냥해.
무서워.
용서받는것 같아.
허락받는것 같아.
무서워.
무서운데 포근해.
아파.
숨쉬는게 힘들어.
벗어나기 싫어.
나는 아직 용납할 수 없는데…….
용서해버릴 것 같아.
•
•
•
520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4시간이나 지났는데 아직인가…
521 : 분노나눔
정리하러 돌아왔다.
지금 츠루마루는 신력 안정을 위해 쉬는 중.
츠루님이 와주셔서 정말 다행이다.
우리만이었으면 근본적인 문제점을 못알아차렸을거다.
진짜, 다행이다.
522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ㅇㅋ, 들을 준비는 끝났다.
어서 말해봐.
523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문제점?
어떤 문제점이 더 있는거지?
524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츠루님은 아직 계시는 거야?
525 : 분노나눔
아직 계셔.
잠시만 정리할게.
1. 츠루마루는 자신이 더럽다고 생각하고,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함.
2. 지금 행복하길 바라는 것 조차도 죄악이라고 여김.
3. 용서받고, 여기에 있어도 되며, 있어주길 원한다는 걸 앎.
4. 그렇기에 스스로를 더욱 용납할 수 없음.
5. 용서받길 원하는 자신을 증오, 한다고 봐도 ㅇㅋ.
이게 츠루마루 심리의 전재.
설마하니 스스로 용서받으면 안된다고 생각할 줄 몰랐었다.
우리가 이미 받아줬다는 걸 알았기에 더욱 스스로 용납하지 못할 줄 몰랐었다.
쉽게 생각한 적 없지만, 그래도 훨씬 깊었다.
526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었던 거잖아!!!!
츠루우우우우우우!!!!orz
527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조금 발광하고 왔다.
츠루마루우우우우orz
528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이거,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 거야!?
주위에서 아무리 부둥거려도 스스로 용서할 수 없다는거잖아?8ㅁ8
츠루우우우우orz
529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명령이라해도 실행한건 자기니까, 용서할 수 없다는거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어떻게해야해?
진짜 그쪽 츠루마루 어떻게해야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 들여줄거야???
530 : 분노나눔
>>529
그게 우리의 과제다.
츠루님이 츠루마루와 동조해서 기억을 읽을 수 있었다는데……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의 짓을 당했으니, 무조건 최악을 상정하는게 좋을거라고 하셨다.
실질적으로 츠루마루를 얽매고 있던 언령은 두가지로,
하나는 '그 여자'의 '망가뜨려주겠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츠루마루의 손에 부러진 이들의 '살아남아라'.
모두 츠루마루의 본의가 아니라는 걸 알았고, '그 여자'의 진의도 알았다.
그래서 '그 여자'에게 지지마라고, 살아남아라고 했다.
츠루마루는 그 유언을 져버릴 수 없었다.
아무리 망가질거 같아도, 망가질 수 없었다.
지면 안되니까, '그 여자'에게 지면 다른 이들을 배신하는 거니까.
그 부탁조차 져버리는 것이 되니까…….
끝내고 싶지만, 끝내지 못하고 억지로 자신을 유지했다.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어왔다.
망가지지 않고, 지금까지 버텼던 유일한 지푸라기…….
안되겠다.
머리 좀 식히고 온다.
531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그렇게해.
이쪽도 머리 좀 식힌다.
532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말이 안나와.
어쩌지?
533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532
너도 쉬어.
머리를 좀 식히고, 식힌 후에……
1차적 목표를 정하자.
츠루마루가 스스로 용서하기? 용납하기?
534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지금까지 어째서 도해와 관련된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고민했는데……
응, 말할 수 없었던거였네.
말하지 못하는 거였네.
535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진짜 어떻게 해야좋을지 모르겠다.ㅇ<-<
츠루우우우우우…… ㅇ<-<
536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일단 보수로 가자.orz
537 : 분노 쉐어링에 참가한 사니와가 보냅니다
보수우우우우우orz
•
•
•
어린 아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잠든 하얀 이를 보며 그는 긴 한숨을 삭혔다.
너무 울어서 빨갛게 물든 눈가를 식혀주고 싶지만, 그들을 도우러 온 하쿠가츠의 '츠루'가 다가가면 지금보다 더 위태로운 상태가 된다고 경고했다. 지금 츠루마루는 3m내의 신기를 '흡수'하는 상태기에 그 안으로 들어가면 이미 주입된 '신기'와 섞여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고 했었다. 츠쿠모가미로서의 자신을 잃고 망량이 되거나 원령이 되리라는 말에 이렇게 세 걸음정도 떨어진 거리 밖에서 하염없이 바라만 봤다. 단 세 걸음. 그 거리가 이렇게나 고통스러울 줄 몰랐다. 지금이라도 끌어안고 이젠 괜찮다고, 쭉 함께라며 다독이고 싶건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독이다.
덕분에 '츠루'와 그의 문답 아닌 문답에 슬퍼하고 괴로워하던 이들은 뭐든 해야겠다며 이리저리 떠났고, 도저히 움직이지 못하던 이들도 츠루마루를 위해 방을 준비하겠다며 어렵게 자리를 비웠다. 남은 건 '츠루'와 그런 그를 부축한 하쿠가츠의 '코기츠네' 그리고 이 혼마루의 주인인 '호우'가 전부였다.
"지금 츠루마루는 어떤 상황입니까."
먼저 입을 연건 호우였다.
지친 듯 품에 푹 안긴 츠루를 토닥이던 코기츠네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하얀 손가락이 꾹꾹 미간을 누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표정을 풀었다. 이 혼마루의 코기츠네마루와는 또 전혀 달랐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저 코기츠네는 오로지 자신의 짝인 츠루를 위해 따라 왔으니까.
코기츠네는 다른 사니와의 영력으로 구현된 존재. 그렇다고 츠루처럼 같은 '츠루마루 쿠니나가'인 것도 아니다. 요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츠루마루에게 치명적인 ‘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존재다.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 신기를 죽이고 기미를 감췄다. 오로지 츠루가 ‘쉴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 숨죽이고, 무엇보다 소중한 짝을 끌어안은 채 그만을 바라본다.
여우가 자기 짝을 위해 헌신하는 건 알았지만, 이만큼일지는 몰랐다. 보는 사람까지 조금 낯간지러운 애정이다.
아니 모든 남사들은 정이 깊었다. 귀찮다고 하면서도 힘겨워하는 이를 두고 보지 못했다. 이기적이기보다 이타적인건 말석이라도 신이라서 일까. 그걸 알기에 그 마음이 안타까워졌다. 조금이라도 더 이기적이었다면, 그랬었다면……. 안타까움에 입술을 짓이기며 호우는 자새를 바로 잡았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츠루가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금빛 눈동자가 그의 내부를 훑어봤다. 시험받는 느낌이 들었다. 내부를 까발려서 확인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 츠루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자내의 판단은 옳았네. 자신의 영력으로 흩어지던 신기를 잡고 매운 건 적합한 처방이었네. 다만, 저 아이에게는 그게 독이었을 뿐."
'독'이라는 불온한 울림에 호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옳은 판단이라는 말과 '독'이었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뒤섞인다. 상반된 말이 함께 쓰였다. 밑도 끝도 없는 불안감에 휩쌓였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가 그를 붙잡았다. 그래서 츠루마루의 상태는 어떻다는 거지? 그가 잠시지만 어질하던 정신줄을 간신히 잡자니, 다시금 혼돈으로 몰아넣는 말이 이어졌다.
"저 아이의 신기는 흩어지던 상태였다. 혼마루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한줌 남아있을까 말까였을 테지. 신으로서의 근본이 부정되어 신기의 재생도 무리인 상황에서 주입된 영력이다. 그건 간신히 남아있던 신기가 흩어지는 걸 가속화시켜 '츠루마루 쿠니나가'로서의 저 아이를 죽이는 '독'이 되었다."
"그, 그럼 제가 잘못한 게 아닙니까!"
"물론 그대로 뒀다면 저 아이는 저 껍데기조차 유지할 수 없었을터……. 허나 그대가 저 아이를 '츠루마루 쿠니나가'라 불렀다. 이름의 '언령'이 원래 강하다 하여도 그대가 아니었다면 저 아이에게 닿지도 못했겠지. 특출난 그대의 '부름‘ 저 아이를 잡아 '츠루마루 쿠니나가'로 유지한 게다."
무기질 적으로 말갛던 금빛눈동자가 온기를 머금고 다정히 웃는다. 그대가 저 아이를 구했노라, 그리 말해준다. 한치의 거짓도 없는 선언을 듣고서야 호우는 아주 조금 안도했다.
그 안도는 이어진 말에 순살되었다. 다정하지만, 결코 인간이 아닌 존재는 애처로움을 가득 담아 한없이 상냥한 목소리로 그의 마음에 조금씩 상처를 준다. 손톱으로 힘주어 긁어내듯 아릿한 상처를 꾹꾹 새겨 넣는다. 지금 자기만 이 이야기를 들어서 다행이라고 절절히 여길 정도로. 상냥하지만 잔혹한 '신'은 참혹한 진실을 이야기했다.
"신기가 거의 흩어진 저 아이는 저와 비슷한 상황, 비슷한 상태, 비슷하게 망가져 떨어지고 부서지던 인간의 혼을 받아들였다. 정확히는 동조하여 융합한 게지."
순간 그는 상황이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머릿속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신이 자아를 잃을 정도의 사건이었다. 그 비슷한 사태를 인간이 겪었었다? 스스로 부정하고, 거부하고, 용서받는 것조차도 용납할 수 없어서 자신의 목을 옥죄며 실낱같은 숨결만을 억지로 허락했다고? 그런 무도한 짓을 한 인간이 둘이나 존재한다고? 그런 존재가 둘이나 있다고!?
이제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던 말조차 나오질 않았다. 그런 그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츠루는 마치 노래하듯 참혹함을 읊었다.
"목소리를 빼앗기고, 이름을 잃고, 존재를 부정당하고, 누구보다 완벽하게 '망가뜨려주겠다'는 언령과 너만큼은 '살아남아라'는 언령이 얽히고, 자신을 향한 증오까지도 닮았던 둘은 불안정하기에 하나가 되었다."
가엽고 가여운지고.
그런 목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살아있는 인간이 지독한 짓을 당했다. 신이 자아를 잃을 정도로 참혹한 짓을 당했다. 어느 쪽이든 충격적이었지만, 인간의 혼과 신이 융합되었다는 말을 이길 수 없었다. 융합은 대등하기에 벌어진 사태다. 대등할 수 없는 저울이 추가 부서져서 대등해져 버린 거다. 상정했던 최악의 가정을 뛰어넘는 말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해결책의 편린조차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끝모를 분노가 머릿속을 하얗게 점령했다.
그는 살의에 가까워진 분노를 억지로 가라앉히려 길게 심호흡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애써 냉정을 찾으려했지만, 쉽지 않았다.
한층 가라앉은 금빛 눈동자가 살짝 웃었다.
“호우여, 이쯤에서 끝내도 괜찮네. 무겁고, 어렵고, 더러운 이야기지 않나?”
“아닙니다, 계속해 주십시오.”
“자네가 저 아이를 안고 갈 수 있겠나? 이 정도로 흔들린 자네가?”
“이, 정도, 인 겁니까?!”
츠루는 대답 없이 그저 온화하게 웃었다. 무슨 생각을 할 수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포기해도 된다고 말한다. 무거우니 내려놓아도 된단다. 어려우면 던져버려도 된단다. 더러우니 피해가란다. 감당할 수 없으면 넘기라 한다.
호우의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살기로까지 번졌던 감정이 순식간에 식었다. 잠시 감정에 휘둘려 중요한 걸 잊었다. 츠루는 츠루마루가 꾸준히 상상보다 더 참혹한 일을 겪었다고 누누이 말했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내용은 ‘고작’이 맞으리라. 그는 지금 중요한 걸 떠올렸다. 가장 중요한 것, 그건 츠루마루의 상태다. 갈기갈기 찢겨진 츠루마루를 보듬어주는 것. 지금 느꼈던 분노는 나중으로 접어야 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흐트러졌던 호흡을 진정시켰다.
“실례했습니다. 부디 계속해주시길.”
“호오, 감당하려는 겐가?”
“우리 ‘츠루마루’입니다. 하쿠가츠님께 모실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도 없으면서?”
“자신이 필요한 문제가 아니지요. 저는, 우리는, 스스로 절망에 갇힌 츠루마루를 밖으로 불러 낼 겁니다. 얼마가 걸려도, 언제가 되더라도. 해낼지 못해낼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렇게 할 겁니다.”
완고한 결의를 담은 ‘말’이다. 정리된 말은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각오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단지 의지만으로 ‘언령’이 될 정도였으니까. 그럼에도 츠루는 여전히 관조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단순히 각오만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이쯤에서 끝날 문제였겠지만……. 츠루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저 아이는 불안정한 상태로 너무 오래있었다. 신도 인간도 아닌 상태로, 망량이 되지도, 사라지지도 않았지. 스스로 갉아먹던 절망 속에서도 ‘살라’는 ‘언령’에 묶여 망가지지도 못했다. 현상유지만으로도 굉장한 상태였지.”
이윽고 새하얀 손이 그를 향했다. 그 행동을 따라하듯 그가 오른쪽 손을 들어 저를 가리킨다.
붉은 기가 감도는 금발, 자신의 얼굴을 향한 오른손의 손톱은 조금 날카로웠고 선홍과 감청으로 번갈아 물들어 있다. 유독 큰 동공의 그는 어딜봐도 45세로 보이지 않는다. 선조회귀로 순수요괴에 가까워 외견상 나이를 거의 먹지 않아서다.
"다른 이의 영력이었다면 버티지 못해 사라지거나, 괴이가 되었거나, 완전히 망량이 되었더나…… 최악의 상태가 되었겠지."
그가 '무엇'인지 읽어낸 말간 금안에 상냥함이 어렸다. 아직 10대후반의 외견인 그를 위로하듯 조용조용 말을 이었다.
"올곧음과 바름을 지켜보는 존재답게, 자네의 영력과 언령은 새로운 지지대가 되어 저 아이를 '츠루마루 쿠니나가'로 유지한게다. 다만 근원 신기는 이미 흩어지던 상태였으니 오래 버티지 못했을테지. 그러니 그걸 채우기 위해 내가 왔다."
"근원 신기를 넘겨주는건 괜찮은 겁니까?"
근원 신기는 말 그대로 도검남사가 존재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리 다른 분령보다 본령에 근접한 츠루라할지라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닐거다. 츠루에게 피해는 없을까? 혹여라도 또 다른 '희생'이 되는건 아닐까? 츠루마루에게 새로운 '짐'이 생기는 게 아닐까?
무심코 츠루의 걱정보다 츠루마루의 걱정이 커졌다.
호우는 천천히 자신의 심경을 입에 올렸다.
"죄송합니다. 츠루마루를 위해 하신 행동임에도 츠루님의 희생이 츠루마루를 더 힘들게하지나 않으려나는 걱정을 해버렸습니다."
"솔직하구만. 굳이 표현하자면 하루에 헌혈을 2ℓ가량 하는것과 비슷하지."
"치사량 초과입니다만!?"
"나흘 정도는 주입을 해줘야만 한다네."
"진짜 괜찮으신겁니까!?"
"내일이면 멀쩡해지네."
지금은 전혀 괜찮지 않다는 말을 태연자약하게 던지며 뒤에서 끌어안은 모양새로 있는 제 짝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논다. 그에 심기 불편해보이던 코기츠네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이 혼마루 상황에 어울리지 않을정도로 알콩달콩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지금 츠루의 말은 자기 살을 발라 츠루마루에게 먹이는 걸로도 부족해서 자기 뼈를 뽑아 심어준다는 거였으니까.
호우를 책하지도 않고 저가 잘났다고 뻐기지도 않았다. 별게 아닌건 아니지만, 못할 건 없다는 형태였다. '츠루마루 쿠니나가'의 성향이 원래 이런지도 모른다.
그런 상냥하지만 공정한 신이 그에게 묻는다.
"그럼 호우여, 그대는 저 아이를 보듬을 각오는 되었나?"
"저의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못하겠다면 저 아이는 우리가 맡겠네. 우리 주인이라면 좋아라 허락할테니."
웃음기 머금은 말에 그의 정신이 순간 아득하졌다가 돌아왔다.
무거운 사연을 들었다. 참담한 이유도 알았다. 해결법이 떠오르지 않아 암담하다고도 생각했다. 막막했다. 그냥 막막하고 울컥하고 올아오는 감정을 주체하기도 어려웠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단 한번도 츠루마루를 다른 곳으로 보낸다는 가정조차 한 적 없었다.
자신따윈 없었다. 각오를 할 수 있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건 절대 츠루마루를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없다. 절대로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츠루마루는 우리 혼마루의 남사입니다. 어떻게되든 '우리 츠루마루'입니다."
"그럼 사흘간 말미를 주지. 기대하겠네, 사니와여."
그리 웃으며 츠루는 코기츠네의 품으로 무너졌다. 무리한게 확실했다. 아무리 내일이면 멀쩡해진다지만, 뼈와 살을 발라 츠루마루에서 줬으니…… 그런 츠루에게 그는 마음을 담아 감사를 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여기에 있으면 츠루도 그를 꼭 보듬어 안은 코기츠네가 쉬는데 방해만 될테니까. 사흘의 말미가 어떤 의미인지도 고심해봐야 한다.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어떻게 모두에게 전달할지, 그리고 어떻게 츠루마루의 자기증오를 끝낼지 고뇌하면서.
제가 굴린 애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비통해요.[아득한 눈]
그냥 다들 힘내길 바랄 따름입니다.[아득한 눈]
이제야 글 쓸 여유가 생겨 씁니다, 이예이![쳐맞]
좋은 나날 되셨고, 되시길!
'고장난 인쇄기 > 초벌인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로코의 농구] 카페 『V』 (8) | 2018.08.22 |
---|---|
[쿠로코의 농구] Monochrome Monologue (4) | 2018.08.21 |
[도검난무/빙의물?] 달의 초대 - 1 (3) (7) | 2018.03.22 |
【분노공감】 아카시가 출정에 지원했다 【학관련】 (2) (2) | 2016.08.21 |
【분노공감】 아카시가 출정에 지원했다 【학관련】 (1) (2) | 2016.08.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