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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인쇄기/초벌인쇄

[쿠로코의 농구] Monochrome Monologue

by 류 엘 카르마 륜 위르치아나 2018. 8. 21.
일전에 화흑 배포전에 냈던 원고입니다.
라엔이랑 만화, 소설 트윈지로 냈었던 겁니다.
꽤 시일이 지났기에 올려봅니다.

참고로 저한테도 이 책 없어요.[아득한 눈]
여러모로 슬프고도 답답한 이야기입니다.
애초에 발암물 독백이 다 그렇잖아요.[쳐맞]

그럼, 시작합니다.




Monochrome Monologue
- by 류 엘 카르마 륜 위르치아나



 오늘도 넘치는 마음을 한편에 흘려보냈습니다.

 너에게 들키지 않도록, 흘러넘친 마음이 네게 닿지 않도록… 새까맣게 꺼지는 모니터를 바라보다 길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어봅니다. 아직 손끝에 남은 마음이 내게 어리석다 외칩니다.


 처음부터 알았습니다.

 카가미군, 나는 처음부터 '너'를 선택했었습니다. '너'라면, '너'니까, '너'라서… 수많은 이유를 들어 네 곁을 고집했습니다. 너는 상냥하니 절대 날 밀어내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저 그것만으로 만족했었습니다. 이 이상 욕심을 부리는 건 안되지요.

 네가 그걸 허락하더라도, 내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나 너만을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처음에는 단순히 아오미네군을 향한 대항마인 양 나를 속였습니다. 그렇게 너를 좋은 친구로만 생각했습니다. 함께 있으면 즐겁고, 너무 편안해져서 나도 모르게 마음을 풀어버렸었지요. 그렇게 풀린 마음이, 감정이 어느 틈엔가 너를 향해 흘러갔습니다. 막으려 했을 땐 이미 늦었습니다.

 그래서 네가 모르도록, 알아차릴 수 없도록 감췄습니다.

 왜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 거냐,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을 전하면 행복해질지도, 불행해질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 확신할 수 없는 미래로 널 끌어들이기 싫었습니다. 너와 함께라면 나는 행복하겠지요. 네가 어떻든 나는 행복할 테지요. 네가 힘들어도, 네가 있기에 나는 그걸로 만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걸 확신했을 때, 그게 내 욕심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 욕심으로 네게 짐을 씌운다면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필요 없어요.

 이건 그저 내 에고(Ego)입니다.

 흔들리는 감정을 추스르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내일도 너를 만나겠지요. 이 행복이 끝날 시간을 헤아리며 눈을 감았습니다.

 다시 아침이 되었습니다. 나는 익숙하게 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리 생각하면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언제나 너와 헤어지던 길목에서 네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듭니다. 오늘도 네가 먼저였습니다. 그게 조금 분해서 왜 기다렸다고 투덜거리니 어차피 먼저 가더라도 쿠로코는 어쨌냐는 말을 듣는다며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당연하다는 듯 넌 내 곁에 다가왔습니다. 조금만 몸을 비틀어도 닿는 거리에서 너는 웃으며 조금 앞장서 나아갑니다.

 카가미군, 넌 언제부터 존재감이 흐린 날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나요? 인파에 휩쓸리면 존재감이 없는 난 이즈키선배도 잃어버리기 일쑤였건만, 넌 용케도 날 찾아냈었지요.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온 거냐며 투덜거렸었지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더니 다음부터는 자길 잡으라고 넌 말했지요. 길도 잘 잃으니까 그렇게 다니자는 네게 난 바보냐는 말만 돌려줬었습니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등교하는 이들이 눈이 내린다며 즐거워 보입니다만, 정작 나는 조금 침울해졌습니다. 슬쩍 곁을 보니 넌 숨기지도 않고 시무룩해졌습니다. 이렇게 비나 눈이 오는 날은 길거리 농구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너와 함께하는 시간도 줄어듭니다.

 나는 오늘은 길거리 농구장을 찾을 수 없겠다고 네게 말을 걸어봅니다. 너는 불만스럽게 끄덕이며 어쩔 수 없다며 툴툴거립니다. 그래도, 나와 함께 이렇게 쏟아지는 함박눈을 볼 수 있어서 기쁘다며 환하게 웃어줍니다. 그렇군요,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고 조금 심술궂게 말했습니다. 그런 말은 너무한 거 아니냐며 네가 내 머리를 헝클립니다.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모르는 척 가장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모두 사이가 좋다는 말을 흘리며 곁에 있었습니다.


 2월, 아직 겨울이라고 말하듯 함박눈은 멎지 않았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농구부 전원이 모여 눈싸움을 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날아오던 눈 뭉치를 대신 맞고, 혹여나 춥지 않으냐며 너는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누군가가 네게 나를 너무 챙긴다고, 그렇게 좋아하냐며 농담 삼아 말합니다. 너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한 너를 좋아합니다.

 나도 정말 좋아하는 친구라고 말했습니다. 네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주위에서 역시 사이가 좋다며 웃었습니다. 나도, 너도…… 모두 함께 웃었습니다.

 체온이 조금 올라갑니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빠르게 뜁니다.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를 무시했습니다. 이 또한 추억이겠지요. 그렇지요, 카가미군? 그렇게 돌아본 너는 조금 쑥스러운 듯 웃었습니다.

 함박눈이 점점 쌓였습니다.

 카가미군, 너와 함께한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 금세 헤어질 시간이 됩니다. 아직도 쏟아지는 함박눈에 네가 춥다면서 편의점에 들리자고 했습니다. 나는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바로 돌아가야겠다고 거절했습니다. 다른 때라면 이 시점에서 더는 권유하지 않겠지만, 역시 평소보다 훨씬 빨리 해어지게 되어서인지 너는 마지버거에 가지 않겠냐며 다시 권유합니다. 바닐라 셰이크를 사겠다고 했습니다.

 너는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함께 마지버거로 향했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고 쌓인 눈 위에 나란히 걸어가는 발자국이 남겨졌습니다. 곧 끊임없이 내리는 함박눈에 사라질 흔적이겠지만, 그게 어쩐지 즐거워 몇 번이나 돌아봤습니다. 너도 그걸 알아차린 듯 조금씩 발걸음을 늦췄습니다. 서로의 발자국을 밟는 장난을 치며 너와 이 거리를 걸어갑니다.

 마지버거에 들려 너는 늘 그렇듯 치즈버거를 산처럼 쌓아 먹습니다. 그리고 약속이라며 내게 치즈버거 하나와 바닐라 셰이크를 줍니다. 치즈버거는 필요 없다고 네게 돌려주니 추운데 바닐라 셰이크만 먹으면 안 된다며 기어코 쥐여줍니다. 많으면 반이라도 먹으라며 너는 자기 몫을 오물오물 잘도 먹습니다.

 카가미군…… 나는 이렇게 서툰 네 상냥함이 기쁘지만,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난 바닐라 셰이크를 금방 마시고 서둘러 몸을 일으켰습니다. 네가 억지로 준 치즈버거는 못 이긴 척 가방에 넣었습니다. 너도 황급히 치즈버거를 입안에 욱여넣고 그렇게 급하지 않아도 되지 않냐며 투덜거립니다. 그만큼 보고 싶던 책이라고 변명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너는 웃으며 역시 책벌레냐고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립니다. 정말 미안해져 나는 어렵사리 네게 사과하며 걸음을 조금 빨리 움직였습니다. 너는 황급히 내 뒤를 따라왔습니다. 늘 헤어지던 골목에서 내일 보자며 어렵사리 손을 흔드는 네게 나는 그러자고 말하며 돌아섰습니다.


 골목으로 들어서기 전까지 네가 보내는 시선을 모르는 척 걸었습니다. 돌아보면 참을 수 없어질 테니까, 난 오늘도 넘치려는 마음을 꾹꾹 욱여넣었습니다. 흔들리지 않게, 모르는 척, 무난히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어른이 따라붙던 시선이 사라지고서야 어렵사리 돌아섰습니다.

 너도 이제 집으로 향했겠지요. 네가 없는 거리는 이리도 쓸쓸합니다. 난 여기에 익숙해져야겠지요. 아무리 아쉽고 안타깝더라도 나는 그걸 선택했습니다.

 카가미군, 나는 너의 행복한 꿈이길 원합니다. 언제고 떠올려도 그때는 참 즐겁고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꿈이길 원합니다. 누군가가 말했지요, 추억을 이길 수 있는 건 없노라고. 그러니까 나는 너의 언제나 아름다웠던 과거이길 원합니다.


 그렇게 내가 너의 영원이 된다면……


 다시 넘치려는 마음을 집어 삼키고 서둘러 귀가했습니다. 익숙하게 컴퓨터를 켜고 그 마음을 손끝에 담았습니다. 스스로 어찌하지 못했던 마음이 쏟아져 내가 모르는, 나를 모르는 이들에게 흘러갑니다.

 엉망진창으로 얽힌 마음을 누군가는 애처롭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숨이 막힌다고도 합니다. 나처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너와 그냥 사귀길 원한다고 합니다. 너와 내가 같은 마음인 게 훤히 보이건만, 어째서 이 마음을 전하지 않냐며 화를 냈습니다.

 모두, 전부 흘려버리고 컴퓨터를 끕니다. 까맣게 빛나던 모니터의 불빛이 완전히 가시고서야 억눌렀던 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아주 조금 억눌렸던 마음이 풀려난 기분이 듭니다.


 카가미군, 사실은 나도 압니다.

 네가 내 마음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듯 나도 네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건 분명히 네가 자각하기 전입니다. 너도 모르게 드러낸 마음이 난 처음에 아주 기뻤습니다. 누구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이가 같은 마음이라면, 그 순간만큼 행복할 때가 어디 있을까요? 그때는 나도 정말 기뻤습니다. 네가 알아차릴 때, 나도 이 마음을 전하고자 생각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다만…… 나는 이 마음이 죄악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알아버렸습니다.

 누군가가 기분 나쁘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더럽다고 했지요. 이상하다며, 정신이 나간 게 아니냐고 하더군요. 나를 향한 말도, 너를 향한 말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지나가듯 나온, 그렇기에 더할 나위 없는 진심일 테지요. 네가 한 말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나는.


 카가미군, 너는 나의 누구보다 빛나는 영원입니다.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해서 어찌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나에게 넌 그런 '의미'입니다. 나는, 네가 모두에게 사랑받기만을 원합니다. 너와 내가 같은 마음이라도, 네게 해가 된다면 난 기꺼이 흘러가는 추억이 되겠습니다. 너는 이렇게까지 멋대로인 나조차 용인하겠지요.

 그렇기에 나는 네 작은 오점조차도 되기 싫었습니다.





 어제처럼 오늘도 너와 함께, 나에게 영원이 될 추억의 끝을 헤아리며 눈을 감습니다.

 이 나날이 제발 끝나지 않길……

 부디 아름다웠던 과거로 끝나길 기원하며……



추억이라는 이름의 영원이 되고픈 쿠로코였습니다.
답답하긴 하지만, 얘도 나름 이유가 있어요.
하지만, 너무 완고한건 좀 고치자.[아득한 눈]

이상입니다.
다음편에서 뵈어요.[아득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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