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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작은 서가

그늘이 드리운 혼마루[06]

by 깜냥이 2018. 4. 17.

사실 요즘 이 것만 쓰고 있다는 자각이 있습니다만... 너무 세게 치인 모양이에요.. 제 썰에 제가 치이는 그런... 흠흠

그래서 다섯 편 씩 모아서 가져올 생각이었는데 한 편을 거의 3주간 쓰고 지우고 있네요.. ㅜㅠ...

이렇게 쓰다가 막히는 정도가 심해질 때 그간 쓴 것들을 몰아서 가져오겠습니다 ㅇㅅㅇ/!!

 

 

경계하지 않는 척 , 무덤덤한 척 , 표정을 지우고 무심함을 가장해 뻔뻔하게 들이민 것은 제법 좋은 선택이었던 모양이다 . 이시키리마루는 뻔뻔한 내 행태에 조금 당황한 것 같았지만 기꺼이 제 공간으로 들여보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귀한 검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지 . 특히 미카즈키를 구하던 때에는 어떻게든 구하려하다 보니 쉬지도 못하고 수리도 받지 못 한 채로 출진해서 결국 부러진 이가 수두룩했어 ."
 
"단도들은 최소 서너 번은 부러졌던 이들이 태반이구나 . 고토같이 얻기 힘든 아이가 아닌 이상 수리도 해주지 않았지 . 어차피 단도는 얻기 쉬우니 말이야 ."
 
"혹여 큰 검이 부러진다면 함께한 이들에게도 험한 말을 하곤 했지 . 왜 흔해빠진 네가 대신 부러지지 않았냐던가 ."
 
"그렇게 상처입고 부서지더라도 혼마루의 규모는 계속 거대해지니 , 사치까지 하고 싶었던 모양이야 . 수리할 때 사용되어야 할 물품들이 금은보화로 바뀌는 것을 보며 모두들 피눈물을 삼켰지 ."
 
"그리고 그것을 보다 못해 직접 나선 이가 있었단다 ."
 
 
하지만 이시키리마루에게 접근 한 것이 쉬웠던 만큼 , 그가 풀어낸 이야기는 앞으로의 일을 막막하게 만들었다 . 이시키리마루가  입을 열 때마다 폭탄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 알아야겠다 선언한 것이 무색하게 그의 입을 틀어막고 싶어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자 그가 어마어마한 대형 폭탄에 불을 붙일 준비를 하는 듯 , 마지막 말을 내뱉고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 마치 , 이 이야기를 듣고도 내 의지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 같아 마른 침을 삼키며 꿋꿋하게 그의 눈을 직시했다 .
그런 내 모습에 빙그레 미소를 지은 이시키리마루는 한숨을 내쉬듯 한 이름을 읊조렸다 .
 
 
"츠루마루 쿠니나가 . 장난기는 많지만 제법 정이 많은 이지 ."
 
"그렇기에 연이 있는 검이던 그렇지 않던 다치고 슬퍼하는 것을 보기가 힘들었던 모양이야 . 
 
"제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부상을 가지고 그와 대적하여 기어코 베어 넘겼지 . 그리고 주인을 벤 대가로 불결에 물들어가면서도 호타루마루에게 자신을 베어 달라 청하여 기어코 그도 그리 부러졌단다 ."
 
 
부러졌다 .
 
그 한 마디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이시키리마루가 허허롭게 웃으며 이제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느냐 묻는다 . 저가 말해놓고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건가 . 이미 내 멘탈은 위태로운 상태건만 다 내가 자초한 것이다 . 일단 지금은 도무지 무언가를 시도할 상태가 못 되니 우선 거처로 돌아가 담당자에게 지금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우선이다 . 거처에 돌아가서 해야 할 우선순위를 생각하며 눈을 굴리다가 곧 시선이 이시키리마루에게서 멈췄다 . 그 역시 다른 이들처럼 상처투성이였다 . 야만바기리보다 심한 정도인가 ? 아츠시보다는 양호해 보였다 . 
 
 
"우선 , 부상을 치료해주고 싶은데 ."
 
"하하하 ."
 
"그 꼴로 웃음이 나와 ?"
 
"하하 . 거절하지 ."
 
"어째서 ?"
 
"지금 중요한 것은 내 상처 따위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계시지 않니 ?"
 
 
웃는 얼굴로 단호히 거절하는 이시키리마루를 보며 의아해하자 자신의 우선순위를 뒤로 밀어낸다 . 그에 입을 다물자 모두를 설득하고 온다면 그 때에는 기꺼이 수리를 받겠다며 더 권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끊어낸다 . 온화하게 웃는 얼굴을 한 이시키리마루가 연신 나가는 문을 손짓하며 나가라 재촉하는 통에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했다 .  
 
 
"그대라면 잘 해낼 수 있을 테지 ."
 
 
닫히는 문 너머에서 들려온 진심어린 목소리에 잠시 멈칫했다 . 하지만 내 머뭇거림은 용납 못 한다는 듯이 안쪽에서 힘주어 문이 닫히며 손에 걸치듯 잡혀있던 손잡이가 빠져나갔다 . 배척은커녕 당연하다는 듯 정보를 알려주고 조언을 해 주고 , 끝내 응원까지 들었다 . 입가가 슬금슬금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굳이 그것을 멈추려 애쓰지 않았다 . 호의를 품은 존재가 하나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
하지만 이런 일로 해이해질 수는 없지 . 정보도 들었고 응원도 받았겠다 .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차례이니 서둘러 거처로 돌아와 단말기를 꺼내들었다 . 
 
 
[세츠인님 ?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
 
"있지 . 아주 큰 일이 ."
 
[예에 ?]
 
 
설명을 하려 이시키리마루에게 들은 것을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고 있으니 곧 담당자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생각을 되새길수록 답이 없어 무심코 아무 말이나 내뱉었더니 놀라서 큰 소리를 낸다 . 그를 대충 진정시키고 정리한 것을 그에게 이야기 해주니 긴 한숨이 들려왔다 . 어렵네요 . 하고 중얼거린 담당자가 한참을 앓는 소리를 내었다 . 거기에 무슨 방도가 없을까하고 물으니 그가 다시 잃는 소리를 낸다 .
 
 
[아 , 단도를 해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
 
"단도 ?"
 
[이시키리마루님은 일단 세츠인님의 편이지만 방관하시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고 , 홀로 맞서기 보다는 함께 이겨낼 이가 있는 편이 ...]
 
"안 돼 ."
 
[예 ?]
 
"못 해 ."
 
[예에 ?]
 
 
오늘만 단도실의 수리하는데 다섯 번이나 실패했다 .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인지 화덕도 모루도 멀쩡해 질 생각을 하지 않기에 쩔쩔매던 중 이었다 . 뭔가 빠져나간다는 느낌도 없고 뭐가 문제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일단 오늘은 포기 한 상태다 . 내 이야기를 들은 담당자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고 그에 나도 침묵을 유지했다 .
그리고 한참의 정적 이후 그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번엔 계기도 있으니 한 번 더 해보는 것이 어떠냐 제안했고 , 나는  또 다시 실패할 것을 염두에 두어 두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
 
 
[좋은 결과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
 
"그래야지 . 그럼 다음에 문제 생기면 연락할 .."
 
[문제가 없으셔도 연락 해 주세요 ! 그렇게 말씀하시면 무섭습니다 !]
 
"응 . 뭐 , 그래 ."
 
 
연결을 끊은 뒤 , 나는 다시 거처를 빠져나와 며칠째 애를 먹고 있는 단도실로 향했다 . 누구든 , 내게 힘이 되어 줄 나의 편 . 이왕이면 연이 많은 검이라면 좋겠다 싶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 . 사실 이시키리마루와 대화하기 전 까지는 혼자라도 상관없다고 생각 했지만 , 그와 담당자의 말을 듣고 나니 단 한 명이라도 온전한 나의 편이 필요하다 생각이 들었다 . 성한 곳이 한 곳도 없는 엉망진창인 단도실에서 눈을 감고 이곳을 고쳐야 한다고 다짐하며 영력이 사용되길 빌었다 . 
한참을 기다려도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도대체 왜 고쳐지지 않는 것인지 울컥 화가 올라와 짜증을 삼키며 눈을 뜨자 , 그리도 고생시키던 단도실이 말끔하게 고쳐져 내 앞에 작은 도공이 내게 인사를 하는 것이 보였다 . 손을 흔들며 해맑게 웃는 작은 도공이 제법 귀여워 손을 내미니 낑낑대며 손 위로 올라온다 . 뭐야 , 귀여워 .
 
왜 그동안 실패 하다가 지금에 와서야 성공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 하지만 이왕 성공한 것 지금 당장  단도를 시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 혹시나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우선 피해야 할 사안이다 . 생각 했을 때 곧장 움직여야겠지 . 작은 도공을 단도실 안에 고이 넣어두고 곧바로 자리를 떴다 .
 
 
 
 
"... 찾아오는 것은 상관없지만 , 그렇게 갑자기 열어대는 것은 실례란다 ."
 
"아 , 미안 ."
 
"그래 , 잠깐 새에 무슨 일이 있으셨니 ?"
 
"조언을 듣고  싶어서 ."
 
"그래 , 이리 와 앉으시렴 ."
 
 
이시키리마루는 사니와가 돌아가자마자 결계를 더욱 강화하여 겹겹이 둘러쳤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계를 죄 무시한 채 또 다시 신당의 문을  연  사니와를 보며  허탈함에 괜히 그에게 타박을 주었다 . 그에 당연한 듯 사과를 해오는 사니와가  제법 기특해  웃으며 신당에 찾아온 연유를 물었다 . 조언을 구한다는 말에 이시키리마루가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자 사양 않고 들어와 앉은 사니와는 잠시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고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다들 몰려다니는데 내게만 내 편이 없으니 ..."
 
"...? 그대의 편이 없다니 , 야만바기리가 있지 않던가 ?"
 
"그 녀석이 내 편이었나 ? 주위만 맴돌기에 감시를 하는 줄 알았는데 ."
 
"그대를 감시해서 무얼 할 수 있을까 . 내가 보기엔 그대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야 ."
 
 
자신의 편이 없다는 사니와의 말에 어리둥절하며  그의 주변을 항상 맴돌고 있던 이의 이름을 말하니 그 무심한 얼굴 위에 불만이라는 표정을 띄운다 . 분명 야만바기리는 사니와에 적의보다는 호의일 것이라 생각했던 이시키리마루는 사니와의 대답에 잠시 의아해하다가 곧 그가 낯을 가린다고 판단을 내렸다 . 미심쩍다는 사니와의 표정에 그는 그저 웃으니 그가 일단  넘어가겠다는 듯이 주제를 바꾸어 자신의 편을 데려와도 괜찮을까 물었다 .
초기도 없이 홀로 적의로 가득한 이 혼마루에 덩그러니 떨어진 그에게 당연히 제 편이 필요할 것이다 . 그렇게 판단한 이시키리마루는 이 혼마루를 구하기 위해서니 당연히  그리하라 답해주었다 .
 
 
"가능하면 , 츠루마루가 오는 것이 이로우실 것 같다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
 
"뭐 , 일단 허락이 떨어졌으니 마음대로 하도록 할게 ."
 
"그럼 행운이 따르길 ."
 
"고마워 ."
 
"아 , 그리고 결계는 뚫으라고 있는 게 아니란다 . 다음에는 일이 모두 마무리가 된 이후에 봤으면 좋겠네 ."
 
 
허락이 떨어지자 바로 일어나 신당을 나서는 사니와에게 진심어린 투덜거림을  끝으로 신당의 문을 걸어 잠갔다 . 튼튼히 잠긴 것을 확인하며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다는 이시키리마루의 투덜거림은 이미 자리를 떠난 사니와에게 닿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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