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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작은 서가

그늘이 드리운 혼마루[07]

by 깜냥이 2018. 4. 17.

 

결계를 뭐 어쨌다고 ? 이해할 수 없는 이시키리마루의 말에 당황하던 찰나 문 안쪽에서 덜거덕 하고 문이 무언가에 고정되는 소리가 들렸다 . 이제 이시키리마루에게 조언을 들으러 오는 것도 못하겠군 . 어쨌든 마음대로 하라는 말도 들었겠다 , 이제 내 편을 부를 차례다 . 본관에 어느 정도 다가가자 어디에 숨어 있던 건지 야만바기리가 따라붙었다 . 분명 내 눈에 띄지 않으려 숨는 것 같지만 낡은 흰 천 자락이 살짝 보이는 걸 보면 분명 그 임에 틀림없다 .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하니 곧 그에게서 신경을 끄고 곧장 단도실로 향했다 .
이시키리마루에게 다녀오느라 단도실에 혼자 내버려두었던 작은 도공이 내가 돌아오자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 
 
 
"이제 너에게 일이 생겼네 ."
 
"!!"
 
"그런데 ... 츠루마루 쿠니나가를 부르려면 재료를 얼마나 써야하지 ? 혹시 알아 ?"
 
"?"
 
"그래 , 모르는구나 ."
 
 
지난번 사몬지 형제의 말을 듣고 찾아본 바로는 코우세츠와 같이 츠루마루 쿠니나가 또한 얻기 힘든 남사 중 하나라는 것은 알고 있다 . 일단 재료를 많이 넣으면 뭐든 나오지 않을까 . 이런 내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지 작은 도공은 쌓여있는 재료들을 바라보며  정말로 최대로 다 넣을 거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래 꽉꽉 채워 넣는 것보다는 조금 여유롭게 넣을까 . 작은 도공에게 넣을 재료의 양을 일러주고 부탁을 한 뒤  서둘러 거처로 향했다 .
시간을 기다리는 것 보다 한 시라도 빨리 부르는 것이 내게 이로울 테니 도움 패를 사용하기 위해 이곳저곳 을 뒤집었다 . 분명  저번에 사몬지 형제를 수리하면서 도움 패를 꺼낸 뒤에 ... 어디다 둔거지 ? 한참을 찾다가 허탈하게도 가방 안에서 발견된 도움 패를 보고 도대체 과거의 나는 이걸 왜 여기에다 넣은 건지 속으로 진탕 욕을 하며 다시 단도실로 달려갔다 .
그리고 잠시 심호흡을 한 뒤 , 곧바로 도움 패를 사용하자 곧 문이 열리고 문 사이로 분홍빛의 꽃잎이 새어나왔다 .
 
 
"여 ! 츠루마루 쿠니나가다 ...? 음 ? 어이 ...?"
 
"..."
 
 
음 , 일단 내 첫 남사인데 . 내가 직접 소환한 남사인데 나를 좀 발견 할 수 있으면 어디가 덧나는 걸까 ?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던 백색의 남자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다 작은 도공에게 내가 어디에 있느냐 물었다 . 응 , 네 눈앞에 있습니다 . 당황한 도공이 그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니 그제야 도공의 시선 끝에 내가 있음을 알아챈 츠루마루가 경쾌하게 미안 ! 이라며 사과를 해 온다 . 응 , 좀 놀라보는 건 어때 ?
 
 
"와 , 놀랐다 . 그림자가 상당히 옅구나 ."
 
"응 , 전혀 놀란 것 같지 않네 . 일단 상황이 좋지 않으니 내 거처에서 이야기 하는 게 좋겠어 ."
 
"상황이 좋지 않다 ?"
 
"밖으로 나오면 알 수 있겠지 ."
 
 
뒤로 돌아 단도실을 나서자 뒤따라 걸어 나오는 이의 발소리가 들렸다 . 그리고 곧 그의 발소리가 멎었고 이어서 어어 , 하고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와 뒤를 돌아보니 저 안 쪽 , 혼마루의 중심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츠루마루가 보였다 . 단도실을 포함한 혼마루 중심부는 지금까지  수리에 계속 실패하고 있는  구역이다 . 낡다 못해 부서져가고 있는 곳 , 그리고 그 반대쪽은 새로 지은 것 마냥 깨끗하고 튼튼한 곳 . 두 구역이 지금 서 있는 단도실을 기준으로 나누어져있으니 당황스럽기도 할 것이다 . 
제 머리를 잡아당기며 이 광경이 꿈인지 생지인지 구분하려하는 츠루마루를 잡아끌어 거처로 돌아오니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그가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
 
 
"음 , 차는 없고 ."
 
"아니 , 그 전에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 주인 ."
 
"그럴까 ? 나도 불과 몇 시간 전에 들은 이야기지만 ..."
 
 
이시키리마루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니 츠루마루의 표정이 참 가관이다 . 처음의 짓궂게 웃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이야기를 듣는 내내 굳은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고 머리를 헤집어 대더니 , 이제는 내게서 고개를 돌려 벽을 노려보고 있다 . 본인은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자신에 대한 이야기니 복잡한 심정이겠지 .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나를 바라보며 뭐라 말을 꺼낼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으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 이었다 .
 
 
"부러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희미한 기운인 이들이 제법 되는군 , 헌데 ,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불결이 가득해 . 저 곳에 있다면 타락해버렸을 터인데 누군가 조치를 취해주고 있는 모양이군 . 기운을 보아하니 이시키리마루인가 ? 미카즈키도 있고 이와토오시도 있으니 그럭저럭 버티고 있지만 슬슬 한계야 ."
 
 
안쪽의 상황을 파악하는 말을 하며 혀를 차는 츠루마루의 모습에 그저 놀라 가만히 있으니 뭐가 그리 놀랍냐며 허탈하게 웃는다 . 그야 방금 이 곳에 온지 10 분이 간신히 넘었을 이가 안쪽의 상황을 잘 알고 있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 내 표정이 어땠는지 몰라도 진지한 표정을 집어 치우고 킬킬 웃기 시작하는 츠루마루를 보며 나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
 
 
 
 
"사니와가 방금 단도를 시작했다 ."
 
 
조용한 회랑은 야만바기리가 돌아와 대뜸 내뱉은 말에 속닥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 미카즈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제 편이 필요해 그랬을 테지 " 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넘겼고 , 아오에는 누가 불렸는지 아느냐 물었다 . 그가 단도를 시작하는 것을 본 뒤 바로 회랑으로 돌아왔기에 알 턱이 없었다 . 내저은 고개를 따라 너저분한 천이 펄럭이는 걸 보며 아오에는 궁금하네 ― 하며 장난스레 중얼거렸다 .
미카즈키에 이어 아오에까지 별 일 아니라는 반응에 다들 대강 넘어가려던 찰나 문이 요란스럽게 열리며 결국 떨어져 나갔다 . 저런 , 하는 아오에의 목소리에 아오에에게 시선이 몰렸다가 다시 문을 망가트린 범인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
 
 
"무슨 일이기에 문까지 부수는 ..."
 
"츠루마루 , 츠루마루 쿠니나가 !"
 
"뭐 ?"
 
"츠루마루 쿠니나가를 불렀어 !"
 
 
채근하는 미카즈키의 말을 도중에 끊어내고 비명을 지르듯 내뱉은 야겐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쇼쿠다이키리와 오오쿠리카라였다 . 츠루마루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벌떡 일어난 둘은 그를 불렀다는 말이 이어지자 곧장 말릴 새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 뒤에서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린 것 같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둘 다 어딜 그리 바삐 가는 겐가 ?"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 나가고 있던 도중 그토록 그리워하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 둘은 마치 시간이 멈추었거나 혹은 지금이 꿈은 아닐까 혼란에 빠져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하지만 그 것도 잠시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억누르고 츠루마루에게로 달려들었다 .
으악 - 하는 비명과 함께 츠루마루가 무언가를 감싸고 옆으로 피하며 허공을 얼싸안은 쇼쿠다이키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츠루마루를 바라보았다 . 한 박자 늦었던 오오쿠리카라가 그제야 사니와를 인식하며 살기를 드러냈고 , 뒤늦게나마 사니와를 인식한 쇼쿠다이키리 또 한 살기를 드러내며 사니와를 향해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
 
 
"떽 ! 요 놈들 !"
 
"윽 ..!"
 
"츠 ... 츠루씨 ?"
 
"어딜 주인에게 적의를 드러내나 ! 살기를 거두지 못해 ?"
 
 
짐짓 엄한 표정의 츠루마루가 둘의 머리를 수도로 내리쳐 진정시키고 어리둥절한 둘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 갑작스런 손찌검에 놀란 사니와가 츠루마루를 만류하자 이들이 감히 주인에게 살기를 드러냈다며 성을 내었다 .
어째서 인간의 편에 서는 거지 ? 우리를 구해주었던 그라면 , 그였다면 . 혼란에 빠진 둘의 얼굴에서 훤히 읽히는 생각에 눈살을 찌푸린 츠루마루가 한 번 더 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 맞은 머리를 문지르면서도 분하다는 얼굴을 하는 오오쿠리카라를 보며 츠루마루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지만 사니와의 만류에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 자신이 혼을 내도 소용이 없음을 확신한 츠루마루가 결국 다른 계책을 세웠다 . 
 
 
"미카즈키는 어디에 있나 ."
 
"츠루마루 ?"
 
"일단 그와 이야기 하는 것이 빠를 테니 . 주인은 거처에서 기다리시게 ."
 
"그렇게는 못해 . 혼자 보낼 수는 없어 ."
 
 
이 혼마루의 남사 중 가장 영향력이 강한 이와 담판을 짓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리라 . 하지만 그가 생각지도 못 했던 것이 있었다면 사니와의 격렬한 반대였다 . 이제 막 현신한 참이니 남사들이 가득할 곳에서 홀로 사니와를 지킬 자신도 없고 , 그 곳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인간인 사니와가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 츠루마루로서는 어찌어찌 설득해서 안전한 결계 안에 두고 홀로 다녀오고 싶지만 무심한 얼굴을 한 주제에 고집이 강하다 . 
절대로 고집을 꺾을 생각을 하지 않는 제 주인 탓에 결국 두 손 두발을 다 들은 것은 츠루마루였다 . 직접 찾아가는 것은 극단적인 생각이었다며 사과를 하는 츠루마루를 보며 사니와가 안도했는지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 하지만 다가오는 기척에 츠루마루가 사니와를 보호하듯 감추고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 어리둥절해 하던 사니와가 츠루마루의 너머로 보인 인영에 얼굴을 굳혔다 .
 
 
"하하 . 그대 , 나를 찾는가 ."
 
"미카즈키 ."
 
"그래 , 미카즈키 무네치카라네 . 그리운 얼굴이 왔구나 ."
 
"절대로 직접 움직이지 않으리라 여겼네만 ,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로군 ."
 
 
곳곳에 부상이 가득해 너덜너덜한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허허로이 웃으며 여유로운 작태인 미카즈키의 등장에 츠루마루가 떨떠름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 그를 부축한 야만바기리를 힐끗 바라본 츠루마루가 짐짓 비아냥대는 말을 했음에도 그는 그저 웃으며 사니와에게 대화하러 왔으니 거처로 안내하라 청할 뿐 이었다 . 쇼쿠다이키리나 오오쿠리카라와는 달리 적의도 없고 , 그렇다고 제 얼굴을 가리기에 급급하면서도 미카즈키를 부축하는 것에도 소홀하지 않는 야만바기리와 같이 호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는 미카즈키와 , 그의 웃는 낯을 노려보는 츠루마루의 모습에 사니와가 급히 중제를 위해 둘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
 
 
"위해를 끼치러 온 것이 아니니 그리 경계하지 않아도 괜찮아 ."
 
"통 속을 알 수가 없으니 믿을 수가 있나 ."
 
"결정하는 것은 자네가 아니라 자네의 주인일세 . 그대 , 날도 서늘한데 들어가서 대화나 나누는 게 어떤가 ."
 
"일단 , 츠루마루는 그만 노려보고 . 대접할 것이 없는데도 괜찮다면 내가 묵고 있는 방으로 가지 ."
 
"그래 , 그러는 것이 좋겠어 . 야만바기리 , 조금만 더 도와주게 "
 
 
사니와의 결정에 츠루마루는 불만인 얼굴을 하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 먼저 걸음을 옮긴 사니와를 지키듯 츠루마루가 뒤따랐고 이어서 야만바기리의 부축을 받으며 미카즈키가 따랐다 .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쇼쿠다이키리와 오오쿠리카라는 재촉하는 듯 뒤돌아보는 미카즈키의 시선에 머뭇거리고 있던 걸음을 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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