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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작은 서가

그늘이 드리운 혼마루 [08]

by 깜냥이 2018. 4. 18.

올리기 전에 맞춤법 검사를 한컴(..)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듯 한<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이 표현은 검사기에서 오류가 나네요... :/

사실 그늘 혼마루는 15~20정도의 분량으로 끝날 예정입니다만... 8편 쓰는데도 몇달이 걸렸는데..(먼눈) 그저 천천히 쓰겠습니다....

 

 

방이 어지럽혀져 있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문을 여니 다행이도 제법 깔끔한 모양새였다 . 지저분한 것들을 한 곳에 모아 하오리로 대충 덮어 두었던 것이 그제야 떠올라 안도하자 츠루마루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따라 들어왔다 . 하지만 곧 당황한 쇼쿠다이키리의 목소리가 들려와 뒤를 돌아보니 오오쿠리카라가 이마를 문지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있지 , 결계를 걷어야 들어갈 수 있는데 ."
 
"결계 ...?"
 
"이거 봐 ."
 
 
통통하고 허공을 두드리는 쇼쿠다이키리의 모습에 당황하니 미카즈키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보이지 않는 벽을 더듬었다 . 제법 견고하다며 허허 웃는 그의 모습에 야만바기리도 궁금해졌는지 손을 올렸으나 어째서인지 그의 손은 허공을 휘저었다 . 제 손에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음을 깨달은 야만바기리가 혹여 함께라면 들어올 수 있을까 싶었는지 미카즈키를 부축한 채 들어오려 했으나 , 미카즈키는 소맷자락조차도 들어오지 못했다 .
결계가 뭔지 모르겠지만 대화를 하려면 들어와야 하는데 결계를 어떻게 없애는 거지 ? 야만바기리는 왜 들어와지는 거지 ? 
당황해서 머릿속에 정신없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던 찰나 여전히 허공을 두드리던 쇼쿠다이키리의 손이 쑥 방 안으로 들어왔다 . 놀란 얼굴로 움직임을 멈춘 쇼쿠다이키리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미카즈키가 야만바기리를 재촉해 방 안으로 들어왔다 . 분명 방금 전 까지 그들을 막고 있던 것이 거짓말인 듯 , 걸리적거리는 것 하나 없이 들어와지자 허공에 이마를 부딪힌 오오쿠리카라가 억울한 표정을 했다 .
부축을 받으면서도 거침없이 방 안으로 들어선 미카즈키가 엄살을 피우듯 과장되게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 그 모습에 끌끌 혀를 찬 츠루마루가 나를 그의 앞에 앉히고는 내 오른쪽에 자리를 잡으며 미카즈키를 흘겼다 .
 
 
"그래서 내 주인은 왜 찾아온 겐가 ?"
 
"그저 그대의 주인이 애타게 대화를 청하니 한 번 쯤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아 왔을 뿐이라네 ."
 
"그럼 진작 들어주었으면 좋았지 않았나 ."
 
"흐음 , 이 노구가 홀로 혈기 넘치는 이들을 전부 설득하기는 힘들지 ."
 
 
미카즈키의 뒤로 쪼르르 자리를 잡고 앉는 나머지 세 사람을 확인하던 중 귀를 의심하게 되는 단어에 흠칫 했다 . 노구라니 그게 누구죠 . 지금 저 절세 미인이 본인을 노구라고 칭한 건가 . 츠루마루의 트집에도 온화한 미소로 대꾸하는 미카즈키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다 . 헤이안 시대라면 노구라고 해도 그렇구나 할 법 하지만 , 저 얼굴로 ?
어이가 없어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시선을 돌려 눈을 마주치고는 연륜 있는 노인처럼 웃는다 . 
 
 
"그러니 그대 , 그토록 대화를 청한 것에는 다 연유가 있겠지 ?"
 
"... 그냥 ,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건 싫어서 ."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담담한 척 내뱉은 말에 미카즈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말을 되풀이 한다 . 솔직히 생각한 대로 말 한 것뿐인데 미카즈키의 뒤에서 듣고 있던 셋이 요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보인다 . 그도 그렇겠지 .
벌써 이곳에 온지가 벌써 1 주일이 되었다 . 처음 이 곳에 도달했을 때 느낀 것은 황폐한 폐허에 놀란 것도 있었으나 , 내가 이곳에서 도대체 무얼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렵다는 느낌이 가장 컸다 . 죽이면 죽지 뭐 , 라고 생각한 것도 있기야 했지만 살아있는 사람인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을 리가 없었다 . 도망칠 곳도 없으니 일단 뭐라도 해야 죽어도 억울하지 않겠다 생각했었다 . 아무 것도 이루지 못 한 채 죽으면 그냥 개죽음일 뿐이니 .
 
 
"다짜고짜 정부에 불려서 대뜸 당신들을 구해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 나 하나 건사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남을 구할 수 있냐고 따지고 싶었어 . 와서 당신들한테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
 
"사실 온지 1 주일정도 되었는데 아직도 내가 정말로 당신들을 구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잠시 멈추자 미카즈키는 조용히 내가 다시 말을 하길 기다렸다 . 힐끗 그의 뒤에 앉은 야만바기리에게로 시선을 준 뒤 츠루마루를 보고 미카즈키가 아닌 그 앞의 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
이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 . 이 이야기를 내가 담담히 내뱉을 수 있을까 .
고민을 하느라 침묵이 길어지자 같이 침묵을 지키던 미카즈키가 괜찮으니 말을 해보라며 위로하는 듯 한 어조로 채근한다 . 길게 숨을 들이 쉬었다가 , 한숨을 토해내듯 결국 서두를 힘겹게 꺼내 놓았다 .
 
 
"사실 자신은 이곳에 오기 직전 ."
 
"큰 대회의 시합에서 동료에게 쓸모없다고 버림받고 결국 패배했어 . 그 분한 상태 그대로 이곳을 구하라고 들어서 ."
 
"나는 그럴만한 인간이 아니라고 했는데도 ."
 
 
기어코 꺼내놓은 말에 누군가 놀란 듯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 말의 두서도 없고 미카즈키의 질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 하지만 지금의 각오를 들려주고자 한다면 꼭 말해야 할 것 같다 . 시선은 여전히 바닥에 고정한 채 ,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라기보다 속에 쌓아둔 것을 토해내듯 말을 이어나갔다 .
 
 
"그런데도 결국 이곳에 왔지 . 처음에는 그저 떠맡아버린 일이니 대충 , 어떻게든 , 그런 생각이기도 했지 ."
 
"그렇게 혼자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했지만 당신들을 언짢게 만든 모양이고 , 역시 나로서는 무리인가  생각하던 중 이시키리마루에게 사정을 들었어 ."
 
"동질감 ... 이라는 걸 느꼈다 고하면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일까 ."
 
 
말을 멈추고 실실 웃으니 누군가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 그들의 이야기와 비교하자니 내 일은 하찮기 그지없지만 , 그럼에도 조금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했으니까 . 수단으로 이용당하고 결국은 쓸모를 잃어 버려졌다는 것이 그들과 나의 공통점이라 생각했으니까 .
하지만 확실하게 나와 다른 부분도 있었다 . 그리고 그것은 하늘빛의 누군가를 떠오르게 해 가슴 한편이 욱신거렸다 .
 
 
"이야기를 듣고 나니 , 솔직히 처음에는 아연했지 . 내가 감히 참견해도 되는 문제인가 싶었고 . 하지만 이곳에 오기 직전의 내 상황이 떠오르니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도 꼭 구해주고 싶어졌어 . 아니 , 구한다는 말은 거창한가 ? 도와주고 싶었다고 하는 말이 맞을 것 같네 ."
 
"나와 달리 당신들은 서로를 위하는 동료들이 항상 곁에 있었으니 부러워서 ,
우습지만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렸어 ."
 
 
길게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나오는 대로 마구 내뱉는 말이지만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다 . 그렇게 생각했을 때 , 시야에 흰 옷자락이 덮이며 누군가의 품속으로 안겨졌다 .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마치 위로하는 듯 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숨을 참으며 버텼다 . 귓가에 들려오는 , 아무도 비웃게 하지 않겠다 다짐하는 츠루마루의 목소리에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 그래 , 이제 온전한 나의 편이 여기에 있으니 어떻게 홀로 전부 짊어져야 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이제 나이만 많고 패배의 순간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무능력한 라쿠잔의 5 번이 아니다 . 지금의 나는 사니와인 세츠인이니 .
여전히 시야를 가리고 있는 츠루마루의 옷자락 너머로 미카즈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대의 각오는 잘 들었네 ."
 
"미카즈키 ..."
 
"이미 이시키리미루를 선두로 산죠파의 검들은 하나 둘 그대에게 호의적인 태세로 돌아서고 있어 . 그에 내가 거든다면 내 뜻을 따를  다른 도파의 검들도 많지 ."
 
 
허나 산죠의 검들은 중립을 지킬 것이다 . 선언하듯  내뱉어진 말에 츠루마루의 소매가 천천히 거두어졌다 . 소매의 너머로 보인 미카즈키의 얼굴은 단호했다 . 중립을 지킬지언정 내 편이 되어 거들어 줄 생각은 없어 보이는 얼굴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 내 얼굴에서 불안함을 느낀 건지 미소를 지으며 내가 진심을 보이면 다른 이들도 마음을 열 것이라 장담했다 . 
 
 
"허나 쉽지만은 않겠지 ."
 
"방금 전에 그렇게 장담해놓고 쉽지 않을 거라고 ..."
 
"다른 이의 마음을 얻기가 쉬운 일일리가 ."
 
"그건 그렇지 ."
 
 
병 주고 ... 아니 약주고 병 주는 것도 아니고 . 하지만 미카즈키의 말에 바로 떠오른 두 꼬맹이의 얼굴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 확실히 내게 적의가 있는 이들 , 그런 이들이 분명 그 두 꼬맹이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 그리고 그들이 가진 적의는 금방 어찌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니 시일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 자신의 말에 금방 수긍한 나를 보며 미소를 지은 미카즈키는 용건을 끝냈다는 듯이 야만바기리를 불러 자신을 부축하게 했다 .
배웅을 하려 일어서는 나를 만류하며 야만바기리와 함께 방을 나서던 미카즈키가 돌연 뒤를 돌아보며 허허 웃는다 . 왜 그러는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츠루마루의 양 옆을 차지하고 앉은 두 남사의 작태가 제법 뻔뻔하다 .
 
 
"그대들은 이곳에 있을 참인 게로군 ."
 
"츠루씨가 이곳에 있으니 우리도 이곳에 있음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어서요 ."
 
"누구 마음대로 . 여긴 내 방이야 ."
 
"모처럼 츠루씨가 왔는데 ! 당신보다 내가 츠루씨랑 더 오래 알았어 !"
 
"그렇게 나온다면 할 말 없지만 ! 그거랑 내 방에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
 
 
당연한 듯 내 방에 머물겠다고 선언하는 쇼쿠다이키리의 언행에 어처구니가 없어 태클을 거니 그가 대뜸 빼액 소리를 질러댄다 . 너만 소리 지를 줄 아느냐는 심보로 같이 소리를 지르자 대화를 거부한다는 듯이 고개를 홱 소리 나게 돌려버렸다 . 그 모습에 미카즈키가 소리 내어 웃고는 다음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 버렸다 . 어째서인지 큰 짐을 버려두고 도망친 느낌이 들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남은 두 남사를 돌아보니 둘 다 츠루마루의 곁에 붙어서는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 
나와 눈이 마주친 츠루마루가 결국 고개를 내저으며 나와 동시에 한숨을 내 쉬었다 .
 
 
"꼭 여기에 있어야겠어 ?"
 
"츠루씨와 함께 있을 거니까 ."
 
"커다란 남자 넷이 어떻게 이 좁은 방을 쓰라는 거야 . 옆방도 비었는데 , 셋 다 옆방을 쓰던지 ."
 
"어찌 주인을 홀로 두고 갈 수 있나 ?"
 
"아까 봤잖아 ? 여긴 아무나 못 들어와 ."
 
 
나도 이번에 안 거지만 . 차마 마지막 말은 잇지 못하고 고갯짓으로 옆방을 가리키자 츠루가 나와 제 곁에서 버티고 있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넷이서 쓰기엔 좁아 . 좁다고 . 츠루마루도 같이 방에서 내보내는 것이 조금 불안 하긴 하지만 방음도 안 되는 얇은 벽 너머다 . 츠루마루라면 벽도 부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말 같지도 않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츠루마루는 다른 것이 불안한 모양이다 .
 
 
"뭐 , 계약도 안 한 이들이 주인의 곁에 있는 것보다는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 좋겠지 ."
 
"계약 ?"
 
"도검남사와 주인의 ... 아니 계약에 대한 것을 몰라 ?"
 
 
당황하는 츠루마루의 모습에 되레 내가 당황했다 . 그거 내가 알아야하는 거야 ? 정부에서 받은 자료는 남사들에 대한 것과 혼마루의 운영체제가 대부분이라 건성으로 듣고 건성으로 읽었던지라 모르는 것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 . 그래도 기초적인 것은 다 알 것이라 자부했건만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라 일단 저 녀석들을 쫒아낸 뒤 자료를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 단단히 화가 난 츠루마루의 표정에 시선을 짐 더미 근처에서 떼지 못하고 있으니 나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니 걱정 말라며 두 불청객을 끌고 옆방으로 향했다 . 물론 나가기 전 늦지 않게 잘 것과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등 이런 저런 당부를 빙자한 잔소리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
 
과보호임을 자신도 알고 있는지 머쓱하게 웃으며 잘 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옆방으로 넘어가는 츠루마루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 오랜만에 안심하고 깊게 잠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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