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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작은 서가

그늘이 드리운 혼마루[10]

by 깜냥이 2018. 6. 30.
호타루마루가 울고, 간신히 달랬나 싶었더니 츠루마루가 다시 울리는 통에 아카시의 수리는 한참 뒤에나 할 수 있었다. 말끔한 모습으로 터덜터덜 수리실에서 걸어나오는 그의 모습을 확인 한 호타루마루가 그에게 다가가 안겼다. 오랜 시간동안 울었던 탓에 엉망인 얼굴을 아카시의 품에 부비적 대는 것을 보며 괜히 저들이 형제라 불리는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호타루마루가 츠루마루를 봤을 때 반응을 추측해 본적이 있다. 그저 울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추측을 했었으나, 막상 현실에 닥쳐오니 보는 이마저 마음이 아려올 정도의 오열을 터트린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우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쇼쿠다이키리와 오오쿠리카라, 그리고 어김없이 나타난 야만바기리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 조금 진정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이가 살아 돌아온 것이나 다름 없으니 함께한 기억이 없어도 울 정도로 반가운 것이 당연하겠지. 심지어 호타루마루는 자신이 직접 그를 베었으니 자책감도 상당할 것이다.


"음... 거, 사니와님."

"세츠인이야. 왜."

"우리가 당신 근처에 머물러도 상관 없는깁니까?"

"뭐, 그건 너희 마음이지. 일단 호타루마루는 츠루마루에게서 멀리 떨어지기 싫은 눈치인데."


떨어지기는 싫어하나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시선을 떼려하지 않고 떼었다가도 다시 츠루마루에게로 시선을 고정한다. 그래서 근처의 방에 머무르라 했더니 처음에는 기꺼워하는가 싶더니 눈치가 보였는지 아카시가 슬적 말을 꺼냈다. 그에 대강 대답을 해주니 표정이 제법 우습다.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호타루마루를 생각했는지 이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종국에는 뭔가 석연치않다는 표정을 짓고는 한숨을 내쉬고 그럼 쉬라는 말과 함께 제 방으로 돌아갔다. 




누군가가 우는 소리에 헐레벌떡 달려온 야겐과 아츠시는 츠루마루의 품에 안겨 울고있는 호타루마루를 발견했다. 그만 울으라며 토닥이는 손길,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부러워 저도 모르게 한걸음 내딛은 야겐이 그들의 근처에서 나무패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사니와를 발견하고 아츠시를 잡아당겨 그 자리를 피했다. 
모두가 모인 회랑의 문을 열자 울음소리의 정체를 궁금해하던 모두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몰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형제들의 사이로 섞여들었다.


"누가 이곳을 나갔는 지를 생각하면 우는 이가 누구인지는 뻔한 것을. 무엇이 그리 궁금한가."

"라이파가 수리를 받겠다며 나갔지요. 뭐... 서러울만 하지, 그리운 이가 돌아왔을테니 말이야. 누구에겐들 그립지 않은 이는 아니지만."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는 두 단도에게 시선으로 재촉하는 이들을 미카즈키가 핀잔을 주고는 혀를 찼다. 그에 대신 궁금증을 풀어주듯 아오에의 혼잣말이 작지 않은 소리로 회랑에 울렸고 그 말에 몇몇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모두의 마음에 파란이 일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형제가, 동료가 부상을 입었고, 심한 이들은 거동은 커녕 간신히 형체만 보존 했으며, 그리고 끝내 부러져버린 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치료되길, 다시 움직이길, 그리고 곁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았으니 조금씩 그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츠... 츠루마루님이 오셨으니... 어쩌면 이치 형도 올 수 있지 않을까요...?"

"이치 형 뿐만 아니라 나마즈오 형이랑 호네바미 형도..."

"그리고 숙부도 호타루처럼..."

"저 인간도 나중에 탐욕에 물들어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어."


소근소근, 아와타구치 안에서도 적의가 줄어들고 희망을 품은 목소리가 하나 둘려오기 시작했다. 고코타이를 시작으로 점점 소리를 높이는 제 형제들을 바라보던 야겐과 아츠시의 표정은 점점 험악해져갔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을 본 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 야겐의 차가운 말에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인간이 다 같지는 않아. 그러니 표정을 좀 푸는게 어때? 소중한 형제들에게 겁을 주는건 옳지 않은 일이지."


조용해진 이들을 다독이며 우구이스마루가 야겐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린아이 다루듯 야겐과 아츠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우구이스마루는 바짝 날이 선 둘을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곧 제게로 다가오는 다른 단도들에게 웃어주었다.
그런 우구이스마루를 보던 미카즈키는 아와타구치들을 훑어보고 다른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가 그저 눈을 감았다. 사니와를 만나고 온 뒤로 더욱 말을 아끼는 그의 모습도 남사들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동요는 지금껏 불청객이라 여겼던 이를 수용하고자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저 안쪽에 있는 이들을 수리 받는건 어떻게 생각하나?"

"이와토오시까지 그런 말을 하다니."

"이미 이 곳에 타락한 영력으로 가득하지. 이시키리마루와 미카즈키 덕에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지만 그 것도 슬슬 한계다."

"우리의 힘도 보태면 버틸 수 있어!"

"저들의 타락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몰라." 

"그렇지만!"

"야겐 토시로!"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당연하다는 듯이 반발을 일으키는 아와타구치의 검들을 보며 이와토오시는 차분히 그들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완강한 자세로 제 건의를 반대하는 태도에 기어코 큰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야겐과 이와토오시의 신경전에 눈을 감고있던 미카즈키도 눈을 떴고 다른 남사들은 침묵하며 둘을 지켜보았다. 노기 어린 얼굴의 이와토오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야겐과 대치하자 큰 검들은 그들을 뜯어 말려야하는 상황을 대비해 경계태세를 취했다.


"너희 형제가 서로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에 대한 너희들의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도 잘 알고있지!"

"그런데 그렇게 원한만 품고있으면 뭐가 달라지는가! 나키기츠네는 이미 의식도 없는 상태로, 그대로 불결에 물들어 타락하게 내버려 둘건가? 새로운 사니와가 왔으니 이제 그를 수리할 수도 있다. 나마즈오나 호네바미, 이치고도 다시 불러올 수 있는데 계속 거부하기만 할텐가!"
 
"우리는 검이다, 아무리 육신을 얻었다해도 사용해 줄 인간이 없으면 녹슬어 무뎌질 뿐인 검!"


지켜보는 이들의 우려와는 달리 그저 호통을 치며 야겐에게 훈계한 이와토오시는 어디 반박을 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듯이 그저 내려보았다. 그의 말은 야겐은 물론 아직도 거부감을 가진 이들도 차마 반박할 수 없는 정론이었기에 회랑 안은 그저 침묵에 휩싸였고, 그런 이들을 한 번 훑러본 이와토오시가 다시 야겐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야겐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이를 악물 뿐 더 이상의 거부의 말도 반박도 없었다.


"그, 좋은.. 사람 같았는걸!" 

"나랑, 형님도 치료해 주었어."

"만나지는 못했지만! 혼마루 안에 기분 좋고 맑은 기운이 가득해요!"


사니와를 만났던 아키타와 사요가 조심스럽게 제 의견을 피력하고, 덩달아 이마노츠루기가 신이 난 어투로 외치는 소리에 회랑 안에 긍정적인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믿을 수 없다며 마음을 굳게 닫은 이들 또 한 있었기에 회랑 안은 둘로 나뉘어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정원이 고쳐지고 난 뒤로 맑아진 하늘에 휘영청 밝은 달이 떴다. 어제 하루 깊게 잠이 들었던 탓인지, 아니면 라이파가 수리를 받으러 온 것이 기뻐서인지, 서럽게 울던 호타루마루의 모습에 아직도 마음이 아린 것인지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 마루에 앉아 하늘에 뜬 별이나 세다보면 잠이 오지 않을까 싶어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근처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위? 아니면 뒤쪽인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한 것을 보아 츠루마루는 아닐테니 항상 주위를 맴도는 야만바기리일 것이다.


"야만바기리냐? 왜 자꾸 주위를 맴돌기만하는거야? 잠도 안오고 심심한데 이야기나 하게 이리 오던가."


기다려도 미동도 않는 기척에 아무 말이나 툭 던져보았지만 그럼에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달도 밝고 별도 많은 하늘에 괜히 센치해진 기분에 혼자 떠들테니 거기서 듣기라고 해달라하니, 듣겠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움직이기 싫은 건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대답이 없으니 멋대로 듣겠다는 걸로 이해한 나는 기둥에 몸을 기대로 편한 자세를 취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야만바기리이고 어젯 밤 미카즈키도 있는 곳에서 속에 쌓아두었던 것을 조금 꺼내놓았던 참이니, 이왕 꺼낸 것 조금 더 꺼내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너와 나는 닮은 구석이 있어. 본래 있던 곳에서 나 또한 위작이었으니까."


다짜고짜 꺼낸 말이 이런 내용이어서 일까. 미동도 않던 기척이 당황한 듯 조금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위작이라니, 인간인데 위작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다지 틀린 단어도 아닐 것이다. 나부터도 신형이니 구형이니 하며 지칭 했었으니까.
그 날을 회상하려니 울컥 올라오는 분함을 애써 담담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리누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대장에게는 이전에 있던 곳에서 데리고 있던 특별한 녀석이 있었어서, 내가 그 녀석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 녀석과 같은 용도로 훈련을 받았어."

"그리고 그 녀석과 싸우게 되었지. 하지만 내 실수로  용도대로 활용될 수 없게되었어. 그리고 버려졌지, 싸우던 도중에."


내게 덮여 다시 그림자로 돌아간 구형. 순식간에 뒤집어진 전세와 차가운 팀원, 내게 오지 않는 공. 그럼에도 교체되지 않아 계속 머물러야 하는 코트. 그리고 흔들리지도 부러지지도 않는 상대팀.
팀에 대해 애정도 결속력도 없던 나와, 팀원과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고 지지하던 구형의 모습은 완벽히 나와 대조되었다. 바로 그 부분이 실패 요인이라는 듯이.


"그 원본이라는 녀석은 팀원들과 매우 사이가 돈독해 보였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었으니까.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사이라고 해야하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시합에서 패배했던 거라고 생각해."


개인으로서도, 팀으로서도 패배했던 이유는 그 것이리라 추측한다. 물론 환상의 식스맨으로서의 경력과 마음가짐이 가장 큰 이유인 것이 분명했으나 저런 마음이 드는 것은 은연중에 그들이 부러워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를 만나고 싶었어. 쿠니히로의 걸작이라고 불림에도, 위작이라고 자신을 감추는 너를. 신형이라며 더 우수하다고 믿었는데, 결국 대역에 지나지 않았던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걸작이라 불리고 있으나 자존감이 낮아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야만바기리 쿠니히로와 그림자라 불리고 있으나 자존감은 높아 자신을 사랑하는 마유즈미 치히로, 반대되는 너와 나지만 그렇기에 비슷하다고 여겼다. 위작과 대역, 제법 잘 어울리지 않은가.


"너와 나는 그 아이들처럼 사이 좋게 지낼 수 있을거라고, 서로 비슷한 부분은 공감하고 다른 부분은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너 만큼은 꼭 만나고 싶었어."


말이 이어지는 동안 듣고 있던 건지 움직이지 않던 그는, 내 말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자 머뭇거리는 듯 지붕 위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리곤 소리를 낸 것이 놀랐는지 잠시 조용해졌다가 조금 뒤 그 기척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또 도망친건가? 기척이 느껴지던 지붕 위를 바라보았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는 이가 보일리 만무했다.
결국 혹시나 싶어 주변을 살피다가 심하게 늦은 시간임을 확인 하고, 감기지 않는 눈을 억지로 붙이기 위해 방으로 돌아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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