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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작은 서가

그늘이 드리운 혼마루[12]

by 깜냥이 2018. 6. 30.

일단 호기롭게 외치고 나온 것 까진 좋았다. 고토가 그 둘이 도망친 곳으로 추측되는 장소도 알려주었기에 그래봐야 꼬맹이 둘이니 금방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허름한 건물 밖에 없는 혼마루 뒤편은 생각보다 숨을 만한 곳이 많아, 꼬맹이들의 옷자락 하나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느라 미처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탓에 다른 이와 부딪치기까지 했다.


"윽!"

"아, 미안. 앞을 제대로 봤어야 했는데."

"너는..."


나의 존재감 없음 덕에 일방적으로 나 혼자만 얼굴을 봐 왔던 헤시키리 하세베. 그의 입장에서는 나를 처음본 탓인지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곧 오만상을 썼다. 나를 만난 것이 불만인 거겠지. 표정에서부터 느껴지는 혐오감에 무슨 반응을 보여야 적절한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럴때 츠루마루가 있었다면 분명 노대발해서 화를 냈겠지, 없어서 다행이다.
노려보기만 하는 헤세키리의 뒤편으로 무언가의 그림자가 지나가 그것을 시선으로 쫒으니 자신이 무시당했다 생각 했는지 무슨 속셈이냐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고토에게 들었어. 야겐과 아츠시가 도망쳐서 걱정이라고 하길래."

"네 놈이 돌아가라고 했을때 순순이 돌아 갔다면 이런 일 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어! 이곳 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더니!"

"미안하지만 나도 강제로 온건데."

"... 쯧. 방해나 하지 마라!"


내 말에 차마 거짓말이라 매도하지는 못하겠는지 혀를 차고 자리를 떠버린다. 괜히 내게 성질을 부리고 있다고 느끼는 건 절대로 착각이 아니겠지. 야겐과 아츠시만큼이나 나를 적대한다는 것이 느껴져 되도록이면 눈에 안 띄게 돌아다녔건만, 이런 일로 만나게되다니...
헤시키리에 신경 쓰는 것 보다 꼬맹이들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물론 그들을 찾는다고 해서 그 녀석들이 내 말을 들어줄까 싶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니. 헤시키리와 반대 방향으로 정해 아이가 숨을 만한 곳을 찾아 발을 떼었다. 

텅 비고 여기저기 부서진 마굿간과 헛간, 무슨 용도인지 내부에 막힌 곳 없이 넓기만 한 건물과 별채가 하나 씩. 그 외에는 나무가 몇 그루 정도 있을 뿐인 곳에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없는건가? 아니면 엇갈렸거나 무언가 내가 놓치고 지나간 것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벽에 기댄 채 잠시 숨을 돌리며 놓친 곳이 있는지 하나하나 되짚어보던 중 헤시키리가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와 반대편으로 향했다고 해도 찾느라 주변을 둘러 왔으니 동선이 곂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지친 상태에서 만나는 건 정신건강에 해롭다. 알아차려지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피하기 위해 벽에서 몸을 뗀 순간 머리 위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헤시키리의 시선이 그리로 향하는 것을 보며 나도 소리의 원인을 파악하려, 혹시나 그 꼬맹이 들일까 하는 마음에 처마 밑을 빠져나오는데 헤시키리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야겐! 아츠시!"

"야겐, 도망치자!"


왜 그토록 찾았는데 못 찾았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지붕 위에 있었으니 당연히 보이지 않지. 하세베의 외침에 지붕 위에서 서둘러 도망치는 두 꼬맹이들이 비스듬한 지붕을 달리느라 들려오는 달그락 덜그럭 소리가 불안하다. 그리고 그 순간 아츠시가 밟은 기와가 불안한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미끄러진다. 급히 바닥을 붙잡는 것이 보였지만 이미 기와 하나가 어긋나 있던 탓에 낡은 기와는 그를 지탱해 주지 못했다. 야겐이 다급히 손을 뻗었지만 닿지 못하고 서로의 손이 엇갈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더 이상 다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차 무작정 내달렸다. 처음엔 바로 머리 위에 있었지만 도망치느라 제법 거리가 벌어져 있는 힘껏 달리는데도 멀다. 아슬아슬 손이 닿을 거리가 되었을 때 몸을 던져 녀석을 감싸안고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 무언가에 부딫치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무시하며 품 안의 아츠시가 무사한지 내려다보니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리 저리 살펴보니 새로 생긴 것으로 보이는 상처는 없었다. 멍이 들었는지 확인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으니 넘기고 괜찮으냐 물으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잠깐 사이에 긴장을 한 탓인지 경직되어 있던 몸이 실 끊어진 인형 마냥 풀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아츠시!"

"야겐, 나... 나는 괜찮은데..."

"그건 다행이네."


야겐의 와침에 아츠시가 나를 눈짓하며 어물어물 대답한다. 괜찮다니 정말 천만 다행이다. 아츠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자리에서 일어나려 바닥을 짚고 힘을 준 순간 갑작스럽게 느껴진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부딫치면서 다친 건지 얼얼한 느낌 뿐이던 어께와 등이 이제는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응급처치 용품을 어디에 두었더라, 등인데 혼자 처치 할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말이 없자 앞에서 두 꼬맹이가 안절부절 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괜찮으니 걱정마라고 웃어줄까 하던 찰나 뒤늦게 쫒아온 하세베가 화를내며 야겐과 아츠시의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았다.


"야겐! 아츠시! 이 멍청이들이!"

"윽! 하세베... 지금 그렇게 소리 지를 상황이..."

"시끄럽다! 너희는 말 할 자격 없어! 그리고 너는 제정신인가! 우리같은 도검은 수리를 하면 금방 치유할 수 있지만 너는 인간이면서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하는거야!"

"금방 치유가 된다고 아프지 않은건 아니잖아."

"그, 그건..."

"그리고 수리받으러 오지도 않은 녀석이 그런 말 하지 마라."


어디다대고 성질이야. 지금 화 낼 사람은 나인데 적반하장일세? 금방 치유 되니까 보호하지 말라니, 그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 그런 소릴 지껄일거라면 처음부터 순순히 수리를 받으러 오던가.
내가 듣기에도 차갑게 내뱉어진 말에 헤시키리는 그저 굳게 입을 다물 뿐 이었다. 그런 그를 무시하고 일어나기위해 아프지 않은 쪽 어께에 힘을 주니 등이 얼얼해서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던 헤시키리가 다시 꼬맹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려는지 야겐을 불렀으나, 그의 뒤편에 시립해 있던 꼬맹이들은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이 놈들이 또!"

"내일 나키기츠네를 수리하러 온다고 하길래, 같이 수리 받았으면 했는데."

"너는 네 걱정부터 해라! 자, 손이라도 빌려줄테니 잡아."

"환자에게 도움 받기는 싫은데."

"네 꼴을 보고 말하시지!"


멀쩡한 쪽의 팔을 붙잡아 일으키려던 헤시키리는 내가을 쓰자 내 팔 밑으로 손을 넣어 부축하듯 일으켰다.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덜 아프다. 다만 문제는 내 부상이 상반신 타박상 뿐만 아니라 구르면서 삐었는지 걷기도 불편했던 탓에, 헤시키리가 혀를 차며 내가 머무는 방 까지 부축해 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어디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서 날 찌르기라도 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는 성실하게 츠루마루의 앞에 날 대령해 주었다.


"주인? 그게 무슨 꼴인가! 어쩌다 다친거야!"

"아아, 꼬맹이들이 말썽이라."

"지붕에서 떨어진 아츠시를 구한답시고 몸을 날렸다."

"어이, 그렇게 바로 말해버리지 말라고."


내 꼴을 보고 기함한 츠루마루가 버선발로 뛰쳐나왔고 수리를 받으러 온 것으로 보이는 남사들이 기웃거리며 나를 살폈다. 각각 푸른색과 붉은색을 걸친 둘은 오키타의 검인 야스사다와 카슈인 모양이다. 손님고 있고 하니 대강 넘기려는 것을 헤시키리가 간단 명료히 설명하는 바람에 츠루마루가 도끼눈을 떴고 근처에서 듣고잇던 쇼쿠다이키리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했다.
왜, 뭐. 내가 잘못을 한 건 아니잖아. 뻔뻔하게 넘어가려 카슈와 야스사다를 수리실로 보내려 하니 츠루마루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주인! 정녕 내 심장이 떨어지는걸 보고싶은겐가! 몸을 던지다니!"

"아니... 나도 모르게 몸 부터 나간거라."

"그러게 혼자 무작정 뛰쳐나가지 말고 츠루상이랑 같이 갔어야지."

"그..."

"그러고 있지 말고 방으로 들어와! 상처부터 보게!"

"나보다 너희도 수리 받으러..."

"지금 우리가 문제야? 당신 바보야?"


츠루마루와 쇼쿠다이키리, 수리받으러 온 카슈까지. 세 남사의 잔소리 세례에 질린 얼굴은 한 헤시키리가 슬그머니 나만 놓고 돌아가려다 쇼쿠다키리에게 붙들려 내 응급 처치 이후, 카슈와 야스사다 다음의 수리 순번으로 놓여졌다.




"아츠시. 괜찮아?"

"그 인간이 날 감싸기 전에, 무언가 따듯한 기운에 감싸였어."

"그건 무슨 소리야?"


하세베와 사니와 에게서 도망친 후 아츠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니와가 있을 방향을 힐끗 거린다. 그를 이상하게 야겐이 혹시 어딘가 다친게 아닌가싶어 괜찮은지 묻자 아츠시는 엉뚱한 대답을 해온다.
사니와가 자신을 감싸기 직전 어떤 기운이 자신을 보호하듯 감쌌고 그 기운은 자신을 걱정하던 사니와와 닮아있었다는 것을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그가 자신을 영력으로 보호한 걸까싶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부상을 입을 게 분명한데 몸을 던졌던 사니와가 이해 되지않았다.
다시 생각에 빠진 아츠시를 보며 야겐은 제대로 된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했다.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짐작이 되었으니 굳이 듣기 위해 재촉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탓도 있다. 매사에 무심한 얼굴을 하고는 영력만큼은 모든 것을 포용해줄 것 같은 따듯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도망치던 날, 자신을 야만바기리로 착각했던 사니와의 이야기는 자신을 동요하게 만들었으니까.


"뭐 하는 인간일까?"

"그러게."


서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던 두 형제는 같은 의문으로 결론을 낸 채 그 의문의 대상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다 곧 고개를 돌려버렸다.

 

 

짜짠 /ㅇㅅㅇ/ 이것으로 오늘의 마지막 편까지의 운행을 종료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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