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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작은 서가

그늘이 드리운 혼마루 [13]

by 깜냥이 2019. 2. 22.

츠루마루가 손님이 왔다며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는 소리로 아침을 맞는 기분이란 참 괴롭기 그지 없다.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주섬주섬 하오리만 대충 걸친 채 내다보니 장발의 남자 둘이 서로 상반된 표정을 한 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딘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웃고 있는 닛카리와 대놓고 불만이 가득하다며 오만상을 쓴 하치스카는 수리를 받은 뒤, 고개를 까닥거리는 수준의 감사인사를 남긴 채 돌아갔다. 방을 차지 했는지 아니면 되돌아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조금만 더 잘까 하고 방으로 돌아가는 나를 츠루마루가 강제로 방향을 틀어 부엌을 향하게 했다. 아침 먹기 싫어... 하지만 이런 불만은 잔소리 테러를 불러올테니 입 밖으로 내뱉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미카즈키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하라는군."

"응, 전령 노릇하느라 수고하네."


식사가 끝나자마자 야만바기리가 전언이 있다며 찾아왔다. 지난번의 대면 이후, 미카즈키는 간혹 야만바기리를 보내 한 마디씩 전해왔다. 응원이나 안쪽의 상황 같은 것들을 듣고 있으면 제법 자신이 생긴다. 다만 상황 설명의 경우 전언과 야만바기리의 독자적인 행동인 듯한 내용이 섞여있어 정말로 그의 전언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 반반이지않을까.


"... 몸은 이제 움직여도 괜찮은건가?"

"애초에 움직이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었어."


오늘도 어김없이 오오쿠리카라를 쫒아낸 채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야만바기리가 걱정스럽게 말을 덧붙인다. 어제 아츠시를 감싸느라 다친 것은 단순 타박상인지라 대충 쿨링 스프레이를 뿌리고 넘어가려다가 츠루마루의 잔소리에 파스를 붙여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조금 움직이려하면 미심적은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설거지정도는 무리하는 것도 아닌데 극구 말리던 츠루마루를 떠올리며, 바람새는 듯한 웃음 소리를 내니 야만바기리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뭐, 그나저나 오늘 고토가 나키기츠네를 데려오기로 했는데 말이지."

"고토 혼자서는 무리다. 다른 남사에게 부탁해야 할텐데, 아마 우구이스마루나 이와토오시가 데려오지 않을까."

"그래서 아직 소식이 없는건가?"


그럴지도. 조용히 중얼거린 야만바기리를 바라보다 불쑥 손을 들이밀어 머리를 헝틀어트리듯 쓰다듬었다. 항상 주변에서 신경을 써주고 있는 그에게 감사 인사와 칭찬을 해주고 싶지만, 대부분 용건이 끝나면 도망치듯이 떠나곤 해서 이런 기회가 드물어 마침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반쯤 장난도 섞여있던 터라 덮어쓰고 있던 천이 뒤로 넘어가고 산발이 된 머리와 어리둥절한 표정에 웃음이 나온다. 결국 머리를 다시 정돈해주며 키득거리고 있으니 갑자기 나타난 카슈가 치사하다며 야만바기리를 밀쳐내고 내 손을 제 머리위에 올렸다.


"나도-! 나도 쓰다듬어줘!"

"그래, 그래. 야만바기리 괜찮아?"

"... 괜찮다."


다짜고짜 공격 당했음에도 개의치않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천을 제대로 뒤집어 쓰는 야만바기리를 확인하고 카슈를 쓰다듬어 주던 손을 떼었다. 아쉬워하는 표정이지만 다듬을 받았다는 것에 만족 한 듯 야스사다에게로 돌아가는 카슈를 보며 슬금슬금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참아야했다. 
처음 카슈를 만났을 때는 목소리가 하야마 녀석을 떠오르게 해 나도 모르게 벽을 세웠다. 하지만 하는 짓이 세침떼기면서 귀여운짓도 하곤 하니, 어느새 하야마가 떠오르는 일도 사라졌다. 거기다 실수로 흘린 귀엽다는 말에 기뻐하는 것을 보고나니 하야마와 비교하는건 카슈에게 크나큰 실례라는 것을 깨달았다.


"카슈가 제법 잘 따르는구나."

"야만바기리를 전령으로 보내놓고 찾아오면 의미가 없잖아."

"노인네가 거동이 느리니 안부먼저 보내었을 뿐이네."

"노인이라 거동이 느린게 아니라 부상자라서 느린거겠지."


도대체 수리를 받을 것도 아니면서 찾아와선 남의 방을 차지하고 앉는 것는 무슨 심보인거냐.
미카즈키가 나타나자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야만바기리가 보였으나, 카슈가 매달려오고 미카즈키가 손님이 왔으니 차라도 달라며 진상을 피우고 있어 결국 한숨을 내쉬고 그를 포기했다. 대신 미카즈키의 부축으로 따라온 코기츠네마루를 수리실로 보내고 방으로 돌아와 깜박 잊고 챙기지 않은 도움패를 찾아 들었다. 하지만 그리 급하지 않으니 귀한 것은 아끼라는 미카즈키의 만류에 다시 내려놓아야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그머니 너는 괜찮으냐며 떠보았지만 역시나, 미카즈키 본인은 수리를 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능청스럽게 차 맛이 좋다며 웃을 뿐이었다.
모두가 마음을 연 뒤에야 수리를 받겠다 우기는 둘과 주인으로 여겼을 때 수리를 받겠다는 두 껌딱지, 그리고 수리만 하려하면 순식간에 사라져있는 이상한 녀석과 가출한 두 꼬맹이까지. 수리를 거부하는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껌딱지 둘은 방까지 차지한 주제에 왜 수리는 안 받겠다 요지부통인걸까. 야만바기리는 한 번 잡아 채서 수리실에 넣어버릴까 했더니 수리실 근처로는 잘 나타나지 않고.


"고민이 많아보이는구나."

"누구들 때문에."

"많은 이들을 이끄는 위치란 고민이 따르기 마련이지."

"... 응. 그렇네."


이끄는 위치, 그 말에 문득 붉은 머리의 주장이 떠올랐다. 이 곳에 온 뒤로 갑작스럽게 떠오르곤 하는 그 녀석은 언제나 강인해 보였으나 되돌아보니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괜한 생각에 감정을 소모할 때가 아니니 애써 털어내곤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는 않아 츠루마루의 걱정을 사고있다. 지금도 내 표정을 살피려 고개를 갸웃 거리는 미카즈키에게 손을 내저으며 나는 내 할 일을 하러 가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사실 내 할 일이라고는 가출 청소년 둘을 찾는 것과 수리하러 찾아오는 이들을 수리하는 일이 전부다. 이미 츠루마루가 찾으러 나간 상태지만 미카즈키에게 변명을 하고 나왔으니 일단 찾으러 가야겠지. 
그렇게 변명을 수행하기 위해 밖으로 향하던 도중 나를 찾아오는 중 이었던 세 남사와 조우하게 되었다. 내가 부르자 소스라치게 놀란 시시오와 오테기네가 부축하고 있던 니혼고를 떨어트릴 뻔 한 소소한 해프닝이 있었지만, 우선 그들을 데리고 수리실로 향했다. 남은 방에 우선적으로 니혼고를 들어보내고 남은 둘도 서둘러 수리하기 위해 도움패를 가지러 방에 들르니 하세베가 뚱한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미카즈키는 돌아갔나?"

"내가 왔을 때는 없었다."

"부상 입은 몸으로 엄청 돌아다니네. 그나저나 부축해온 녀석은 수리실에 있을텐데?"

"야만바기리가 데리고 간 모양이지."

"그런가... 그래서, 네 용건은?"


부축도 해 주고 얌전히 수리도 받고 가기에 마음을 열었나 했더니, 여전히 내가 미심쩍은지 표정이 좋지 않다. 내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 시선을 피하며 뜸을 들인다. 방의 문을 열어 둔채 도움패를 챙기며 그가 용건을 말하길 기다리는데도 묵묵부답이다. 수리실에 가야하는데 따라올테면 따라오던지 하라고 말한 뒤 걸음을 재촉하자 뒤에서 뒤따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보니 츠루마루가 보이지 않는군."

"과보호 잔소리꾼은 가출한 꼬맹이들을 잡으러 갔어."

"과보호 잔소리꾼이라니! 너무한 것 아닌가!"

"으어억!"


뒤 따라오던 하세베의 질문에 대강 답해주고 있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모퉁이에서 츠루마루가 튀어나왔다. 그에 놀란 하세베가 이상한 비명을 질렀고 나는 둘을 깔끔하게 무시한 채 수리실로 향했다. 물론 츠루마루는 걱정되어 하는 말이건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옳지 못하다며 잔소리를 시작했고, 이어지는 투덜거림을 들어보니 두 꼬맹이가 이제 숨은 곳을 옮긴 것 같아 돌아온 모양이다.
수리실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두 남사에게 도움패를 흔들어보이자, 자신들은 경상이고 급하지 않으니 귀한 것은 아끼라며 나를 만류했다. 왜 자꾸 이걸 귀하니 아끼라고들 하는 건지. 아직 처음에 지급받은 것에 반도 채 쓰지 못했으니 괜찮다고 하니 그래도 지금 당장 다 써버리면 이후에는 어쩔 생각이냐며 말린다.


"귀하고 나발이고, 저번에 다른 녀석들한테도 이야기 했지만 이런건 있을 때 써야지. 거기다 얻기 힘들 뿐이지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

"경상이라고 아프지않은 것도 아니잖아? 도대체 왜 다들 수리를 안 받으려고 하는건데? 고통을 즐기는 변태라던가?"

"그런건 아니고..."

"전임이란 인간이 핵폐기물에 비유하기도 미안한 쓰레기여서 같은 인간인 내가 못마땅하단건 아는데, 어차피 수리 받을 거 이렇게 말로 실랑이 하기 전에 그냥 순순히 수리를 받는건 어때."


내 말에 반박하려는 오테기네의 말을 죄다 끊어먹으며 손에 들은 도움패를 망설임 없이 사용했다. 수리실에서 나오던 코기츠네마루가 내 뒤편에 선 츠루마루를 보고 방긋 웃으며 다가갔고, 기절한 채로 왔기에 영문을 모르는 니혼고가 당황한 얼굴로 문간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있다. 코기츠네마루가 반갑게 인사하는 츠루마루를 보고 기함한 표정을 하는 것을 보아하니 니혼고가 정신을 차리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아 보인다.


"비켜. 다음 순번 수리 해야 해."

"으어억! 이건 또 뭐야!"

"이거라니 실례잖아."


결국 직접 밀어서 옆으로 치우자 그제서야 나를 알아챈 니혼고가 놀라서 괴성을 질렀다. 기절했다가 깨어났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데 폐가 같던 혼마루가 깨끗해지고 부러졌던 동료가 멀쩡히 있으니 혼란스러운건 이해 한다. 더군다나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거나 마찬가지니 놀랄 수 밖에, 그런데 사람보고 이거라니.
니혼고를 향해 눈을 흘기고 시시오와 오테기네를 수리실로 들여보낸 뒤 도움패를 꺼내들자 이번엔 하세베가 잠깐만 기다리란다. 왜 다들 도움패를 쓸 때마다 말려대느냐고 따지려는데 내가 말을 꺼낼 찰나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자리를 떠났다. 잠깐이고 나발이고 내 마음대로 할거라는 생각으로 수리실에 도움패를 하나 씩 던져넣고 나니 하세베가 양 손에 가출 소년 둘을 들고 돌아왔다.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저 둘 이었군, 마침 시시오와 오테기네가 수리실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한 하세베가 문답무용으로 수리실에 두 녀석을 각각 던져 넣었다.


"부상자인데 그렇게 던져도 괜찮은거야?"

"저런 말썽꾸러기들은 이정도는 해 줘야 혼이 나는줄 안다."


구르듯 수리실로 들여보내지는 둘을 보며 한마디를 하자 하세베는 뻔뻔하게 정당한 행동을 한 양 굴었다. 그 모습에 슬그머니 그 옆에서 하세베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시시오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 흠칫 놀라더니 곧 고개를 설설 내저었다. 하세베의 말이 틀렸다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여 주고 도움패를 사용했다.
수리가 끝나자마자 바로 튀어나와 하세베를 향해 마치 으르렁거릴 기세로 노려보던 둘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방향을 돌아보았다.


"야겐! 아츠시! 걱정시키더니 결국 수리 받은거야?"

"고토..."

"하세베한테 잡힌거지? 이제 너희도 수리 받았으니 미다레도 안심하겠네. 너희 나중에 미다레에게 사과하라고? 녀석 엄청 걱정했으니까. 이와토오시한태도 사과하고, 너희 사과해야 할 이들이 많은거 알지?"


작은 여우 한 마리를 소중히 품에 안은 고토는 웃는 얼굴로 두 녀석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곤 웃는 얼굴로 말을 끊어내고 촌철살인을 날리며 둘을 몰아붙인다.
야겐도 아츠시도 고토의 말에 고개를 숙인채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고토와 함께 온 이와토오시는 그저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을 뿐 이었다. 그보다 네가 데려온 녀석 내려놓지 않을래? 수리실 비었는데 들여보내주지?


"네- 다음분 들어오세요-"

"우와! 사니와님 있었으면 기척 내달라고!"

"수리 중인 수리실 앞에 내가 없을리 없잖아."


결국 참지 못하고 장난스럽게 수리실에 나키기츠네를 넣어줄 것을 종용하자, 나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고토가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를 알아챈 야겐과 아츠시도 놀라는 듯 했으나 고토와 츠루마루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수그렸다. 저 천방지축들이 얌전해지다니 기분이 묘하다. 그만큼 고토의 말이 날카로웠다는 말이겠지.
나키기츠네와 여우가 수리실로 들어가고 고토는 민폐를 끼쳤다며 야겐과 아츠시의 머리를 억지로 눌러 사과를 시켰다.


"그럼, 수리가 진행되는 동안 이 녀석들이 무사하다고 형제들에게 보여주고 올게."

"아냐, 조금만 기다려."

"응? 도움패 아직도 여분이 남아 있는거야?"

"아직 반도 못 썼는데. 처음부터 넉넉히 준다며 왕창 챙겨줬으니까 걱정말고."


어차피 다시 나키기츠네를 데리러 올거라면 귀찮게 왔다갔다할 필요가 없지. 고토의 놀란 목소리에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수리를 받고도 구경을 하느라 모여있던 남사들도 허탈하게 웃음 소리를 흘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까지 귀중한 물건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데 전임이란 자식이 그 만큼 쓰레기였단 소리인가. 아니면 내가 귀한걸 귀한 줄 모르고 쓰는 걸까. 절대로 전자 쪽이 맞다고 생각하며 도움패를 사용한 뒤 나키기츠네가 나오길 기다렸다.

 

 

제가... 왜... 늦었냐 하면요... 어... 이 편을... 올린줄 알고있었어요... 그래서 다음편이 안 써져서... 난리를 치다가 보니... 안 올렸더라구요...? 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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