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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작은 서가

그늘이 드리운 혼마루[05]

by 깜냥이 2018. 2. 21.

정원을 해결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혼마루를 조금씩 고쳐나가기로 했다. 영력을 대량으로 써본 덕인지 이제 조금 감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직까지는 자유자재로 활용 하기는 힘들어 제법 애를 먹였다. 고치려 했는데 전혀 되지 않는다던가, 그저 기분이 나빴을 뿐인데 수리가 된다던가 하는 일이 생기다보니 이제 자포자기인 심정이다.
그리고 혼마루가 점점 멀끔한 꼴로 변하고 있으니 만난 적 없는 남사들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헤시키리 하세베나 시시오는 돌아다니다 마주쳤고 호랑이를 찾으러 나온 고코타이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고코타이를 데리고 돌아가는 카센을 보며 한 가지 확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야만바기리를 제외한 남사들은 날 쉽게 찾아내지 못한다.

심지어 카센의 경우 바로 옆에서 지나갔는데도 날 알아채지 못했다. 물론 내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그들을 관전하고 있던 탓도 있겠지만, 인외의 존재에게 조차 적용되는 내 희미한 존재감이 지금으로서는 다행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야만바기리는 어떻게 아는 건지 내가 있는 곳을 일부러 찾아와 주변을 배회하곤 했다. 적의는 없어 보였으니 혹여 수리를 권하면 수락해주지 않을까 했지만 눈이 마주쳤다하면 냅다 도망가 버리니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이곳에 온지 거의 1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만난 남사들 중 제일 양호하다고 생각되는 이가 중상일 정도로 모두 크고 작은 상처가 수두룩했다. 그리고 모두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 할 수밖에 없었다.


"전임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어서 자꾸 인간이 싫다는 건지. 상처투성이인데도 도움을 받기 싫다는 건지. 심지어 깨끗해진 혼마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인상을 쓰는 이들도 있었다. 만나는 이들마다 모두 탐탁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니 기껏 고생한 보람도 없고 내 기분도 좋지 않으니 다 때려치우고 싶어진다. 물론 이 생각은 이곳에 온 뒤로 1시간에 한 번씩은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참다못한 나는 이번에도 역시나 눈이 마주치자마자 도주를 시도하는 야만바기리의 거적을 잡아채어 붙잡았다. 정확히는 거적을 잡아채서 벗겨지자 그가 그래도 자리에 주저앉은 것이지만, 어쨌든 도망치지 않도록 한 것은 성공이다.


"질문에 대답하면 돌려주지."

"혀.. 협박인가...!"

"네가 도망치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잖아."

"그건..."

"내 말에 틀린 부분은 없는 것 같은데."


제 얼굴을 가리고 안절부절 하기는 했지만 내 말에 수긍하며 얌전해진 그에게 떨떠름한 남사들의 반응에 대해 묻자, 그는 인간을 반기지 않기 때문이라 대답했다. 도대체 그 빌어먹을 전임 때문에 내가 왜 이 고생인지. 내 표정이 어땠는지 흠칫 놀란 야만바기리를 무시하고 쯧, 하고 혀를 찼다.


"사니와가 없으면 부상자를 치료 할 수 없을 텐데."

"인간에게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부러지겠다."


혼잣말을 하듯 내뱉어진 말에 돌아온 답은 야만바기리가 아닌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야겐이었다. 그는 내 손에서 거적을 강탈해 야만바기리에거 걸쳐준 뒤 나를 노려보고는 그 자리를 피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물어보려 했지만 이미 둘은 저 멀리 가버린 뒤였고 야겐은 특히나 내게 적대적이니 야만바기리처럼 붙잡을 수도 없다.
결국 방향을 틀어 정원으로 향했다. 정화 한 뒤의 정원은 제법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 되어 남사들도 제법 보러 나오기도 했다. 지금 내 눈앞에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요처럼.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 위험해."

"?!"

"사요!"


연못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사요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번쩍 들어 올리니 멀리서 보고 있던 소우자가 놀라 소리치며 다가왔다. 내가 그를 해치려 한 것도 아닌데 너무 놀라는 것 아닌가. 그래도 저들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적당한 곳에 내려놓자 사요가 냅다 제 형의 뒤로 숨어들었다. 경계를 하는 소우자를 보며 애써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덤덤한 척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소우자 사몬지였지? 이곳에 코우세츠 사몬지도 있나?"

"... 형님은 이 혼마루에 오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 그럼 사몬지는 너희 둘 뿐인가."

그렇다는 것은 사요의 보호자는 소우자 뿐이라는 뜻이다. 지금껏 만난 남사들을 셈하며 고개를 주억거리자 희귀 도검인 코우세츠가 없으니 불만이냐 묻는다. 남사들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 밖에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가 희귀 도검인지도 몰랐기에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고운 얼굴을 구겼지만 나는 지금 이 혼마루에 있지도 않은 코우세츠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마침 수리실도 두 곳이고, 너희도 둘인데."

"인간의 도움은 거절하지요."

"그래도 동생이 이렇게 다쳤는데 수리 받는 게 어때?"

"그건..."


역시 동생을 언급하니 제법 고민이 되는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한참을 동생과 나를 번갈아보며 고민하던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웃으며 둘을 수리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사요만 수리 받으려 하는 그의 등을 떠밀어 두 수리실을 채워 넣고 지급받기는 했으나 쓸 일이 없어 방치되고 있던 도움패를 지체 없이 사용했다. 곧이어 말끔한 모양으로 수리실에서 나온 둘은 어리둥절해 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깨끗한 방을 쓰고 싶다면 사용해도 좋고 본래 있던 곳에 있고 싶다면 그리하라 전하고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 내 거처로 돌아왔다.




사요와 소우자가 회랑으로 돌아오자 습관적으로 누가 되돌아 왔는지 확인한 이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부상이 없이 깨끗한 둘의 모습에 아와타구치들은 인상부터 썼지만 딱히 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고, 미카즈키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물었을 뿐 사정을 들은 뒤에는 그러하구나 하고 넘어갔을 뿐이었다. 형제가 부상을 입은 채로 있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을 찔렀으니 넘어 갈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둘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젠이 조용히 아카시를 바라보았다. 아카시는 안쪽 방을 바라보던 시선을 잠시 아이젠에게 주었다가 다시 시선을 고정했을 뿐 이었다.


"호타루도.. 수리 받으면 좋겠지만..."

"아직, 쪼매만 더 지켜보는 기 좋겠구마."


사니와의 주변을 맴돌곤 하던 야만바기리가 돌아오며 회랑안은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미카즈키는 그를 힐끗 바라 보는 것으로 확인을 마쳤고 아츠시는 야겐의 행방을 물었다. 도중에 헤어져 모른다는 말을 전한 야만바기리의 시선이 회랑을 훑다 말끔한 사몬지 형제에 잠시 머물렀다 떨어졌다. 주변을 맴돌고 있었을 테니 사정은 그도 알 것이라 여긴 사몬지 형제는 설명을 생략했다. 슬슬 다시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하자 미카즈키의 곁에서 무언가 고민하던 이시키리마루가 입을 열었다.


"미카즈키."

"왜 그러나."

"나는 신당에 가야겠네."

"자네에게는 그 곳이 편할 테지. 그리하게."

"딱히 제지는 하지 않는 군."

"신검인 자네에게 이 곳은 부담이지 않겠나."


신당이 수리 되자마자 그리로 갈 줄 알았다며 허탈하게 웃는 미카즈키의 모습에 이시키리마루 또한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있는 이곳은 안쪽 방에서 부터 흘러나오는 사기에 찌들어 츠쿠모가미인 남사들이 거주하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저 안쪽 방에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으니 다들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신당이 수리된지 이틀째, 정화해 두었기에 상태도 매우 좋을 터다. 
신당이 복구 된 뒤, 늦은 밤을 틈타 잠시 다녀오긴 했지만 단지 그 뿐, 계속 회랑에서 다른 이들을 챙겼던 이시키리마루였지만 그도 이제 슬슬 한계였을 것이다. 미카즈키의 허락도 있고 만류해야 할 이유조차 없으니 다른 남사들도 그가 거처를 옮기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밤, 이시키리마루는 사당으로 이동한 뒤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결계를 둘렀다. 혹시나 미카즈키라면 자신을 보러 방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 정도라면 가볍게 통과할 수 있도록 제어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 탓 이었을까. 사당의 문이 열리는 기척에 무심코 미카즈키 이리라 생각하며 뒤를 돌아본 그의 눈과 마주친 것은 미카즈키의 달을 품은 밤하늘 빛의 눈동자가 아닌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먹색의 눈동자였다.


"... 그대는."

"아, 이키시리마루가 맞나? 신당에 기척이 있기에 열어보았는데 실례일까."

"어떻게 문을... 아니, 그래서 무슨 용건이 있어 오신 걸까?"

"대화를 하러 왔는데, 잠시 폐를 끼쳐도 괜찮은가?"

"객을 밖에 세워둘 수는 없으니, 들어와 앉으시렴. 대접할 만한 장소는 아닌지라 내어드릴 것이 없는 건 이해하시고."

"대접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괜찮아."


제법 예를 차린 어휘를 사용하지만 그 말을 하는 이의 얼굴과 목소리는 무심하기 그지없다. 자리를 내어주니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서는 사니와를 보며 이시키리마루는 자신이 들어오라 했음에도 어처구니없어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듯이 당당히 자신과 마주 앉아 눈을 바로 바라보는 사니와에게 용건을 재촉하니, 그는 그제야 조금 머뭇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이시키리마루 또한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리며 입을 다물자 각오를 다진 사니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곳에, 있었던 일들 전부. 전부를 알고 싶어."

"알려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했으니, 난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봐야겠어."


그러니 알려줘. 담담히 내뱉어진 말에 담긴 각오에 이시키리마루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저 무심한 얼굴 속에 감춰진 의지가 이곳에 어떤 빛을 비추어 줄 것인지 기대하며 이시키리마루는 천천히 운을 떼었다.

 

 

어쩌다보니 절단 마공 비슷한걸 시전해 버린 것 같은 기분입니다만 ㅇㅅㅇ/

네 우리의 마유즈미님이에요.. 읽으시다보면 무의식중에 첨가된 제 마유유 미모 찬양을 발견하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쓰고싶어어어!!! 하면서 글이 막힌 김에 ... 써버린 거랍니다... 썰로는 웬만큼 진행이 되어 있는데 그걸 길게 풀어 쓰려니 제법 힘이 드네요.. :/ 그렇답니다...

태그에 마유즈미 치히로를 넣을까 말까 하다가 안 넣었는데 넣을까요?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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