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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작은 서가

어느 은빛 그림자의 이야기

by 깜냥이 2018. 2. 21.

안녕 여러분! 새 소설 이에요!!(??

아직까지도 논란이 있는 작품과 콜라보한 글이니 싫으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글을 접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시작합니다

 

 

시합이 끝났다. 소란스러움이 잦아들고 하나둘 사람들이 빠져나가 이제는 공허함까지 느껴진다.

신형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성능 면에서 월등하다고 여겼다. 함께 플레이한다는 것보다 패스가 성공한다는 것에 만족했다. 어차피 천재들이 모인 이 팀이라면 당연히 우승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대역은 원조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에 허탈해졌다. 적수로 여기지도 않았던 팀에 패배해 분했다.

엉망진창인 기분에 그저 발이 닿는 대로 발이 가는 대로 걸었다. 시합의 여파로 점점 발이 무거워졌지만 그래도 계속 걸었다. 전철에 타고 내리고 싶은 곳에 내려 정처 없이 걸어 도착한 곳은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이었다. 언젠가 한 번 내렸던 적이 있었던 곳인가. 잠시 주변을 돌아보고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한걸음 내디딘 찰나 눈앞에 한 남자가 나와 눈을 마주 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잠깐, 눈이 마주쳤다고? 나를 발견했어?

당황해서 경직된 내게 가까이 다가온 그가 반갑다는 듯이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시야가 점멸하고 정신이 들자 보인 것은 낯선 사무실이었다. 남자에게 손이 잡혔던 자세 그대로 장소를 이동했다는 사실에 멍하니 그 남자를 바라보니 그는 그저 웃으며 나를 자리에 앉게 했다.

 
"안녕하십니까. 마유즈미 치히로님. 갑작스레 이런 식으로 모시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스카우트의 기본 조건은 상대의 정보 수집 아니겠습니까."


의기양양한 표정이 짜증난다. 스카우트라니 전혀 달갑지 않은데, 농구부에 스카우트 되었다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인 나를 데려다가 또 스카우트하겠다고? 속에서 울컥하고 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설명을 요구하니 그가 기쁘게 웃는다. 아직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왜 웃는 거지? 들어보고 거절할 수도 있는데, 내가 당연히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새가 마음에 안 든다. 당신도 거절은 거절하는 아카시 타입이야? 그래?

내가 속으로 비꼬는 것을 알 리 없는 그는 제 용건을 간단히 설명했다. 이곳의 시간이 2205년이라는 것부터가 이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싶었건만, 이어서 설명하는 내용도 기가 찬다. 시간 정부라느니 검의 츠쿠모가미인 도검남사라느니 혼마루니 이건 무슨 라노벨인가.


"마유즈미 치히로님처럼 영력이 맑고 깨끗한 존재를 본 일은 매우 드뭅니다! 사니와 로서의 재능이 출중하신 분이건만 당신을 찾는 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 것이 매우 안타까울 뿐입니다."

"낯간지러운 소리 하지 말고, 용건이나 말하시죠."

"낯간지럽다니... 그럼 본론을 말씀드리자면, 당신께 블랙 혼마루의 남사들을 구해주시길 청하고 싶습니다."

"블랙? 구해?"


누가 누굴 구해? 지금 나 자신 하나도 처신하지 못하는 내가 지금 누굴 구하라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한숨을 내 쉬니 남자가 당황해 하는 것이 보인다. 짜증이 난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으니 그럴 법하지만 지금 감정을 숨길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자꾸 나를 칭찬하려고 하는데 영력? 그딴 게 다 뭔데. 사니와 로서의 재능? 그딴 거 알 게 뭐야. 그 빌어먹을 재능이 없어서 한 번 내쳐졌던 인간인데. 정신도 멀쩡하지 않고 몸도 지쳤는데 자꾸 깨끗하다 아름답다 타령하는 저 빌어먹을 입을 틀어막고 싶다.

다시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니 그럼 일단 쉬고 천천히 생각해 달라며 어딘가 고가의 호텔 스위트룸 같은 곳으로 날 안내했다. 일단 가방은 아무데나 대강 던지고 씻게 해 달라 요청하니 웬 아카시 집에나 있을 것만 같은 초호화 욕실로 안내되었다. 이거 감히 몸을 담그기 매우 황송해서 부담스럽다. 어찌어찌 씻고 나오니 간단히 입을 옷으로 유카타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이 재질은 뭐야. 기모노? 기모노인거야?


"아...  집에 가고 싶다."


도대체 난 왜 떠돌아서 저딴 인간을 만나고 여기까지 끌려 온 걸까. 노토토 읽고 싶다. 카구야가 보고 싶어. 이딴 화려한 방 따위 전혀 편하지 않아. 어딘가에서 아카시 같은 게 튀어나올 것 같잖아. 푹신푹신하지만 오히려 불편한 침대에 누워 한숨을 내쉬고 눈을 감았다. 그 남자의 말을 믿을 수는 없지만 그가 내 손을 잡은 상태 그대로 장소가 이동 된 것은 직접 목격한 사실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지금 내 상황을 설명할 수 없어 머리가 아파온다. 그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믿어야만 한다는 건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침대 위에서 뒤척거리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잠에 취해 멍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가 잠이 들었었음을 깨닫고 허탈하게 웃었다. 이런 곳에서 잠이 오다니 나도 위기감 없네. 저들이 내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잠을 떨치려 자리에서 일어나니 때마침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옷매무새를 바로하고 문을 여니 단정히 제복을 입은 남자가 갈아입을 옷이라며 내게 옷가지를 내밀었다. 간단한 셔츠와 바지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니 그는 그러거나 말거나 제 일은 끝났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으니 이것 역시 매우 편안하게 푹신했다. 이거 기숙사에 구비되어 있는 소파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잖아...


"마유즈미 치히로님.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시던지..."

"... 실례하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카시에게나 하던 말투로 대꾸해버렸는데도 정중한 대답이 돌아와 양심이 찔린다. 뭔가 서류뭉치들을 들고 온 남자는 내가 가야하는 곳에 대한 자료라며 맨 위의 서류부터 내게 내밀었다.

대부분의 도검 보유, 고련도의 남사가 다수 존재, 물품 횡령 확인, 부상 상태의 남사 다수 확인, 전임 사니와 생사 미확인, 혼마루 외부 결계 확인, 감찰관 진입불가.

팔락 팔락 넘어가는 종이를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남자는 내가 서류를 내려놓자 더욱 긴장한 상태가 되어있었다. 경직되어있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니 흠칫 놀란다. 그래, 당신이 봐도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인간은 없을 것 같지? 


"이 일, 거부권은 있습니까?"

"거부권이 없을 리가요. 하지만 이 건을 맡을 정도의 영력을 가지신 분은 마유즈미 치히로님 뿐입니다. 당신이 아니라면 감히 이 혼마루를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이 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지금 절박합니다!"

"... 거부권 없다는 말이랑 뭐가 달라."

"감히 누가 마유즈미 치히로님께 강요를 하겠습니까!"

 
지금 네가 하고 있는게 강요가 아니면 뭔데. 그보다 매번 풀네임 부르지 마. 날 부르지 마.
내가 능력이 되는 게 아니고 만만하니까 떠넘기는 거 아니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정말 억울한 얼굴로 내가 더 추궁하면 할복이라도 할 기세라 그만두었다. 서류를 테이블에 올려두니 사니와들이 수행하는 기본적인 교육에 대한 자료라며 아까 것 보다 훨씬 두꺼운 서류를 내민다. 그걸 받아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고 있으니 손을 파들파들 떨기에 결국 받아들었다. 도대체 이 인간은 사람의 죄책감을 후벼 파서 설득하는 류의 인간인가...


"사니와명을 사용해야한다고... 무슨 게임이야 이거."

"본명은 진명, 즉 혼의 이름이라고 하지요. 혼의 이름을 알린다는 것은 혼을 넘겨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신에게 적용되면 신에게 속하게 되는 것이지요. 직위가 낮더라도 신은 신, 그렇기에 본명을 알리는 걸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 귀찮네."

"하지만 중요한 문제이니..."


우물쭈물 귀찮네... 랄까, 나 한다고 안 했는데? 남자는 계속 부정하고 있지만 내가 절대로 이 일을 거절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결국 이 거북하기 그지없는 일을 떠맡게 될 거라는 것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한숨만 쉬게 되는 데, 차라리 땅이라도 꺼져서 나를 여기서 구해줘.

자포자기인 심정으로 서류를 펼쳐보니 제일 첫 장에는 역사수정주의자에 대한 것부터 적혀있었다. 그 다음은 도검남사들에 대한 정보. 서류가 두꺼웠던 이유를 알겠다. 남사들의 외형 사진과 약력 등이 세세하게 적혀있다 보니 이런 분량인건가. 그보다 난 왜 여기까지 와서 공부를 해야 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 나 수험생인데...?


"그러고 보니 나 수험생인데..."

"그 건에 대해서는 최대한 지원을 해 드릴 수 있으니 염려치 마십시오."

"지원...?"


어떤 지원을 해 주려는 지는 궁금해서 물어보려하니 그가 궁금하냐며 해맑게 웃는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여줄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져 시선을 돌렸다.

도검은 솔직히 관심 외의 분야였지만 유명한 도검들은 얼추 아는 편이고 가끔 이런 것을 다루는 라노벨도 존재했기에 몇몇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그 이름과 외형을 매치해서 머릿속에 넣으며 결국 거절 못하는 처지를 한탄했다. 혼마루에서 무심코 본명을 꺼내지 않도록 사니와 명에 익숙해져야한다는 말에 고민에 빠지자 그가 겨울이나 눈을 넣어서 짓는 것은 어떠냐 물었다. 내 머리색이나 분위기가 그것에 어울린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 적당한 한자를 나열하니 그가 제법 괜찮은 음을 만들어 냈다.


"그럼 이 이름으로 등록하겠습니다."

"그러시던가..."

"등록된 이후로는 사니와명을 불리는 일이 많으실 겁니다. 익숙해지시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의 말대로 간혹 방을 청소한다던가 식사를 가져다준다거나 하는 인간들이 사니와 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남자 또 한 마찬가지 였기에 나는 사니와 명을 들으며 깨서 잠들기 전 까지 그 이름을 불리며 지내야 했다. 실수로라도 본명을 언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이유라는 건 잘 알지만,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은 기분이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가는 것이 가장 좋지만 정보를 얻기 힘든 상황에다가 자료를 가지고 들어가 일일히 들여다보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머릿속에 우겨넣고 되새기고를 반복하느라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그렇게 하루 종일 정보를 요약하고 외우는 것에 충실하며 어느덧 그 놈의 혼마루로 출발하는 날이 다가왔다.


"그러면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세츠인(雪陰)'님."

"뭐,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지."


직접 마중 나온 그에게 대강 대꾸하며 혼마루로 이동하는 게이트 앞에 섰다. 물론 뒤에서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지만 알게 뭔가. 오랜만에 입은 하카마의 넓은 소매가 제법 거추장스러워 하오리만이라도 벗어 던지고 싶은 기분일 뿐이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면 이제 그 빌어먹을 블랙 혼마루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각오는커녕 자신감조차 없다. 이 상태로 가도 괜찮은 걸까싶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도 없다. 머뭇거리며 게이트에 들어서자 시야가 점멸한다. 그리고 잠시 부유감이 느껴지더니 이내 발이 바닥에 닿으며 뭔가 바스락하고 부스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선명히 들리는 바스락 소리에 눈을 뜨니, 눈앞에 보인 것은 유령 따위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쓸데없이 거대한 폐허였다.

 

>ㅂ<!! 크로스오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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