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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 67

by 깜냥이 2016. 6. 6.

이즈키를 만나고 생각할 것이 더 많아져 식사 중이나 쉬는 시간에 돌연 멍하니 있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에 아이들이 걱정을 하긴 했지만 생각 할 것이 있어서 그렇다는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넘어갔다. 이번 건강 검진 결과도 괜찮다고 전했고 진로에 대해 고민했던 것은 아이들도 알고 있었으니 그것 때문이리라 여기겠지하며 맘 놓고 넋을 놓았다.


[오늘도 이겼습니다. 승리 보고라는 것 제법 기분 좋은 거군요.]

[역시 이길 줄 알았어! 축하해!!]

[감사합니다. 다음주 시합도 힘내겠습니다.]


그 사이 인터하이는 예선 중반에 이르렀고 쿠로코는 첫 시합 이후 시합의 일정과 함께 긴장 된다고 전하는 것과 시합 이후에 승전보를 보내는 것 이외에 보러 올 것인지 보러 왔었는지 확인하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첫 시합날, 끝내 축하의 말이나 검진에 대한 이야기도 없이 쿠로코가 다른 주제로 메일을 보낼 때까지 연락을 하지 않았던 탓 일지도 모른다. 내가 심란한 것 때문에 안그래도 정신 없을 아이에게 신경쓰이게 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지난번 통화에 목소리가 평소와 같아 조금 안심했다. 그래도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해 걱정되기는 하지만 시합 때문에 정신없을 아이에게 신경쓰이는 일을 더 안겨주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 그 날의 일은 꺼내지 않기로 했다.
계속 이어지는 쿠로코의 승전보와 메일에서도 느껴지는 흥분에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며 조금 싱글벙글한 기분으로 답장을 고민하고 있다보니 어느새 발걸음이 멈춰 있었다. 얼마나 이러고 있어는 지는 모르겠지만 길 한복판에 멍하니 있었던 것이 무안해져서 서둘러 다시 발을 놀렀다.


"얘!"


몇걸음 걷지 않아 누군가 내 어께를 두드림과 동시에 바로 뒤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손에 들린 핸드폰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뻗뻗한 움직임으로 뒤를 돌아보니 놀란 나 만큼이나 당황한 미야와키씨가 서 있었다. 그에 덩달아 나도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으며 겨우 인사를 건네니 미야와키씨가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흙을 털어내고 내게 건네주었다. 혹시나 싶어 확인해보니 메일은 전송되지 않았고 핸드폰에도 살짝 긁힌 정도의 상처밖에 없었다.


"미안,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어."

"아니에요. 제가 너무 생각에 빠져 있어서..."

"남자 친구랑 메일? 아가씨 나이에는 그럴 만 하지-"

"남자 친구는 아니에요."


뭔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청춘은 좋구나- 따위의 말을 할 것 같은 어투에 그저 웃으며 말을 정정해드렸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여전히 우아한 커리어우먼의 모습이었고 여전히 행동력이 강했다. 내 얼굴을 보니 함께 레몬타르트를 먹었던 가게에 가고싶어졌다며 손을 잡아끌었고, 나는 코하네와 어울리는 기분으로 순순히 따라갔다. 그녀는 그 때와 같은 레몬타르트, 나는 이번에 새로 추가된 녹차 티라미스를 용기내어 주문했다. 책을 자주 사다보니 이런 곳에 자주 올 정도로 생활비가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가끔 정도야 기꺼이 지출했다.
주문한 디저트가 앞에 놓이고 함께 주문한 음료를 마시며 편안하게 수다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일 때문에 일본을 일주하고 왔다는 그녀는 이런저런 경치좋은 곳을 추천해주었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몇가지를 잊지 않기 위해 넵킨에 끄적였다. 이야기는 어느새 일상의 것으로 넘어가 미야와키씨의 푸념으로 ㅇ이어졌다.


"그래서 있지- 바쁘다면서 방에 틀어박혀서 얼굴 보기도  힘들다니까?"

"운동부라고 하지 않았어요? 인터하이 시작했으니 바쁜 모양이네요."

"어머, 그랬니? 벌써 그럴 때구나... 작년에는 출전 안한다고 했던가- 일찍 져버렸다던가 그랬던 것 같네."


레몬타르트를 포크로 괴롭히던 미야와키씨가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예쁘게 한입 떠 먹고 상쾌한 표정이 되었다. 일찍 져버렸다면 배구부라던가 테니스부, 그리고 그렇게 일찍 진건 아니지만 인터하이 출전에 실패한 농구부다. 일단 농구부에 미야와키라는 성을 쓰는 아이는 없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니 마주보고있던 미야와키씨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니?"

"음... 미야와키라는 성을 쓰는 아이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아- 나는 일 때문에 처녀적 성을 계속 쓰고있거든."


... 그러면 당연히 같은 성인 아이가 없지. 아니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아이는 미야와키씨의 아들이 아니다. 내가 당황한 표정을하니 말 안했었나보네- 하며 예쁘게 웃으신다.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와 엄마의 성이 다른 일은 좋지 않은 이유가 많으니 여기저기 떠벌릴만한 일은 아니기에 그저 그러려니 싶었다. 그녀의 이유가 좋지 않은 이유가 아니었을 지라도, 세간의 시선이라는 것이 그렇다.
내가 머리 속으로 홀로 이해하고 결론을 내고있으니 미야와키씨가 포크를 내려놓고 날 바라보며 예쁘게 웃으신다.


"아가씨는 학교 생활 어때? 저번에 힘들다고 했었지 않았던가?"

"어찌 해결은 됐어요."

"그렇구나! 다행이네-"

"음... 그런데 혹시 상담- 해 주실 수 있나요?"

"응? 물론이지. 어떤거니?"


세이린의 이야기는 교내의 교우관계도 아니고 그 이야기를 하려면 하나미야의 러프플레이도 이야기해야해서 선생님들에게 상담 받기가 곤란하다.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기도 애매해서 세이린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빼내고 내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와 그 탓에 아끼는 아이의 시합을 보러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들어주시던 미야와키씨는 내 이야기가 끝나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시더니 곧 경쾌하게 해답을 내어 놓으셨다.


"힘든데 억지로 할 필요는 없잖니?"

"그건 그렇지만..."

"트라우마라는게 원래 그런거란다. 처음부터 전부 해내려는 것 보다 아주 조금씩 시도해보렴. 성급히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까. 천천히, 차근차근 하는게 중요한거야."

"... 천천히."

"그나저나... 가장 좋아하는 일이 가장 무서워졌다니, 많이 힘들겠구나."


조언을 곱씹던 내게 느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건네진 말에 순간 멍해져서 미야와키씨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질거야라던가, 금방 나아질거라는 말은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저렇게 말해준 사람은 처음이라 반응하기가 어려웠다. 이해한다는 듯이 말하는 그 어조가 너무나도 다정해서 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고야 말았다.
미야와키씨의 조언을 조금 더 들은 뒤 헤어지고 나서 뒤늦게 쿠로코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생각하다보니 아이의 이름을 묻는 것을 깜박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에 언제 만나게 될 지 모르겠지만 그 때 물어봐야 겠다고 생각하며 쿠로코에게 디저트 사진을 전송했다.


[디저트 카페입니까?]

[응, 레몬타르트가 맛있었고 신작인 녹차 티라미스도 맛있어.]

[맛있다니 궁금하네요. 대회가 끝나면 함께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랜만의 데이트이겠네요.]


이제 자연스럽게 먼저 데이트 신청도 할 줄 안다. 키득키득 웃으며 집으로 향하는 골목에 들어서니 왠지 집에 돌아가기 아쉬웠다. 어차피 내일도 휴일이고 더 늦게 들어간다고 해봐야 여름이니 날이 그리 어두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을 다시 체크하고 뒤로 돌아 항상 쿠로코와 가던 마지바로 향했다. 시합도 끝났는데 지난번 이즈키처럼 누군가 있는 건 아니겠지 하는 우려는 있었지만 바닐라 쉐이크가 너무 먹고 싶었다. 쿠로코와 어울리다보니 식성까지 닮아버리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연스럽게 주문해 나온 바닐라 쉐이크가 맛있어서 뭐 어떠랴하고 넘겨버렸다.


[마지바에서 바닐라 쉐이크 먹는다-]

[디저트에 바닐라 쉐이크까지 드시면 식사는 어쩌시려구요?]

[버거도 같이 샀지.]

[패스트 푸드를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저 바닐라 쉐이크를 먹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시작된 잔소리에 살짝 미간을 좁혔다. 얘가, 얘가. 점점 잔소리만 늘어가고 있네. 변명을 하면 더 잔소리가 심해지려나 싶어 조금 고민하다가 그가 어쩔수 없다고 여길 정도의 이유를 찾았다.


[그치만 오늘은 요리하기 귀찮아서... 자주 먹는 것도 아닌걸?]

[가끔이라면 괜찮겠지만...]


너도 자주 먹잖아. 라고 하고 싶지만 생각해보니 용돈의 한계가 있을테고 부활동 후에 얼마나 배가 고픈지 나도 잘 알기 때문에 그만 두었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챙겨먹겠다는 확인을 몇번이고 받고 나서야 만족한 듯 넘어간 아이는 밤이 늦었으니 빨리 귀가하라며 재촉했다. 동생이 아니라 오빠같은걸- 하고 투덜대니 이렇게 사랑스러운 동생에게 무슨 소리냐며 뻔뻔하게 대응한다. 날이 가면 갈수록 쿠로코의 뻔뻔함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귀여워서 한참 키득거리며 웃어댔다.

 

으아아8ㅁ8 늦어도 2주에 한번은 올리고 싶은데 뭔가 잘 안되네요 ㅠㅠㅠㅠㅠ 그리고 앞으로도 더 바빠질 예정이라 너무 죄송해요...ㅠㅠㅠㅠ 석고대죄해야 할 것 만 같은 그런...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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