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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66-

by 깜냥이 2016. 5. 11.

 

중간 고사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인터하이 예선, 나름 강호라 불리는 팀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선수 구성과 연습 체계 때문인지 농구부의 모두는 수업 시간에도 반쯤 죽어있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물론 세토는 대회 기간이 아니어도 늘 잠들어 있지만...
대회 준비로 바쁜 것은 비단 우리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었는지 저녁 외출을 할 때에 가끔 들리는 농구공 소리도 이젠 전혀 들리지 않는다. 서점에 다녀오는 것을 잊어 외출하는 김에 슬적 들여다본 농구 코트에는 저번에는 없었던 낡은 농구공 하나가 홀로 굴러다니고 있을 뿐 이었다.
 
외출한 김에 간만에 마지바에 들려 치킨버거 세트와 습관적으로 추가 주문한 바닐라 쉐이크를 들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 바닐라 쉐이크를 마시고 있으니 쿠로코가 떠올라 슬적 그에게 메일을 보내보았지만 한참 동안 답이 없기에 오늘도 피곤하구나 하고 한숨을 쉬어버렸다. 꼭 친 동생이 사춘기에 접어들어 누나랑 말 안하려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터덜터덜 집에 도착해 신발을 벗으려 잠시 신발장에 핸드폰을 올려두니 띠링- 하고 메일 도착 알림이 울렸다.


[그간 연락 못드려 죄송합니다. 인터하이 예선 1차전 대전 상대가 결정되었습니다.]


오랜만의 문자에도 착실하게 사과의 말로 시작한 아이는 여전히 예의바른 문장을 보내왔다. 그에 웃으며 어떤 학교인지 궁금하다고 답장을 보내니 장신의 센터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에 필적할 만한 신장의 선수가 없던 터라 다른 선수들이 대비를 위해 연습에 들어갔다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새로운 팀과 연습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파트너와도 익숙해져야 했기에 바빴다는 쿠로코는 다시하넌 사과를 해왔다.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 물어보니 그 짧은 사이에 벌써 연습 시합도 했었고 그러면서 중학교 시절 팀메이트도 한 명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시합 후에 잠시 전 팀메이트와 대화를 나누러 이탈을 했다가 혼났다며 투덜 거리기 시작했다.


[바람 쐴겸 밖으로 나왔다가 그와 만나 자리를 옮긴 바람에 걱정을 끼쳐서...]

[음... 그건 테츠야가 잘못 했는걸.]

[그래도 새우꺾기를 당하고 있는데 모두 무시한건 나쁩니다.]

[응- 그건... 그러네...]


제 잘못으로 혼난 것이 맞지만 처우가 너무하다며 칭얼거리는 것이 제법 귀엽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그동안 연락하지 못하는 동안 있던 일에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옥상에서 목표를 외치고 실패하면 전라로 고백이라는 말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거 리코가 생각한거야? 설마? 내가 충격에 빠져있던 말던 쿠로코는 매점에 이상한 전설이 담긴 샌드위치를 판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그것도 꽤 맛있어서 마음에는 들지만 경쟁도 치열하고 가격도 비싸서 아쉽단다. 캐비어에 트러플 푸아그라? 뭐야 그게 세계 3대 진미? 이베리코 흑돼지? 고등학교 매점에서 왜 그런걸 팔아? 세이린 뭐하는 학교야?


[지정된 날에만 판매한다더군요]

[신설인데 신기하네-]

[그러게요. 신설인데. 그나저나 시합, 보러 오실건가요?]


시합. 농구공 소리와 농구화 스치는 소리가 가득할 체육관에 아직 들어갈 자신이 없다.  그에게 비밀로하고 끝나갈 즈음 살짝 보고와야할까 생각하고 있었건만 직접적으로 물어보니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하고 고민하며 시합 날짜를 확인해보니 마침, 정기검진과 겹치는 날이라 그것을 핑계삼으니 그런가요. 하고 조금 시무룩한 대답이 돌아왔다. 


[첫 공식전 못보는 거 아쉽네...]

[일이 있는건 어쩔 수 없죠. 검사 결과 나쁘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응, 결과가 나쁠 일은 없을거야. 건강한데 혹시나- 해서 하는 거니까.]

[그런가요. 그래도 말씀하신 것 처럼 혹시나라는 게 있으니까요. 다음 번을 기약하도록 하죠.]


그 다음 시합이 언제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아직 자신이 없다. 세이린의 모두를 볼 자신도, 아이의 시합을 제대로 지켜보고 있을 자신도 없어 다음 시합엔 뭐라고 둘러대야할까 막막했다.

쿠로코의 시합이 있는 날, 응원의 메일만 정성스레 보내고 천천히 병원으로 향했다. 느즈막히 도착하니 환자도 거의 없어 느긋하게 검진을 마치고 오빠에게 트라우마와 관련된 책을 받았다.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며 내 손에 꼭 쥐어주고 데려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오빠는 제법  많이 지쳐보였다. 
너무 피곤해 보여서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않고 병원을 나서니 슬슬 하늘이 어두어지고 있었다. 시합은 이미 끝난지 오래일 것이다.


[예선 1차전 무사 통과 했습니다.]


아이의 승전보를 그저 묵묵히 바라보다가 답을 보내지 않고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미안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아 도저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바닥만 보며 터덜터덜 걸어서 집 근처에 다 와갈 무렵, 탕- 탕- 하는 농구공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인 리듬의 소리가 간만이라 슬그머니 들여다보자 드리블  소리가 멈추고 익숙한 인영이 나를 돌아 보았다.


"어?"

"어... 오랜만이네? 그 날..  이후인가?"


차분한 분위기가 여전한 그, 이즈키가 어색한듯 뒷머리를 쓸며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그에 살짝 고개만으로 인사하며 문 밖에서 우물쭈물하다가 펜스의 문을 열었다. 오늘 예전 1차전을 뛰고온 선수가 길거리 농구장에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싶었지만 그는 몇 번 드리블을 하더니 휙- 가벼운 동작으로 슛을 넣었다. 제법 깔끔하게 림을 통과하고 바닥을 구르는 농구공을 바라보다가 그를 바라보니 그도 공에서 눈을 떼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음... 오랜만이야. 이즈키군."

"그러게, 감독이 널 보고싶어하는 눈치였는데. 바빴어?"

"음. 조금? 남의 학교 부활동을 방해하는 것도 좀 그렇고... "

"아냐, 전혀 방해가 아닌걸? 가끔 여유 있을 때 놀러와. 아... 여유는 지금 우리가 없네."

"응, 여름 대회 예선 시작했으니까..."


머슥한지 시선을 굴리면서도 대화를 이어가는 그는 피곤하지도 않은지 서 있던 자리에 자세만 조금씩 바꾸며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나는 어색함을 애써 숨기며 우물우물 그의 말에 답을 해 주었다. 점점 시선이 그에게서 바닥으로 향한다. 코트 중앙에 있는 그와 달리 나는 문만 열었을 뿐 여전히 코트의 밖이다. 응, 내 자리는 코트의 안이 아닌 바깥. 가슴이 조금, 저릿해졌다.


"우리는 1차선 통과했어. 응, 전국 대회 출전을 노리고 있으니 이제 시작일까."

"그..렇구나."

"이번에 엄청난 신입생이 있어서 말이야. 이번에는 전국... 갈 수 있을 것 같아. 기적의 세대가 있으니 우승은 무리일까... 그래도 제일을 목표로 둔 아이가 있으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좋겠네. 응원... 할게."

"인터하이가 끝나고 나서라도 한 번 놀러와."


이즈키는 어느 새, 바닥을 보고있는 내 시야에 그의 운동화가 보일 정도로 다가와 있었다. 조금 고개를 들자 바닥에 비친 그림자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 머리 위로 남자아이 다운 큰 손을 조심스럽게 올렸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의 상냥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지만 애써 아닌척 하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미안하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 잘못인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키요시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 다른 아이들을 볼 자신도 없어서 피했다. 내 핸드폰에는 분명 리코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음에도 애써 모른척한 것도 그 이유인 것이다.
몇번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 그는 역시나 조심스레 손을 치우고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는 주제를 돌렸다.


"그럼 나는 슬슬 피곤해서 돌아가 볼 참인데, 너는? 집이 근처라고 했던가?"

"응, 나도 돌아가야지. 다음에... 보자."

"응, 그러길 바라."


이즈키가 웃으며 인사를 하고 떠난 농구 코트의 문 앞에 오도카니 서서 덩그러니 구르고 있는 농구공을 바라보았다. 원래부터 이즈키의 것이 아니었던 듯 당연하게 버려진 코트 안의 농구공. 여전히 안에 들어서지 못하는 나. 한참 농구공을 바라보다 하늘에 노을이 져서 붉어질 즈음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신발장 위의 액자는 눕혀지고 작디 작은 농구공은 신발장 안, 우산 꽂이 안으로 옮겨졌다.

 

서향이의 기분이 오락가락하지요 :(...

인터하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음... 과연 어떨까요...

다른 단편을 쓰고싶어서 빨리 써버려야지~ 했건만 전혀 안써져서 안개꽃만 쓰고 있어요...

일이 안바쁘면서도 바쁘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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