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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인쇄기/초벌인쇄

[쿠로코의 농구 / 사쿠라TS쿠로] LUNCH BOX (1) -3

by 류 엘 카르마 륜 위르치아나 2016. 5. 15.
이런 식으로 시간차 예약으로 글을 올릴 것 같습니다.
모쪼록 다음주부터 잘 부탁드려요오오오오오오!!!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매니저가 아닌 여성이 주소록에 등록되었다. 그것도 전혀 그와 접점이 없을 타학교의 여학생이다. 올곧은 하늘빛 눈동자와 가늘고 풍성하던 하늘빛 머리카락, 작고 하얀 소녀다. 기적의 세대라는 쟁쟁한 존재들이 그리도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공주님이다. 그것만으로도 그와 달리 아득히 먼 곳의 존재 같았다.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 그녀가 먼저 그에게 다가왔다. 요리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었다. 헤어질 때는 휴대폰 번호도 교환했다. 어쩐지 그 사실이 실감나지 않아 주소록에 박힌 그녀의 이름을 하염없이 멍하니 바라봤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정말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언제 그녀를 처음 봤었더라? 잊은 척, 꾹꾹 묻어둔 추억을 헤집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강호로 손꼽히던 테이코(帝光)중학교 농구부와의 연습시합이 있었을 때, 감독선생님이 틀어준 테이코중학교의 시합 장면 속에 그녀가 있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었지만, 그는 정말 우연히 그녀의 모습을 확인했었다.

 비디오테이프 속, 약간 흐린 화면 저편의 그녀는 더욱 흐릿해서 금방이라도 사라질 환상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농구의 요정이라고 생각했었다. 기적의 세대가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요정의 총애를 받아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한번이라도 좋으니 자신을 찾아와주길 바라였었다. 시합에 나갈 때면 남몰래 그렇게 기도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농구부에서 모모이와 아오미네를 만나 그 하늘빛 요정이 실존한다는 걸 알았다. 그저 지독하게 존재감이 흐려서 사진도 잘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조금 웃었었다. 가족처럼 그녀를 싸고돌면서 중학생 때의 일을 이야기하는 그들이 부러웠었다. 그래도 그때까지 그녀는 머나먼 존재였다. 아마 아이돌을 동경하는 마음과 비슷했으리라.

 그녀는 그에게 우상이었고, 막연한 동경이었다.

 그랬었는데…… 무심코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딘가 꽉 막힌 듯 답답해 숨을 쉬기 어려웠다. 그냥 그녀를 떠올린 것만으로 심장 어귀가 아파왔다.

 쿠로코 테츠나는 그가 상상한 것보다 더 올곧고 다정했었다. 모모이의 저돌적인 애정조차 보듬어 그녀가 가장 바라는 형태로 보답할 정도로, 무관심해 보이던 무표정 아래에는 너무나도 상냥한 요정이 있었다. 아무것도 보지 않는 듯, 전부 똑바로 바라보며 배려한다. 오늘 그녀가 없었다면, 모모이는 자신의 요리센스에 좌절해서 요리라면 진저리 쳤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도 그녀가 없었다면 요리를 가르치는 것에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쿠로코에게는 아주 소중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고 도시락을 만들려 한지만, 스스로 요리를 잘 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모모이와 아오미네를 통해 도시락을 잘 만든다고 들은 그에게 도움을 청한 거다. 그는 바보처럼 그걸 착실히 도왔고, 오히려 도움을 되지 못해서 조금 좌절했었다.

 마음이 조금 아팠지만, 소중한 사람이 기뻐할 모습을 떠올리며 그의 지시에 열심히 따르던 모습이 떠오른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그의 말을 놓치지 않고 들으며 바지런히 움직였었다. 그런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눈을 땔 수 없었다. 속으로 평정심과 태연하게를 몇 천 번쯤 반복해서 중얼거렸으리라.

 요리교실은 결국 모모이의 뒤치다꺼리로 끝났고, 그녀는 올려 묶었던 머리를 풀었었다. 선명하게 묶은 자국이 남은 풍성한 하늘빛 머리카락을 무심코 만질 뻔 했었다. 잘 빗어서 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실행하면 그녀가 싫어 할 것 같아 애써 참았었다.

 어쩌지? 머릿속에서 그녀가 떠나질 않아. 그런 자기가 한심해서 한숨을 푹 쉬면서도 액정을 끄지 못한다. 주소록에 새겨진 그 이름만 반복해서 바라봤다.


 “오라버니, 괜찮아? 어디 아파?”


 그의 여동생, 마사가 그의 곁에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이래 소파에 늘어져서 휴대폰만 뚫어져라보니 걱정할 만하다. 귀가 후 그녀를 떠올리느라 여동생을 완전히 잊어버렸던 그는 급히 미안하다면서, 괜찮다고 다정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은 휴대폰을 향한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지만, 미사는 한층 불안해졌다. 역시 오늘 오라버니는 이상해, 정말 괜찮아? 역시 괜찮다는 말이 돌아오자 마사는 휴대폰 화면을 제 손으로 가렸다. 이것 때문에 오라버니가 이상해! 그는 아니라고 하지도 못하고 그냥 웃어버렸다.


 “있지, 오라버니… 마사쨩 배고파! 요리하러가자!”


 조금 필사적인 마사의 말에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마사가 좋아하는 햄버그를 만들자며, 휴대폰을 소파에 내려놓고 먼저 부엌으로 향했다. 마사의 표정이 밝아지며 재빨리 뒤를 따른다. 오라버니와 함께 요리하는 건 마사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언제나 맛있고 귀여운 도시락은 마사의 자랑 중 하나였으니까!

 그때 작은 진동음이 울렸다.

 이미 부엌에 들어선 그는 듣지 못했지만, 뒤따르던 마사는 확실히 들었다. 혹시 오라버니가 기다리던 연락이 아닐까? 계속 휴대폰을 잡고 놓지 않았으니까. 그럼 그걸 확인하면 오라버니가 원래대로 돌아 올 거다. 마사는 자그마한 머리로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재빨리 뛰어가 휴대폰을 오라버니에게 가져다줬다.

 막 앞치마를 걸치던 그는 마사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휴대폰을 받아들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 직후 너무 놀라서 폰을 떨어뜨릴 뻔 했다. 폰이 고장 났나 싶어서 전원을 껐다 킨 그는 자신이 잘 못 본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어쩌지? 어떻게 하지!? 별것도 아닌 그냥 메시지에 불과했지만 보낸 사람이 문제였다.


 쿠로코 테츠나


 휴대폰 액정에 선명히 떠오른 이름은 지금도 그를 뒤흔드는 존재였다. 번호를 교환하면서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조금 가지긴 했었지만, 이렇게 바로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헤어진 시간을 생각하면 절대 바로가 아니었지만, 하루가 지나지 않았으니 바로나 다름없다. 아니지, 시간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문제는 조금 전까지 끊임없이 떠올렸던 그녀가 지금 연락을 했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그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거리다가 마사가 부르는 목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려 어렵사리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에 오라버니가 이상하다며 울려고 하던 마사를 달래야 했었지만. 그렇게 다난히 확인한 내용은 조금 의외의 내용이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쿠라이군 덕분에 저도 모모이씨도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 사쿠라이군에게서 다시 요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내일.
 선약이 없으시다면 부디 시간과 장소를 정해주시길 바랍니다.


 조금 무례하고 다급한 내용에 그는 순간 혼란스러워졌다. 이거 진짜 그녀가 보낸 걸까? 순간 의심이 들었지만, 액정에 박힌 보낸 이의 이름은 그녀가 확실하다. 역시 장난인가 싶었지만, 그에게 이런 장난을 칠 이가 없었다. 그럼 본인이 맞을 텐데? 폐라고 생각하면서도 요리를 배울 필요가 있다는 걸까? 오늘 만난 그녀는 그렇게까지 다급해보이지도, 필사적이지도 않았었다. 그랬었는데 이건……? 이상하게 의문부호가 사라지질 않는다. 어쩌지?

 잠시 고민하던 그는 장난이면 어떠랴, 조금 초탈한 심정으로 답변을 날렸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즐거웠습니다!
 특별한 선약은 없습니다!
 내일은 학교가 전부 쉬는 날이라 실습실을 빌릴 수 없습니다
 제가 세이린으로 찾아가도 괜찮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너무 즉답인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떠랴.

 선약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내일 농구부 연습도 없었다. 다른 때라면 길거리 농구장에서 가볍게 몸을 풀거나 마사와 함께 요리를 하는 게 전부다. 그러니 쿠로코를 만나 요리를 가르쳐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게 더 좋다. 이 문자가 사실이라는 전재하의 이야기지만. 혼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니 마사가 배고프다며 어서 요리를 하자고 조른다. 그는 서둘러 햄버그 재료를 꺼내 조리대에 올렸다. 그때 다시 진동음이 들렸다. 반사적으로 식탁에 얹어 둔 휴대폰을 들고 확인하니, 역시나 그녀였다.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세이린도 완전히 쉬는 날이라 실습실을 빌릴 수 없습니다.
 내일은 집에 손님이 오실 예정이라…… 사쿠라이군의 집은 어떤가요?


 그는 이번에도 잠시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가 켰다. 그래도 내용이 변하질 않아 배터리를 갈아 끼웠지만, 메시지의 내용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는 도저히 자기가 읽은 내용을 믿을 수 없어서 마사에게 읽어달라고까지 요청했지만, 날아온 메시지가 변할 리 없다. 오히려 여동생이 천진난만하게


 “내일 오라버니 친구가 오는 거야?”


 라며 즐거워해서 그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그는 우선 길게 심호흡을 하고 햄버그를 열심히 만들었다. 여느 때보다 정성을 다해 만들어 마사와 사이좋게 나눠먹은 후, 같이 자고 싶다며 때를 쓴 여동생을 먼저 곱게 재웠다. 오라버니랑 함께가 아니면 안잘거라 버티던 아이는 능숙한 오라버니의 손길아래 깊이 잠들었다. 그는 마사를 방으로 옮겨 이불까지 곱게 덮어주고 자기 방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약 1시간에 걸친 현실도피를 끝낸 그는 살며시 벽에 머리를 박았다.

 죄송합니다, 너무 욕심을 부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거 그냥 꿈인거지요? 죄송합니다, 이런 장난은 사양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거 믿기 어렵습니다아아아아아아! 죄송합니다, 답변이 너무 늦습니다아아아아!! 어쩌면 좋을 지 모르겠습니다아아아아아!!!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아아아아아아아!!!!

 다시 약 20분가량 머리와 벽의 강도를 대조하던 그는 어렵게 답변을 보냈다.


 답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여동생도 함께이니 괜찮습니다!
 모모이씨가 우리 집을 아시니 함께 오시면 됩니다!
 시간은 쿠로코씨가 원하는 때로 정해 주시면 됩니다!
 답변이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1시간 20분이나 걸려서 보낸 답변치고는 너무 무난했지만, 이게 그의 한계였다. 사실 모모이가 같이 오리라는 생각에 간신히 진정해서 보낸 거였다.

 그리고 그녀의 답변은 그가 현실도피로 보낸 1시간 20분의 사투를 무색하게 2분도 지나지 않아 바로 도착했다.


 그럼 12시쯤으로 괜찮을까요?
 앞치마와 고무장갑 이외의 준비물은 뭐가 좋겠습니까?
 그리고 요리 재료 준비는 어떻게 할까요?


 요리 재료는 생각도 못했었다. 그녀가 온다는 사실에 놀라 왜 오는지를 잠시 잊어버렸었다. 도시락을 만들려고, 요리를 배우려고 오는 거였지. 소중한 사람에게 주려고 배우려는 거였지. 현실이 보이니 조금 심장 어귀가 아파왔다. 이렇게 필사적으로 요리를 배울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겠지? 그게 자신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아주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그런 실망감을 억지로 묻고 그는 내일 가르쳐 줄 요리를 정했다.

 준비물은 특별히 없어도 되고, 내일 12시쯤 그의 집 인근 공원에서 만나 재료를 사기로 했다. 어린 여동생도 함께 할거라 먼저 미안하다고 하니, 그녀는 오히려 더 기대된다고 했다. 그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12시가 다 되었다. 늦었는데 아직 안다냐며 아버지가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으리라. 그는 황급히 이미 자정인 시각을 이야기하며 피곤할테니 이만 자라는 답을 보냈다.


 벌써 이렇게나 시간이 흐른 줄 몰랐습니다.
 시간을 확인하니, 졸립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사쿠라이군, 안녕히 주무세요.


 그게 마지막 대화였다. 평소라면 금방 잠들었을 텐데, 다정한 마지막 인사에 심장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두근두근두근두근 평소보다 2배는 빨리 뛰는 것 같다. 첫 공식전 출장이 결정되었을 때도 이렇게 떨리진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어 레귤러로 결정 되었을 때도 이렇진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서 그녀가 보낸 메시지를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머리가 멋대로 그녀의 목소리로 그걸 변환 시킨다. 차분하게 또박또박 알아듣기 쉬운 발음으로 이어지는 상냥한 목소리. 망상에 불과한 그 목소리에 취해 그는 어렵사리 잠들 수 있었다.



이걸로 LUNCH BOX (1)은 끝났습니다.
다음에는 (2)로 돌아오겠습니다!
사쿠라이가 파닥거리는게 재미있었습니다.[쳐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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