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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56

by 깜냥이 2015. 12. 2.

둘이서 사진을 찍고 각자 한 번씩 독샷도 찍다가 치즈루가 보정을 시작했을 즈음 아래층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사온 것이 많은 듯, 비닐 봉투소리가 꽤 요란하게 들려와 1층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2층에서 쿵쾅거린 탓일까 헐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가 내려오길 기다리고 계셨다.


"할머니! 짐 많으면 부르시지!"

"에구 그리 무겁지도 않은데 뭘 그러니."

"무겁지 않기는요? 이렇게 많은데!"

"부피가 클 뿐인 걸? 현관에서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다시 짐을 드시려 허리를 굽히시는 할머니보다 먼저 짐을 집어든 나와 치즈루가 냉큼 부엌으로 뛰듯이 짐을 옮지자 뒤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는 꼭 네가 오면 무리 하신다니까. 한숨을 쉬는 치즈루를 보며 키득키득 웃으며 짐을 내려놓자 천천히 할머니가 부엌으로 들어오셨다. 식재료들을 냉장고에 정리하는 동안 옆에서 점심 재료들을 챙기시는 할머니를 치즈루가 쉬시라며 거실로 모셔가고 나는 쟤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며 계속 냉장고에 정리했다. 다시 부엌으로 돌아온 치즈루는 자신이 요리를 한다며 먼 길 오느라 피곤할거라며 나도 거실로 쫒아냈다.


"저 아이가 가끔 제멋대로이지?"

"뭐, 그건 저도 마찬가지인걸요?"

"그렇지? 우리 집안 여자들의 내력이란다. 너희 엄마도 갑자기 어디서 외국인 남자를 데려오더니 결혼할거라 막무가내였단다."

"엄마가요?"

"연애를 하고 있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만... 할아버지가 그렇게 반대해도 억지를 부리더니 기어코 결혼해서 한국으로 가더니 이렇게 이쁜 손녀를 낳아오고, 할머니는 만족이야. 이제 우리 예쁜 쵸우가 남자친구를 데려오는 일만 남았네?"


쵸우의 결혼식은 보고 싶은데- 하시는 할머니의 말에 나는 그저 웃었다. 할머니께서 내가 이제 겨우 고2라는 사실을 모르고 계실리는 없고, 워낙 엄마를 아끼시는 분이시니 그럴 것이다. 할머니께서 가끔 이렇게 엄마의 이야기를 하실때면 내가 아빠보다 엄마를 더 닮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된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학교 생활에 대해 조근조근 물어보시는 목소리에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있으면 점심이 다 되었다고 치즈루가 활기차게 난입한다. 내가 평소 먹는 것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식탁은 지난 여름에 왔을 때와도 조금 달랐다.


"치이가 요리를 하면 저가 좋아하는 것만 만들어서 식탁이 이렇단다. 이해해주렴."

"맛있는데요? 맛만 있음 되는거죠, 뭐."

"나 요리는 자신 있으니까!"

"저렇게 말하지만 작년까진 계란 후라이를 태우곤 했단다."

"할머니! 그거 비밀!"


요컨대 나는 요리를 잘하는데 언니인 자신이 못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며 할머니께 조르고 졸라 요리를 배웠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미부치군에게 베이킹을 배우는 모양인데 그건 아직 자신이 없단다. 나는 베이킹은 사먹는게 이롭다 생각하고 애초에 시도도 하지 않었는데, 치즈루가 한다니 나도 시작해볼까 고민했다. 하지만 곧 집에 오븐이 없는 것을 떠올리고 생각을 접었다.
과자를 처음 만들던 날 시꺼먼 무언가가 나와서 울면서 버렸다는 이야기에 깔깔 거리고 있으니 언젠가 완벽하게 만들어 낼거라며 성을 냈다.


"그런데 소우타 오빠는요? 언제쯤 퇴근해요?"

"어머, 치이가 말 안해줬니? 오늘 아침 일찍부터 도쿄에 갔단다. 일 때문에 다음 달까지 있을거란다."

"아, 맞다. 말하는걸 깜박했네."

"야."


그런건 진작에 말해야지. 코하네를 만나는 것이 엇갈리더니 이번엔 소우타 오빠인가... 이번 봄에는 계속 엇갈리기만 할 모양이다. 그래도 도쿄에 있다고 하니 돌아가서 몇번은 만날 일이 있겠지... 설마 도쿄에서도 못 만나는 건 아니겠지?
여자 셋이서 소소한 수다와 함께 식사와 아까 먹지못한 간식까지 해치우고 여유를 만끽했다. 물론 이전에 여유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혼자 집안에서 심심해서 몸부림 치는 것은 여유롭다고 말하기 애매했다. 역시 라쿠잔으로 진학했어야했나 싶었지만 치즈루의 과보호 속에서 제대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겠다. 무관의 오장이 세명이나 있다는데 농구를 못하고 있는 와중에 한명도 아닌 셋이나 되는 천재들 사이에 있기는 싫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타교의 천재까지 만나 친해진 상태에다가 기적의 세대의 동료까지 알고있는 마당에 어떻게든 될대로 되라 같은 생각이지만 말이다.
아까 스크랩북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것이 떠오른 치즈루가 날 끌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 역시 네 마음대로 하던가 말던가...


"최근에는 기적의 세대가 어느 학교로 갈 것인가- 가 주요 포인트지."

"우리 학교만 아니면 될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천재들을 피해? 너를 도와줄 만 한건 그 애들 아냐?"

"내가 들은 그 녀석들은 내 고충따위 모를 걸? 언제나 이기기만 하는데 좋아하는 것이 무서워진다는 걸 알겠어? 그 외의 아이들이나 알겠지."

"언제나 이기기만 하던 건 너도 마찬가지 였는데."


그래도 테이코의 기적의 세대처럼 트리플 스코어로 압승하는 정도로 월등히 강한 팀은 아니었다. 조금 아슬아슬한 시합도 많았고... 애초에 기적의 세대는 규격 외다. 한 팀에 그런 녀석들이 모여있다니 무슨 불합리. 고교 진학하면서 흩어지는게 정말 다행이다.
내가 어떠한 대답도 없이 그저 입을 다물고 있으니 고개를 설설 저은 치즈루가 다시 시선을 스크랩북으로 향했다. 조금 심드렁한 어투로 무서운건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도 역시 침묵으로 일관했다. 슬슬 짜증나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즈음 그녀는 묵묵히 스크랩북을 뒤져서 무언가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내밀어진 페이지에는 신설 고교 농구부의 기적같은 행보라는 타이틀과 함께 세이린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쉽게도 에이스의 부상으로 탈락했지만 그래도 뛰어난 선수들임은 틀림 없었기에 조그맣게나마 실린 모양이다. 


"신설이라 시설 하나는 좋을 것 같고, 동배들 뿐이니 싸우기도 싸우면서 서로 친할 것 같은데."

"싸우는 건 잘 모르겠고, 사이는 다들 좋아보이더라."

"실적이 없으니 아직 신입생이 몰리지는 않을거고 아마 2~3년간은 소수 이지 않을까 싶네."

"뭐, 그렇겠지 뭐."


팀이 커가는 걸 보는 것도 재미 있을것 같다는 치즈루는 그러게 그 정도의 지식으로 매니저는 왜 안하냐 하니 땀냄새가 싫단다. 차마 할 말이 없어진 내가 입을 다무니 스크랩북을 설렁설렁 넘기던 손을 멈추고 아예 드러눕는다. 일어나라고 해야하는지 잠시 고민한 나는 그냥 그녀와 같이 바닥을 뒹구는 것을 선택했다. 편한 자세로 엎드려서 보다 만 스크랩북을 뒤적이고 있으니 데굴데굴 굴러서 내 허리를 베고 눕는다.


"그러고보니."

"음? 왜."

"여름에 산거, 쓰고있어?"

"아니."

"왜 산거야?"

"아니... 색이 익숙해서."


그날, 내가 산 것은 검은색과 노란색으로 반반 나뉜 리스트 밴드였다. 리스트 밴드는 왠지 거슬려서 잘 하지 않는데 그리운 배색에 냉큼 구입해 버렸던 것이다. 그 때 구입하고 나서 포장 비닐도 풀지 않고 그 때의 그 봉투에 담긴 그대로 서랍 한 쪽에 얌전히 놓여있다. 뜯는다고 쓰지도 않을 테고 왜 산걸까하고 가방에서 꺼내서 치워둔 것인데 그렇다고 남을 주기에도 애매해서 처치곤란이다.
내 표정이 어떤지 몰라도 치즈루가 어이없어 하는 것을 보내 곤란하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모양일터다. 일단 산거고 나중에 공을 잡을 수 있게 될 즈음에 한번 껴볼까 하는 생각 중이다.


"충동 구매."

"그 날 네가 산 내 옷보다는 몇 배 저렴하니까 괜찮아."

"맞아, 그날 예산 오버해서 용돈 깎였어!"

"그러게 적당히 사랬지."

"그래서 이번에 쇼핑 못해..."

"아싸!"

"서향 너무해!"


절대 너무하지 않아. 쇼핑 가고 싶었는데! 하며 치즈루가 칭얼거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마지막 페이지까지 전부 본 스크랩북을 덮으며 슬슬 아파오는 허리를 짓누르는 치즈루의 머리를 옆으로 굴러 떨어트렸다.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박은 치즈루가 바닥에 구르는 동안 책상에 올려둔 책을 한 권  가져와 원래 엎드려 있던 위치에 다시 엎드려 책을 펼쳤다. 그리고 통증이 조금 가신 치즈루가 다시 너무하다 칭얼거리며 허리를 베고 누웠다. 무거워...


"봄방학 길었으면 좋겠다-"

"3학기가 없으면 겨울 방학이 길었겠지."

"한국은 없다며? 좋겠다-"

"그러면 뭐해 나도 지금 일본인데."

"그런데 서향은 일본 대학 갈거야 한국 대학 갈거야?"

"글쎄... 아예 제 3의 선택일지도 모르지."


그러고보니 이제 2학년이니 슬슬 결정해야한다. 학기제 때문에 한국으로 가는 것이 조금 힘들 수도 있고 그렇다고 일본에서 다니자니 고민 된다. 이렇게 된거 대학은 미국으로 간다던가 하는 생각도 해본 적 있지만 솔직히 영어는 언어가 힘들어서 가기 싫다. 갈 수 있을 정도의 스펙이 아니기도 하고... 읽으려 펼친 책을 그저 바라만 보다가 결국 한 글자도 읽지 못한 채 덮어버렸다.
오늘은 책을 읽을 기분이 아닌 것 뿐이다. 그렇게 둘러대며 책을 옆으로 밀어내고 그대로 엎어져 팔에 얼굴을 묻었다.

 

뭔가 시간 참 빠르네요 작년에도 글쓰고 생일축하 받았던 것 같은데... :3

어제 생일이었는데 아무도 축하 안해준다 시무룩 하고 있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하지도 않는 페북으로 축하를 해주고 있더라구요... 그거 6년동안 봉인 중이던건데...

새로운 썰이 늘어나고 있는 와중에 다른 쓰던것들은 안쓰고 있습니다 죄송해요 8ㅁ8 열씨미쓰겟습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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