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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55-

by 깜냥이 2015. 11. 23.

자르기 애매해서짧아요 :( 다음주엔 길게..!!

 

하나미야가 이상한 모습을 보였던 그날 저녁 코하네는 그의 집에 그가 없었다는 것에 상당히 기뻐했다. 하나미야를 만난 것을 말할까 했지만 괜히 기분 좋은 상태인데 망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교토에 가기 전, 하필이면 한국에서 보내온 택배가 도착했기 때문에 그것을 정리할 겸 부엌을 싹 청소해 버렸더니 하루가 거의 지나버렸다. 그러면서 살펴보니 쉽게 무르는 야채 몇몇이 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냉장고 안에 이런게 있었던가... 교토에는 고작 이삼일 가량 있을테니 딱히 냉장고에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더니 꽤 난장판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늦잠을 자서 기차 시간이 아슬아슬하게 출발해 정말로 간신히 기차를 타고 교토로 출발했다. 짐이야 그저께부터 꼼꼼히 챙겼던 터라 빠트린 것 없이 잘 챙겨 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출근하는 소우타 오빠 대신 나를 마중 나온 것은 치즈루와 그녀가 데려온 친구였다. 지난번에 미부치를 데려왔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하야마다.


"오랜만- 치이랑 하야마군."

"먼 길 오느라 수고했어. 자, 짐은 여기 짐꾼에게."

"오랜만- 에? 치이쨩? 나 짐꾼?"


다짜고짜 짐꾼 취급을 받은 하야마가 울상을 하던 말던 치즈루는 내 짐을 하야마에게 넘기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런 우리를 쫒아오는 모습이 처량해보여 미안한 마음에 뒤를 계속 뒤를 돌아보니 앞을 보라고 손짓한다. 지난번 미부치군의 때와 달리 처음부터 취급이 대충인 하야마는 버스에서도 대화에 같이 참여한다기보다 치즈루의 질문에 오로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리액션만 해줄 뿐이었다. 순간 우리 학교의 대형 비글 한 마리가 생각 났지만 아무래도 그런건 하야마군에게 실례니 곱게 생각을 접었다.


"그래서 내가 추천해준 학교에 입학한다나봐."

"테이코면 농구 명문인데, 거기 신설교잖아?"

"음- 뭐. 왠지 그 애는 거기가 좋을 것 같아서..."

"그렇담 그런거겠지. 그러고보니 하야마군. 우리 학교에도 테이코에서 스카웃 해온 아이가 있다며?"

"에-? 몰라. 기적의 세대라는 것 밖에는."

"무관 셋에 기적의 세대? 우리 학교도 엄청나네."


네임드 선수가 넷이라니... 하고 중얼거리던 치즈루는 하긴 무관이 있으니까 기적의 세대가 아니면 눈에 안들어올거라며 수긍했다. 곧 기적의 세대 5명 중 누구일까 추리하기 시작하는 치즈루를 보며 PG와 FP가 비었으니 두 명 중 한명이겠지 하고 하야마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오미네는 싫은데, 아카시도 별로지만 그래도 온다면 차라리 아카시가 좋다는 치즈루는 본인은 키세 료타가 좋단다. 키세가 온다면 학교는 시끄럽겠지만 눈은 호강하니까. 선수인데 얼굴 따지는 거야?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하는 나와 하야마를 보며 뭐가 잘못 되었냐며 고개를 갸웃거리기에 나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뭐. 어쨋든, 다음에 내린다. 짐 챙겨, 짐꾼!"

"아무래도 좋으니까 이름으로 불러줘!"

"미안, 하야마군..."

"어... 아니. 네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만."


치즈루의 막무가내의 피해자인 하야마는 내가 들겠다는데도 괜찮다며 짐을 들고 훌쩍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이 놈의 교토 남정네들은 왜 내 짐을 내 손에 두질 못하는 건지.
그렇게 짐꾼 취급을 받으며 외갓집까지 따라온 하야마는 정말로 짐을 들어주는 목적으로 따라 왔던 건지 대문에서야 내 짐을 내게 들려주고 돌아갔다. 치즈루에게 쟤는 왜 온거냐 물으니 짐꾼이 짐을 들으러 왔지 왜 왔겠느냐며 뻔뻔하게 대답한다.
내 사촌이지만 너무했다, 진짜....


"할머니는 시장에 다녀오신다고 해서, 일단 우리 둘 뿐이네!"

"응- 그러네. 일단 짐부터 놓고 놀자."

"그럼 스크랩북 볼까?"

"아니, 짐 먼저 푼다고."


사람 말을 하면 들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헤헤 웃으며 입을 다문다. 웃으면 내가 화를 내지 않는 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니 내가 화를 낼 것 같으면 꼭 이렇게 반응을 하니 화를 낼 수도 없어 그저 치즈루의 머리만 헝클어트리고 넘어갔다.
천천히 짐을 풀고 있으면 거실에서 간식과 스크랩북을 준비한다며 쪼르르 제 방으로 달려가는 치즈루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내 방으로 향했다.
침대 옆에 짐을 내려놓고 기차에서 불편하게 자느라 뭉친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풀고 있으니 방 밖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방 문을 여는데 무언가 문에 걸렸다. 아무래도 치즈루가 바닥에 스트크랩북을 던져두고 간식을 가지러 간 모양이다.
가방에 있는 책을 책상에 꺼내두고 방을 둘러보니 지난 번과 잘라진 것은 조금 도톰한 이불과 암막 커튼이었다. 창문을 가린 흰색 암막 커튼을 걷어내니 여름에 그저 푸르렀던 나무에 연 분홍빛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이쁘지?"

"언제 들어왔어? 문 앞에 스크랩북 던져뒀지?"

"아닌데- 쓰러진건데- 마당에서 보는 것보다 창문에서 보는게 더 이쁘네. 사진찍자!"

"나 사진 안 좋아해."

"이리 와 봐."


꽃 구경이나 하고 있던 참에 언제 방으로 들어왔는지 바로 뒤에서 말을 걸어와서 놀랐지만 애써 아닌 척 하니 키득키득 웃는다. 가지고 온 간식과 스크랩북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자며 함께 챙겨온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사진 찍기 귀찮은 나를 억지로 제 옆에 끼우고 익숙하게 카메라를 조작했다. 와, 광고로만 보던 화면이 펼쳐지는 카메라다-
분홍빛 꽃을 배경으로 찍힌 사진은 조금, 여고생 같은 분위기가 들어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다.

 

백서향 꽃은 사진으로만 봤지만 참 어여쁜 꽃 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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