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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53- [1학년 봄방학]

by 깜냥이 2015. 11. 9.

할 일이 많지 않은 방학의 아침은 그리 일찍 시작하지 않는다. 보통 학교에 도착할 시간에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조깅으로 동네를 한 바퀴 뛴 뒤에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설걷이까지 하고 나면 이제 할 일이 마땅히 없으므로 책이나 읽으며 노닥거리는 것이다.
핸드폰으로 날아오는 메일을 보아하니 미오는 나와 같은 상황이고 코하네는 탈주하고 싶어 안달이나 있다. 이 와중에 전혀 연락이 없는 히마리는 아무래도 동아리의 일이 바쁜 모양이다. 읽다만 책을 그대로 펼친 채 웅웅 거리는 핸드폰을 그저 가만히 보고 있다가 코하네의 반복적인 메일 사이로 미오도, 히마리도 아닌 다른 이름이 훅 지나가 깜짝 놀라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고등학교 교복 구입 했습니다. 왠지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간만의 쿠로코가 먼저 보내온 메일은 의외로 뜬금없었다. 간단한 내용의 메일에는 사진이 첨부되어 파일을 열어보자 뻗뻗한 자세로 거울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꺄르르 웃어버렸다. 하늘색 라인이 들어간 집업 가쿠란, 세이린의 교복이다. 고등학교에 대한 질문을 은근슬적 피하더니 이런 것을 하려던 걸까? 내가 한참 웃는 동안 그에게서 다시 메일이 왔다. 어색합니까? 하고 조금 쑥스러워하는 내용에 다시 웃으며 잘 어울린다 답해주었다.


[블레이저와 가쿠란은 역시 다른 느낌입니다.]

[그렇겠지- 이제 유니폼  입은 모습만 보면 되겠다.]

[그때도 사진 보내드릴까요?]

[아냐, 귀찮게 그럴 필요 없이 내가 시합 보러갈게. 첫 공식 시합은 꼭 말해줘야해?]


왠지 멀리 사는 동생과 연락하는 기분에 키득키득 웃고 있는데, 쿠로코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누나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요. 하며 답장이 왔다. 쿠로코가 동생이라면 정말 든든하겠는데?하고 장난스럽게 답장을 하니 그럼 오후에 든든한 동생과 데이트 어떻습니까? 하는 메일이 왔다. 그리고 연달아 이번에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는 높은 텐션의 메일이 와서 책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며 웃어버렸다.


[그럼 언제나의 서점에서 볼까, 동생?]

[바닐라 쉐이크 1+1 쿠폰도 있습니다. 마지바도 가죠.]

[그럼 12시에 마지바에서 점심 먹고 서점에 가자.]

[그럼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쿠로코 바닐라 쉐이크 너무 좋아하는데- 그것만 먹으려 들테니 적당히 그가 너무 배불러하지 않을 정도의 메뉴를 슬적 더 주문해야겠다. 치킨 너겟이나 감자 튀김 중에 어느 것으로 할까하고 고민하며 적당한 옷을 꺼내었다. 뭘 입을까? 그렇게 춥지도 않으니 조금 얇게 입자니 추울 것 같다. 한참 고민을 하다가 결국 셔츠에 얇은 가디건과 점퍼를 걸치고 시간을 체크했다. 아직 여유가 있으니 지금 들고 있는 가방보다 작은 크로스백을 찾아 지갑과 핸드폰, 손수건 등을 넣고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그래도 여유가 있지만 늦는 것 보다야 낫겠다 싶어 출발했다.
느긋히 걸어서 도착한 마지바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쿠로코가 언제 오려나 두리번 거리던 도중 가게의 문이 열리며 하늘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마찬가지로 들어서자마자 나를 찾는지 두리번 거리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니 곧 나를 찾아 내게로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야- 아, 쿠폰 나 줘. 내가 주문 해올게."

"아뇨, 제가..."

"쿠로코는 오래 걸리잖아? 내가 주문할 것이 더 많을테니 내가 가져올게 앉아있어."

"그렇게 말씀하시면 반박할 수 없습니다만."

"없으라고 말한거니까. 자, 쿠폰 주세요."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갑에서 쿠폰과 쉐이크 값을 꺼내드는 그에게서 쿠폰만 쏙 빼가려하니 눈치를 챘는지 빼가지 못하게 손에 힘을 준다. 칫, 하고 돈과 함께 받아들어  주문대로 향했다. 무표정인데도 왠지 얄미운 표정이라 한 대 쥐어박아줄까 하다가 얻어먹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그러겠거니 하며 넘겼다. 바닐라 쉐이크 쿠폰에 치즈버거를 추가하고 치킨 너겟 추가... 흔한 메뉴인 덕인지 금방 준비되어 자리로 가져가니 치킨 너겟을 보고 또 다시 못마땅한 표정을 한다. 당연스럽게 그에게 그의 몫인 바닐라 쉐이크와 치킨 너겟을 내미니 치킨 너겟은 필요 없다며 투덜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몫인 치즈 버거의 포장지를 벗겨내고 있으니 곧 너겟을 집어들어 께작거리며 먹었다. 언제나의 더 먹어라 못 먹는다의 실랑이이니 이제는 묵묵히 밀고나가면 자신의 한계 이하까지는 먹는 다는 것을 잘 알기에 적당히 적은 양을 주문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세이린에 합격했다고 말 안했어?"

"뭔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습니다만..."

"뭐야, 그거. 쿠로코군 의외로 장난꾸러기네."

"이래뵈도 어린애라서요."

"고작 한 살 차이거든."


내가 투덜대던 말건 말 없이 바닐라 쉐이크를 음미하던 그는 서향상이 누나이니 저는 어린애지요 하고 능청스레 대꾸했다. 그 대담에 키득키득 웃으며 어린애 어르듯 머리를 쓰다듬으니 귀찮아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도착한 서점에서 신나서 달려간 쿠로코를 따라 신간 코너로 가니 초판본 특례인지 사인이 되어있는 책들이 한정 수량이라는 문구와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한정 수량이라고 하면 괜히 사고싶어진다는 기분에 한 권 한참 고심하다가 한 권 집어들었다. 그런 나와 달리 냉큼 책을 집어들었던 쿠로코는 어느새 다른 책을 사냥하러 간 모양인지 주변에 보이지 않았다. 그새 어디에 간건지, 제가 찾던 책을 다 찾으면 알아서 날 찾아서 나타날테지만 그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건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그럼 아직도 많이 힘든 일본사에 관력된 책이라도 사 볼까하고 역사 분류를 찾다가 순간 눈에 들어온 저 사람은...


"후루하시군?"

"아, 안녕."

"사복으로 밖에서 만나는건 처음이라 신선하네! 책 사러 온거야?"

"아아. 하나미야도 함께."

"아니 그건 전혀 반갑지 않은데."

"유감, 나도 같은 생각인데."


후루하시를 만나서 반가워 말을 건 거였는데 하나미야가 함께였을 줄이야. 후루하시의 말에 내가 질색을 하는 사이 그가 인상을 쓰며 내 뒤편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어김없이 시비조의 어투가 정말 변함 없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그를 돌아보니 켁- 하는 소리를 내며 짜증스런 얼굴을 한다.


"어머- 하나미야군 질투하는거야? 난 그냥 하나미야군은 자주 봐서 하는 말인데."

"예예- 그러십니까-"

"하나미야군 질투쟁이구나? 처음 알았네? 코하네에게 말해줘야지?"

"헛소리 뿌리고 다니지 하지 마라."


어머나 표정으로 사람 한대 치겠다. 이 이상 그의 성질을 긁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판단에 그저 계속 웃으며 나는 동행이 있어서 찾으러 가야하니 다음에 보자며 꺄르륵 웃으니 그가 내년에는 얼굴 좀 보지 말자며 나를 지나쳐 공상 과학 코너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쳇- 재미 없어라- 같은 생각을 하는 내 머리를 후루하시가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한참 아무 말 없이 내 머리에 손을 얹어두던 그가 잠시 눈동자를 굴려 하나미야가 꽤 멀리 가있는 것을 확인 한 뒤 내게 귀를 대달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미안, 화나면 훈련이 힘들어져."

"그래? 미안, 후루하시군."

"아냐, 즐거워보이는데, 적당한 선에서 끝내줘. 외주 5배 힘들어..."

"으응... 알았어."


그런 줄도 모르고. 농구부들 미안...
하나미야를 쫒아가며 내게 슬슬 손을 흔들어주는 그에게 같이 손을 흔들어주고 나도 일본사 쪽으로 들어섰다. 일단 공부로 읽기야 하겠다만 재미를 붙이지 못하면 눈에서 거부를 하니 재미 있게 읽을 수 있을만 한 것으로 찾아야 겠다. 손으로 대강 쭉 흝다보니 전쟁사라던가 근현대사같은 것도 많이 보였다. 한국에 돌아가면 한국사도  읽어볼까?


"찾으시는 책이 있으십니까?"

"어? 아... 쿠로코군. 한국인이다보니 일본 역사가 힘들어서."

"이 쪽,  이 책이 간단히 설명 되어 있기는 합니다."

"어머 그래?"


쿠로코의 추천을 받아가며 일본사에 관련된 서적을 두어권 고르고 오늘 구입한 작가의 다른 소설을 더 구매하니 꽤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일단 신간부터 읽을까- 하고 생각하며 쿠로코를 앞세워 카운터로 향했다.

-쾅!
오늘도 알바생이 알아채 주지 않아 그는 카운터를 내리쳐야 했다.

 

후루하시...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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