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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48

by 깜냥이 2015. 10. 7.

추석에 밤샘과 집안일의 여파로 펑크를내고 연참을 했지요

그래서...밀렸습니다....ㅠ

길지는 않지만 짧다고 하기도 애매한 보름간의 방학은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반이 훌렁 지나가더니 정신을 차리니 방학 막바지에 달해 있었다. 미리 예약해둔 비행기 시간을 다시 확인하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챙길 짐을 정리했다. 미리미리 조금씩이라도 싸두는 편이 잊어버리지 않을테지.
잘 입지 않아 놓고갈 옷을 꺼내놓고 이번에 산 책들을 챙기느라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데 리드미컬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될까?"


"안돼, 난장판이야!"


"어머나! 벌써 돌아갈 준비 하는거야? 엄마 슬퍼져!"


"개학이 몇일 안 남았으니까. 나도 아쉽지만..."



난장판인 방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장난스레 우는 척을 하는 엄마를 보니 나도 조금 서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결정한 사항이라 불평을 할 처지도 아닌지라 기운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다보았다. 그에 엄마의 기분이 더 가라앉은 모양인지 날 끌어안고 보내기 싫다고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하나 뿐인 딸이 집에 없으니 허전할테고 친인척 없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홀로 지내고 있으니 걱정이 많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안다.
언어가 힘든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낯설테고 부활동을 안하니 친구를 많이 사귀기 어렵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는 엄마에게 계속 설명한 친구들 이야기는 잊어버렸냐며 짐짓 화난 척을 하니 수줍게 웃으신다.



"미안할 정도로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지만..."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래도 혹여 누가 괴롭힌다면 곧장 소우타에게 도와달라하렴?"


"소우타 오빠가 교토에서 어떻게 도와줘? 안 그래도 츠카사 오빠한테 너무 도움을 많이 받아서 미안하지만 츠카사 오빠한테 부탁해야지."


"둘다 든든하긴 하지만, 영향력이 있는건 소우타니까..."



그러고 보니 소우타 오빠가 키리사키  출신이지...
용모단정 성적우수 같은 이유로 모범생 하면 소우타 오빠의 이름을 언급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오빠의 팬이라며 쫒아 입학한 경우도 있는 모양으로 아직도 학생들 사이에서 간간히 이름이 들리는 경우가 있다. 내 이야기도 아닌데 괜히 으쓱해 하곤 했었는데, 엄마의 말은 이 의미인 거겠지?
코하네나 미오, 히마리와 후루하시랑 처음의 친절했던 하나미야. 그리고 세이린의 모두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이런 친구들이 많으니 걱정 말라며 으스대니 안도의 아가씨와 친해진건 잘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도 알아?"


"그 아가씨가 누군지는 몰라도 그 집안은 알지. 일본인이 그 집안을 모르면 안되요. 안도랑 아카시는 유명한 걸?"


"아카시? 어디서 들었는데..."


"아카시는 별로야. 안도는 괜찮은데."


"뭐야 그게."



그 집안의 이념이 마음에 안든다는 엄마는 밥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밥솥 소리에 화들짝 놀라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 그에 나도 엄마를 따라 부엌으로 달려가 식사 준비하는 것을 도왔다. 오늘도 맛있는 것들 뿐인 식탁에 절로 신이나서 노래를 흥얼 거리니 엄마가 키득거리신다.
상이 다 차려졌을 즈음 아빠가 퇴근하시고 세 식구가 도란도란 식사를 하고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보름동안 이렇게 화기애애한 생활을 하다 일본에 돌아가면 다시 혼자라는 것에 적응을 해야겠지... 서운하지만 적응이 힘들면 귀국을 자제하는 쪽으로 계획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번에 가면 또 언제 와?"


"자주 오는 것도 안 좋을것 같아요. 적응하기 힘들어지잖아."


"그럼 서운한 걸."


"엄마도 서운해."


"나도 자주 오고 싶어요."



장난스럽게 어리광부리듯 이야기하자 엄마가 날 꼬옥 끌어안으셨다. 일본으로 엄마가 찾아올테니 적응 잘 하고 있으라며 토닥이는 손길에 에헤헤하고 웃자 아빠가 웃음 소리가 그게 뭐냐며 웃는다. 웃는게 뭐가 어때서? 하며 모른척 하자 그저 말 없이 웃었다.


아빠는 아직도 여자아이 혼자 타국에 사는 것이 불안 했는지 밤범 용품이라며 이것저것 가져오셨다. 소형 사이렌 같은 것을 보고 신기해서 눌러봤다가 그럴 줄 알고 건전지를 빼둔 아빠 덕에 소음공해는 면했다. 건전지를 일본에 가서 넣는 것으로 하고 잘 챙겨서 가방 한 쪽에 넣으니 아빠가 여차하면 츠카사 오빠를 부르라며 당부했다.



"차라리 처제네 같이 지내라고 하고 싶구만..."


"거기는 학교가 멀어요."


"알아. 아는데..."


"괜찮아요. 다른 애들한테 도와달라고 해도 되니까."



저번에 정말로 위험할뻔한 일이 있었지만 그건 집을 착각하고 난동을 부린거라고 하나미야가 말해줬으니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가는 조금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그런 거짓말을 할 이는 아니니까 그렇다면 그런 것 이리라.
고개를 몇번 끄덕이며 괜찮다, 걱정 없다 말하니 아빠는 더 걱정인 모양이다. 그에 엄마가 친구들이 믿을 만한 아이들이니 괜찮다며 웃으며 지나갔다. 만나본 일이 없을건데 무엇으로 장담하느냐 아빠가 따지니 그야 안도 집안의 아가씨 인걸? 하며 여유롭게 받아친다.



"그런 집안이라던가 그런거 잘 모르겠어."


"응. 아빠도 그래."


"안도는 그 아가씨가 나 피곤해, 학교 안 갈래. 하면 휴교할 정도 인거야."


"에이... 그런게 가능할리가."



아빠는 저렇게 말해도 나는 왜 가능할 것 같지. 1학기 동안 있었던 그 일들을 생각하니 왠지 그 아이라면 절대로 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엄청난 집안의 아가씨였구나 코하네...
진학교이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많긴 하지만 그 대부분이 있는 집안의 아이들인 부자 학교기도 하다. 별것도 없는 주제에 콧대 높은 싸가지들이 많으니 그런 녀석들이 괴롭히면 코하네나 소우타 오빠에게 일러바치라며 웃는 엄마의 모습에 얼결에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딸, 보내기 싫다!"


"그게 무슨 소리야? 시집가는 것도 아닌데."


"시집 가지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나 고1이에요. 좀 있으면 2학년이지만..."


"나이는 상관 없어! 네 엄마는 25에 결혼 했다고!"


"나 25살 되려면 8년 남았는데."



아빠도 참 팔불출이라니까... 나를 괴롭히지 말고 잠이나 자라며 엄마가 아빠를 떼어 냈고 나는 그저 그러려니 웃었다.
그래도 이렇게 웃고 떠들면서 집에 있을 날고 몇일 안남았는데 뭐 어떠냐 싶다. 에구 우리 아빠 딸내미 없어서 외로웠어? 하며 어린애 대하듯 놀리니 어른을 놀린다고 결국 꿀밤 한 대 얻어 맞았다.
엄마가 애를 때린다고 성을 내자 내 뒤로 숨어 우와 엄마 화났다! 하며 장난을 친다. 엄마 화났다- 를 같이 외쳐주며 깔깔 거리니 엄마도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웃어 넘긴다.



"일본에 가기 싫다."


"아빠도 우리 딸 보내기 싫다."


"그런데 가야해. 응. 졸업까지 기다려 아빠."


"이젠 안올거야?"


"생각해 보고."


"엄마는 보러 갈게."


"아빠는 보러 못가는데!"



휴가 때 오면 되잖아. 심드렁하게 대꾸하니 냉정하다며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아이고 우리 아빠... 점점 어린애 같은 짓을 많이 하는 건 집안에 유일한 어린애가 집에 없으니 그런 것일 듯 하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한심하다는 듯이 처다보다가 잠이나 자라며 방으로 쫒아냈고 나도 시간이 늦은 관계로 방으로 들어왔지만 아직 피곤하지는 않았다.
난장판인 방을 대충 한쪽으로 밀어 정리하도 침대에 누워 한참을 굴러다니다가 간신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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