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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46- [1학년 겨울방학]

by 깜냥이 2015. 9. 21.

또 밀려서 올리는 저란녀자...ㅠ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가 간신히 잠에서 깬  나는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아이들을 깨웠다. 잠에 약한 코하네마저도 지금이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라는 소리에 놀랐는지 한 번에 일어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이불을 정리했다. 오늘 아침용으로 사다둔 빵과 우유를 챙겨 먹으며 늦잠을 잤다는 사실에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비행기 시간이 2시였다는 것을 떠올린 우리는 얼른 쓰레기들을 모아 내놓고 한국으로 가져갈 짐을 몇번이고 확인했다.
그리고 그렇게 출국 준비를 마칠 즈음, 츠카사 오빠가 도착했다.



"여권 챙겼어?"


"네!"


"비행기표는 나한테 있고... 뭐, 잊은 건 없지?"


"없어요."


"그럼 친구들도 다같이 타. 배웅 하고 집까지 바래다 줄테니까."


"오빠 출근 시간 미루려고 그러지..."



내 마지막 말을 깔끔히 무시한 오빠는 천연덕스럽게 트렁크에 짐을 실으며 안타고 뭐하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이 없는 표정을 잠시 지어보였다가 아이들을 재촉해 차에 올라 안전 벨트까지 채우고 나서야 오빠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빠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신기해하니 이것을 위해 어제 이모부와 내기를 했다며 신나서 차를 출발 시켰다. 귀여운 아가씨들 이라던가 에스코트 한다던가 같은 답지않은 말을 읊으며 운전을 하는 오빠는 정말이지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물론 뒷자석에 탄 아이들은 수줍은지 꺄르륵 거리며 웃었지만.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금새 시무룩해진다. 여름 방학보다  짧은 겨울 방학동안 다녀오는 건데 왜 저렇게 아주 보내는것 같은 얼굴일까.



"2주 뒤면 올텐데."


"같이 오미쿠지도 하러 가고 싶었는데!"


"나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있는걸? 그때 하러 가자."



시무룩해 있는 아이들을 달래고 있노라니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가왔다. 캐리어를 맏기고 비행기로 향하는 길, 오빠와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조금 아쉬운 마음과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통로로 향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지루함에 잠깐 잠들었다가 눈을 뜨자 벌써 착륙 준비를 시작해 있었다. 늦잠을 자고도 2시간이나 더 자다니... 잠을 잔 시간으로만 따지면 그리 오래 잔 것은 아니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사람들이 하나 둘 짐을 챙기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나도 천천히 가방을 챙겼다. 놓고 가는 것은 없겠지? 두리번 거리다가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을 때 가방을 제대로 매고 따라 내렸다.
캐리어를 찾고 부모님에게 연락을 하려던 찰나, 누군가 내게 달려들어 안겨왔고 동시에 뒤에서도 달려들어 몸이 휘청거렸다.



"오랜만!"


"이 언니가 보러 오셨다. 꼬맹이!"


"현지? 세영 언니!"


"우리 꼬맹이, 언니 따라 올 줄 알았는데 일본으로 도망가고! 이 놈의 지지배!"


"언니 아파, 아파요!"



냉큼 목에 팔을 둘러 죄어오는 세영 언니에게서 벗어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현지는 도와주기는 커녕 웃느라 정신이 없다. 한참 뒤에야 날 놓아준 세영 언니는 여름에 오지 않은 벌이라며 웃었다. 원래 1학년에는 적응하느라 겨울에 귀국하기로 부모님과 약속한 터라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현지에게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지금에서야 기억났다. 1학기 중에 몇번 이메일을 보내긴 했지만 인터하이 사건이 지나고 나서는 정신이 없어서 그마저도 못했었다.



"근데 안 추워? 그렇게 입고?"


"한국... 추워..."


"일본에 1년 있더니 날씨 감각을 잊어버렸니?"


"어제 친구들이랑 밤새워 노느라 아침에 늦잠을 자버려서... 가방에 목도리 있으니까."


"너네 오늘 우리집에서 밤샘 예약."


"언니... 나 부모님 보게 해주세요."



목도리를 두르며 투덜이듯 작게 말하자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난장판이 된 머리를 빗으며 공항 입구로 나가니 아빠가 늦어서 미안하다며 머슥하게 웃고 계셨다. 일느라 늦은 거고 나는 비행기에서 내린지 10분도 안되었으니 괜찮다며 웃었다. 아빠는 차의 문을 열어 우리를 태우고 트렁크에 짐을 실은 뒤 부랴부랴 차에 올랐다. 바빠보이는 모습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회사에서 6시까지 돌아오라고 했단다.



"너무해! 오랜만에 딸을 보는건데!"


"아빠가 너무 유능해서 그래."


"조금 무능해 지고 싶어졌어."


"그런말 하지마."



주변에 누가 있던 딸 앞에서 조금 애같이 구는 아빠를 다독이자 옆에서 현지가 웃음을 참느라 고생이다. 대략 2주 정도 있을텐데도 딸 얼굴을 오래 못본다며 시무룩한 이 아버지를 어찌할까. 집에 도착해서 짐을 방으로 옮긴 뒤 회사가기 싫다고 엄마한테 매달리다가 국자로 얻어맞고서야 눈물을 삼키며 출근을 한다.
그리고 오늘 자고가기로 한 두 사람은 방에 엎어져서 소리 없이 웃느라 죽어가고 있었다.



"죽지마요."


"우리 꼬맹이 언니 걱정해주는거야?"


"서향이가 걱정해줬어...!"


"도대체 두 사람에게 나는 어떤 이미지야."



오랜만에 만나서는 꼭 이렇게 장난을 친다. 세영 언니는 일년 반 만에 보는데도 예전과 전혀 달라진게 없다. 현지는 세영 언니와 같은 학교에서 농구부를 하고 있다며 너 혼자 다른 학교지? 에베베베 하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에 방긋 웃으며 그녀의 볼을 잡아 양쪽으로 늘려 가볍게 보복을 한 뒤 상차림을 도와달라는 부름에 냉큼 부엌으로 달려갔다. 얼마만에 먹는 엄마 요리인지라 안그래도 신이 나 있었건만, 내가 좋아하는 것 뿐이라 원래 잘 하지도않는 애교를 부리며 상을 차렸다.
진수성찬이라는 말이 적절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한 식탁에 세영 언니와 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만 연발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시력 발휘를 해서 힘들다는 기색이 있었지만 기분은 좋은지 연신 방긋방긋 웃었다.



"엄마는 한국 요리 하는거 좋아- 정성이 많이 들어가서 재미있어!"


"응... 잡채 만들기 힘들다던데."


"힘들어! 해봐서 알아! 진짜 맛있어요!"


"응, 응! 아주머니 최고!"


"어머나, 수줍어라!"



연이은 칭찬에 수줍어하는 엄마는 많이 먹으라며 웃었고 우리는 그 기대에 부응하듯이 열심히 먹어댔다. 그럼에도 남아버린 많은 양의 음식들은 아마 아빠가 퇴근 후에 먹고 락엔락에 담겨 냉장고로 향하겠지...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먹는거야.
마지막에 생각이 미치자 그냥 힘내서 많이 먹고 빨리 저 많은 음식들을 없애야 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아마 절대 다 못먹겠지만... 상을 치우는 것까지 도운 우리는 방에 모여서 잠자리를 위해 이불을 깔았꼬 방의 주인인 나는 후배라는 이유로 내침대에서 쫏겨났다.



"내 방! 몇 달만에 돌아온 내 방인데!"


"2주동안 있을거잖니? 이 선배가 허리가 아파서..."


"거짓말하지마요! 엄청 이름 날리고 있는 센터면서!"


"현지야, 그거 말하면 안되는거야."


"세영 선배 남의 집에서 민폐!"


"너 연습량 늘려달라고 할거야."



그리고 현지는 조용히입을 다물었다. 이기지도 못 하면서 꼭 덤벼들었다가 혼난다니까... 그러고보니 이런 모습도 세영 언니가 주장이던 시절에 많이 보아왔던 모습이었다. 같은 학교에 갔다더니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 한 모양이지? 내가 다른 생각에 잠기기 시작하자 입을 언제 다물었냐는 듯이 투덜거리며 자연스럽게 내 침대 밑을 뒤지던 현지가 보드 게임을 꺼내든다. 일단 그 블루마블은 집어넣자... 머리가 아파온 내가 가만히 박스를 잡아 도로 침대 밑으로 밀어넣자 심통이나서 찡얼거린다. 그것도 잠시, 시끄럽다며 베개를 집어 던짐으로 조용해졌지만.
투덜투덜거리면서도 시간이 늦었으니 잠이나 자자며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와 토라진 듯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영 언니는 일본에서의 생활이 궁금했는지 이것저것 물어봐온다.



"응, 일본사가 어려웠어요."


"뭐 괴롭히는 녀석들은 없고?"


"없어요.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음... 괜찮은 남자는?"


"언니..."


"연애도 해보고 그래! 이렇게 이쁜데, 남자한테 관심고 없고."



투덜투덜하며 예전에 있던 일을 끄집어내려는 언니의 모습에 시간이 늦었다고 어색하게 웃자 현지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그러면서 내가 눈치는 빠른데 연애쪽으로만 둔치라는 것에 대해 신나게 떠들기 시작한다.
러브 레터가 와달라는 것에 안 나간 것은 기본이요. 고백을 돌려서 말하면 못알아 듣고 직구로 하면 싫어했다며 꺄르르 웃는 두 여자를 보며 내가 언제 그랬냐며 반박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예시라며 몇가지 끄집어낸 이야기가 전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실 이었기 때문이다.



"밤새워 연애상담이나 하자! 뭐, 고백 받은거라던가 그런거 말해보렴?"


"잠이나 자요. 잠이나."


"시끄러 지지배야. 말하라면 말해라. 응?"


"잠 좀 자자..."



아무리봐도 오늘도 잠을 제때 자기는 글러먹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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