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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44-

by 깜냥이 2015. 9. 6.

학기 말 시험, 그것도 2학기 째의 시험은 전체적으로 어렵긴 했지만 마지막 날 만큼은 인심썼다는 듯 수월하게 풀렸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 문학은 내게 크나큰 엿을 선물해 주었지만 말이다.



"아... 관동별곡같은..."


"응? 무슨 말 하고 있는거야, 서향쨩..."


"한국말..."


"그렇구나, 시험 성적 안나왔어?"


"고전 문학..."



내가 한국말로 지껄인 한탄에 히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지난번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점수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나는 그저 칭얼이듯 대꾸했다. 후루하시가 노트 빌려준다고 했을 때 받을 걸! 다른 과목으로 어찌어찌 커버할 정도이긴 하지만 일본사도 잘 본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 방학 동안 미리 예습이라도 해둬야 하는 걸까...



"이번 방학에는 귀국한다고 했던가?"


"응- 방학하자마자 가서 끝나는 날 올거야."


"에- 그럼 이번엔 못 놀겠네."


"그러게..."



아쉬워하는 히마리의 모습에 왠지 미안해졌지만 지난 여름에 귀국하지 못한 대신이다. 간만에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방학을 만끽할 생각에 조금은 신이나서 기분이 나아졌다. 조금 전 시무룩해있던 것이 무색하게 금방 싱글벙글하니 귀국한다는 것이 그렇게도 좋냐며 키득거린다. 몇달만에 가는 우리 집인데 당연히 좋을 수 밖에! 성적표 지참이라는게 정말 씁쓸하지만...



"성적표..."


"서향쨩 다시 시무룩해졌어."


"오늘은 그냥 집에서 푹 쉬는게 좋겠다."


"그럴거야..."



그러고보니 한국에 가려면 또 냉장고를 비워야 하는구나. 그래도 최근 사다둔 것이 별로 없어서  방학 할 때까지만 조금씩만 사다 먹으면 될 것 같다. 그러니 당분간 또 다시 주먹밥과 볶음밥이다. 오늘은 요리하기 귀찮으니 집에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이나 사가야 겠다. 아직까지 눌린 느낌이 남아있는 이마를 문지르며 가방을 챙기자 언제 왔는지 하라 녀석이 내 책상 옆으로 쪼그려 앉는다. 얼굴만 봐도 밀려오는 스트레스에 다시 책상에 고개를 처박으니 내 소매를 붙들고 칭얼대기 시작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발 좀 꺼져줬으면 하고 생각하며 가만히 있자 조금 뒤 누군가 녀석을 떼어내었다. 슬적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나처럼, 하라와 후루하시가 서로를 노려보고있었다.



"서향쨩을 향한 내 열렬한 사랑을 방해하지 말아줄래?"


"사랑은 커녕 민폐야."


"에- 뭐라는 거지."


"지금 머리 아프니까, 좀 갈래? 후루하시군 미안."



골치 아파진 머리를 손으로 받치고 다른 손을 저으니 시무룩해진 하라가 많이 아프냐며 칭얼거린다. 너 때문에 더 아파질 것 같다고 말하니 그제서야 울먹이며 아프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에 후루하시가 작게 한 숨을 쉬더니 성적 걱정은 하지 말라며 내 머리를 토닥여주었다.
그러고보니 중간고사 때도 이랬던 것 같은데? 그래도 중간고사 때는 석차가 올랐었으니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후루하시는 부원들의 도움을 받아 이번 시험은 성적이 꽤 올랐다는 모양이지만.



"후루하시군은 달래는게 능숙하네?"


"여동생이 있으니까."


"그러고보니, 어린애 대하는 느낌이 강해."


"아, 기분 나쁘다면 미안."


"괜찮아. 나는 오빠들이 많아서 익숙해."



분위기를 바꾸려는지 갑작스런 질문에 후루하시가 덤덤히 대답한다. 여학생들과 어울려 있는 편이 아닌데, 언동은 여자 아이의 마음을 잘 아는 듯 했던 것이 여동생이 있어서 였구나.
오빠들 같이,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지만 왠지 친절하다. 최근 하라 때문에 그가 도와주는 일이 많아서인지 뭔가 익숙한 그런 기분이었다. 오빠들을 생각하며 빙그레 웃자 그도 덩달아 옅게 미소를 짓듯 입꼬리를 올렸다.



"자, 자. 서향은 피곤해서 집에 가서 쉬어야하니 다들 일어나자!"


"그럼 내일 봐, 후루하시군!"


"농구부는 오늘 연습?"


"아니, 자율 연습."



체육관으로 향하는 후루하시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우리는 시험을 잊기위해 잡다한 주제로 신나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코하네가 맞선이 싫으니 또 가출하겠다며 소리쳐서 그걸 달래느라 애를 썼다. 고등학교 1학년에게 좀 더 자유를 달라며 칭얼대기 시작하는 코하네의 모습에 그런 세계를 잘 알지 못하는 우리는 그저 힘내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그저 토닥이고 있던 우리는 곧 검은 리무진을 끌고온 운전 기사에게 그녀를 넘기고 덩그러니 남겨졌다.



"명문가 아가씨도 많이 힘드네."


"응. 중학생때는 집안 잘나고 재수없다고 싫어했었는데."


"난 그냥 코하네 밖에 몰라."



잠시 그 자리에 멈춰있던 우리는 다시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외가도 집 규모가 꽤 크니까 부자라고 할 수 있나? 일단 어느 규모인지는 잘 모르니 그 점은 접어두자. 갑자기 가버린 코하네 탓에 잠시 조용해졌지만 곧 조용한게 싫다며 연애 이야기를 꺼낸 히마리 덕에 분위기가 발랄해졌다.



"고백 받았다!"


"진짜? 언제?"


"주말에 공부하다 기분 전환겸 시내에 갔는데 웬 잘생긴 남자가!"


"어머!"


"근데 좀 이상했어. 운명론자인 것 같은데... 다른 남자가 걷어차더니 데려갔어."


"뭐야, 그게."



키도 컸는데! 그럼 뭐해, 그냥 스쳐가듯 가버렸는데. 미오와 히마리가 투닥거리기 시작하고 나는 그 둘의 대화를 들으며 키득거리기만 했다. 그건 고백 받은 게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 일단 확실한건 그 남자는 좀 이상하다는 것 정도. 후루하시가 보통이라는 히마리가 보기에 잘생긴 얼굴이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져왔다. 둘의 주제는 어느 새 요즘 이름을 떨치고 있는 중학생 모델 키세 료로 바뀌었다.
한 번, 반의 아이들이 보여줘서 본 사진으로는 정말 모델이구나 할 정도로 잘생기긴 했던데. 농구 잡지에서도...



"키세 료, 한번 실제로 보고싶다!"


"시합 보러가. 올해는 이미 끝이던가?"


"응, 끝났대."



시합으로 주제가 넘어가면서 슬그머니 주제에 끼었다가 다시 키세 료에 대한 주제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집 근처 편의점이 보일 즈음 아이들과 인사하고 헤어졌다. 쿠로코가 이야기 했었던 기적의 세대, 키세 료는 촬영 위주로 행동 한다고 했던가. 그러고보니 최근 잡지에서 많이 보인다. 월간 농구 외에는 관심이 없어 어렴풋이 기억이 날 뿐이지만...
편의점에 들어서서 슬적 잡지 코너를 확인해보니 확실히 노란색이 많이 보인다.
도시락 코너에서 어떤 도시락이 좋을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옆에서 누군가 활기찬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어머나! 이쁜 아가씨, 오랜만이야."


"아, 미야와키상?"


"어머. 기억해주고 있었네? 고마워라!"



해외 출장을 다녀온 터라 조금 바빴다는 그녀는 오랜만에 만나 기분이 좋은지 꽤나 활기찬 모습이었다. 나도 덩달아 신이나서 환하게 웃어보이니 더 이뻐졌다며 나를 꼬옥 끌어안으셨다. 그 모습에 조금 당황했지만 그녀 나름의 반가움 표시라고 생각하며 그저 웃어넘겼다.
도시락을 집어드는 내 모습에 식사를 도시락으로 하는 거냐며 놀란 얼굴을 했다. 금방이라도 영양이라던가의 문재로 잔소리를 할 것 같아 다급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



"오늘 시험이 끝나서요. 피곤하기도하고 귀찮아서 오늘만..."


"어머, 그렇구나. 가끔 그럴 때 있지. 집안일 하기 싫은 그런 날?"


"그렇죠. 매일 매끼 직접 해먹다 보면 지겹기도 해서요. 방학엔 한국에 가니까 냉장고도 비워둬야 하고..."


"어머. 돌아가니?"


"방학이니까요. 오랜만에 가족들 보러 가요."



귀찮음이 묻어나는 얼굴을 하고 있다가 집에 돌아간다는 주제가 나오자마자 방긋방긋 웃는 내가 우스웟는지 키득키득거리며 웃은 그녀는 잘 다녀오라며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직 방학하려면 조금 남았지만, 그저 웃으며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한 2주 제대로 올렸나요 ㅋㅋㅋㅋ.... 올리는걸 매번 까먹는 저란 녀자.... 누가 올리라고 재촉해주면 좋겠어요....

ㅋㅂ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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