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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31-

by 깜냥이 2015. 5. 24.

으야아앙 다음편이에요오오

 

실력 테스트는 말 그대로 '실력'을 테스트 하는 정도의 수준이리라 생각해 안심했던 나는 시험 당일 첫 시험의 시험지를 받자마자 당황하고야 말았다. 주말동안 아이들과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보충 수업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정규 시험만큼은 아니지만 꽤 난이도가 있는 문제들의 연속이었다. 당황하니 머리도 제대로 안 돌아가서 시험을 보는데에 시간이 배는 더 들은 것 같다.
시험을 마치고 반쯤 녹초가 되어 있는 나를 본 코하네가 키득키득 웃었고 미오와 히마리가 수고했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생각 했던거랑은 전혀 다른데..."

"뭐, 그래도 서향이니까 잘 풀었을 거라고 생각해."

"으음... 모르겠다. 시간 조절도 못했고..."


아슬아슬 종 치기 전에 제출한 과목이 몇가지 된다. 오늘따라 단어도 헷갈려서 독해에도 애먹었고 수학 공식도 잘못 써서 풀다보니 이상해서 다시 푼 문제도 수두룩하다.
내신에 포함되는 시험은 아니지만 그래도 등수가 매겨지는 데다가 일정 등수 이하는 보충 수업이라하니 그것도 싫다. 수고했다는 한마디로 끝난 종례에 다른 반의 종례가 끝날 때 까지 수다를 떨고 있던 다나카를 비롯한 몇몇 남학생들에게서 보충 확정! 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불안하기도 하고...


"설마 서향쨩 공부 잘하는데 많이 떨어졌겠어? 떨어지더라도 크게 차이 없을 것 같은데?"

"응- 그렇겠지? 어차피 끝났으니까 중간고사 공부 해야지..."

"으음... 중간고사는 좀 시간이 많지 않은가?"

"미리미리 해야지... 나 암기는 조금 힘들어서."


이번 언제나 문제는 일본사과 고전문학이다. 익숙하지 않은 한자가 가득해서 수업을 따라가기도 힘들어 미리미리 공부해 두지 않으면 고생할 테니까.

한참 복도에서 남학생들이 성적 이야기에 왁왁거리느라 소란스러운 도중 와- 하고 큰 소리가 나더니 뒷 문이 호쾌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그 곳에는 왠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하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터프하게 문을 연 것과는 달리 깨방정을 떨며 내 옆으로 다가와 웬 애교를 부려댄다. 선생님 여기 웬 커다란 개 한마리가 있어요.


"서향쨩 고전문학 이번에도 알려줄게 데이트하자, 응? 응?"

"데이트는 무슨 데이트야..."

"데이트 해줘어!"


이젠 아주 땡깡을 부린다. 바닥에 누워서 발버둥 치는 꼬라지는 아니었지만 바닥에 주저앉아 징징대는 것이 아주 가관이다. 쪽팔림은 어째서 내 몫인 걸까 한탄하며 그의 너머로 시선을 보내니 하나미야가 이마를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같은 팀에 이런 녀석이 있어서 너도 힘들구나.

하라는 곧 지나가던 후루하시의 발길질에 징징거림을 멈추었고 왜 걷어 차냐며 싸우기 시작했다. 말이 싸우는 거지 일방적으로 하라가 소리를 지르고 후루하시가 무시하는 모습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늦게 나타난 주황머리 남학생이 그를 화끈하게 걷어차면서 그 싸움이 멈추었고 하라는 언제나처럼 목덜미를 잡힌 채 질질 끌려서 돌아갔다.


"일단 후루하시군, 고마워."

"오늘따라 크게 민폐를 끼친 것 같네."

"하라군 원래 서향 좋아했잖아. 맨날 서향쨩 서향쨩하면서 잘 따르는것 같은데. 강아지같아 귀엽잖아?

"전혀."

"강아지처럼 귀엽지 않아."


그런 말은 강아지들에게 실례야. 단호히 내뱉은나와 후루하시의 말에 미오는 어께를 으쓱이며 그런가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데이트라던가 그런 여유부릴 시간따위 없다. 친구들과 노는 것도 간신히 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 연애같은 사치스러운 일을 할 정신은 없다.
코하네는 내게 로맨스가 찾아오는가 싶었다며 한숨 내쉬었고 히마리는 거절하는 것이 옳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의 상이한 반응에 신기해하며 후루하시를 바라보니 그는 언제나처렴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잠시 하라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그 모습에 히마리와 코하네가 무언가 소근거리기 시작했고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 미오는 신경쓰지 말라며 조용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직 연애는 계획에 없네요-"

"서향쨩! 연애는 한창 예쁠 때 하는거야!"

"맞아! 학생 때 한번은 해봐야지!"

"그러는 코하네랑 히마리도 연애 안하잖아."

"나는 중학교 때 몇번 사귀었는데?"

"나는 두번 정도?"


반박 할 수 없다. 조용히 미오를 돌아보니 허탈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다시 가로젓는다. 결국 그 화제에 얹어가기로 한 모양인지 미오가 후루하시 같은 타입은 어떠냐 물어봐 온다.
무뚝뚝하지만 의외의 젠틀한 모습도 있어서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연애 상대라고 한다면 망설여진다. 너무 목석같은 무뚝뚝함이라고나 할까?
내 말에 금새 풀이 죽은 코하네와 미오를 보고 뭔가 고민을 하던 히마리가 냉큼 한마디를 했다.


"그러면 하나미야군은?"

"안돼."

"거절."

"즉답이네..."


내 거절보다 빠른 코하네의 단호한 말에 히마리는 역시 그렇지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미야군 미안- 하고 그를 돌아보며 소근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키득거리고 있으니 두루퉁해진 히마리가 어째서 그가 싫은가 물어봐왔다.
내 대신 코하네가 나를 끌어안으며 그런 녀석에게 절대로 넘겨주지 않을거라며 으름장을 놓듯이 대답하니 히마리가 얌전히 기권하며 떨어져나갔다.
연애를 할 만큼 여유로운 것도 아니고 지금 꼭 사귀고 싶은 사람도 없으니 재촉은 그만둬주세요. 하며 항복하듯 두 손을 들어올리자 네에- 같은 착한 아이의 대답을 한다.


"오늘 일정은 그럼..."

"장 보고, 밀린 청소, 빨래..."

"완전 주부네."

"자취생의 운명이지..."


바쁜게 주로 그것 때문이지, 딱히 공부를! 하느라 바쁜 건 아니다. 자주 같이 놀고 그러자- 하고 칭얼거리는 히마리를 달래서 시험 끝나고 놀자고 약속했다. 그녀에게 그제까지 같이 놀았잖아 하며 미오가 태클을 걸자 더 많이 놀고싶다며 재차 칭얼거린다. 오늘따라 칭얼대는 애들이 많아 힘들다는 생각하며 그녀를 토닥여 달랬다.


"서향쨩 더 힘들어보여."

"응. 좀 정신이 없어서..."

"그럼 오늘은 집에가서 푹 쉬어야겠네!"

"으응- 장보고 쉬는 걸로 계획을 변경했어."


심적인 안정을 위해 서점도 들릴 거지만, 그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른 반에서도 하교시간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며 우리들도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와 같이 조용한 서점 안에서 역사와 고전문학의 참고 서적을 찾으며 천천히 눈으로 훑고 있으니 별로 사고 싶은 책이 없다. 전혀 손이 가지 않는걸 보니 역시 취미로 읽을 책과 공부를 위한 책은 다르구나. 그나마 그 중에서 쉽게 읽히던 책으로 두어권 고르고 다른 책을 살 것이 있을까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서점 안을 누볐다.
트라우마에 관련된 심리도서와 스포츠 의학관련 도서를 집어들고 과연 읽을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다가 사전이 있으니 괜찮겠지 하며 챙겨들었다. 이제 익숙한 얼굴이 된 알바생이 계산을 마치고 봉투에 책을 담아주는 것을 기다리며 장을 봐야하는 목록을 머릿 속으로 생각했다.


"저..."

"아, 네. 감사합니다."

"아니, 그게... 사실 계속 지켜봤습니다만... 저..."

"네?"


설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뭔가 부끄러운 듯 눈을 맞추지 못하고 헤메는 시선이나 빨개진 귀 같은 것은 이거, 아무리 바보라도 알 수 있는 거겠구나. 평소 활발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수줍은 듯 조심스럽게 영수증과 함께 내민 작은 쪽지에 그것을 집어 들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격렬히 고민해야했다. 자신의 메일 주소라며 괜찮다면 받아달라는 알바생에게 어떻게 해야 어색해지지 않도록 거절 할 수 있을까.


"죄송합니다, 저는..."

"아뇨! 조금.. 친해지고 싶어서...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으음..."

"부담드리려고 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끈질겼다. 내가 무슨 말을 해서 거절을 하더라도 그딴건 상관없이 쪽지를 받게 할 모양인지 단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팔이 아프지도 않은지 영수증과 쪽지를 내민 채로 버티고 있는 그의 손에서 영수증만 빼낼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누군가 그의 손에서 영수증만 낚아채 내게 던지듯 건네주었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니 짜증이 가득한 얼굴의 하나미야가 알바생을 노려보고 있었다.

"수작은 일이 끝나고 하시지. 손님 기다리는 게 안보이나?"

"아... 죄송합니다."

"넌 언제까지 거기 서 있을거야? 비켜."


꼭 파리를 쫒는 모양새로 손을 저으며 내게 축객령을 내린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가 알바생에게 까닥 목례를 하고 도망치듯 서점을 빠져나왔다.
일단 도움을 받기는 했다만 그의 태도가 도움을 주었다기 보다 그저 신경질을 낸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뭐 그 것이 사실일지도 모르고.
그의 기세에 알바생이 기가 죽어 도망칠 수 있었다만... 아무래도 다른 서점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하라는 왠지 후루하시랑 사이가 안좋으면 안 좋았지 절대 친하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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