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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16-

by 깜냥이 2015. 2. 12.

또 올리는 걸 잊었네요 8ㅁ8... 저란 멍청이....

한번 잊으면 한참 잊고있어서 죄송합니다....

살아있어서 죄송합니다...(사쿠라이)

 

 

안 그래도 시험 때문에 부담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은 하루종일 숨막히는 교실 분위기에 더 지쳐가는 모습이 보여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더군다나 바로 뒷자리인 나는 기가 빨려나가는 느낌에 이런 분위기가 오래가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했지만 그런 걱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의 극단적인 조치로 하나미야가 복도 쪽 맨 끝 줄로 자리를 바꾸고 둘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교실 안의 분위기가 안정되었고 둘은 다시 서로를 없는 사람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어떻던 시험기간 이라는 건 변함 없네..."

"시험 싫어..."

"뭐...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시험이 다가오면서 그 부담으로 투덜거림이 늘은 둘은 그나마 여유로운 나와 코하네에게 매번 함께 힘들어하자며 칭얼대곤 했다. 그것을 그저 웃으며 받아주면 만족하고 공부에 더 열을 내며 같이 웃어 주고는 했다.
시험까지는 보름 가량 남아있지만 방과 후, 아주 정적 밖에 없는 집에서 공부하는 것 보다  조금이라도 사람 소리가 나는 학교 도서실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효율이 좋아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다가 집에 갈 즈음에 부활동을 마치고 집에가던 하라 녀석이나 후루하시를 만나곤 했다. 아직 부활동 금지 기간은 아니어서 연습하랴 공부하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인지 하라 녀석은 좀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날 놀래키곤 했다.


"저기."

"네?"

"미안, 도서실 문 닫을 시간이야."

"아, 죄송합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닌데..."


원래 도서실이 닫히는 시간보다 1시간쯤 일찍 일어나는 데, 오늘은 집중이 잘되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도서부 위원이 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려보니 나를 부르러 온 학생의 어께 너머로 위원들이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왠지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아서 서둘러 짐을 챙겨 나와서 보니 슬슬 하늘이 붉어지고 있었다.
너무 늦었네, 하고 계단을 내려가는 걸음을 조금 빠르게 하다가 하마터면 복도 쪽에서 다가온 사람과 부딪힐 뻔 했다. 난간을 잡으면서 급히 발을 멈추고 보니 놀란 얼굴의 하나미야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나미야군? 농구부는 더 일찍 끝나지 않아?"

"아... 일이 있어서."

"아, 그렇구나."


평소라면 시간이 늦었는데 여태 학교에 있었느냐 걱정했을 그는 그저 내가 귀찮다는 듯이 심드렁하게 대답했을 뿐이다. 이래저래 피곤해서 그럴 것이라 여기고 그에게 아무런 의아함을 표하지 않은 채 수긍하며 대답하자 그는 무심히 나를 내려다 보았다. 언제나 보여주던 그런 상냥함은 전혀 없다,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코하네가 내게 했던 말과 휴가가 하나미야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던 것이 떠올라 그와 마주하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하나미야가 내 앞을로 앞질러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뒤를 따라 학교에서 나서자 그리 오래 걷지 않아서 첫번째 건널목에 다다랐다.


"안 그래도 농구하랴 공부하랴 힘들텐데, 뭔가 일이 많은가봐?"


빨간 신호등을 바라보며 잠시 그와 나란히 서있자니 어색하기 그지없어서 한마디 슬적 건네자 그는 나를 잠시 바라보는 듯 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의 반응에 더욱 무안해져서 입을 다물고 빨리 신호가 바뀌기 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옆에서 나즈막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인상을 쓰며 머리를 긁던 그가 예전처럼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민망한 듯 작게 사과의 말을 건네온다.


"그... 안도와 다퉈서 언짢은 것도 있고, 이래저래 부활동으로 바쁜데 시험 기간이라 예민해져 있었나봐."

"아냐, 그럴수도 있지. 대화는 끝났는데 다음 대회가 있나? 많이 바쁘네?"

"응, 좀 임원 교체가 있어서."

"아, 3학년? 그렇구나. 아쉽겠네."

"응 조금."


기운이 없어 보이는 하나미야를 보니 중학교 때 선배들을 떠나보냈을 때를 떠올라 그에게 동감했다. 그건 좀 서운하지 하고 중얼거리자 그가 그렇지, 이별은 서운해. 하며 웃었다.
어느새 한참 키득거리며 이야기를 하다보니 요 몇일간의 사건으로 차가워졌던 그가 예민해져서 그랬던 게 맞구나 하고 확신했다. 하긴 안 그래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빠져나가 허전할텐데 신경쓸 것도 많았을테니까. 그렇게 잠시 긴장을 풀고 그에 대한 경계도 슬그머니 풀어버리려 할 때였다. 하나미야군도 농구를 좋아하는구나하고 말하며 키득거리던 찰나 하나미야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응? 왜 그래?"

"아니. 후핫."

"내가 뭔가 웃길만한 말을 했던가?"

"아아. 아니, 그냥 웃긴게 생각나서."


갑자기 키득키득 웃던 그가 나와 눈을 맞추더니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조금 전과 전혀 다른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니 그가 그 자리에 멈춰섰다. 어두운 하늘 아래 가로등으로 비춰진 그는 지난번 코하네와 처음 다퉜던 그 때의 그 조소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있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쳐 다시 뒷걸음질을 치자 그가 성큼성큼 가까이 다가왔다.


"농구를 좋아하냐고? 아니. 좋아할리가 없잖아. 바-보."

"뭐?"

"청춘이니 열정이니 하는 소릴 해대는 녀석들이 짜증나니까, 그걸 부숴버리고 싶었을 뿐이야."


말을 마친 그가 다시 키득거리는 것을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안에 서있는 그가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악인으로 보여 지금 그가 하는 말도, 이 상황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아 그를 멍청하게 바라만 보고 있으니 그가 입꼬리를 끌어올려 비열하게 웃었다. 후핫. 하고 웃음을 뱉어낸 그가 삐딱하게 서서 안쓰럽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눈에 담고 있자니 속에서 무언가 끓어 올리올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세이린의 7번. 그거 내가 시킨게 맞아. 내 작품이라고."

"세이린... 7번?"

"키요시 텟페이. 그 녀석의 무릎 부수라고 시킨게 나라고. 어차피 질거 멀쩡하게 본선으로 올리긴 싫었거든."


머리를 한 번 강하게 맞은 것 같은 충격에 심장이 조여왔다. 키요시가 다친 이유라는게 고작 그런 이유였다고? 금방이라도 끓어 넘쳐 폭언이라도 쏱아낼 것 같던 감정은 어느 정도를 넘어서자 차마 표출되지 못하고 속에서만 끓어 넘쳤다. 그에게 소리치고 싶은 말은 목 안에서 걸린 채 나오지 않아 그저 그를 노려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쏱아질 것만 같아 눈에 힘을 주고 입술만은 깨물고 있자 그가 비열한 웃음을 지우고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정정당당이니 노력이니 열정이니 청춘이니 하는 건 답답하고 역겹다고 덤덤히 말한 그는 잠시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리고 너는 재미가 없네. 다른 멍청이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표정과 목소리 가득 실망했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그가 차갑게 돌아서서 제 갈길로 가버린 그의 뒷 모습을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내 목을 감쌌다.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욕지거리가 목을 틀어막아 터져버릴 것 같이 아파서 참을 수가 없어 손으로 목을 문지르며 최대한 속으로 삭히려했다. 시간이 지나 목의 통증이 가라 앉자 눈물이 차올라 소매로 닦아내며 집으로 천천히 발을 옮기다가 무작정 집으로 달렸다. 터져나오려는 울음 소리는 입술을 깨물어 막아버리고 그 때문에 다시 아파오는 목은 애써 무시하고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왔다. 
오늘 따라 사람의 온기가 전혀 없는 차가운 집안이 서러워 신발과 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거실에 주저않아 버렸다. 한참을 엉엉하고 목놓아 울고서 코하네가 하나미야의 본성을 말했을 때 놀라지 않았던 주제에 이제 와서 배신감에 괴로워 하고 있는 건지 내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아 천천히 감정을 추스렸다. 아마도 그 때에 나도 모르게 그가 그런 사람이 아닐거라 믿었던 걸까? 그렇게 의심은 해놓고 내심 믿었던 걸까? 이렇게까지 감정이 주체가 안되는 건 오랜만이라 이래저래 혼란스럽다.
혼란스러움에 머리가 울리면서 다시 목이 아프고, 숨도 막히고 심장이 조여온다. 

 

자... 하나미야 패러가실 분 모집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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