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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9-

by 깜냥이 2014. 12. 27.

올리는걸 잊은 지난주 분...

 

슬슬 다가오는 여름에 옷차림은 점점 얇아지고 교복도 이제 하복으로 바뀌어 그나마 색이 밝아졌다. 시커먼 자켓에서 흰 블라우스로 바뀐 교실 풍경이 왠지 시원해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의자에 기대어 기지개를 폈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해서 한참 읽다보니 어제 잠을 설친데다가 따뜻한 창가 자리에 더욱 나른해져서 잠을 쫒느라 고생했다. 쉬는 시간 동안이라도 잘까 했지만 지금 자버렸다가는 다음 시간까지 내리 자버릴 것 같으니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돌아왔다.

 


"오늘따라 피곤해보이네?"

 

"어제 잠이 안와서 책 읽다가 집중해버려서... 그대로 아침까지 읽었어."

 

"좀 자는 게 어때? 깨워줄게."

 

"아냐. 괜찮아."

 


잠을 깨려 세수까지 하고 온 내가 안쓰러웠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오는 코하네에게 괜찮다고 웃어주자 나즈막히 한숨을 내쉰다. 되도록이면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는 하지만 초반부터 시비를 걸어와 준 그 일당들 덕에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렇게 걱정을 끼치는 것도 좋지 않은데... 아직 완전히 떨져내지 못한 잠 기운에 눈 앞쪽을 누르고 있는데 책상에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눈에서 손을 치우고 책상을 바라보자 캔커피 하나를 올려놓고 있는 손이 보였다.

 


"우와! 커피..."

 

"졸려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길래. 밤에 뭐했어?"

 

"책 읽느라고. 고마뭐, 미오."

 

"잠은 자야지. 건강은 알아서 챙겨. 타지에서 혼자 사는데 아프면 슬프다더라."

 


결국 미오에게 까지 잔소리를 듣고 말았다. 최근 잠이 부족하다던가 다른 생각에 빠져있다던가 하는 일이 많아 둘이 걱정을 많이 해주고 있어 미안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머슥하게 웃으며 커피 를 마시는 나를 보던 미오가 문득 후루하시를 돌아보았다. 최근 인터하이가 점점 진행됨에 따라 피곤이 쌓여가는 것이 눈에 보이게 티가 나는 후루하시도 조금 걱정이다. 대회의 진행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물어보니 이제 두 경기만 끝나면 본선 진출이라고 한다. 본래부터 농구 강호교였으니까 잘 할 것이라는 말을 한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아마도를 덧붙인다. 이번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굉장한 학교가 한군데 있다는 것이다.

 


"신설인 모양이야. 처음 듣는 이름인걸 보니."

 

"헤에... 대단하네."

 

"서향은 농구 좋아하나보네, 농구 이야기하면 눈이 빛나."

 


후루하시와 이야기하는 것을 바라만 보던 코하네가 키득거리며 말한 것에 순간 심장이 내려낮는 기분이 들었다. 안그래도 하나미야에 대해 들은 뒤로 되도록이면 중학교 시절 농구부 였던 것을 언급하기 싫었기에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면서 친구가 농구를 좋아해서 어쩌다보니 나도 좋아하게 되었다 정도로 얼버무렸다.
정말 좋아하나보네- 하며 웃는 코하네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업 종이 울리며 아이들이 일제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교실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교실로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언제나와 같은 수업 시간, 워낙 지루한 수업을 하시기로 유명한 선생님이라 졸고 있는 아이들도 보이지만 나는 그나마 미오 덕에 덜 졸린 편 이었다. 그래도 밤샘의 여파는 쉬이 물러가지 않았다.

 


"진짜 졸린가보네."

 

"으응..."

 

"여보세요- 집에 가야지! 일어나!"

 


마지막 수업이 하필 역사 시간이라 지루함을 못이기고 결국 엎어져 잠이 들고 말았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깨워대는 통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부스스 일어나자 종례도 끝나 있었다. 멍한 정신으로 책상을 정리하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일어나자 코하네가 집에는 제대로 갈 수 있냐며 걱정을 한다. 아마도 갈 수 있겠지 하는 내 말에 여전히 걱정이 되는지 핸드폰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내 손을 꼭 잡고 교문 앞에서 무언가를 기다렸다. 혼자 갈 수

있다고 한 숨을 내쉬는 내게 얼마나 더 걱정을 시킬 생각이냐며 잠자코 있으라며 성을 냈다.

 


"코하네는 너무 과보호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오늘 상태가 너무 안 좋잖아. 아, 저기 왔다."

 

"뭐가 와... 아아?"

 


검은색의 고급스러운 승용차. 차에 대한 것은 전혀 모르는 나 조차도 엄청난 고급이라는 것을 알아챌 정도의 승용차가 교문 앞에 정차하자 하교 중이던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몰렸다. 웅성이는 소리를 무시한 코하네가 차에 다가가자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이미 승용차가 등장한 그 순간 부터 놀라서 잠이 달아나 있는 나를 억지로 차에 태운 뒤 자신 또 한 함께 차에 올랐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탓에 당황해서 집 주소까지 일러주고 나서 한참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음... 코하네?"

 

"응? 왜?"

 

"왜? 가 아니고. 이게 뭐지..?"

 

"서향이 집에가다가 쓰러져 잘까봐."

 

"아니, 아무리 졸려도 그러지는 않아."

 


집까지 걷다보면 당연히 잠이 깰텐데... 길게 한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결국 이렇게 된거 집까지 빠르고 편하게 가서 부족한 잠을 채우는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편하게 앉으며 그럼 인사가 늦었지만 실례하겠다는 말을 한숨을 내쉬듯 건네자 옆에서 키득키득 웃으며 별거 아니니 괜찮다고 답해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너무나도 편하게 집에 도착해 일단 옷 갈아입지도 않고 침대에 엎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어제의 그 고급 승용차 사건으로 교내가 떠들썩 했다. 도련님 학교로 불리는 만큼 부잣집 아이들이 없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리 많은 인수가 아니라 유명한 몇몇외에는 잘 사는 집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입학 후 고급 승용차의 등장은 단 한 번도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그 첫 등장한 고급 승용차의 주인이 바로 유명한 몇몇 중 가장 엄청난 사람 이었다는 것이다.

 


"그랬어?"

 

"서향은 모르는 구나. 그, 아카시 만큼은 아니지만 안도라고 한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껄?"

 

"그렇구나."

 

"코하네쨩... 거기서 네가 그렇구나라고 하면 안돼."

 


더군다나 거기에 나를 코하네가 납치하듯 차이 태웠던 것 때문에 학교가 떠들썩 한 것이다. 안 그래도 학기초에 나를 괴롭히러 왔던 그 아이들을 대놓고 면박을 주었던 것으로 이미 유명해져 있는데 코하네가 나를 차에 태워갔다더라 하는 것이 퍼지면서 더욱 유명해 질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도 다시 내게 시비를 걸러 나타나겠지.
그런 일이 생긴다면 자신에게 말하라는 코하네 였지만 나라고 당하기만 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걱정 말라 하고 넘어갔다.
사실 절대로 쓰기 싫지만 비장의 카드도 한가지 있기도 하니까. 정 위험하면 그걸 쓰면 된다.

 


"서향쨩은 왠지 카리스마 있고 멋있긴 한데... 뭔가 불안해."

 

"그런 말 처음 들어."

 

"불안해."

 

"응. 불안해."

 

"미오랑 코하네까지... 너무해."

 


그녀들의 반응이 과장을 담아 우는 소리를 하자 미오와 코하네가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봐도 먹는 양이 많지 않고 최근엔 인스턴트류도 많이 먹는 것 같다며 건강 관리는 하고 있는 거냐 등등 신나게 잔소리를 하는 것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어제 해 먹은 저녁 식사를 보여주니 이거 한국 요리야? 하며 달려들어 구경하며 그것으로 주제가 바뀌었다.
엄마가 자주 식사를 인스턴트로 먹고 있는 것아니냐며 걱정을 하셔서 매일같이 사진을 찍어둔 것들이 많아 다행이다.

 


"그런데 왜 점심은 그 모양이야!"

 

"아침은 먹고 있는거지?"

 

"걱정을 해 주는 것은 고마운데. 나... 엄마가 세명인 것 같은 기분이니까 그만해줄래...."

 


잔소리 듣다가 눈물 날 것 같거든... 한국에서도 이렇게 잔소리 들은 적 없는데 일본에 오고 나니까 여기저기서 잔소리가 너무 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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