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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8-

by 깜냥이 2014. 12. 16.

인터넷이 츤츤대요... 글을 안올려주네요... 나쁜....

 

 

 

그 날의 일 이후 도서실로 향하는 횟수가 늘었다. 기껏해야 교내 도서실에 책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느냐만은 트라우마에 대한 책을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에서 였다. 멍청하게도 빌려서 보면 될 것을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읽느라 몇일을 도서실에만 있다가 대부분의 책을 읽어본 후에야 책을 빌려보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자괴감에 빠졌었다.
매일같이 도서실만 찾아들자 유학생이면서 첫 시험을 상위 10%에 들은 주제에 뭘 얼미나 공부하려 그러냐는 식의 투덜거림도 들려왔지만 딱히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기에 무시로 일관 했다. 비글 녀석이 대신 처리해 줬으니 딱히 오랫동안 그런 불평에 시달리지 않았던 것도 한 몫 했지만.


"매일 무슨 책을 읽으러 가는 거야?"

"그냥, 좀 알아보고 싶은게 생겨서. 빌려다가 느긋히 집에서 보면 될걸 멍청하게 도서실에 박혀있었네."

"서향쨩도 그런 부분이 있구나."

"나도 사람이라 실수도 하는 걸..."


친구들의 질문에는 그저 말을 돌리며 얼버무렸다. 약점이라하면 약점이랄 부분을 궂이 알리고 싶지 않았다. 사람인데 약점 하나 둘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주변인 들이 걱정을 하는 것이 보고싶지 않다는 것 때문이다. 타교인 키요시 조차도 그렇게나 안쓰러워하고 걱정해줬는데 이 아이들 이라면 더하리라.
그 날의 떨리던 손을 기억한다. 온 몸을 옥죄어오던 그 공포심을 기억한다. 그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이 다시 한번 각인되고 나자 그런 모습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고 알리기도 싫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같잖은 자존심이라고 한다면 반박은 하지 않겠지만 굳이 정의하자면 그 공포심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조차도 두려워졌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애써 괜찮다, 다시 좋아 질것이다하고 자신을 다독여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던 아이들은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를 바꿔나갔다.


"그러고보니 이제 중간고사도 끝났고... 인터하이 시즌이네."

"운동부 애들은 힘들겠어."

"하라군도 요즘 발길이 뜸해졌고."


확실히 오는 횟수가 줄었네. 워낙 소란스러웠던 그 였기에 빈자리가 많이 허전하긴 하지만 아쉬운 점은 딱히 없었다. 조용해서 좋구나- 하는 내 나직한 중얼거림을 들은 코하네가 키득거리며 동의했다.
인터하이 준비로 바쁘다니, 그렇고보니 저번에 키요시도 인터하이 준비를 시작한다고 했지... 대회준비로 바쁠테니 세이린에 가는 것은 좀 더 미뤄버릴까하는 것은 방과 후, 장보러 가던 길에 우연히 리코와 만남으로 무산되었다. 이즈키와 코가네이가 나와 만났던 이야기를 했다며 세이린 주말 연습 시간까지 일러주며 꼭 놀러와 달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차마 거절을 하지 못해 주말에 구경가겠다고 약속하고야 말았다.


"진짜? 정말이지? 꼭 보러와! 다들 열씸이니까!"

"음... 내가 방해되지 않을까?"

"괜찮아! 아, 맞다. 여기 내 핸드폰 번호랑 메일 주소야. 도착하면 마중갈테니까 연락줄래?"

"어? 어. 응..."


목적 달성을 했다는 듯 뿌듯한 얼굴을 한 그녀가 문득 핸드폰에 시간을 보더니 화들짝 놀란다. 서둘러 인사를 하곤 금새 저 멀리 달려가버린 리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가 손에 들린 종이를 내려다 보고 그것을 주머니에 잘 챙겨넣으며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고보니 빈손으로 가기도 좀 미안한데, 연습시간이 점심시간을 조금 넘겨서 끝나니까 샌드위치 정도라도 싸갈까. 잠시 생각하다가 일단 떠오르는 대로 집어들어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주말, 아침부터 왜 난 샌드위치를 이렇게 대량으로 만들고 있는걸까 하면서도 도시락통에 차곡차곡 샌드위치를 담아 챙기니 슬슬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분명 끝나야 할 시간에 도착해야 할텐데 주말이니까 라는 생각에 너무 일찍 출발한 탓인지 시간에는 상당히 여유가 있었다. 어차피 사복이라서 타교생이란 것도 모를테니, 조금 헤메더라도 교내 구경도 할 겸 돌아다녀 볼까하고 일단 무작정 걸었다.
그리고 구경은 무슨. 저쪽 수돗가 근처에 있는 건물이 아마도 농구부가 있을 것 같은 체육관이 보였다. 체육관에 다가갈 수록 슛 연습을 하는지 슛의 소리가 점점 커지며 끊임없이 들려와 발걸음이 절로 멈췄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소리 사이로 휘슬 소리가 울리며 모든 소리가 일제히 멈췄다. 슬그머니 다가가 체육관의 문을 열자 이제 휴식을 시작하는 듯한 부원들이 보였다. 열명도 채 안되는 부원들이 끼리끼리 앉던지 드링크를 마시던지 하며 각각 휴식을 하고있는 사이로 리코가 그들을 훑어보다 나를 발견하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달려왔다.


"어서와! 이제 막 휴식 시작한 참인데!"

"응, 그런것 같더라. 휘슬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어."

"누가 왔어? 어레? 너는 저번에..."


리코의 반응에 코가네이가 다가와 기웃거리다가 나를 보고 아는 척을 해왔다. 하지만 곧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지 한참을 앓는 소리를 해댔다. 내가 키득키득 웃으며 이름을 다시 알려주자 맞다 그런 이름이었지! 하며 방긋 웃었다. 그러곤 내 손에 들린 쇼핑백을 보고 뭘 가지고 온거냐며 궁금증을 숨기지 못하기에 안에 들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 사이 코가네이가 소란을 피워 준 덕에 내가 온 것을 본 휴가와 키요시를 비롯한 부원들이 문쪽으로 몰려들어 소란스러워지자 리코가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체육관 안쪽으로 들어가 한쪽에 놓인 벤치에 샌드위치가 담긴 상자를 꺼내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조금 생색을 내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지만 아무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아 나도 신경쓰지 않고 도시락을 다시 닫았다.


"연습이 끝나면 배고플 것 같아서."

"와... 많은데? 아침부터 힘들었겠다!"

"헛. 아침엔 바지락 스프!(朝は アサリのスープ) 왔다..!"

"안 왔어!"


갑작스러운 이즈키의 말에 휴가가 있는 힘껏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분명 지난번이 만났을 때의 그는 지적인 미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한 순간에 이미지가 와장창 부서졌다. 저 웃기지도 않은 말장난은 뭐람.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나에게 다른 남학생 한명이 그의 취미가 말장난이라는 말에 아. 그렇구나 하고 넘기기로 했다. 취미구나... 전혀 웃기지 않지만 힘내 같은 말을 해줘야 할 것 만 같았지만 그냥 하하하.. 웃고 넘어가버렸다. 신설교라서 인지 선수가 고작 6명, 스타팅을 제외한 선수가 한명 뿐이라면 조금 힘들지 않을까?


"아, 서향. 부탁하나 해도 될까?"

"응? 어떤거?"

"저기 코가네이가 농구 초심자거든. 기본적인 레이업 슛을 좀 보여줄 수 있어?"

"어? 아니... 저..."

"리코, 곤란하게 하면 안돼."


당황해서 어떻게 거절의 말을 해야할지 몰라 버벅거리자 키요시가 중간에 끼어들어 나를 도와주었다. 그렇가면 어쩔 수 없지 하고 쉽게 포기하는 그녀의 머리를 키요시가 웃으며 쓰다듬는 것을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을 알고 있는 그 덕에 살았다.
이제 각자 연습을 시작하려는지 바닥에 구르는 농구공을 줍기 시작했다. 나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해져서 리코에게 괜찮을까? 하고 묻자 어차피 오늘 연습은 끝났으니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까 쉬는 시간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오늘 훈련이 너무 고되서 정리하기 전에 조금 쉬는 타임이었다고 했다. 농구공과 스코어 보드를 치우고 대걸레를 꺼내와 바닥을 닦아내는 아이들을 보고 있다가 문득 샌드위치 외에 마실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가방에서 지갑을 찾았다. 그렇지만 주변에 편의점이 어디 있는지 몰라 리코에게 물어보려던 찰나 순한 인상의 키 큰 남학생이 웃으며 내 어께를 두드렸다. 그를 마주보며 응? 하고 물으니 고개를 가로 젓더니 체육관의 문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코가네이와 아까 이즈키의 취미에 대해 말해줬던 남학생이 양 손에 음료수를 들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까 마실 것이 없는 걸 보고 정리를 빠르게 마치고 서둘러 다녀왔다는 말에 고맙다고 말하려던 찰나 먼저 샌드위치에 대한 것에 고맙다고 선수를 쳐서 그저 웃었다.


"저 둘은 처음 보지? 미토베랑 츠치다."

"아... 응. 만나서 반가워. 갑자기 들이닥쳐서 폐는 아니려나 모르겠네?"

"괜찮아. 어차피 연습 끝난 뒤에 왔잖아?"


선한 인상으로 웃는 츠치다와 말없이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만 끄덕이고 웃는 미토베를 보며 그저 그렇네하고 웃었다. 인원이 적어서 일까 친근한 분위기의 그들이 상당히 보기 좋았다. 마치 소풍을 나온 것 같은 분위기로 왁자지껄하게 도시락을 먹으며 간간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우리는 금새 이야기의 주제를 농구로 바뀌어 열렬하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리코까지 합세해서 기적의 세대의 이야기를 신나게 하더니 옥상에서 멩세한 것 잊지 않고 있다며 괜히 선수들을 한번 노려보았다. 이해가 가지 않는 내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한국에서의 이야기를 해달라기에 별거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포지션은 가드였다는 말까지 하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난폭하고 깽판만 쳐대는 말괄량이들을 제어하는데 고생했었다는 말에 휴가가 내 맘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서 키요시가 하하하 웃으며 그의 등을 쳐댔다. 오랜만에 농구의 이야기로 기분은 좋았지만 여전히 맘 한 쪽이 찜찜해 애매했다.
훈련이 끝났는데 계속해서 학교에 있기도 애매했는지 슬슬 돌아갈까 하며 이야기를 꺼낸 츠치다에게 잠시 시선이 몰렸다가 내가 그럴까하고 대답하자 그러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코가네이는 쾌활하게 웃으며 인터하이 본선에 진출하게되면 구경을 오라며 방방뛰었다.
본선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 구경 가겠다는 내 말에 키요시가 그 특유의 선한 미소를 지으며 꼭 구경오기다? 하고 내게 다짐을 받아내었다.

 

티스토리 나쁜놈아 츤츤대지마 데레좀 해달라고 어으어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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