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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61-

by 깜냥이 2016. 1. 25.

집에 돌아오고, 급격히 쌓인 피곤에 집안일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는 심정으로 신발도 대충, 양말도 대충 벗어던졌다. 내일 아침에 치우면 되겠지 라는 심정으로 교복까지 대충 벗어 던지려다가 이건 내일 입어야하니 곱게 걸어두었다. 침대에 널브러져서 씻어야하는데 귀찮다고 생각하던 도중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들렸다. 귀찮아서 낑낑거리다가 팔만 대강 뻗어 몇번의 헛손질 끝에 핸드폰을 잡아 펼쳤다.


[좋은 분들 이시네요.]


언제나와 같은 간결한 내용. 그렇지만 어딘가 웃음이 묻어나오는 듯한 기분에 가끔 어린애 같지만 충분히 자랑스러운 오빠들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온 답장이 제법 귀엽고 부끄러워서 일부러 소리내어 깔깔거리며 웃었다. 텀이 긴 것을 보아하니 본인도 부끄러워서 한참 고민한 것 아닐까 싶다.


[누나도 제게 자랑스러운 누나입니다.]

[쿠로코군, 학교에서 인기 많지 않아?]

[인기를 논 하기 전에 아시다시피 저를 알아채는 사람이 드물어요]

[음... 그렇네... 왠지 미안.]



응. 정말 미안해졌다. 일부러 화제를 돌리려고 하다가 지뢰를 밟아버린 느낌에 일단 사과를 보냈다. 그는 늘 있는 일이니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의 컴플렉스를 건드린 것 같아 다시 사과를 보냈다. 여전히 덤덤하게 그보다 문제가 한가지 있다며 주제를 바꿨다.
문제? 지금 내가 씻기 귀찮아서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그가 서점에 무언가 놓고왔다던가하는 문제가 더 있나? 아니면 고등학교에서 문제가 있다던가? 진지하게 하나하나 후보를 세워가며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는데 쿠루코에게서 온 대답은 간단했다.


[누나가 동생을 성으로 부르는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 문제가 그거야?]

[말고 뭐가 더 있나요?]

[아니, 없지만...]


문제가 있어서도 안되지만, 성으로 부르는걸 문제라고 했던거야?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을 한 나는 무슨 바보 짓을 한건가 싶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빨리 씻고 자는 것이 좋겠다. 마지막으로 쿠로코에게서 답장이 오면 잘자라는 메일을 보내고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답을 기다렸다. 다시 긴 텀을 두고 온 답장에는 테츠야라고 불러주세요. 라는 내용만 덩그러니 적혀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불러줘야 할 것 같아 그럼, 잘 자. 테츠야. 하고 답장을 보낸 뒤 핸드폰을 덮었다.
피곤이 조금 풀린 상태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서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 덕인지 아침에 알람을 세번을 끄고 나서야 겨우 일어나 부랴부랴 서둘러 도시락을 싸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서향- 좋은 아침."

"안녕, 미오! 일찍 왔네?"

"아니, 서향이 평소보다 늦었어."

"음... 그런가?"


코하네는 이미 내가 왔나 교실을 기웃거리다가 돌아간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한다. 아마 조례가 끝나면 또 오지 않을까 싶어 일단 챙겨온 스트랩을 미오에게 먼저 보여주었다. 동글동글한 올챙이 모양에 귀엽다며 한참 바라보던 미오도 이 녀석이 그와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둘이서 깔깔거리고 있으니 우리를 힐끗거리던 몇몇 아이들이 아닌 척 주위로 다가와 기웃거리다가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서 다시 돌아갔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둘이서 잠시 키득거리다가 선생님이 들어오시면서 바르게 앉았다.
그리고 우리의 예상대로 조례를 마치자 마자 나를 찾아왔다.


"어제 잘 놀았어?"

"응- 오빠들하고 카페도 가고 서점도 가고."

"응, 그렇구나. 오늘은 같이 가?"

"코하네가 시간이 된다면?"


오늘은 시간이 난다며 기뻐하는 코하네를 보며 그럼 간만에 넷이서 하교하는구나 하고 웃으니 그러게-하며 맞장구를 쳐준다. 약속했던 스트랩을 코하네에게 자랑하듯 보여주자 그녀는 보자마자 깔깔거리고 웃으며 닮긴 닮았다며 웃어대었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컷던 탓일까 웬만해서는 잘 일어나지도 않는 맨 뒷자리의 남학생이 잠에서 깬 듯, 덜컹!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정말로 잠에서 깬 모양새로 안대를 벗으며 눈을 부비고 하품을 한다. 


"미안, 세토군. 많이 소란스러웠나보네."

"아니, 딱히 그렇지는 않은데."

"응, 그러면 다행이지만..."


나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뒤로 돌아있던 미오가 그에게 사과를 건넸지만 그는 딱히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며 내저었다. 멍하니 정면만 바라보는그에게 하라가 괜히 시비를 걸었지만 세토는 무시로 일관했고, 결국 시끄럽다는 이유로 야마자키에게 얻어 맞고야 말았다. 여전히 멍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큰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한번 하고는 나른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하라가 멋대로 말걸지 말라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다가 야마자키에게 얻어 맞고 조용해졌다.


"그러고보니 우리 부원이 폐를 기치네... 미안."

"그건 후루하시군이랑 야마자키군에게 매일 듣는거니까 신경 안써도 괜찮아."

"그래?"

"응. 세토군이었지?"

"응, 농구부, 센터. 어디 안좋은데 있어?"

"아니, 왜?"

"응, 그렇구나."


뭔가 알 수 없는 말만 해대던 그는 곧 다시 안대를 쓰고 잠이 들었다. 잠이 덜 깨서 헛소리를 했다기에는 목소리가 제법 멀쩡했던 터라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그를 바라보다가 미오와 코하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바라본다고 그가 한 질문의 의미를 그녀들이 알 길이 없고, 우리는셋이서 세토군은 특이하구나- 하는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코하네가 돌아가고 몇번의 쉬는 시간이 지나간 뒤 언제나처럼 후루하시가 찾아왔다. 평소와는 달리 그나마 오늘은 표정이 좋아보이는 것이 오늘은 코하네와 하나미야가 다투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마냥 좋은 표정은 아니었기 때문에 괜찮으냐 물어보니 하라가 저 무표정을 어떻게 알아보는 거냐며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안도가 하나미야를 보고 웃어서..."

"아... 그래서 또 싸웠어?"

"하나미야가 미친 여자 보는 눈을 했어."

"그게 끝? 조용히 지나갔네."

"응... 안도가 웃느라 신경을 안 쓰더라..."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이제부터 어쩌나 생각해야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좋은게 좋은거라고 둘이 교실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는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후루하시도 같은 의견인 듯 얌전히 야마자키에게서 수학 노트를 빌려갔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조용히 지나간 오전 시간은 그야말로 오랜만의 평화 같았지만 이것이 설마 폭풍전야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의 평화를 깨기 싫어 애써 그런 부정적인 생각은 치워두기로 했다.

 

바로 다음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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