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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41-

by 깜냥이 2015. 8. 10.

그리고 저는 바보 짓을 했습니다.

 

축제가 끝난 뒤의 주말은 뒤늦게 몰려온 피곤함에 하루의 절반을 잠으로 때우는 바람에 본래 계획했던 것을 전부 해내지 못했다. 일단 장보기나 빨래 정도는 했지만 집의 대청소는 끝내지 못했다. 그래도 대충 먼지만이라도 털어냈지만 최근 힘들다고 내팽겨쳐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축제가 끝나니 그리 피곤한 일이 많지 않아 그런대로 여유 시간이 생겨 주중에 차근차근 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최근 냉장고에서 아슬아슬하게 상하지 않은 것들을 서둘러 처리하느라 볶음밥과 주먹밥 같은 것으로 도시락을 싸고 있으니 요리하는 재미가 없어졌다.


"그러고보니 서향쨩 요즘 그 아이랑 약속 안 잡는가 보네?"

"응?"

"왜, 인터하이에서 만났다던 그 중학생!"

"아- 그러고보니 최근 연락이 없네."


기억이 맞다면 중간 고사 전부터 연락을 못했는데,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안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지만 말을 일절 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말해주길 기다렸던만 말은 안해주고, 내가 그리 못미더운가 싶기도 하다.  개인주의가 강한 일본이니 어쩔 수 없지만...
핸드폰을 들어 메일 목록을 살펴보니 확실히 최근 메일에서 쿠로코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연락이 오지 않다니 먼저 연락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고 있으니 옆애서 미오가 나를 콕콕 찔러댄다.


"먼저 연락은 안해?"

"내가 하려고할때면 연락이 오곤 해서, 그래서 언제 하려나 기다리다보니..."

"수험 때문에 바쁜거 아니야? 3학년이라며."

"음- 그런 것 같아서 더 연락을 못하겠어."

"그건 확실히 그렇네."


한국이랑 달리 고등학교 진학도 수험을 보다보니 슬슬 한참 바쁠 때이긴 하다. 좋은 학교에서 좋은 팀을 만나면 좋겠는데, 그래서 다시 즐겁게 농구를 할 수 있다면....
무의식 중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자기 자신도 제자리인 주제에 누구 걱정을 하는 건가 싶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쿠로코와 연락을 못하는 것 때문이라 여겼는지 흐뭇한 미소를 짓는 코하네를 애써 무시했다.


"서향은 정말 연애할 생각 없어?"

"지금은 없네요. 그런 생각 자체를 한 적이 없는걸?"

"에- 그런게 어딨어!"

"스포츠계는 대부분 그렇지 않아? 연습, 시합, 연습, 시합. 수업 따라가기도 벅차..."

"진짜? 시합은 보통 방학이잖아."

"학기 중에도 있었어. 그럼 시합 때문에 연습하느라 바빴고."


연애할 시간 따위 없었다. 라는 변명같지 않은 변명에 코하네가 툴툴거리며 한발 물러나자 다른 아이들이 느긋하게 다른 주제로 이끌었다. 간만에 여유롭게 아이들과 노닥거리며 점심시간을 보내고 쉬는 시간마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으니 뭔가 새삼스러웠다. 입학하고 벌써 2학기의 중반이건만, 부원들과 함께가 아닌 점심이라던가, 농구가 아닌 대화 주제라던가, 부활동이 없는 방과후 같은 것들이 이제서야 허전하다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웃어버렸다.
뭐-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던, 지금은 이 아이들과 떠들며 노닥거리는 것이 즐겁다. 그러니 어찌되었 건, 좋은 것 아닐까? 코하네나 미오는 늘 내 걱정이고 히마리는 늘 내게 달라붙어 앙탈부린다. 후루하시는 지나가다 툭툭 한마디씩 건네며 신경써 주고 하라는 아직까지 내가 좋다며 달려들고 있다. 하나미야는... 말로만 듣던 츤데레인가?


"무슨 생각해? 후루하시군 뒤통수 뚫리겠어."

"어?"

"무슨 생각하길래 후루하시군이 돌아봐도 모를 정도로 처다보고 있어?"

"... 내가 후루하시군을 보고 있었어?"

"몰랐어?"

"응..."


내 대답에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던 코하네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집에 갈 준비나 하라는코하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니 종례가 끝난 것도 몰랐냐며 웃는다.
... 종례가 끝났어? 진짜? 눈을 크게 뜨고 코하네를 바라보니 다시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그런 표정으로 봐도 정말 나 몰랐는걸...
나와 코하네가 이런 개그를 하는 사이 짐을 다 챙긴 미오와 히마리가 우리에게 다가와 빨리 가자며 투덜거린다.


"아이들 몰리기 전에 빨리가서 자리 잡아야지!"

"자리?"

"무슨 일 있어? 아까부터 정신을 놓고 있네... 점심 시간에 히마리랑 나 부활 없으니 디저트 카페 가자고 했잖아?"

"아, 그거. 응, 생각났다."

"서향쨩... 바보야?

"나사 어디에 버리고 온거야..."


미오와 히마리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동안 부랴부랴 짐을 챙겨 일어나자 미오가 내 이마에 손을 대어보았다가 열은 없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그야 아픈게 아니니까. 조금 정신을 놓았다고 난리법석인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자리 없어지기 전애 빨리 가자 재촉하니 히마리가 신나서 뛰어나간다. 그에 놀랑 코하네와 미오가 그 아이를 잡으러 뛰쳐나갔고 나도 셋을 따랐다.
도착한 곳은 이전에 갔던 곳과는 다른 곳으로 이번에 새로 오픈했다는 모양이다. 아기자기하다기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강해 학생들보다 성인의 비율이 더 높았지만 디저트만큼은 상당히 예뻤다. 맛 또한 그만큼 좋았으니 잡생각을 버리고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치즈 케이크 맛있어!"

"티라미스도 괜찮아. 한 입 먹을래?"

"응! 아, 레몬 케이크는 어때?"

"하나 포장해가고 싶다..."

"테이크 아웃 되던가?"

"물어볼까?"


신나서 조잘조잘 거리며 케이크를 나눠먹고 있는 도중 갑자기 울린 코하네의 전화에 우리는 대화를 멈추어야 했다. 핸드폰의 화면을 확인하고 인상을 쓰더니 신경질 적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며 나간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우리는 갑자기 냉랭해진 분위기에 케이크를 께작거렸다. 무슨 일인 걸까같은 말을 해도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으니 결국 한숨을 쉬며 케이크만 께작거려야했다.
그리고 그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의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누구것인지 몰라 각자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어보니 메일이 온 것은 내 핸드폰이었다.


"아, 쿠로코군..."

"누구?"

"그 중학생?"

"응..."


오늘 만날 수 있느냐는 용건만 있는 메일, 간만에 온 문자의 내용치고는 심상치 않아 무슨 일이 있느냐고 답장을 보내니 오늘은 시간이 안되냐는 답장이 왔다. 결국 저녁에 마지바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이야기는 그 때 듣기로 했다.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고 아이들을 바라보자 왠지 생기 있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뭐, 왜.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아니- 케이크가 맛있네? 하며 둘이서만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온 코하네를 반겼다.


"점심 시간에 말한 그 아이에게 연락이 왔다네?"

"어머, 그래?"

"그다지 좋아만 할 일이 아닌걸, 무슨 일 있는 것 같아."

"그러고보니 한번 상담 해준 적 있다고 했던가?"


쿠로코와의 자세한 상황을 알고있는 코하네는 확실히 다른 둘과 반응이 달랐다. 연락이 왔다는 말에 조금 기대한 듯 했다가 이어진 내 말에 금새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수험생이다보니 고교 진학에 대한 고민이리지도 모르니그것에 대한거라면 자신이 도와주겟다며 방긋 웃는다. 그런 가벼운 주제였다면 정말 좋을텐데...
어찌되었건 카페에서 만큼은 즐겁게 수다를 떨며 보내고 아이들과 헤어진 나는 곧장 마지바로 향했다. 열심히 달려서 가게가 눈에 보일 즈음 멈추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마지바로 향하려던 찰나 옆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멈추었다. 잰 걸음으로 달려와 내 옆에 선 쿠로코는 마지바가 아닌 다른 곳을 원했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 보다야 조용한 곳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욱 수월하리라 생각되어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쪽에 공원으로 가자. 혹시 추워? 저녁이라 조금 쌀쌀한데."

"괜찮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아마 공원에 자판기도 있을거야."

"아뇨, 괜찮..."

"가자, 가자. 따뜻한게 있으려나?"


그의 거절을 깔끔히 무시하며 손을 잡아 끌고 공원으로 향하니 그가 어쩔 수 없다는듯이 따라온다. 자판기 앞에서도 자신이내겠다고 하다가 내가 재빨리 두개 분의 음료값을 넣고 멋대로 음료를 꺼내자 조금토라진 모습으로 지갑을 가방에 넣었다.
공원은 자판기 하나와 벤치 네개가 고작인 정말로 자그마한 공원이라 이 시간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캔을 따는 내 곁으로 조심스럽게 앉은 쿠로코가 손에 들린 캔을 아무 말 없이 만지작 거린다.
무언가 말을 하려면 생각을 정리해야 할테니 나는 조용히 음료를 마시며 그가 말을 하기만을 기다렸다. 아- 따뜻하다.


"저, 친구의 학교에 다녀 왔습니다."

"그, 결승에서 만났다던?"

"네. 그는 이미 전학을 간 상태라 그의 팀 메이트를 만났을 뿐이지만..."

"전학? 안타깝네..."

"뭐..."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내 말에 그는 조금 주저하더니 천천히 지금까지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에 내가 놀란 것은 당연했지만 내가 그러던 말던 쿠로코는 제 할 말을 다 하고는 그저 입을 굳게 다물뿐이었다.
기적의 세대는 그저 너무하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였고, 주중에 쿠로코를 만났던 것은 은퇴가 아닌 그들로 인한 상처로 퇴부한 것이 었다. 그리고 고심 끝에 오늘 겨우 찾아갔다는 그 친구는 그들 때문에 좌절하고 농구를그만두었다. 그렇지만 쿠로코만큼은 농구를 계속 했으면하고 바란다고 했다.
억지로 쥐어 짜듯 말하면서 !손에 들린 리스트 밴드를 보는 눈이 서글퍼 보여 나는 가만히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하듯이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네, 같은 말은 없이 그저 조용히.


"고등학교에 가서, 다시. 농구를 할 생각입니다."

"그래? 잘됐다."

"이 이야기를, 꼭 하고싶었습니다."

"고마워."


쓰다듬을 받으며 꿋꿋하게 제 할 말을 해낸 그가 결심 만큼은 바닥이 아닌 내 눈을 마주하며 선언하듯 말해왔다. 결의에 찬 눈이 제법 남자답다. 다행이다 싶어 그의 머리에 얹어진 손을 치우고 미소를 지으며 답하니 웬일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언제 웃었냐는 듯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지만.
이제 할 말이 끝났는지 무표정이긴 하지만 제법 후련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쿠로코를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쿠로코군, 고등학교는 정했어? 막 스카웃 같은 것도 들어오나?"

"저는, 일반 입학으로 갑니다."

"그렇구나."


스카웃은 아니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조용히 바라보던 그는 그저 고개만 갸웃거렸다. 새삼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을 그에게 말하자니 이런 것 까지는 조금 오버인가 싶기도해서 조금 고민이 되었다. 그가 진학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그의 어조가 가고 싶은 학교를 이미 정해두었다는 것 같아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곳에서 만나게된 어린 친우가 좋아하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즐겼으면 싶었다.


"나는 쿠로코군이 즐겁게 농구를 했으면 좋겠어."

"네?"

"그래서, 나는 쿠로코군이 세이린에 갔으면 하는데."


어때? 하고 덧붙이며 빙그레 미소 짓는 나를 쿠로코는 그저 바라만 볼 뿐 이었다.

핸드폰으로 쓰다보니 전부 훑을수가 없어서 날려먹은줄 알고 으어허엉어 했더니 그게 아니라 중간까지만 복사되었던 것이 그냥 뒤에 붙여넣기 된거였어여ㅜㅜㅠㅠ 날려먹은 줄알고 멘붕한 저는 왜 그 뒤를 다시 썼는가.... 똥멍청인가....

8ㅁ8 빠가 인증 해써열 다름부터는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이런 바보짓이 있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ㅠㅠㅠㅠ

예고) 아마도 여름 그림자보다 패기로운 시리즈가 더 빠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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