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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인쇄기/초벌인쇄

[쿠로코의 농구 × 도검난무] 샤쿠에이 (さゃくえい) - 1

by 류 엘 카르마 륜 위르치아나 2015. 6. 20.
이제 진짜 시작입니다.
여러모로 쓰고 싶은 장면들이 많아서 열심히 쓸 것 같습니다만…
이 기세가 언제까지 갈런지 모르겠네요.[아득한 눈]

이상입니다, 일단 시작합니다.[…]




 마음에 응어리만 남아있다.

 민속학자로 이리저리 떠돌면서 여러 기현상을 탐문한다. 단순히 미련때문일지도 모르고, 한없이 비력한 자신을 실감했기에 이러는지도 모른다. 단순한 오기인 것도 있을거다. 자존심에 이러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냥 그렇냐고 넘길 수 없는 건 역시 그가 남긴 궤적이 너무 컸기 때문이겠지.

 그가 지도에 이름하나 간신히 올라간 섬마을의 소실 관련 민속학 연구를 끝내고 돌아가려던 무렵이었다. 이번에도 허탕이었지만, 학술적 가치는 충분했기에 나름 만족하던 차였다. 숙소에서 짐을 챙기고 배를 타러 나서던 그의 앞에 새까만 넝마를 걸친 기이한 존재가 나타났다. 그의 가슴께에나 오면 다행인 자그마한 존재였다. 슬쩍 관찰해보니 신발조차없는 맨발이었다. 이 작은 섬에 이런 존재가 있었던가? 그는 조금 돌이켜봤지만, 오늘 처음본게 확실하다. 사실 노인 밖에 없는 섬이고, 또 이렇게 짙은 색 피부는 없었다.


 "마유즈미 치히로(黛 千尋)씨?"


 아담한 체격에 어울리는 앳된 목소리였다. 의외로 맑지만 묘하게 탁했다. 고도에서 막 떠나려던 차에 만난 신비한 아이, 그것도 그의 이름을 정확하게 안다니 기이한 일이었다. 꼭 호러게임의 시작장면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선선히 부인했다. 원채 오해받는 일이 많아서 이 섬에서는 다른 이름을 썼었으니까. 본명이라는 불의의 일격이라도 쉬이 수긍할 정도로 그는 무르지 않았다.


 "사람을 잘못 봤네. 난 센진(千尋)이다."

 "역시 치히로씨. 받아."


 아이는 그에게 책을 한권 안겨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말그대로 잠시 책에 시선을 보낸사이 사라진 거다. 품에서 책을 꺼낼 때 분명 여러 금속제 장신구가 있는 걸로 보였었는데, 작은 소리도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조차 없었다. 진짜 호러냐? 그는 잠시 책을 어쩔까 고민했지만, 빨리 배를 타라는 외침에 그냥 품에 집어 넣고 달렸다.

 간신히 쪽배를 타고 10시간의 항해를 거쳐 본토에 도착하니 죽을 것 같았다. 농구를 한다고 열심히 연습했던 것도 벌써 7년 전이다. 응어리가 맺힌지도 7년이나 흘렀다. 그는 대강 품에 넣었던 책을 꺼냈다.

 어딜봐도 수상쩍은 이 책을 가지고 온 건 역시 미련때문이다. 혹시나, 설마, 어쩌면…… 정말 미련투성이라 받아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천천히 살펴보니 책은 상당히 오래전에 만들어진 고서로 보였다. 일단, 책 매듭의 형태는 15~16세기에 유행하던 거였고, 제목으로 보이는 글의 서체는 딱 11세기 무렵에 유행한 것이다. 그럼에도 세월에 삭은 것 말고는 멀쩡해서 얼마나 소중히 보관했는지 짐작케 했다. 아이가 그냥 들고다닐만한 물건은 절대 아니었다.

 수수께끼가 쌓이면서 기대감이 조금씩 생긴다.


 [샤쿠에이 (さゃくえい)]


 책의 표지에는 히라가나로만 된 제목이 유려하게 쓰여있다. 무슨 의미일지 고심하던 그는 조심조심 첫장을 넘겼다.

 첫장에는 거의 사진같은 풍경그림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다시 책을 덮었을 정도로 수묵 정밀화라 정말 기겁했다. 이거 무슨 물건이지? 평범하지 않으리라 예상하긴 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이 나와 히껍했다. 어째 갈수록 올라가는 기대치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지만, 그는 다시 책을 펼쳤다.

 다음장을 넘기니 유려한 서체로 [샤쿠에이]에 대한 내역이 조금 쓰여있었다.

 어느날 섬에 기이한 요괴가 날뛰기 시작했다. 요괴는 마을을 파괴하고 사람을 죽였으며, 섬을 빠져나가기 위해 발악했다. 하지만 섬을 빠져나갈 수 없자 요괴는 섬의 모든 것을 부수려했다. 산지옥이 펼쳐지자 마을사람은 원래부터 있던 신의 제단에 기원했다. 신은 가장 특이한 제물을 받치면 구해주리라고 했다. 특이하다는 말에 마침 그들의 앞에 나타났던 [존재]를 제물로 받쳤다. 그에 신은 기뻐하며 그 [존재]를 [샤쿠에이]라 칭하며 기적을 일으킬 힘을 내렸다. [샤쿠에이]의 손에 닿은 무기는 인간으로 변해 요괴와 맞섰고, 마을과 사람을 지켰다.

 설화집이려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장을 넘겼다. 새까만 장포를 뒤집어쓴 이가 있었다. 몸을 뒤덮은 까만 장포 아래로 하늘빛 머리카락이 보인다. 하얀 피부를 까만 옷과 장갑으로 거의 다 가렸지만, 눈만큼은 보였다. 기억 속 모습과 똑같은 눈이 있었다. 기대가 맞아들어갔지만, 조금도 기뻐할 수 없었다. 급히 옆에 쓰인 설화를 읽어 내려갔다.

 [샤쿠에이]는 극도로 존재감이 적었으며, 머리카락도 기이했다. 그럼에도 희고 고왔으며 늠름했다. [샤쿠에이]가 잡은 광물은 무기가 되었고, 무기는 인간이 되었다. [샤쿠에이]가 일으킨 기적으로 요괴는 줄어들었으나 사라지지 않았다. [샤쿠에이]는 계속 기적을 일으켰다. 거듭된 기적으로 [샤쿠에이]에게 비늘이 생기는 신병이 생겼다. 새로운 [샤쿠에이]를 맞이하지 않으면, '쿠로코 테츠야'를 대신할 새로운 [샤쿠에이]를 맞이하지 않으면…

 거기까지 읽은 순간 그는 책을 덮었다.

 '쿠로코 테츠야' 분명히 그 이름이 언급되었다. [샤쿠에이]로 신에게 제물로 받쳐진 가장 특이한 [존재]. 7년전 갑자기 사라졌던 그가 왜 이 책에 등장하는 거지? 어째서 과거로 갔던거지? 여기에서 말하는 섬은 어디야? 왜 그 아이는 이걸 자신에게 준 거지? 온갖 혼란이 덮쳤지만, 몸은 이미 움직였다.

 지갑과 휴대폰 그리고 책을 끌어안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무작정 떨리는 손길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신호가 한번 울리기도 전에 연결되었다. 저편에서 조금 지친 목소리가 들린다.


 = 치히로? 오늘 돌아오지 않았나?

 "지금 어디야?"

 = 자택이다. 급한 일인가?

 "혼자?"

 = 정규보고…… 발견한건가.


 피곤하던 목소리가 변했다.

 그가 택시를 잡아 타는 사이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상황을 가늠하려는 듯도, 진정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그렇겠지. 자기도 그랬으니 그 심정이 너무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저편에서 술렁이는 기색이 느껴진다. 기대와 긴장이 숨김없이 전해진다. 아아, 그래. 이건 그만큼 깊고도 컸던 응어리다. 그는 책을 끌어안았다.


 = 흔적을 찾은게지, 치히로?

 "아카시, 이건 어려워."

 = 안다. 일단 오도록.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목소리에 그는 웃어버렸다.

 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간신히 잡았다. 그리고 어렵다고 그 끈을 버릴 정도로 그들의 주장은 가볍지 않았다. 어째서 그에게 이 책이 왔는지, 이젠 중요하지 않았다. 그 빌어먹을 것들에게서 돌려받을거다. 귀하고도 귀한 그림자를.



쿠로코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닙니다.[당연하지만]
사니와가 아니라, 샤쿠에이인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덤으로 아카시를 비롯한 전원이 7년동안 꾸준히 쿠로코를 찾고 있었습니다.

좋건 싫건 그만큼 궤적이 컸으니까요.
일단, 책도 범상한 것이 아닙니다.[…]

힘내라, 아카시.[아득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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