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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3-

by 깜냥이 2014. 11. 16.


하마터면 2편을 한번 더 올릴뻔 한 저는 똥멍청이...
글 쓰는 툴 배경색이 조아라 같아서 맘에 듭니다 헤헿...


하필이면 문이 낡아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줄이야.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농구 소리가 난다고 냉큼 소리를 따라가 문까지 열다니, 너무나도 익숙하던 그 소리가 그리웠던 걸까?

 

 

"죄송합니다. 방해가 되었나요?"

 

"아아, 괜찮아요. 슬슬 쉬어야 하나 했고."

 

 

키가 190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그 남자는 자세히 보니 교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일단 방해를 한 모양인 듯싶어 조심스럽게 사과하자 사람 좋은 얼굴로 웃는다. 지나가는 길에 소리가 들려 잠시 들렸다는 이야기를 하자 이쪽 농구장이 사람이 적어 자주 온다며 웃었다. 선하게 웃는 표정이 잘 어울린다는 시답잖은 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그가 이번에 신설된 세이린의 학생으로 1학년이라고 한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의 말을 끊고 나랑 동갑이야? 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자 키 때문에 그렇게는 안 보이지? 하며 사람 좋게 웃었다. 농구는 키가 커야 유리한 스포츠니까 키가 크면 좋지 하고 중얼거린 내 말에 그렇지? 하며 으쓱거렸다.

 

 

"말 끊어서 미안, 이름이 뭐야?"

 

"이 나무 무슨 나무 궁금하지-(この になろき) 나무 목에 길할 길을 써서 키요시야. 키요시 텟페이."

 

".... . . 나는 백서향. 한국에서 왔어."

 

"오오! 한국이라니 대단한데!"

 

 

뜬금없이 괴상한 노래를 부르기에 당황하는 바람에 조금 말을 더듬었지만 그는 그것을 가볍게 넘기고 호쾌한 목소리로 대단하다며 연신 신기해했다. 그러다 문득 한국의 농구는 어떠나며 물어봐서 내가 아는 것은 여자 농구고 중학교 농구라 그리 잘하지는 않았다고 하자 한국은 그렇구나 하며 웃었다. 지금 농구부를 하고 있냐는 말에 몸이 좋지 않아 지금은 농구를 할 수 없다고 하자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면서 분위기를 쇄신하려는지 지금 자신은 농구부를 만들기 위해 인원을 모으고 있다던가 누구랑 누구만 설득하면 될 것 같은데 잘 안 된다던가하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다같이 즐기면 좋잖아 하며 힘낼 거라는 그의 말에 힘내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소햔이 응원해주니 잘 될 것 같은데?"

 

"서향이지만, . 잘 되길 바라."

 

"서햔?"

 

"아쉽네. 서향이야."

 

 

역시나 발음에 힘겨워하지만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나도 농구를 좋아하니 나중에 설득에 성공하면 소개를 시켜주겠다는 그의 말에 그저 웃었다. 오늘 처음 본 타 학교 유학생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사교성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그냥 순진한 건지...슬그머니 하늘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이제 슬슬 들어가봐야 할 때구나 싶어 그에게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하려던 찰나 그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집에서 온 연락인 듯 곧 들어가겠다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미안하지만 먼저 들어가보겠다고 하는 그의 말에 나도 돌아갈 예정이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전했다. 다음에 또 만났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에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 의식적으로 읊조린 소리가 가득 울린다. 대충 신발을 벗어 던지고 일단 집 안의 불을 켰다. 조금이나마 훈훈해 질까 싶어 커피 포트에 물을 올리며 옷을 먼저 갈아입을까 고민하다 장을 봐온 것들을 냉장고에 정리해 넣었다. 새로운 길을 찾느라 헤맬 것 같아 밖에 오래 돌아다 상할만한 것은 사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구부렸던 허리를 한번 쭉 펴고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책상에 올려두고 교복을 벗어 깔끔하게 걸어두었다. 조금만 이라도 나태해 졌다간 집 안이 난장판이 될 것이라 사소한 것이라도 신경 쓰는 중이긴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렇게 하려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까지 마친 뒤 편한 옷을 입고 머리를 대충 털며 부엌으로 가서 카레의 재료들을 하나 둘 꺼내어 천천히 다듬던 찰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누구지 싶어 서둘러 물기를 대충 닦아내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서햔쨔앙! 나야, 히마리!]

 

". 히마리, 무슨 일이야?"

 

[혹시 내일 시간 있나 해서!]

 

"내일은 딱히 없어. ?"

 

[그럼 내일 넷이서 시내에 쇼핑하러 가자!]

 

 

오늘 같이 놀지 못 한 것이 서운했는데 조금 전 코하네에게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내일 히마리가 말한 카페에도 가고 쇼핑도 하면서 놀지 않겠느냐 기에 그러자 대답하고 내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지금 코하네쨩은 미오한테 연락 중일 거야! 하고 신나서 이야기하는 히마리의 목소리에 키득거리며 웃었다. 전화를 받으며 가스 레인지의 불을 켜자 그 작은 소리가 들렸는지 지금 뭐하고 있냐며 귀엽게 말 끝을 늘이며 물어본다. 저녁으로 카레를 하고 있다는 소리에 여자력이 높다며 감탄을 한다. 여자력이라니, 그게 뭐지. 여성스럽다는 말인가... 혼자 살고 있으니 요리 정도는 해야지, 하고 대꾸하자 그렇구나 하며 웃는다. 치익거리는 야채 볶는 소리가 전화로 다 들리고 있는지 왠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을 것만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햔쨩 바쁜데 내가 방해하는 거 아닌가?]

 

"아냐. 괜찮아."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럼 내일 몇 시에 만나는 거야?"

 

[2시에! 역 앞에서 만나!]

 

 

밥 맛있게 먹고 내일 보자! 하고 활기차게 통화를 마무리하는 히마리에게 키득거리며 그래, 내일 보자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통화 하는 동안 적당히 볶아진 야채들에 썰어진 고기를 마저 넣고 볶으며 갑자기 잡힌 약속에 입을 옷을 고민했다. 운동이나 장을 보러 가는 것 외의 외출은 간만이라 조금 꾸미는 것이 좋겠다 싶어 옷장에 있을 옷들 몇 가지를 떠올려보았다. 카레가 거의 완성될 즈음에도 마땅한 옷이 떠오르지 않아 결국 일단 배고프니 밥부터 먹기로 하고 생각을 그만 두었다. 적당히 만든다고 만드는 데도 냄비 한 가득 담긴 카레를 보며 이거 며칠은 먹겠네 하고 한숨을 내쉬며 밥을 담았다.

식사를 마친 뒤 내일 입을만한 옷을 찾아 옷장을 뒤적였다. 쇼핑하고 카페 가고 오래 돌아다녀야 할 것 같으니 일단 예쁘지만 편하게... 그런 게 어딨어. 결국 한참 고민하다 그나마 괜찮은 옷을 골라내어 벽에 붙은 옷걸이에 걸어두고 적당한 악세사리 같은 것이 없을까 뒤적이다 그런걸 가져왔을 리가 없지, 하고 서랍을 닫았다.

침대에 벌렁 누워 오늘 사온 책을 펼치자 오랜만에 보이는 한자들 때문에 눈이 핑핑 돌았다. 익숙해 져야 할 텐데, 걱정이네. 몇 페이지 정도 넘기다가 눈이 피로해져서 결국 덮어버렸다. 이른 시간이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오래 돌아다녔으니 피곤 하기도 하고 잘까. 애써 합리화를 하고 일단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연두색의 롱 가디건에 흰 블라우스와 청바지로 심플하게 입고 거울 앞에서 한번 이리저리 살펴본다. 악세사리 같은 것이 있음 좋았을 걸. 검은 숄더백을 대충 걸고 시간을 보니 지금 출발하면 얼추 맞을 것 같아 역으로 출발했다. 집에서 역까지의 거리가 좀 있지만 하교 길에 이리저리 골목을 누비고 다닌 덕에 지름길을 알아내 생각 외로 일찍 도착했다. 5분 정도 여유가 있어 어디쯤에서 기다릴까 하던 찰나 저 멀리에 주차된 검은색 승용차에서 익숙한 인영이 나왔다.

 

 

"코하네!"

 

", 서향 일찍 나왔네."

 

"5분 전인걸? 저기, 히 마리도 보인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1분도 채 안되어 전원이 모여 잠시 시간을 확인 한 나는 한국에서의 일을 떠올렸다가 기억의 한쪽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역 근처에 있는 몇 개의 가게를 둘러보는 동안에도 만나고 나서 계속 신나서 폴짝대는 히마리에게 좀 얌전히 있으라며 잔소리를 하던 미오는 몇 개의 가게를 거치며 시내 안쪽으로 들어오자 본인 역시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던 듯 우선 쇼핑하러 가자며 우리를 이끌었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은 옷 가게, 옷의 디자인이 예쁘기도 하고 소품들도 같이 구입 할 수 있으니까! 라며 눈을 빛내는 미오를 보며 키득키득 웃은 우리는 그녀가 먼저 옷을 뒤적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각자 눈에 들어온 것을 보러 흩어졌다. 딱히 눈에 들어온 것이 없던 나는 느긋이 가게 안을 둘러보며 아이들이 어떤 것을 보고 있는가 살폈다.

의외로 소녀스러운 원피스를 보고 있는 미오와 한 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클러치를 보고 있는 코하네, 그리고 아기자기한 악세사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히마리를 보고 있다가 나도 한가지 정도는 사도 괜찮겠지 하며 미오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무난한 디자인의 스커트들을 뒤적였다.

 

 

"서향쨩 이거 어때? 귀엽지!"

 

"있지. 이거랑 이거 중에 어느 게 더 나아?"

 

"입어보는 게 어때? 어머, 그 스커트 예쁘다."

 

 

탈의실에서 귀여운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히마리를 보며 역시 저런 원피스는 역시 저런 귀여운 애가 입어야 어울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자 옷을 고르던 미오가 우리를 돌아보며 옷을 들어 보였다. 저런 살랑살랑한건 잘 모르겠어 서 고민하던 중 코하네가 그에 대답을 해주고 내가 들고 있던 스커트를 보았다. 그래 예쁘단 말이지? 거울을 보고 대보니 길이도 적당하고 집에 있는 옷들이랑도 얼추 매칭이 될 것 같다. 결국 원피스 두벌을 다 사버린 미오와 뭔가 이것저것 왕창 산 히마리가 만족했다는 듯이 신나서 가게를 나서고 둘에 비해 가벼운 몸인 나와 코하네가 그녀들을 보며 키득거리며 뒤를 따랐다.  이제 점심시간이네 하고 무심코 중얼거리자 히마리가 신나서 새로 생긴 카페로 가자며 달려갔다. 그리고 그 뒤로 위험하니 뛰지 말라는 미오가 뒤따르고 우리 둘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았다가 그녀들을 쫓아 달려야 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신가요?"

 

"네 명이요."

 

"그럼 자리로 안내하겠습니다."

 

 

흰색의 아기자기한 문을 열자 분홍색 블라우스의 종업원이 우리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미오가 대표로 인원수를 말하자 메뉴 판으로 보이는 책자를 집어 들고 안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창가 쪽에 자리잡은 우리는 각자 메뉴 판을 펴고 뭘 마실까 고민하던 중 히마리가 눈을 반짝이며 우리에게 손짓했다.

 

 

"이거! 우리 이거 주문하자!"

 

"뭔데?"

 

"에프터눈 티 세트?"

 

"좋네. 그럼 차만 고르면 되겠다."

 

 

조잘조잘 얼그레이니 다즐링이니 고르던 아이들이  결정을 했는지 테이블에 있는 벨을 누르자 아까와는 다른 귀여운 종업원이 쪼르르 달려와 주문을 받았다. 히마리는 여기 유니폼 귀엽다며 키득거렸고 그에 코하네가 동감하며 같이 분주히 돌아다니는 종업원들을 바라보았다.

여자들은 분홍색 블라우스. 남자는 분홍색 넥타이로 색을 맞춰 입고 귀엽거나 잘생긴 종업원들뿐이다. 미오가 슬그머니 내게 여기는 바이트(バイト=알바)생들을 외모 위주로 뽑나 봐 하며 소근거려 그렇네 하고 맞장구 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준비되어 나온 케이크 트레이를 보며 연신 감탄을 해대며 사진을 찍 미오와 히마리를 보며 나도 한 장쯤 찍을까 하고 세 명이 다 보이도록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느라 바쁜 아이들은 눈치를 못 챈 모양이라 여유롭게 사진을 저장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찰칵 소리가 나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의기양양한 얼굴의 코하네가 이쁘게 찍혔어 하며 핸드폰의 화면을 보여주었다.

 

 

"! 이상한 표정!"

 

"서향이 먼저 사진 찍었잖아?"

 

"에에! 서향쨩 사진 찍었어?"

 

"보여줘!"

 

"에이. 몰래 찍은 보람 없게."

 

 

핸드폰을 주고받으며 사진을 한번씩 돌려보고 나서야 디저트들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소란 피우느라 적당히 따뜻하게 식은 홍차와 달달한 스위츠들, 그리고 너무 달아서 물리지 않도록 마련된 샌드위치나 스콘들이 조화롭다. 만족스러운 맛에 연신 싱글벙글하자 옆에서 코하네가 역시 오늘 모이기로 하길 잘했다며 키득거렸고 히마리 역시 그치? 그치? 하며 연신 히히거리며 웃었다. 미오 역시 동의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자주 놀러 다니면 좋겠다."

 

"맞아. 근데 코하네쨩 학생회라 바쁠걸..."

 

"주말에 가끔 이렇게 시간 내서 놀자."

 

"그럼 되겠네. 그러자."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언제 한번 우리 집에 모여서 놀고. 내 제안에 셋이 좋다. 그래도 괜찮아? 하는 반응으로 꼭 그러고 놀자고 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집에 놀만한 건 없지만... 하고 중얼거리자 미오가 자신의 집에 있는 보드게임을 가져오겠다고 하고 코하네와 히마리는 집에서 간식거리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금요일에 하교한 뒤 다시 짐을 챙겨 모여서 우리 집으로 가는 것으로, 아니면 방학에도 괜찮고.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파자마 파티하자며 히마리와 미오가 신나 했다. 그러고 놀면 정말로 재미있겠다 싶어 나도 왠지 기대가 되어서 키득키득 웃었다.

그렇게 카페에서 한참 즐겁게 놀고 나니 헤어지자니 월요일에 만날 텐데도 아쉬워서 왠지 더 놀고 싶어졌지만 떨어지기 싫어하는 히마리를 미오가 달래고 있는 것을 보니 나도 서운해 하기가 애매해져서 그저 함께 히마리를 달랬다. 히마리를 미오가 끌고 돌아가는 것을 보며 손을 흔들어주고 나서 나와 코하네도 서로를 잠시 바라보며 웃다가 월요일에 보자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사실 키요시가 저렇게 자기소개 하는거 너무 웃겨서 넣어봤어요... 쿠로코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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