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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선원의 방/안개꽃 한다발

안개꽃 한다발 - prologue

by 깜냥이 2014. 11. 16.

조아라에서 연재중인 연재작 입니다마는...
이 블로그에 낚인 김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조아라는 반응도 없고 글을 올리는 맛이 안난다고나 할까(시무룩)
주 1회 연재라는 타이틀을 달고 쓰는 키리사키 드림물입니다.
현재 5편정도 올려진 상태라 한번에 올리겠습니다!!

체육관을 가득 채우는 농구공을 튕기는 소리와 농구화의 마찰음,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들리는 감독님의 휘슬 소리와 구호 소리가 연습 중지를 외치는 목소리에 조용해진다. 하지만 금새 여중생들의 깔깔대는 목소리로 바뀌어 다시 소란스러워진 체육관을 한번 스윽 둘러본 옅은 분홍빛의 여학생은 땀을 닦아내던 수건을 목에 걸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 친구가 내어주는 드링크를 들이켰다.

 

 

"뭐야, 웬 한숨이야. 누가 우리 서향씨 괴롭혔어?"

 

"그냥, 우리도 이제 반년 정도 남았네 싶어서."

 

"에이, 반년이나 남았잖아? 우리 대장은 걱정도 많네."

 

"주장이겠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내뱉은 말에 실실 웃으며 등을 쳐대는 친구의 얼굴에 땀을 닦아내던 수건을 던지며 심드렁한 투로 대꾸하고는 체육관 정리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다가가 일손을 거들었다. 물건들을 전부 비품실로 치우고 바닥을 닦는 것까지 모두 마친 뒤 웅성거리며 샤워 실로 모여 3학년부터 씻기 시작했다.

여름의 눅눅하고 더운 공기는 씻고 나온 뒤에도 찝찝한 느낌이 들어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고 그런 서향의 모습에 친구가 다가와 미간을 딱밤을 먹이듯 탁 쳤다. 갑작스런 공격에 잠시 그대로 멈추자 재미 있다는 듯이 꺄르르 웃어댄다. 그 웃음 소리에 정신을 차린 서향이 그대로 돌려주자 무엇이 웃긴지 맞고서도 키득키득거린다.

 

 

"왜 웃어?"

 

"이쁜 얼굴 찌푸리면 남자들 도망가요. 그리고 자꾸 인상 쓰면 미간에 주름 생긴다?"

 

"뭔 딴 소리야."

 

 

제 말에 엉뚱한 대답을 하는 친구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그 뒤통수를 한대 후려 갈겼다. 빠악! 하는 경쾌한 소리에 아직 귀가 준비 중이던 부원들이 한번씩 돌아보았다가 익숙한 듯 다시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마지막 부원이 체육관에서 나간 뒤,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 한 후 문을 을 잠그고 어차피 내일 아침도 열어야 하지, 하고 중얼거리며 열쇠를 가방 안쪽에 챙겨 넣었다.

배고프다며 투덜거리는 친구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며 핸드폰을 확인하며 쌓인 카톡에 답장을 보냈다.

 

 

"배고픈데 서향이가 내 말을 씹는다. 서럽다."

 

". 오늘 저녁 닭볶음탕."

 

"갈래."

 

"오케이."

 

 

핸드폰을 바라보며 툭 던진 저녁 메뉴에 낚인 친구의 즉각적인 대답에 닭볶음탕 사진이 올려진 엄마와의 카톡에 친구도 함께 간다는 답장을 보내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언제나처럼 일방적으로 오늘 후배가 부 활동에 남친을 데려왔다느니, 누구랑 누가 1on1을 했는데 누가 이겼다느니 같은 것을 신나게 떠들어 대던 친구는 오늘따라 누구는 슛 성공률이 얼마나 늘었고, 누구는 어떤 포지션을 하면 괜찮겠다 라던가, 누구는 스타팅으로 나가도 괜찮겠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한 말 때문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그 이야기를 담담히 들어주었다.

 

 

"ただいま-(다녀왔습니다.)"

 

"(어서오렴)。 현지도 왔니?"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따라 들어온 친구를 보며 엄마가 소녀처럼 웃었다. 오늘따라 요리가 잘 되더니 현지가 오려고 그랬구나! 하시며 즐거워하시는 엄마를 보고 슬적 웃고 옷 갈아입고 온다며 방으로 들어왔다. 지난번 놀러 왔을 때 두고 간 옷을 꺼내주고 옷을 갈아입은 뒤 사이 좋게 거실로 나오자 마침 차려지고 있는 저녁상이 푸짐하다.

 

 

"우와! 오늘 무슨 날이에요?"

 

"현지가 온다기에 아줌마가 실력 발휘 좀 했지!"

 

"! 아줌마 짱!"

 

 

잘 먹겠습니다! 하고 활기차게 시작된 저녁 식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마치고 학교에서, 부 활동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또 떠들면서 즐겁게 놀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현지의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와서 현지가 집으로 돌아가고, 아빠가 퇴근하고 늦은 저녁을 드시면 세 가족이 오붓한 티타임이다.

이런저런 과자들을 꺼내어 티타임을 방자한 간식시간은 일본인인 엄마가 잠깐의 여유를 가지자며 제안해 생긴 가족간의 수다 타임이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면서 간단한 가족 회의 시간.

최근의 대화는 거의 서향의 이야기, 오늘은 현지와 귀가 중 나누었던 팀메이트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으로 남은 반년을 계획하게 된 시간으로 마쳤다.

 

 

"그래서, 다음 시합은 지금 스타팅 대로 나가고, 그 다음부터 후배들로 짜서 익숙해 지도록?"

 

", 아예 안 나가는 건 아니고, 나도 뛰고 싶으니까."

 

"나도. 일단 그렇게 하기로 한 거야?"

 

 

아침 연습 후,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교실로 돌아온 서향에게 현지가 결정 사항에 대해 묻는다. 어차피 부 활동 시간이 되면 알겠지만 궁금한 것을 침지 못하고 알려달라며 괴롭히는 그녀에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해 주었다. 새로운 스타팅은 본인의 의견이 거진 들어갔다는 이야기에 기뻐하는 친구의 모습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후배들도 기뻐하면 좋겠다며 웃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현지의 말 대로 방과 후, 정식으로 공지하자 체육관이 떠나가라 소리지르며 기뻐하는 후배들의 모습에 서향은 현지와 마주보며 웃었다. 역시나 예상이 빗겨가지 않았다며.

 

 

"그럼 이번 주말 시합을 위해 연습하자!"

 

"!"

 

 

신난 부원들의 목소리에 그저 키득거리고 훈련 전 몸풀기를 시작했다. 이번 주말의 시합은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거리도 거리 인지라 실제 시합은 처음인 학교였기에 조금 두근거려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내내 평소보다 더욱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했다. 그 모습에 평소보다 부 활동의 분위기가 평소보다 더 활기차 보이는 듯도 했다.

기다리던 주말의 시합은 처음 오는 체육관에서의 시합이라서 인지 한층 무거운 분위기였다. 그 때문인지 선수들이 평소보다 더욱 긴장해서 그것을 풀어주는 분위기 메이커인 현지가 아침부터 용을 쓰고 있다. 상대적으로 선수들의 체구가 큰 상대팀의 선수들에 조금 기죽은 후배들에게 시작 전부터 기죽으면 어쩌냐며 우리에겐 든든한 주장이 있지 않냐며 꺅꺅거리는 현지와 시합 전부터 힘 빼지 말라며 뒤통수를 한대 후려치는 서향의 만담 콤비는 긴장을 어느 정도 풀기에는 적당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인사로 시작하는 시합, 심판의 손에 공이 높이 올라가자 수다떨기 좋아하는 말괄량이 소녀들의 눈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근소한 점수차로 앞서가고 있는 제 1 쿼터는 이 페이스를 유지하자며 2쿼터로 넘어갔다. 상대 팀의 선수들은 점수차가 점점 벌어지자 다급했는지 점점 몸싸움이 심해져 결국 2쿼터 초반부터 파울이 나왔다. 첫 파울로 놀라 한번 실수가 생기자 연이어 점수를 빼앗겨 서향과 현지가 그것을 커버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파울이 나왔다고 당황하면 어떻게 해? 너희가 낸 것도 아니면서.”

 

“그보다요! 엄청 아파요! 멍들었어!”

 

“선배는 괜찮아요? 조심하세요.”

 

“괜찮아, 걱정 말고 쉬고, 남은 후반도 힘내서 가자! 점수차도 아직 그렇게 크지 않으니까!”

 

 

생각보다 이리저리 치이면서 상처가 생긴 선수들이 많았다. 파울로 크게 다친 선수는 쉬고 나머지는 응급처치를 한 뒤 후반이 시작되었다. 아무대로 인사이드에서 격한 몸싸움을 신장차이가 있는 후배들이 커버하기가 힘들어 외야로 공이 돌아갔다. 3학년들의 노련한 플레이로 빠르게 점수를 되찾아 역전을 한 3쿼터로 활기를 되찾은 선수들이 4쿼터에서도 승세를 보이자 상대 팀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역시나 격렬한 몸싸움으로 공이 외야로 돌아가면서 슛 성공률이 높은 서향의 손에 공이 쥐어지자 마침 마크를 따돌린 서향이 지체하지 않고 바로 공을 던졌다.

그리고 바로 움직이려는 서향의 시야에 공을 막으려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오고 있었을 상대팀 선수가 멈추지 않고 자신을 향에 달려드는 것이 보였고 순간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서향아!”

 

“주장!”

 

“꺄악! 선배!”

 

 

달려든 상대 선수와 함께 엄청난 소리를 내며 구른 서향을 들것이 와서 싣는 동안 감독 선생님이 상대 학교 감독에게 화를 내다가 들것이 나가자 허둥지둥 따라 나갔다. 현지가 남아 다른 학생들을 챙겨 엉망이 된 시합을 겨우 끝낸 뒤 병원으로 달려왔다. 상대 선수의 체격이 서향에 비해 큰데다 함께 얽혀서 구른 탓에 큰 부상으로 이어졌고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해 결국 선수 생활이 당분간 힘들 것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이리저리 검사를 받고 겨우 진료실에서 정신을 차린 서향에게 진단 결과는 다시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서향아! 괜찮아?"

 

"얼마나 다친 거야, ?"

 

"아빠... 엄마..."

 

 

허겁지겁 달려오신 부모님을 보고 그제야 서러움이 복받쳤는지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에 평소 어른스럽던 서향이었음에도 결국은 그저 여린 여중생이었음을 보이듯 엄마의 품에 매달려 엉엉 울었다. 실제로 그 선수가 일부러 그랬는지 달리는 속도를 주체 못해 그랬는지 알 방도는 없지만 무작정 고의일 것이라며 한참을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나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시합을 마무리하고 현지가 팀 메이트들을 데리고 병실로 찾아왔을 때 언제 울었냐는 듯이 담담한 얼굴로 그들을 맞이하는 서향의 모습은 어른들이 보기에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인지하고 인정 했음에도 직시하기 어려운 사실을 힘겹게 내뱉은 서향의 말에 온 병실이 아이들로 인해 다시금 울음바다가 되어 자신도 다시 울고 싶었을 텐데도 꾹 참으며 아이들을 달래어 돌려보내는 딸이 한 켠으로는 또 대견했다.

 

 

"우리 딸 이제 다 컸네. 이렇게 든든한 리더였구나 우리 서향이. 괜찮아. 치료 받으면 다시 시작 할 수 있을 거야. 조금 기다려야겠지만. 기다릴 수 있지?"

 

"... ."

 

"그래, 치료받으면 다시 농구 할 수 있다고 선생님이 그러셨으니까. ."

 

 

토닥토닥. 따뜻한 품 안에서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다정한 손길이 안심이 되어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떨려온다. 한동안 품에 안긴 채 다독이는 손길을 받으며 울던 어린 여자아이는 지쳐 잠이 들고 부모님은 그저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일상 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회복은 시일이 조금 걸렸지만 학교는 입원하고 얼마 뒤 방학이었던 덕에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개학하기 전에 퇴원 할 수 있었다.

개학한 뒤 첫 날의 학교는 아침 연습이 없고 목발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은 시작이었다. 그 뒤에 쉬는 시간 마다 돌아가며 찾아와 괜찮으냐며 물어보는 후배들에게 괜찮다는 말과 방과 후, 부 활동 시간에 얼굴을 보이겠다는 말을 일일이 매번 말해주며 되돌려 보내고 현지의 흐뭇한 미소를 띈 얼굴을 아무 말 없이 밀어내는 것으로 조금 평소보다 정신 없는 하루였다.

 

 

“끝나고 데리러 오신대?”

 

", 엄마 올 거야."

 

"그럼 좀 오래 있다가 가."

 

"그럴까?"

 

 

둘이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체육관의 문을 열자 미리 몸을 풀던 아이들이 일제히 문을 돌아보더니 서향을 발견하고 그대로 문으로 달려와 벤치까지 조심조심 모셔다 앉혔다. 언제나와 같은 모습, 그저 주요 선수 층과 임원들이 2학년으로 바뀌었을 뿐인 체육관이 매년 그래왔듯 어색하다. 올해는 조금 일찍 바뀌었을 뿐인 변화가 더욱 크게 느껴진 것은 비단 서향이 만의 기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서향이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으니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평소처럼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자, 그럼 연습 시작합니다!”

 

“야! 서향이가 직접 보러 왔으니 더 열심히 해! 이것들아!”

 

“애들 잡지마, 멍청아.”

 

 

현지의 오버스러운 말에 트집을 잡으며 키득거리며 웃었다. 4, 만 한 달의 입원 기간 동안 자신에게 전부였던 농구를 하기는커녕 소리도 듣지 못해 농구화의 소리나 공의 소리가 너무도 그리웠었기에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으로 벤치에 얌전히 앉아 다른 아이들의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아직 어린 여학생에게 그 순간의 공포는 충분히 트라우마였던 것일까. 연습을 구경하고 있을 뿐인데도 어디선가 누군가 달려와 부딪힐 것만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고 이전엔 통쾌하다 생각하던 농구공 소리가 소름이 끼쳤다. 애써 내색하지 않은 채 구경을 계속하면서도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지만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그런다고 불안감이 가시기는커녕 눈 앞에 굴러오고 있는 공조차 손이 떨려서 손을 댈 엄두조차 못 내고 슬그머니 목발을 챙겨 일어났다.

 

 

"? 가려고?"

 

", 엄마한테 연락 왔어"

 

"차까지 데려다 줄게!”

 

"됐네, 이 사람아. 연습에나 집중해."

 

"에이... 그럼 내일 봐!"

 

 

툴툴대는 듯한 표정의 현지에게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 조금 서둘러 체육관을 나왔다. 늘 옆에서 깔깔대며 시끄럽게 굴던 현지가 없으니 주위에 귀가하는 학생들이 눈에 들어온다. 왁자지껄한 주변이 껄끄러운 느낌과 함께 현지가 떠드는 게 차라리 덜 시끄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금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었다. 한참을 교문 앞에 서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흰색 자동차가 다가왔다. 엄마가 내려 차의 문을 열고 서향이 완전히 탑승한 것을 확인 한 뒤 다시 운전석에 앉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그렇게 풀이 죽었어?"

 

"? 별로 그런 건 아닌데... 그래 보여?"

 

"완전 풀이 죽어서는... 농구부 다녀왔어? 서운해서 그래?"

 

"... 조금."

 

"괜찮아 질 거라니까? 계속 치료하면 금방 농구 다시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겠지? 하고 애써 긍정적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음 속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해서 문드러졌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다니, 심지어 그 좋아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집에 도착하고 나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서향이 안쓰러워 저녁 후 티타임에 서향이 좋아하는 간식들을 꺼내두었지만 평소 가장 신나서 떠들던 딸은 조용히 차만 마실 뿐이었다.

 

 

"서향아, 고등학교는 일본으로 갈래?"

 

"?"

 

"엄마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그 근처에 엄마가 살던 집 아직 있으니까."

 

 

굳이 엄마가 다니던 학교가 아니어도 괜찮아. 라고 덧붙인 엄마의 말에 다시 조용히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곳을 떠난다는 선택지는 말이 통한다고 하더라도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을 터라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직 반년쯤 남았으니 천천히 생각하라는 엄마의 말에 잠시 더 고민을 하더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웃으며 그래도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하라고 하셨고 아빠는 당황해서 정말로 그렇게 해도 괜찮겠냐며 거듭 물어보았다.

 

 

"엄마 아빠는 일 때문에 같이 못 갈 텐데도? 친구들하고도 멀어질 텐데도?"

 

"괜찮아."

 

"정말? 그런데 여자애 혼자라 위험하지 않을까?"

 

"나도 혼자 살던 집인데, 거기 치안 괜찮아요."

 

 

그게 몇 년 전인데, 학생들이 많이 사는 곳이에요, 등 걱정이 심한 아빠와 별걱정을 다한다는 엄마가 투닥투닥 언쟁을 하다가 자신이 잘 조사보고 결정 하겠다는 서향의 말에 누그러졌다. 그렇지만 아빠는 여전히 걱정이라는 표정이었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듯한 서향의 표정에 그저 한숨만 내쉴 수 밖에 없었다.

트라우마에 대해 현지에게만 슬쩍 일러주니 그렇게나 좋아하는 농구인데 어떻게 그렇게 되어 버렸냐며 되려 자신이 마음 아파하고 그 때의 그 선수를 용서하지 않겠다며 난동을 부리다가 일본으로 진학한다는 말에 대성통곡을 했다. 간신히 달래어 침착해진 그녀에게 일본에 가기 전까지 신나게 놀자며 웃자 질릴 때까지 놀을 테니 각오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렇게 가을도 지나가고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서 겨울이 오고, 부 활동에서 3학년들이 졸업 전에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은퇴를 하고, 그렇게 그녀들은 졸업을 했다. 이제 다음 달 말에는 일본으로 가는구나 하는 것이 실감이 되어 기분이 묘한 서향에게 엄마가 다정하게 웃으셨다.

 

 

"서운하지?"

 

"…"

 

“그런 거지,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 엄마가 괜한 소릴 했던 걸까?”

 

“아냐, 괜찮아. 방학 때 한국 오면 만날 수 있으니까.”

 

 

이제 부모님도 방학이 되어야 만날 수 있다고 새삼 다시 생각해보니 아쉬운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씁쓸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이미 선택한 일이고 이미 고등학교도 합격한 뒤니 그런 생각은 접기로 한다. 이왕 일본에 가는 거, 후회하지 않을 만큼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과 사귀고, 많이 경험 해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그리고 다시 농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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