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달아서 1을 올리는 이유는 어쩌다가보니 1까지 썼는데, 한꺼번에 이어올리려니 내용이 미묘하게 따로 노는 느낌을 받아서 입니다.[...]
이번편은 고독한 과학자가 만든 로봇, 완성도만 따지자면 기적까지입니다.
네, 완성도는 기적입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기적적입니다.[…]
그럼 읽으실 분만 클릭해주세요.
“흠, 일단 겉모양은 그럴싸한데?”
렌은 자신의 앞에 있는 소녀를 보며 중얼거렸다.
로봇을 만들기로 결심한 후, 1년이 흘렀다. 고작 1년 만에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이 발표되면 다시 난리가 날 것이다. 그가 만든 것은 틈틈이 시중에 풀린 그런 로봇이 아니었다. 인간이 지닌 모든 감각을 지니고, 스스로 학습하는 기능을 지닌 인간과 똑같이 생긴 로봇이었다. 그가 1년 동안 수천 번 포기할지 말지를 고뇌하면서도 끝내 완성한, 모든 기술이 집약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로봇. 그 결정체가 바로 이 소녀다.
얼핏 보기에도 소녀는 인간과 똑같이 생겼다. 그와 똑같은 밝은 금발, 그보다 조금 부드러운 선이라는 것을 빼면 똑같이 생긴 얼굴. 여자애니까 곧 죽어도 리본이라는 이유로 머리에 얹어진 희고 커다란 리본.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인사할 것 같이 정교한 외견이다. 피부와 근육은 인조였지만, 피와 흡사한 윤활유가 흐르기 때문에 상처가 생기면 피가 흐른다. 거기에 섭취하는 음식물로 에너지를 얻어 상처가 생기면 자동으로 복구되게 만들었다. 그런 식으로 머리카락까지 자라게 하였다. 그녀가 로봇이라는 걸 모른다면,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을 정도다.
언론에 공개된다면, 단번에 신으로 칭송될 기적을 만들었음에도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 하지만 여자아이. 처음에는 남자아이로 할까 싶었지만, 죽을 때까지 같이 있을 애가 남자아이라니 그것도 서글프다 싶어서 여자아이로 했다. 처음에는 다른 얼굴로 할까도 생각했지만, 골수까지 박힌 인간불신에 걸려 결국 자신과 닮은 얼굴로 만들었다. 거기에 피그말리온이 되기 싫다는 일념도 섞였다.
“뭐, 이런 기분을 노렸지만, 말이지만, 그렇지만, …….”
말이 저절로 꼬일 만큼 과하게 복잡다단한 심정이었다. 역시 똑같은 외모의 여자아이는 좀 심했나? 하지만, 다른 얼굴로 하려고 할 때마다 그의 몸이 격렬하게 거부했었다. 어쩔 수 없잖아……. 그럼에도 이루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이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심란’이다.
살아오면서 처음 인식한 감정에 허우적거리면서도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이제는 되돌릴 수도 없다. 이 아이를 만들기 위해 1년을 날렸다. 이제 남은 시간은 길어야 4년. 날려버린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이대로 완성해야 한다. 후회할 겨를이 없다. 그는 그렇게 복잡한 마음을 억지로 다잡으며 마지막으로 프로그램 점검을 했다. 특별한 오류가 나오지 않은 프로그램과 완벽하게 정비된 로봇의 몸. 그럼에도, 성공할 가능성은 미지수였다. 전례에 없는 일이니 당연한 결과다.
“단번에 오류가 없는 건 처음이네. 어쩐지 느낌이 좋은걸?”
[Rin, 기동]
그는 불안을 떨치려는 듯, 냉큼 Rin이라고 이름 지은 로봇을 기동시켰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에게 기도했다. ‘그녀’의 탄생을 허락해 달라고, 지금까지 한 원망을 모두 잊어버릴 테니 ‘그녀’를 자신에게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이제 혼자라는 외로움 속에 빠져 죽음만을 기다리고 싶지 않아!
Rin의 몸 군데군데 이어져 있던 코드들이 빠졌다. 그리고 그 위를 인공피부가 덮는다. 약간 허공에 떠 있던 그녀의 발이 사뿐히 바닥에 닿았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떠진다. 그와 똑같은 새파란 눈동자가 무기질적인 눈빛으로 그를 응시한다. 그 상태로 그녀가 정해진 말을 내뱉었다.
「기동 암호를 입력해주십시오.」
“성……, 성공하면 기적.”
당황한 그가 더듬더듬 진심을 담아 말했다. 사실 일단 각오를 하고 기동시키긴 했지만, 아무리 따져도 성공할 확률은 20% 미만이었다. 그것도 Rin의 개발자가 렌이었기에 그만큼 높은 것이지 다른 사람이라면 한없이 0%에 가깝다. 그렇지만, 성공했다. 처음으로 인간과 흡사한 안드로이드를 개발해낸 것이다. 이게 학계에 밝혀지면 틀림없이 천지개벽 수준의 난장판이 펼쳐질 거다.
‘어차피 발표할 생각이 없으니 상관없는 일이지.’
그는 철저히 비밀리에 그녀를 개발했다. 인간과 비슷한 로봇은 확실히 굉장한 것이지만, 그에 비례해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 외모가 정해졌다면 좀 다르겠지만, 얼마든지 입맛대로 만들 수 있으니 분명히 범죄에 이용될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녀가 기계적인 목소리로 기동 순서의 마지막을 말했다.
「입력되었습니다. Kagamine Rin, 정식 기동합니다.」
흐릿한 빛이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왔다. 순간,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기동 전까지 말 그대로 카메라의 렌즈였다면, 지금 그녀의 눈빛은 무감각할 뿐 ‘생명’의 느낌이 들었다. 그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녀는 새삼스레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Rin이라고 합니다, 렌 박사님.”
“으응, 그래.”
그는 인간과 다름 없이 인사하는 그녀에게 어색한 반응을 보였다. 정확히는 얼떨떨했다. ‘최대한 인간과 비슷하게’가 그녀를 만들면서 삼은 목표다. 그렇기에 머릿속으로 무수히 시뮬레이션해서 예상한 상황이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실제로 이 상태가 되니 신기한 기분 반, 심란한 기분 반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있을 수는 없다. 오히려 목표에 부합했으니 기뻐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황당해서 그냥 웃어버렸다. 그렇게 조금 유쾌한 기분으로 이어 말했다.
“그냥 편하게 렌이라고 불러줘. 잘 부탁해.”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일단, 어디 오류가 없는지 확인해 볼래?”
“알겠습니다, 렌 박사님.”
어째 방금 자연스럽게 말이 씹힌 거 같은데? 분명히 ‘렌’이라고 불러달라고 하지 않았었나? Rin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렌 박사님’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는 잠시 고민에 잠겨야 했다. 말을 했던 것 같은데, 하지 않았었나? 그가 그렇게 조금 혼란스러워 할 때, 그녀가 자체 검사를 마쳤다.
“오류는 없습니다.”
“응? 그렇다면 다행이네.”
“하지만, 오류가 생겼습니다.”
“엥!? 아니, 무슨 오류?!”
그는 갑자기 없던 오류가 생겼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 외쳤다. 설마하니 프로그램에 바이러스가 섞여 있었던 걸까? 처음부터 꼬인 프로그램이 있었다든가…….
Rin의 인공지능을 만든다고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정도지만,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과학자로서의 그의 권위를 생각했을 때는 조금 황당한 일이지만, 그는 백지에서 인공지능을 만든 적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 도전하는 일인지라 시행착오도 많았고, 그만큼 더 힘들었다. 전문분야가 아니기에 맞게 한 건지 틀리게 한 건지도 모른다. 그저 다른 인공지능을 손봤던 적이 많아서 아주 잘못 만들지 않았다는 것만 알뿐이다. 보통은 인공지능을 일단 프로그램으로 돌린 다음에 다운로드형식으로 로봇에 주입하는데, 그는 그걸 떠올릴 겨를도 없어서 생략했었다. 지금, 기동시키고 난 다음에야 그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설마하니 프로그램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에 잔뜩 불안해하는 그에게 그녀는 예상 밖의 오류를 말했다.
“렌 박사님께서는 제게 Kagamine라는 성을 주셨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에……, 그게 어째서 오류라는 거지?”
“저는 로봇입니다. 그런 제게 성은 필요 없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렌 박사님과 똑같은 성이라 더 ‘이상’합니다.”
Rin은 ‘이상’하다는 것을 오류로 여겼다. 확실히 조금 이상한 일이긴 했다. 성이 같은 경우는 가족, 적어도 친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로봇이라면 가지지 않을 의문이다.
자신이 로봇이라는 자각이 확실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하며, 학습하는 로봇.
그건 그가 이상으로 여겼던 인공지능이다. 자신이 인간이라고 여기는 로봇이라면, 분명히 인간과 다른 자신을 버티지 못하고 망가질 거다. 하지만, 자신이 로봇이라는 자각이 확실하다면 그럴 일이 없다. 그렇게 분명한 자의식은 나중에 무수한 학습을 하더라도 지식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중요한 방패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만들었지만, 이렇게 결과로 나온 것을 보니 기분이 새로웠다.
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서둘러 대답했다.
“그건 오류가 아니야. 네게 내 성을 준건 네가 로봇이라는 걸 비밀로 하고 싶어서야.”
“전 로봇입니다. 인간보다 훨씬 오래 보존됩니다. 비밀로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내 형제로 해뒀기 때문에 밝혀질 일은 없어. 일단, 나부터가 불로장생(不老長生)이니까. 내가 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이상 죽지 않았을 거야. 이런 현상을 다르게는 가령정지(加齡停止)라고도 해. 드물지는 않지만, 기록상에 분명히 남아있는 기이한 현상이랄까? 난 이걸 유전병의 형태로 너에게도 발현되었다고 해뒀어. 물론, 네가 혈액 검사라도 한다면 바로 들키겠지. 하지만, 그런 일도 내가 막아놨어. 이래 보여도 제법 권력과 가까운 위치에 있으니까, 그 정도는 쉬운 일이야. 거기에다가 호적까지 위조해서 내 형제로 기록되어 있으니, 네가 로봇이라는 건 우리가 밝히지 않는 이상 들킬 일은 없다, 이거지!”
“어째서 그러셨습니까?”
확실히 그건 번거로운 일이었다. 정부의 중앙 인공지능 컴퓨터를 해킹해야 했고, 이래저래 압박을 넣어서 건강검진을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게다가 그가 불로장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건 그가 해킹했던 컴퓨터밖에 없다. 더 완벽한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프로그램 수정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살짝 손을 봐 뒀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아내려면 꽤 고생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나중에 이상함을 느끼고 조사하려는 자들을 노리고 교묘하게 교란해 놓은 거다. 그 컴퓨터에 정확한 정보를 입력하지 않는 이상, 다른 사실 (이를테면 호적 같은 것) 도 알아낼 수 없게 했다. 그렇게 이중 삼중으로 덫을 놓았다. 결과적으로는 번거로웠지만, 실질적으로는 꽤나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현재의 기술로는 널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네가 로봇이라는 게 밝혀지면 분명히 난리가 날것이야. 분해하려고 달려드는 건 애교에 불과할 정도로 엉망진창이 될 거야.”
“그건 확실히 싫습니다.”
“그렇지? 게다가 난 네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날 기억하면서 오래오래.”
“그건 ‘명령’입니까?”
“아니, 그냥 내 ‘바람’이야. 이 경우에는 ‘부탁’이 어울리려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 로봇이기 때문에 ‘산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렌 박사님의 ‘바람’이라면 오래오래 ‘존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응, 고마워.”
그녀는 분명히 프로그램에 따라 그에게 가장 필요한 답을 내어놓았을 거다. 렌, 자신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는 일찌감치 입력해놨으니까. 그걸 알지만, 조금 기쁜 건 오래간만에 들은 ‘진심’어린 말이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자신을 숨길 필요 없는 편안한 상대가 나타났다는 것을 실감해서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포근한 마음에 그냥 실없이 웃어버렸다. 처음으로 Rin을 만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혼자 피식 웃다가 문득, 그냥 지나쳐버린 말을 다시 꺼냈다.
“Rin, 아까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야. 앞으로는 그냥 편하게 렌이라고 불러줘.”
“그 말씀은 이미 하셨었습니다. 렌 박사님.”
그때 씹혔다고 느낀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그는 조금 당혹스러워서 서둘러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렌 박사님’인 거지!?”
“제가 불편합니다. ‘렌 박사님’께서는 편하게 부르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렌 박사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아니, 짧은 쪽이 말하기 편하지 않을까?”
“전혀 편하지 않습니다.”
“줄이다 보면 짧은 쪽이 편해질 거야.”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어서 그녀는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무엇보다 싫습니다.”
망설임도 없는 단호함이었다. 가호가 분명하다는 것은 확실히 좋은 일이다. 그만큼 주체가 분명하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렌은 아주 오래간만에 식은땀을 흘리며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되어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인지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했다. 아니,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그전에 싫다고? 아니 왜? 고민의 결론은 황당함으로 나버렸기에 그는 결국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거부’하는 거지?”
“‘거부’가 아니라 싫은 겁니다. ‘렌 박사님’께서는 제 ‘창조주’입니다. 인간으로 치면 ‘부모’나 다름없습니다. 존경하고 존중해야 하는 존재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일어나선 안 될 일입니다.”
애가 왜 이렇게 고지식하지? 아니, 그보다 어디에서 이런 지식을 학습한 걸까? 렌은 자신이 이런 내용을 학습하도록 입력시켰는지를 다시 한동안 고민해야만 했다. 결론은 그런 적이 없다는 거다. 자체적으로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게 만들어뒀지만, 그 사이에 어디에 접속했기에 이런 생뚱맞은 학습을 한 걸까? 그는 조금 머리를 잡고 생각한 바를 말했다.
“그런 경우에는 그 존경받는 상대가 해주는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게 더 문제지 않아?”
자고로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거다. 렌은 그런 의미를 담아 말했건만, 그녀는 아주 단호하게 받아쳤다.
“그런 건 배우지 않아서 모릅니다.”
그 순간, 그는 이런 패턴의 말다툼을 자주 하게 될 것만 같은 막연한 예감을 느꼈다. 소름 돋을 정도로 불길한 예감이었기에 머리를 흔들어 대강 털어버리고는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학습 프로그램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그러면 적어도 배우지 않아서 모른다면서 우기진 않겠지. 그럼 적어도 이런 말다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최우선적으로 학습 프로그램을 두자.”
“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혼자 외로이 살아가던 그의 삶에 폭탄이 투하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식으로 티격태격거리는 관계를 좋아합니다.
덤으로 과학자는 자기무덤을 팠습니다.
덕분에 조금 개그입니다.
수줍은 마음에 청하니 부디 얼른 닫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냥 쑥쓰러워서요.
이번편은 고독한 과학자가 만든 로봇, 완성도만 따지자면 기적까지입니다.
네, 완성도는 기적입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기적적입니다.[…]
그럼 읽으실 분만 클릭해주세요.
“흠, 일단 겉모양은 그럴싸한데?”
렌은 자신의 앞에 있는 소녀를 보며 중얼거렸다.
로봇을 만들기로 결심한 후, 1년이 흘렀다. 고작 1년 만에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이 발표되면 다시 난리가 날 것이다. 그가 만든 것은 틈틈이 시중에 풀린 그런 로봇이 아니었다. 인간이 지닌 모든 감각을 지니고, 스스로 학습하는 기능을 지닌 인간과 똑같이 생긴 로봇이었다. 그가 1년 동안 수천 번 포기할지 말지를 고뇌하면서도 끝내 완성한, 모든 기술이 집약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로봇. 그 결정체가 바로 이 소녀다.
얼핏 보기에도 소녀는 인간과 똑같이 생겼다. 그와 똑같은 밝은 금발, 그보다 조금 부드러운 선이라는 것을 빼면 똑같이 생긴 얼굴. 여자애니까 곧 죽어도 리본이라는 이유로 머리에 얹어진 희고 커다란 리본.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인사할 것 같이 정교한 외견이다. 피부와 근육은 인조였지만, 피와 흡사한 윤활유가 흐르기 때문에 상처가 생기면 피가 흐른다. 거기에 섭취하는 음식물로 에너지를 얻어 상처가 생기면 자동으로 복구되게 만들었다. 그런 식으로 머리카락까지 자라게 하였다. 그녀가 로봇이라는 걸 모른다면,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을 정도다.
언론에 공개된다면, 단번에 신으로 칭송될 기적을 만들었음에도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 하지만 여자아이. 처음에는 남자아이로 할까 싶었지만, 죽을 때까지 같이 있을 애가 남자아이라니 그것도 서글프다 싶어서 여자아이로 했다. 처음에는 다른 얼굴로 할까도 생각했지만, 골수까지 박힌 인간불신에 걸려 결국 자신과 닮은 얼굴로 만들었다. 거기에 피그말리온이 되기 싫다는 일념도 섞였다.
“뭐, 이런 기분을 노렸지만, 말이지만, 그렇지만, …….”
말이 저절로 꼬일 만큼 과하게 복잡다단한 심정이었다. 역시 똑같은 외모의 여자아이는 좀 심했나? 하지만, 다른 얼굴로 하려고 할 때마다 그의 몸이 격렬하게 거부했었다. 어쩔 수 없잖아……. 그럼에도 이루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이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심란’이다.
살아오면서 처음 인식한 감정에 허우적거리면서도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이제는 되돌릴 수도 없다. 이 아이를 만들기 위해 1년을 날렸다. 이제 남은 시간은 길어야 4년. 날려버린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이대로 완성해야 한다. 후회할 겨를이 없다. 그는 그렇게 복잡한 마음을 억지로 다잡으며 마지막으로 프로그램 점검을 했다. 특별한 오류가 나오지 않은 프로그램과 완벽하게 정비된 로봇의 몸. 그럼에도, 성공할 가능성은 미지수였다. 전례에 없는 일이니 당연한 결과다.
“단번에 오류가 없는 건 처음이네. 어쩐지 느낌이 좋은걸?”
[Rin, 기동]
그는 불안을 떨치려는 듯, 냉큼 Rin이라고 이름 지은 로봇을 기동시켰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에게 기도했다. ‘그녀’의 탄생을 허락해 달라고, 지금까지 한 원망을 모두 잊어버릴 테니 ‘그녀’를 자신에게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이제 혼자라는 외로움 속에 빠져 죽음만을 기다리고 싶지 않아!
Rin의 몸 군데군데 이어져 있던 코드들이 빠졌다. 그리고 그 위를 인공피부가 덮는다. 약간 허공에 떠 있던 그녀의 발이 사뿐히 바닥에 닿았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떠진다. 그와 똑같은 새파란 눈동자가 무기질적인 눈빛으로 그를 응시한다. 그 상태로 그녀가 정해진 말을 내뱉었다.
「기동 암호를 입력해주십시오.」
“성……, 성공하면 기적.”
당황한 그가 더듬더듬 진심을 담아 말했다. 사실 일단 각오를 하고 기동시키긴 했지만, 아무리 따져도 성공할 확률은 20% 미만이었다. 그것도 Rin의 개발자가 렌이었기에 그만큼 높은 것이지 다른 사람이라면 한없이 0%에 가깝다. 그렇지만, 성공했다. 처음으로 인간과 흡사한 안드로이드를 개발해낸 것이다. 이게 학계에 밝혀지면 틀림없이 천지개벽 수준의 난장판이 펼쳐질 거다.
‘어차피 발표할 생각이 없으니 상관없는 일이지.’
그는 철저히 비밀리에 그녀를 개발했다. 인간과 비슷한 로봇은 확실히 굉장한 것이지만, 그에 비례해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 외모가 정해졌다면 좀 다르겠지만, 얼마든지 입맛대로 만들 수 있으니 분명히 범죄에 이용될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녀가 기계적인 목소리로 기동 순서의 마지막을 말했다.
「입력되었습니다. Kagamine Rin, 정식 기동합니다.」
흐릿한 빛이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왔다. 순간,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기동 전까지 말 그대로 카메라의 렌즈였다면, 지금 그녀의 눈빛은 무감각할 뿐 ‘생명’의 느낌이 들었다. 그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녀는 새삼스레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Rin이라고 합니다, 렌 박사님.”
“으응, 그래.”
그는 인간과 다름 없이 인사하는 그녀에게 어색한 반응을 보였다. 정확히는 얼떨떨했다. ‘최대한 인간과 비슷하게’가 그녀를 만들면서 삼은 목표다. 그렇기에 머릿속으로 무수히 시뮬레이션해서 예상한 상황이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실제로 이 상태가 되니 신기한 기분 반, 심란한 기분 반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있을 수는 없다. 오히려 목표에 부합했으니 기뻐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황당해서 그냥 웃어버렸다. 그렇게 조금 유쾌한 기분으로 이어 말했다.
“그냥 편하게 렌이라고 불러줘. 잘 부탁해.”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일단, 어디 오류가 없는지 확인해 볼래?”
“알겠습니다, 렌 박사님.”
어째 방금 자연스럽게 말이 씹힌 거 같은데? 분명히 ‘렌’이라고 불러달라고 하지 않았었나? Rin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렌 박사님’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는 잠시 고민에 잠겨야 했다. 말을 했던 것 같은데, 하지 않았었나? 그가 그렇게 조금 혼란스러워 할 때, 그녀가 자체 검사를 마쳤다.
“오류는 없습니다.”
“응? 그렇다면 다행이네.”
“하지만, 오류가 생겼습니다.”
“엥!? 아니, 무슨 오류?!”
그는 갑자기 없던 오류가 생겼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 외쳤다. 설마하니 프로그램에 바이러스가 섞여 있었던 걸까? 처음부터 꼬인 프로그램이 있었다든가…….
Rin의 인공지능을 만든다고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정도지만,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과학자로서의 그의 권위를 생각했을 때는 조금 황당한 일이지만, 그는 백지에서 인공지능을 만든 적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 도전하는 일인지라 시행착오도 많았고, 그만큼 더 힘들었다. 전문분야가 아니기에 맞게 한 건지 틀리게 한 건지도 모른다. 그저 다른 인공지능을 손봤던 적이 많아서 아주 잘못 만들지 않았다는 것만 알뿐이다. 보통은 인공지능을 일단 프로그램으로 돌린 다음에 다운로드형식으로 로봇에 주입하는데, 그는 그걸 떠올릴 겨를도 없어서 생략했었다. 지금, 기동시키고 난 다음에야 그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설마하니 프로그램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에 잔뜩 불안해하는 그에게 그녀는 예상 밖의 오류를 말했다.
“렌 박사님께서는 제게 Kagamine라는 성을 주셨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에……, 그게 어째서 오류라는 거지?”
“저는 로봇입니다. 그런 제게 성은 필요 없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렌 박사님과 똑같은 성이라 더 ‘이상’합니다.”
Rin은 ‘이상’하다는 것을 오류로 여겼다. 확실히 조금 이상한 일이긴 했다. 성이 같은 경우는 가족, 적어도 친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로봇이라면 가지지 않을 의문이다.
자신이 로봇이라는 자각이 확실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하며, 학습하는 로봇.
그건 그가 이상으로 여겼던 인공지능이다. 자신이 인간이라고 여기는 로봇이라면, 분명히 인간과 다른 자신을 버티지 못하고 망가질 거다. 하지만, 자신이 로봇이라는 자각이 확실하다면 그럴 일이 없다. 그렇게 분명한 자의식은 나중에 무수한 학습을 하더라도 지식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중요한 방패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만들었지만, 이렇게 결과로 나온 것을 보니 기분이 새로웠다.
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서둘러 대답했다.
“그건 오류가 아니야. 네게 내 성을 준건 네가 로봇이라는 걸 비밀로 하고 싶어서야.”
“전 로봇입니다. 인간보다 훨씬 오래 보존됩니다. 비밀로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내 형제로 해뒀기 때문에 밝혀질 일은 없어. 일단, 나부터가 불로장생(不老長生)이니까. 내가 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이상 죽지 않았을 거야. 이런 현상을 다르게는 가령정지(加齡停止)라고도 해. 드물지는 않지만, 기록상에 분명히 남아있는 기이한 현상이랄까? 난 이걸 유전병의 형태로 너에게도 발현되었다고 해뒀어. 물론, 네가 혈액 검사라도 한다면 바로 들키겠지. 하지만, 그런 일도 내가 막아놨어. 이래 보여도 제법 권력과 가까운 위치에 있으니까, 그 정도는 쉬운 일이야. 거기에다가 호적까지 위조해서 내 형제로 기록되어 있으니, 네가 로봇이라는 건 우리가 밝히지 않는 이상 들킬 일은 없다, 이거지!”
“어째서 그러셨습니까?”
확실히 그건 번거로운 일이었다. 정부의 중앙 인공지능 컴퓨터를 해킹해야 했고, 이래저래 압박을 넣어서 건강검진을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게다가 그가 불로장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건 그가 해킹했던 컴퓨터밖에 없다. 더 완벽한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프로그램 수정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살짝 손을 봐 뒀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아내려면 꽤 고생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나중에 이상함을 느끼고 조사하려는 자들을 노리고 교묘하게 교란해 놓은 거다. 그 컴퓨터에 정확한 정보를 입력하지 않는 이상, 다른 사실 (이를테면 호적 같은 것) 도 알아낼 수 없게 했다. 그렇게 이중 삼중으로 덫을 놓았다. 결과적으로는 번거로웠지만, 실질적으로는 꽤나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현재의 기술로는 널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네가 로봇이라는 게 밝혀지면 분명히 난리가 날것이야. 분해하려고 달려드는 건 애교에 불과할 정도로 엉망진창이 될 거야.”
“그건 확실히 싫습니다.”
“그렇지? 게다가 난 네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날 기억하면서 오래오래.”
“그건 ‘명령’입니까?”
“아니, 그냥 내 ‘바람’이야. 이 경우에는 ‘부탁’이 어울리려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 로봇이기 때문에 ‘산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렌 박사님의 ‘바람’이라면 오래오래 ‘존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응, 고마워.”
그녀는 분명히 프로그램에 따라 그에게 가장 필요한 답을 내어놓았을 거다. 렌, 자신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는 일찌감치 입력해놨으니까. 그걸 알지만, 조금 기쁜 건 오래간만에 들은 ‘진심’어린 말이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자신을 숨길 필요 없는 편안한 상대가 나타났다는 것을 실감해서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포근한 마음에 그냥 실없이 웃어버렸다. 처음으로 Rin을 만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혼자 피식 웃다가 문득, 그냥 지나쳐버린 말을 다시 꺼냈다.
“Rin, 아까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야. 앞으로는 그냥 편하게 렌이라고 불러줘.”
“그 말씀은 이미 하셨었습니다. 렌 박사님.”
그때 씹혔다고 느낀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그는 조금 당혹스러워서 서둘러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렌 박사님’인 거지!?”
“제가 불편합니다. ‘렌 박사님’께서는 편하게 부르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렌 박사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아니, 짧은 쪽이 말하기 편하지 않을까?”
“전혀 편하지 않습니다.”
“줄이다 보면 짧은 쪽이 편해질 거야.”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어서 그녀는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무엇보다 싫습니다.”
망설임도 없는 단호함이었다. 가호가 분명하다는 것은 확실히 좋은 일이다. 그만큼 주체가 분명하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렌은 아주 오래간만에 식은땀을 흘리며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되어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인지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했다. 아니,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그전에 싫다고? 아니 왜? 고민의 결론은 황당함으로 나버렸기에 그는 결국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거부’하는 거지?”
“‘거부’가 아니라 싫은 겁니다. ‘렌 박사님’께서는 제 ‘창조주’입니다. 인간으로 치면 ‘부모’나 다름없습니다. 존경하고 존중해야 하는 존재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일어나선 안 될 일입니다.”
애가 왜 이렇게 고지식하지? 아니, 그보다 어디에서 이런 지식을 학습한 걸까? 렌은 자신이 이런 내용을 학습하도록 입력시켰는지를 다시 한동안 고민해야만 했다. 결론은 그런 적이 없다는 거다. 자체적으로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게 만들어뒀지만, 그 사이에 어디에 접속했기에 이런 생뚱맞은 학습을 한 걸까? 그는 조금 머리를 잡고 생각한 바를 말했다.
“그런 경우에는 그 존경받는 상대가 해주는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게 더 문제지 않아?”
자고로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거다. 렌은 그런 의미를 담아 말했건만, 그녀는 아주 단호하게 받아쳤다.
“그런 건 배우지 않아서 모릅니다.”
그 순간, 그는 이런 패턴의 말다툼을 자주 하게 될 것만 같은 막연한 예감을 느꼈다. 소름 돋을 정도로 불길한 예감이었기에 머리를 흔들어 대강 털어버리고는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학습 프로그램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그러면 적어도 배우지 않아서 모른다면서 우기진 않겠지. 그럼 적어도 이런 말다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최우선적으로 학습 프로그램을 두자.”
“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덤으로 과학자는 자기무덤을 팠습니다.
덕분에 조금 개그입니다.
수줍은 마음에 청하니 부디 얼른 닫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냥 쑥쓰러워서요.
'선장의 통합 서재 > VOCALOID' 카테고리의 다른 글
[VOCALOID / 린렌린] ココロ キセキ + ココロ - 0 (0) | 2011.09.08 |
---|
댓글